[출처] 태국 高山지대의 라후族에게 한글을 보급하다   이현복 서울대 명예교수 2004

● 체질인류학적으로 한국인과 흡사
● 고구려 유민들의 후손으로 추정돼
● 한글과 유사한 언어 구조
● 글자가 없어 한글을 가르치는 작업 진행 중

李 炫 馥 서울大 명예교수
1936년 충남 보령 출생. 서울大 언어학과 졸업, 영국 런던大 박사. 現 대한음성학회 명예회장, 한국음성연구소 소장, 한국언어학회 회장, 서울大 언어학과 명예교수.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CBE 훈장 수훈, 제18회 세종문화상(학술부문) 受賞. 저서 「한국어의 표준발음」, 「한국어 표준발음사전」 등.

태국 북부에서 듣는 강원도 민요

<필자로부터 한글 음성문자를 배우는 라후族 사람들.>
 김치를 먹고 색동옷을 입는 태국 북부 고산지대의 라후(Lahu)族. 한글과 라후語는 놀랄 만큼 닮았다. 그래선지 음성언어만 있고 문자언어가 없는 라후族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일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중국이나 러시아 등지에 사는 우리 동포들은 우리나라에서 이주해 간 이민의 역사가 분명하고 그들의 말도 비록 여러 가지로 특이한 면이 있긴 하나 그래도 우리말의 여러 방언적인 차이를 보일 뿐, 분명히 우리말을 쓰고 있다.
 
  그런데 기록된 역사가 없는 동남아의 어느 高山族(고산족)이 쓰는 말이 우리 국어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면 흥미롭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민족과 해외 동포 이외에도 우리와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이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태국 북부와 미얀마의 북동부, 그리고 라오스의 서북부 및 중국 운남성의 남부 지역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황금의 삼각지대" (Golden Triangle) 주변에 흩어져 사는 산족중에  "라후"(Lahu) 족이 있다. 이들의 언어 역시 "라후어"라고 한다. 이들은 화전으로 농사를 짓고 쌀을 주식으로 하나 항상 먹거리가 부족한 실정이다. 태국인들이 가늘고 긴 알랑미로 밥을 지어 먹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과거에는 양귀비 재배로 소득을 올리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양귀비 재배가 법으로 금지되어있다.   필자가 접촉한 태국 북부에 사는 라후족은 국적이 없고 여권도 가질 수가 없어 해외 여행이 불가능하며 태국 안에서의 여행도 자유롭지 못하다.  
   
 라후族은 언어, 풍속, 생활 양식 등에서 인근의 태국인이나 라오스인, 미얀마인, 중국인 등과는 전혀 다른 고유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라후族은 얼굴의 생김새나 식생활이 한국인에 가깝다. 퍼슬퍼슬한 안남米가 아닌 둥근 쌀로 지은 밥에 김치 같은 반찬을 먹을 뿐 아니라, 축제 때에는 우리와 유사한 색동옷을 입는다.
 
  특히 음력 설 무렵의 축제는 라후인들에게 가장 즐겁고 풍요로운 잔치이다. 한껏 차려입은 젊은 남녀들은 마을의 공터에서 둥그런 원을 그리며 앞장 선 남자의 호로생 악기 연주에 맞춰 16박의 리듬으로 힘차게 땅을 내디디며 몸을 트는 춤을 춘다. 이런 축제가 젊은 남녀에게는 서로 짝을 찾고 사랑을 나누며, 결혼으로 이어지는 뜻깊은 기회가 된다.
 
  가톨릭 대학의 한승호 교수는 현지 조사를 통하여 라후族의 머리 형태를 조사 분석한 결과, 라후인이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짧은 머리형」과 「높은 머리형」을 가지고 있음을 밝혔다. 머리 형태는 형태학적으로 체질인류학적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한다. 라후族의 남자는 한국인과 비슷한 위턱 앞니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가톨릭 대학의 미생물학 교실 팀은 라후族의 혈청에서 백혈구 抗原(항원)을 검사한 결과, 한국인 등 몇몇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HLA-B59가 발견됐다고 한다.
 
