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코리’란 과연 무엇인가? 동몽골에서는 고올리(Gooli) 라고 하고 한문으로는 음역 고리(槁離),구려(句驪),곽락(郭洛<guo luo: 현대 중국어 발음>)과 고려(高麗)라고도 적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코리는 ‘순록’이다.

투바대학교의 엔.베.아바예프교수는 『몽골비사』9절의 거러거(göre'etei)를 이미 순록으로 보고 있었고 

오치르 관장은 만주지역의 원주민 오룬춘의 오룬이 옛 문헌에는 코룬(Xorun)으로 되어있다며 코리를 치는 순록유목민이 오룬춘이라는 족명의 본뜻이라 했다.

내몽골의 육사현(陸思賢)교수는 ‘선비곽락대’ 연구 논문에서 ‘곽락’이란 선비족 무덤 출토유물인 허리띠 버클, 곧 대식(帶飾, 대구 帶鉤, 사비 師比 Sabi )의 분석을 근거로 볼 때 순록이라고 결론지었으며,

그들은 오랜 세월 한결같이 순록유목을 주된 생업으로 해오고 있다고 했다.순록은 만주 퉁구스족의 어웡커말로 ‘오롱(Orun)’이며 오룬춘말로 ‘올렌’이고 다구르말로는 ‘오른 복(Orun Bog) ’이다.

러시아어로는 이를 따라 ‘셰베르늬(북방의) 알롄’이라 한다.

이는 ‘오로오’라는 ‘길들지 않은’이란 뜻의 낱말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순록(馴鹿)은 원주민들에게는 한문 이름자와는 정반대로 ‘길들지 않은 ’사슴(不馴鹿)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바이칼은 무엇인가?  (월간중앙 2004년 6월호)

     -  주채혁(강원대 교수, ‘바이칼포럼’공동위원장)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는 거대한 화산지대이다. 약 13,000년전의 후기빙하기 이후로 시베리아 지역에서는 비교적 고도가 낮고 온천수가 솟아나는 등 사람이 살기 적합한 곳이며 과거 유라시아 북방민족의 유전자 집단이 이루어지고 몽골리안의 창세기가 쓰여진 장엄한 역사무대이다.이곳은 바이칼 서부와 북부의 중간에 있는 알혼(olkhon)섬과 건너편 동쪽의 바르구진섬,그리고 서남단을 감싸도는 알타이산맥에서 바이칼호로 길게 뻗은 거대한 사얀산맥이 이르쿠츠크가 있는 그 서남단을 감싸안고 있으며 이어서 남동부로 뻗어 올라가며 코산맥, 즉 붉은 가지 버드나무(紅柳)산맥이 울란우데가 자리잡고 있는 바이칼 동남부를 감싸안고 있다.

 몽골-시베리아 샤머니즘의 메카인 알혼섬에는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같은 바이칼 원주민  코리족의 시조 탄생 전설이 서려있는 부르한(burkhan) 바위가 있고 바르구진섬과 분지에는 코리족 시조의 부인이 탄생한 부족이 자리잡고 있어서,코릴라르타이 메르겐 아버지와 바루구진 고아 어머니가 짝지어 몽골의 여시조 알랑고아 탄생을 주도하는 역사 배경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바이칼의 사얀(sayan)산맥은 조선의 선(鮮)과 직결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시경(詩經)』 대아(大雅)장의  문왕지십(文王之什) 황의(皇矣)구절에 ‘소산(小山)을 대산(大山)과 구별하여 선(鮮)이라’ 주석을 붙인 점과 청나라 고증학자  정겸(丁謙,)의 『후한서오환선비전 지리고증(後漢書烏桓鮮卑傳 地理攷證)』에 ‘대선비산(大鮮卑山)의 원형이 지금의 알타이-사얀산맥 지대에 있다’ 고 한 점을  미루어보아 확실한 근거를 지니고 있다 하겠다.  

