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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한바퀴

백제문화제 부여·공주, 사비성이 정말 부여일까?

by 딱주연 2026. 10. 9.

백제문화제를 계기로 백제 마지막 수도 사비성의 실제 위치를 다시 살펴봅니다. 현재의 충남 부여가 아닌 중국 산동성 곡부·사수 일대가 사비였을 가능성을 황산, 백마하, 사수, 백제 8대 성씨, 중국 고대 사료와 지리 조건을 통해 비교해 봅니다.

 

백제문화제, 사비성은 정말 부여였을까?

2026년 제72회 백제문화제가 10월 3일부터 11일까지 공주와 부여에서 진행되고 있다. 공주에서는 공산성과 금강신관공원 등을 중심으로 축제가 열리고 있으며, 부여에서도 관북리유적 일대를 중심으로 백제문화제가 개최된다.

 

오늘날 한국사에서는 일반적으로 공주는 웅진, 부여는 사비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고대 중국 사료와 동아시아 지명을 하나씩 비교해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우리가 지금 사비성이라고 알고 있는 충남 부여가 과연 고대 기록 속 사비와 정확히 일치하는가?”

특히 중국 산동성의 곡부(曲阜)·사수(泗水)·제녕(濟寧) 일대를 살펴보면 백제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지명이 상당히 밀집돼 있다.

문헌과 지리적 조건을 기준으로 사비성의 위치를 다시 검토해 본다는 관점에서 접근해 보고자 한다.

  

 

 

1. 관직명 백제 위치

당나라 장군 소정방(蘇定方), 신구도행군대총관( 神丘道 行軍大摠管)으로 임영하는데 여기서 신구도( 神丘道)는 신이 있는 높은산으로 가는 길로 '태산아래 뫼이로다' 할때 태산(太山)을 말한다. 신라 무열왕 김춘추(金春秋), 우이도행군총관( 嵎夷道 行軍總管)으로 임명하는데  우이도(嵎夷道)는 산동반도 가는 길을 의미한다. [출처 :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5권] 그러면 우이가 어디인가? 백제가 우이 땅에 있었기 때문인데 현재 한반도에는 우이라는 지명이 없다.

북경대학교 역사교재 '하대형세도' 우이 위치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설사룡이 쓴 <서고문훈>에서 우이의 땅은 등주(登州) 라고 하면서 중국은 산동반도 연태시(烟台市)  모평구(牟平區) 로 비정했다. 그런데 해성현(海城縣)에 대한 <중국고대지명대사전>의 설명에 금나라 때 등주로 개칭된 해성현은 바로 낙랑군에 속했다는 기록이 있다. 모평현에 대해 수서지리지에 "모평에 모산(牟山)이 있다."기록되어 있고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 모산(牟山)에 대해 세 지명으로 나타난다.  ①(연태시) 모평현 동북3리에 있는데 도읍은 동모산이다 ②산동성 안구현 서남 15리 ③하남성 탕음현 서쪽 40리 탕하가 나오는 곳. 즉 수경주의 석상산이다. 이 중에서 ‘탕음현 서쪽 40리’에 있는 석상산이 모평에 있는 모산일 가능성이 크디. 왜냐하면 이곳은 해성현과도 가깝고, 강태공의 고향인 제나라 도읍 영구의 동쪽이기 때문이다.

[출처 : 스카이데일리, 작성자 : 성헌식, https://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79215 ]

  2. ‘바다(海)’라는 글자도 현대적 감각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고대 중국 사서를 읽을 때 주의해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지리 용어다.

현재 우리는 '海' 를 곧바로 바다라고 생각지만 문헌에는 그렇지 않다.

 

사마천의 사기권2 본기4의 해(海)의 집해(集解)에,
 "서광이 얘기하를 바다 해(海)자는 한편으로는 하(河, 강)의 의미로 사용한다.(徐廣曰 海一作河)

 

《삼국사기》5권 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7년 6월조에서 “6월 18일 남천정에 머물렀다.  소정방은 내주에서 출발하였다. 그는 천리에 달하는 병선을 이끌고 수로를 따라 동쪽으로 내려왔다.”