  라후族은 민속 음악에 있어서도 한국의 민요와 맥을 같이 한다고 중앙대학의 전인평 교수가 지적했다. 해당 구절을 소개한다.
    『라후 셀레의 민요를 듣는 순간, 온몸이 얼어 붙는 듯, 등골이 오싹해진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이게 웬일일까? 수만 리 떨어진 태국 북부의 산 속에서 흡사 강원도 아낙네가 푸념하듯 내뱉는 노래가 들려 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사만 바꾸면 그냥 강원도 민요다. 노래의 장단, 노래의 시작하고 끝나는 법, 특히 잔잔한 우수가 깃든 음악의 정서가 완전히 일치한다. … 이러한 상관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라후語 「너레」는 한국어 「너는」과 같다
 
  특히 라후語는 그 구조가 한국어에 아주 유사하다. 소설가이며 문화탐험가인 김병호 박사는 라후族을 고구려의 유민으로 보고 있다. 羅唐(나당) 연합군에 멸망한 고구려의 유민이 당나라에 포로로 끌려갔다는 三國史記와 수만 명의 고구려 유민이 唐軍(당군)에 쫓기다가 운남성 부근에서 사라졌다는 중국 史書의 기록을 근거로, 그들 중 역경을 딛고 南으로 南으로 내려온 고구려인의 후예가 바로 라후族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쓰는 말 역시 고구려 유민의 언어, 즉 우리말의 일종이라고 본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매티소프(Matisoff) 교수는 『라후말의 구절 구조는 일본어와 한국어에 대단히 유사하다』고 했다.
 
  그러면 라후語가 우리말과 어느 면에서 유사하며,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너레 까울리로 까이베요」는 「너는 한국으로 간다」라는 뜻이다. 우선 이 문장을 이루는 낱말의 배열 순서가 「주어+보어+술어」로 한국어와 일치한다. 그리고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술부의 동사가 문장의 끝에 온다. 영어라면 「You go to Korea」이니 술어가 바로 주어 다음에 오게 된다. 독일어나 중국어도 마찬가지이다.
 
  「너레」의 「너」는 우리말의 「너」라는 대명사와 형태가 아주 유사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주격조사 「레」이다. 이는 북한(과거 고구려) 사투리에서 「내레, 너레」 할 때의 주격 조사와 연관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작의 방향을 나타내는 「로」는 현대 국어에서도 「서울-로」, 「김포-로」에서와 같이 일상 쓰이는 조사로서 형태와 기능이 일치한다.
 
  「간다」는 뜻의 라후말 「까이」도 한국어의 「가다」와 비슷하다. 「까울리」는 中國이나 태국 등에서 「고구려」나 「고려」를 뜻하는 말로서 바로 우리나라를 말한다.
 
  이렇게 볼 때, 라후말로 문장을 구성할 때는 우리말 순서대로 라후말 단어를 대입만 하면 되며, 단어 중에는 형태마저 같은 것이 있으니 더욱 친근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어휘에 있어서는 한국어와 유사한 말이 그리 많지 않다.
 
  상대를 부를 때 쓰는 호격도 우리말과 유사하다. 가령 한국어에서 인순이를 부를 때 「인순아!」 하듯이 라후 사람들도 「나시」라는 이름을 부를 때 「나시아!」라고 한다. 부르는 상대의 이름 다음에 「아」라는 어미를 더하는 것은 틀림없는 한국식이다.
 
  명사에 붙는 라후語의 소유격 「베」 역시 한국어의 「의」처럼 쓰인다. 「너베 예」는 「너의 집」이다. 분류사를 쓰는 방법도 같다. 우리말의 「소 두 마리」에서 「마리」를 분류사로 볼 수 있는데, 라후語에서는 「마리」에 해당하는 분류사 「케」가 「둘」을 뜻하는 수사 「니」 다음에 연결되어 「누 니 케」로 대응된다. 라후말 「누 니 케」와 우리말 「소 두 마리」는 그 구성이 똑같다.
 