붉은 가지 버드나무 산맥은 곧 고구려 건국신화의 영웅 고주몽의 어머니 유화(柳花)부인을 성모(聖母)로 삼는 붉은 버드나무 부르한(不咸)신앙과 접맥돼 있어 부르한 중의 부르한이 좌정하고 있는 알혼섬 부르한 바위와 재미있는 연결고리를 이루고 있다.부르한은 ‘밝’이 아니고 ‘붉’이다.북방민족이 태어나고 죽어 돌아가는 ‘붉은 산(紅山,赤山)’은 조상들의 공동묘지이다.그래서 칭기스칸의 무덤도 부르한 산에서 찾고 있다.투르크-몽골말로 하느님이란 뜻이다.여러 전설들이 이 산맥에 주로 깃들어 온 점은 아주 재미있는 일인데, 구릉과도 같은 밑밑한 소산(小山)인 선(鮮)이 위주인 몽골-시베리아지대에서 이 산맥만은 유달리 한국의 대산(大山)을 닮아,습기가 적고 아주 키가 작은 스텝초원의 난쟁이 민들레를 찾지 못한다면 꼭 한국에 와 있다고 착각할 지경이다.이 산중의 앙기르 마을에서 코리 부리아드말을 지키고 있는 원주민을 만나 느끼는 감격 또한 우리에게는 감회가 새롭다.그런데 결국 이 모두의 존재의의는 그 역사창조의 주체인 바이칼 코리족을 탄생시키는 데로 집약된다.‘코리’는 과연 무엇이며 그 사실상의 역사배경은 어떠한가?  

바이칼은 몽골-시베리아 고원의 스텝과 타이가 및 툰드라가 모두 만나는 허브(hub)요 개활지로,이 지대를 장악할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단계의 어떤 집단이나 개인도 이곳에 오래 둥지를 틀고 살 수 없었다.험준하고 광활하면서도 오비강과 예니세이강을 끼고 있어서 비교적 비옥한 거대한 타이가 스텝지대인 알타이 사얀산일대는 선진문명 지대인 서아시아에 젖줄을 대고 신흥세력이 기반을 구축하기에 적합한 둥지다.여기서 자라나 성인이 된 집단이 무한경쟁이 요구되는 바이칼 벌판으로 진출해 인력과 식량을 확보하며 고대유목제국으로 나아가는 기틀을 형성했던 것이라 하겠다.따라서 고대제국 성립을 기점으로 역사를 소급해 올라가며 이 지대의 역사적 배경을 추적해보려면 자연스럽게 한민족 북방기원설이라 할 스키토-시베리아 기원설을 읽게 마련이다.

종래 한민족에 관해서는 북방기원설이 주류를 이루어 왔다.북방에서는 몽골이란 스텝세계제국이 인류사상 최초로 창업됐으며 근래에 와서야 비로소 해양세계제국이 생겨나고 제공권 확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지구촌 문제가 거론되고 있는 점으로 보더라도,주류 한민족 형성의 역사적 태반은 역시 북방이라야 한다. 더군다나 인류사상 최초로 야생식물의 작물화와 야생동물의 가축화가 이루어진 지역이 서아시아임은 고고학이나 생태학, 유전학의 연구성과로 확인되고 있으며,  식량생산이 시작된 선사시대 이래로 이것이 주로 “스텝의 길”-“몽골리안 루트”를 통해 이동했음을  밝혀냈다.

유라시아대륙은 남북축으로 된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와 달리 동서축으로 돼 있어서 등온대를 이룰 뿐만 아니라 시베리아를 중심축으로 하는 유목적 기동력의 가세로 사람과 생산력  및 전투력이 신속히 이동할 수 있었다. 그 결과는 자명했다. 유라시아대륙이 다른 대륙에 대해 우위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칭기스칸 몽골의 스텝세계제국도 여기서 창출됐고,근대 영ㆍ미 해양세계제국 또한 그러했다. 한민족의 북방기원론이 이런 생태환경의 발전과정에서 비롯됐음은 물론이다.스키토시베리아 기원설이나 내몽골의 오르도스 기원설은 다 이런 생태환경을 그 역사무대로 삼고 있다.[지도]  

 백두산 호랑이가 시베리아 호랑이와 생태유전학적으로 상통된다면, 백두산 조선족 또한 그럴 수 있다. 고원지대에서 고원지대로 돌아다니며 사는 동물의 생태상 그런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백두대간은 그래서 민족의 기원을 추구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역사적 연구 대상이다.  한민족의 ‘유목사적 시원’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지리적으로 근접해 있는 중원지역보다 오히려 더 먼 알타이 - 사얀산맥이나 티베트고원이 역사적으로 더 밀접하게 접맥(接脈)되어 왔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시베리아는 스텝-타이가-툰드라지대로 이루어진 거대한 벌판이다.  아시아대륙의 1/4이고 지구 육지면적의 1/10이다.  침엽수림 위주로 지구상에서 가장 드넓은 타이가라는 '숲의 바다'는 수많은 짐승들의 서식지다.  이런 생태권은 한편으로는 대서양까지 이어지고 다른 한 편으로는 북아메리카지역에 이른다.  여기에서 '시베리아의 황금'이라는 '모피'(fur)가 주산품인 것은 당연하다. 이런 고원지대 「모피의 길」을 따른 이동루트는 당연히 백두대간과 접목된다.  