 (六月十八日, 㳄南川停. 定方發自萊州, 舳艫千里, 隨流東下.)
隨流東下.!!! 흐름을 따라 동쪽 아래로 왔다. 중국 대륙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큰강은 황하, 양자강(장강), 회수 등이 있다.

舳艫千里. 배가 꼬리에 꼬리를 문 행렬이 천리다.

 당나라 해군이 황해 바다를 건넜다고 해석하는 것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고 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yN-O_LiOw5k

 

 3. 사비성의 ‘사(泗)’와 산동성 사수(泗水)

 

백제 마지막 수도 사비는 한자로 泗沘라고 기록된다.

여기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글자가 바로 泗다.

중국 산동성 제녕시(濟寧; 济宁) 지역에는 지금도 사하泗河, 즉 사수계와 백마하가 존재한다.

특히 사하가 흐르는 곳에 공자의 고향인 곡부(曲阜)가 있는데 공묘(孔廟), 공부(孔府), 공림(孔林)가 있고

왕성급 성(城)과 해자가 있다.

구글지도로 본 공자묘를 두른 해자.

 

이 점은 산동성 곡부·사수 일대를 사비 후보지로 주목하게 하는 첫 번째 이유다.

물론 글자 하나가 일치한다고 동일 지역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4. 황산과 백마하가 하나의 지리권에 있다

660년 백제 멸망 과정에서 중요한 지명이 황산벌이다.

기존 학설에서는 황산벌을 충남 논산 일대로 비정한다.

그러나 산동성 백마하의 발원지를 살펴보면 공식 중국 자료에 **“추성 북부 황산 백마천에서 발원한다”**고 명시돼 있다.

즉 산동성 제녕시(濟寧市) 권역에서는

황산 → 백마천 → 백마하 → 곡부·연주·추성

이라는 지리적 연결망이 실제로 확인된다.

여기에 사수까지 같은 제녕권에 존재한다.

이를 한데 놓고 보면,

황산 + 백마하 + 사수 + 곡부

라는 여러 핵심 지명이 좁은 지역에 집중된다.

사비성 위치를 연구할 때 단순한 지명 하나의 유사성보다 이런 지명군의 집적은 더 중요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5. 백제인구와 8대 성씨

중국 8대 집성촌

 

<북사(北史)> 권94 열전82 백제 편과 <수서(隋書)> 권81 열전46 동이편의 백제 조에 "나라 안에 8대 성씨가 있는데, 사(沙)씨, 연(燕)씨, 리(칼刀가 셋인 글자, 또는 협 協)씨, 해(解)씨, 진(眞)씨, 국(國)씨, 목(木)씨, 묘(苗)씨 이다."라고 되어 있으며, 백제의 왕족의 성은 부여(夫餘)씨라 했다. 

 

중국의 성씨사전에는 부여(夫餘)씨와 복(福)씨 골(骨)씨 등도 백제의 8대성으로 되어 있다.

또한 《남제서》 58권 동남이열전 백제(6세기 전반)의 기록에는 백제 왕이 전쟁에서 공을 세운 사법명, 해례곤, 목간나 등의 인물에게 관직과 작위를 내려달라고 남제 황제에게 요청하는 내용이 나타난다.

 

2000년도에 발간된 대한민국 통계청 자료를 보면, 국(國)씨가 2,182명으로 성씨 순위 154위이며, 연(燕)씨는 3,549명으로 138위, 진(眞)씨는 1,579명으로 성씨 순위 164위, 묘(苗)씨는 61명으로 성씨 순위 258위 등이며, 나머지 사(沙)씨나 리(또는 협)씨, 그리고 해(解)씨나 목(木)씨는 단 한 명도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백제의 주 강역이었던 중국대륙에 8대성이 집성촌이 곳곳에 존재한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백제는 멸망 당시 200여개의 성(城)이 있었고 호수(戶數)는 76만호로 되어 있다. 옛날은 지금과 같은 핵가족제가 아니고 대가족제도이므로 백제의 인구는 400만 ~ 500만 명 정도로 추산이 된다. (참고로 구당서에는 호당 인구가 5.7명 ~ 7명이라고 되어있다.)