 
  음성체계, 형태·통사론적 특성도 유사
 
  라후語는 음성체계도 한국어와 유사한 면이 많다. 음성체계가 유사하다는 것은 발음이 비슷하다는 뜻이다. 우선 자음에서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三重대립을 나타낸다. 가령, ㅂ/ㅍ/ㅃ 같은 파열음이 三重으로 대립하여 한국어에서 비/피/삐 같은 낱말을 이루어 내듯이, 라후말도 이같은 三重대립을 보인다.
 
  영어 등의 서양 언어가 b/p 의 두 가지밖에 구별을 안 해 bay/pay 같은 二重대립밖에 없는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실제로 라후語는 우리말에 없는 소리가 네댓 개 더 있다. 가령, 목젖으로 나는 소리는 한글로 표기할 수 없다.
 
  라후語의 모음 역시 한국어와 유사하다. 우리와 같이 이/에/애/아/오/우/어/으 같은 모음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소리 값 역시 아주 유사하다. 특히 다른 외국어에서 찾아보기 힘든 「으」나 「어」를 한국어와 라후語가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런데 라후語에는 제주도 말에 지금도 남아 있다고 추정되는 15세기 국어의 「아래 아」 모음이 하나 더 존재한다. 이 소리는 표준말의 「오」보다 입을 더 벌리고 혀를 내려서 내는 열린 모음이다.
 
  이렇게 볼 때 라후語는 한국어보다도 자음과 모음의 수가 더 많다. 그러나 라후語는 聲調(성조·목소리의 높낮이)가 7개나 있어서 우리말에 비해 복잡한 면도 있다.
 
  음성과 음운의 체계가 유사할 뿐 아니라, 형태론 및 통사론적 특성에 있어서도 라후語는 우리말과 유사한 면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언어학적으로 라후語는 「사이노-티베트(Sino-Tibetan)」라는 거대한 語族에 속한다. 더 자세히 말하면 이 語族의 한 분파인 「티베트-버마계」로 이어지며 그 하위 분파인 「롤로-버마계」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되고 있다.
 
  한국어는 알타이 語族에 속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그렇다면 語族的으로 전혀 계통을 달리하는 라후語가 어찌하여 한국어와 유사성을 지니는지 큰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라후語는 과연 한국어와 계통이 같은 언어인가? 아니면 단지 유형적으로 유사성을 지니는 것인가? 아니면 역사적으로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우리말과 유사한 면을 지니게 된 것인가? 이러한 의문을 풀려면 먼저 라후語 자체에 관한 언어학적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어서 라후語에 대한 정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어와 구조적 특성을 비교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라후族과 한국인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서도 앞으로 계속 연구 검토해야 할 문제이다.
 
  라후族은 고유의 언어인 라후語를 쓰고 있으나 이를 표기할 글자가 없는 無文字 고산족이다. 일부 기독교로 개종한 라후의 젊은이들은 선교사들이 만든 로마자 표기를 이용해 라후말을 적기도 한다. 그러나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기독교의 영향을 받지 못한 대다수의 라후인들은 아직도 글자를 모르고 음성언어에만 의존하고 산다.
 
  이같이 문자가 없고 기록이 없으니 이들은 자신들의 뿌리와 역사에 대한 기억도 겨우 口傳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라후族은 자신의 조상들이 아주 먼 옛날 흰 눈이 내리는 추운 곳에서 왔다는 정도로 내력을 알고 있을 뿐이다.
   
  국제한글음성문자」로 해결
 
  필자는 1994년 태국 북부 치앙마이市 인근의 산중에서 라후, 아카, 리수 등의 山族 마을에 처음 들어가 보고 놀라움과 함께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난 40여 년 동안 필자는 영국을 비롯한 서구 여러 국가와 일본 등 문명사회의 언어와 문화에 관심을 가져왔다. 문명을 등지고 사는 오지의 사람들과는 만나본 적이 없었는데, 가난하지만 순박하고 여유롭게 사는 그들의 모습에서 연민과 함께 일종의 동경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필자는 특히 고구려의 후예일지도 모른다는 라후族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라후語를 조사·연구하며 우리말과 관련성을 비교 검토하는 데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필자는 그 과정에서 고유의 글자가 없는 라후族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어 그들이 자유롭게 글자생활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라후語의 음성체계를 볼 때 라후語를 표기하는 데 한글 이상으로 적합한 글자가 없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두 언어의 음성체계가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라후語에는 우리말과 일치하는 모음이 8개나 되고, 자음에서는 18개가 대응되니 몇 개만 더 보완하면 해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라후語가 한국어보다 모음과 자음의 수가 많은 것이 문제이다. 우리말은 모음 8개, 자음 19개를 적을 수 있으면 되나 라후語는 모음이 9개, 자음이 23개는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현행 한글 자모만으로는 라후語를 완벽하게 적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오래 전에 필자가 고안해 발표한 「국제한글음성문자」 중에서 라후語에 필요한 기호를 택해 추가하는 방법으로 라후語의 한글 표기 체계를 완성하였다. 국제한글음성문자는 한글을 바탕으로 개발한 발음기호로 이를 이용하면 세계 모든 언어의 발음을 정확하게 적을 수 있다. 가령, 현행 한글 자모로는 서양어의 f, v, th, sh 같은 소리를 적을 수 없으나 국제한글음성문자로는 이런 소리를 모두 적어 낼 수 있다. 라후語에는 목젖 소리나 우리말의 「오」보다 입을 더 열고 내는 모음이 있는데, 이들을 현행 한글로는 적을 수 없으니 이에 해당하는 한글 음성기호를 골라 활용하게 된다.
 
 
  라후인들의 한글 습득은 성공적
 
  라후語에 맞는 한글 표기체계를 마련하는 것과 이를 라후인에게 가르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우리나라에 훌륭한 한글이 있었어도 실제로 이를 배우지 못한 눈 뜬 장님이 많았던 것처럼, 라후말을 적을 수 있는 한글 음성문자 체계를 만들어 내도 이를 실제로 가르치고 학습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는 일이다.
 
  라후의 어른들은 아편이나 피우며 無爲徒食(무위도식)하는 하는 이들이 많고 여자들은 집안일, 밭일 등으로 시간적인 여유가 없으니 억지로 불러 앉힐 수도 없는 일이다. 결국 무리 없이 가르치기 좋은 층은 어린이들이며 여기에 일부 청년들과 여인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라후인의 한글 습득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진도가 빠른 사람들은 며칠간의 학습으로 자신과 가족의 이름이며 마을 명칭 등을 한글로 쓸 수 있고 일상의 간단한 표현을 적어 낼 수 있게 되었다. 15세기에 우리 고유의 문자가 없이 어려운 漢字에 고통을 겪던 우리 민족을 위하여 창제한 훈민정음이 21세기에 이르러 동남아의 오지에 사는 高山族의 손으로 쓰이고 있다니, 그것도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적는 데 쓰이게 된 것이다. 이것은 바로 한글의 국제화이며 동시에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펼치는 길이기도 하다.
 
  라후인들이 한글을 쉽게 익힐 수 있는 데는 두 가지 큰 이유가 있다.
 
  첫째는 한글이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ㄱ」을 배우면 「ㅋ」과 「ㄲ」을 쉽게 배우듯 한 글자를 배우면 이와 글자 모양이 유사한 글자를 쉽게 배우고 기억할 수 있게 한다. 만약에 로마자로 한다면 「g」와 「k」라는 전혀 다른 두 개의 기호를 익혀야 하는 부담이 있다.
 
  둘째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라후語가 한국어와 같이 三重대립을 보이므로 한글로 대응시켜 적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합리적이다. 로마자 「g」와 「k」만 가지고는 라후語의 세 가지 소리 「ㄱ」, 「ㅋ」, 「ㄲ」을 간편하게 적어 낼 수가 없는 것이다.
 
  라후族을 대상으로 한 한글보급운동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깊은 산 속 이곳저곳에 마을을 이루고 사는 수만 명의 라후族을 대상으로 한글 교육을 하려면 많은 교사와 긴 세월의 노력이 필요하다.
 