 

백제의 강역 즉 영토를 현재 한반도 충청·전라·경기 일부에만 한정하는 것이 아주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론|백제의 사비성는 어디였는가?

백제문화제를 보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공주를 웅진, 부여를 사비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고대 역사를 이해할 때 현재의 행정구역과 교과서상의 지도를 출발점으로 삼아 모든 사료를 거기에 맞추는 방식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산동성 제녕·곡부 일대를 보면 泗水가 흐르고, 黃山에서 시작한 白馬河가 곡부 주변을 지나간다.

이 지리적 조합은 백제사의 사비·황산·백마강이라는 핵심 지명과 놀라운 유사성을 보여준다.

여기에 중국 사서가 기록한 백제의 상당한 국가 규모와 8대 성씨, 대륙과의 긴밀한 관계까지 함께 살펴본다면 한 가지 질문은 충분히 던져볼 수 있다.

“백제의 마지막 수도 사비는 정말 지금의 충남 부여만을 가리킨 것이었을까?”

 

그리고 그 대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중국 산동성 곡부·사수 일대다.

산동성 제녕권을 보면 다음 지명이 실제로 연결된다.

泗水사수 — 曲阜곡부 — 黃山황산 — 白馬河백마하 — 兗州연주 — 鄒城추성

백제사에서 중요한 사비·황산·백마강이라는 세 가지 핵심 지명과 유사한 지명이 이렇게 좁은 지역에서 연결된다는 점은 적어도 추가적인 역사 지리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백제의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도보다 훨씬 넓은 동아시아 공간 속에서 다시 읽어볼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백제 사비성관련 질문

Q1. 현재 역사학계에서는 사비성을 어디로 보나요?

현재 한국 역사학계와 국가유산 연구기관에서는 충남 부여 일대를 백제 사비도성으로 보고 있다. 관북리유적·부여나성·부소산성·정림사지 등이 주요 근거다.

 

Q2. 중국 산동성 곡부가 사비라는 주장은 무엇을 근거로 하나요?

가장 주목되는 것은 지명과 수계다. 곡부 주변에는 泗水가 존재하고, 인근 黃山에서 발원한 白馬河가 실제로 곡부 일대를 지난다. 백제 기록의 사비·황산·백마강과 비교할 수 있는 지명군이 한 지역에 집중돼 있다.

 

Q3. 산동성에 실제로 백마하가 있나요?

있다. 중국 제녕시 공식 자료에서는 백마하가 추성 북부 황산 백마천에서 발원하여 곡부·연주·추성·미산을 지나며 약 60km를 흐른다고 설명한다.

 

Q4. 백제 8대 성씨는 중국 사서에 실제로 기록돼 있나요?

그렇다. 《수서》와 《통전》 등에는 사씨·연씨·협씨·해씨·진씨·국씨·목씨·백씨 계열 등 백제의 대성 8족이 기록돼 있다.

 

Q5. 백제에 200개의 성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나요?

《통전》에는 백제의 옛 영역에 37군·200성·76만 호가 있었다는 내용이 전한다. 다만 고대 호구 기록은 그대로 현대 인구수로 환산하기보다 사료비판을 거쳐 해석할 필요가 있다.

 

Q6. 그렇다면 부여가 사비가 아니라는 것이 확정됐나요?

아니다. 현재 학계의 통설은 여전히 부여 사비설이며 고고학적 근거도 상당하다. 이 글은 산동성 곡부·사수 일대의 지명과 사료를 근거로 기존 위치 비정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대안적 역사 지리 가설을 제시하는 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