  라후族이 진정 고구려의 유민이라면 우리는 1300년의 긴 단절 끝에 우리의 동포를 다시 만난 셈이다. 글자를 모르는 이들은 한글을 학습할 권리가 있고, 우리는 그들에게 자랑스러운 한글을 전수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한글은 그들의 글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라후族은 태국 북부와 미얀마의 북동부, 그리고 라오스의 서북부 및 중국 운남성의 남부 지역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황금의 삼각지대(Golden Triangle)」 주변에 흩어져 산다. 이들은 화전(火田)으로 농사를 짓고 쌀을 주식(主食)으로 하나 항상 먹을거리가 부족한 실정이다. 과거에는 양귀비 재배로 소득을 올리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양귀비 재배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필자가 접촉한 태국 북부에 사는 라후族은 국적이 없고 여권도 가질 수 없어 해외여행이 불가능하며 태국 안에서의 여행도 자유롭지 못하다.
 
  라후族은 「검은 라후(Lahu Na)」, 「노란 라후(Lahu Shi)」, 「붉은 라후(Lahu Ni)」와 「라후 셀레」로 나뉘어 방언적인 차이를 보이는데, 이 중에서 「검은 라후」의 말이 대표적인 표준말로 널리 통용된다. 전체 인구는 60여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 중에서 중국에 36만 명, 미얀마에 20만 명, 태국에 6만 명, 라오스에 2000명 정도가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양신을 믿고 호랑이를 숭배
 
  해발 1200m 이상의 높은 산 속에 사는 라후族은 대나무를 엮어 만든 단순한 집에서 산다. 한쪽 면을 산비탈에 맞대고 마룻바닥을 땅에서 들어 올려 높다랗게 지은 대나무집 아래와 주변 마당에는 닭, 개, 돼지 등의 가축이 사람과 어울려서 사는 모습이 정겹기까지 하며 옛날 우리나라 산골 농촌의 풍경과 그리 다르지 않다. 단순하고 작은 집이긴 하나 집집마다 방안에는 취사를 위한 부엌 세간이 있고 한 쪽 위에는 간소한 神壇(신단)이 마련되어 있어서 그들의 토속 신앙을 엿볼 수 있다.
 
  라후族은 태양신을 믿고 호랑이를 숭배하는 부족이다. 태국인들은 라후族을 「뭇수르(mussur)」라고도 하는데, 이는 예로부터 활을 잘 쏘고 사냥을 잘하는 데서 붙여진 「사냥꾼」이라는 뜻이다.
 
  길게 연결한 대나무 대롱에 산골짜기의 물줄기를 실어 집 마당까지 끌어 들여 식수로 쓸 뿐 아니라, 세면과 목욕에까지 이용하는 생활의 지혜에 절로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태국인들은 높은 산 속에서 가난하게 사는 라후인들을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으며 깔보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배운 것 없이 산 속에서 곤궁하게 사는 山族들이니 그렇게 대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라후族이라고 제대로 된 농토를 원하지 않겠는가! 넓고 편편한 땅을 개간하여 농사를 짓고 싶지만 심산유곡에서는 어려운 일이고, 산을 내려와 평지에 접근하면 태국인과 마찰을 빚고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으니 이 역시 불가능한 일이다. 라후인이 산 아래 쪽으로 내려와 버려진 땅을 밭으로 개간해 놓으면 이를 빼앗으려는 태국인과 마찰을 일으키게 마련이고 때로는 살인사건이 빚어지기도 한다.
 
  라후族은 이렇게 험난한 생활을 꾸려 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린 딸을 싼 값에 팔아 넘기는 부모가 적지 않다. 겨우 14~15세가 될까 말까 한 나이가 되면 가난에 찌든 부모, 특히 아편에 중독된 아버지는 돈 몇 푼에 쉽게 딸을 팔아 넘기곤 한다. 태국인, 중국인 등 외국인에 팔려 가는 경우가 많으며, 근래에는 방콕 등 대도시의 유흥가로 흘러 들어가는 일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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