아울러   「강해(江海)루트」로 태평양, 북극해와 대서양으로도 그 권역이 이어지는 시베리아에는 수산모피자원 또한 육상모피자원 이상으로 풍요로운데, 이동 주류 중 하나가 오랜 기간에 걸쳐 3면이 바다로 이루어진 한반도를 기반으로 생활을 지속해왔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알타이-사얀산맥에서부터 고원지대를 따라 뻗어내려 '맥국(貊國)'이라는 「산달(山獺)-너구리나라」가 춘천에 있었고 바이칼호와 거대한 동ㆍ서사얀산맥에서 흘러내리는 예니세이강의 지류 퉁구스하로부터 저습지대를 따라 이어 내려온 '예국(濊國)'이라는    「(숫)수달(水獺)나라」가 강릉에 있었다.  

그러니까 역사를 역사자체로만 접근하여,고대국가의 형성지 중심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그 형성주체의 유래처나 기원지 곧 역사적 태반을 추구하려는 시각에서 들여다보면 한민족 형성의 주류는 농경기원이 아니고 순록유목기원이다. 따라서 장백산맥같은 이른바 큰산(大山)이 주무대가 아니고,그 건너편의 대ㆍ소ㆍ외흥안령으로 이어지는 시베리아 스텝-타이가-툰드라지대의 구릉과도 같이 끊임없이 펼쳐진 작은 산(小山)은 순록의 겨울 주식인 선(蘚:niokq=이끼)이 나는 선(鮮), 사얀, 소욘(soyon)이다. 

순록의 먹이인 이끼는 생태상 습기가 많은 응달 지역에 잘 자란다.  이끼(蘚)가 더 잘 자라나는 새로운 목초지인 선(鮮)을 찾아(朝)서시베리아인 알타이-사얀산맥지대에서 태평양쪽으로,곧 ‘이끼의 길(lichens road)’을 따라 이동해온 순록유목민이 바로 조선(朝鮮)겨레다. 결과적으로 동쪽으로 이동해 왔지만 해를 쫓아온 것은 아니다.

남러시아 스텝의 순록유목민은 이끼의 길을 따라 대서양 쪽으로 북향해 가기도 했다.[사진1]<선(鮮=소산):대흥안령 북부 흑룡강성 쿠마하 부근>;[사진2]<선(蘚=niokq): 대흥안령 북부 훌룬부이르맹 근하(根河)시 아룡(阿龍)산> . 올 삼월에 국립중앙박물관 초청으로 온 아.오치르 몽골역사박물관장과 체벤도로지 고고학실장은 몽골-시베리아 서쪽에 있는 순록유목민이 알타이-사얀지대의 소욘(鮮)과 코리(高麗: [사진3 시베리안 골드:알타이 스키타이 돌무지널무덤 출토 순록 유물])족이고 동쪽에 있는 순록유목민이 베링해에 이르는 시베리아 끝자락 땅과 캄차카반도에 사는 축치와 코리야크 자치주의 원주민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런 몽골-시베리아의 역사를 낳아온 자궁이 바이칼이다.스텝-타이가-툰드라가 다 모인 북방유목민족사의 허브다.코리족의 시조 탄생지 알혼섬이 바이칼호에서 가장 큰 섬으로 자라잡고 있고,조선산이라 할 사얀(鮮)산맥이 병풍처럼 서남으로 바이칼호를 감싸안은 데다가 부르한중의 부르한이 좌정하고 있는 야외 신단이 알혼섬 부르한(不咸:burkhan[사진4:봉우사상연구소 정재승 소장 제공])바위에 차려져 있다.지금도 부리아드 코리족 샤먼이 “나무꾼과 선녀”라는 코리족 시조 탄생설화를 담은 무가(巫歌)를 춤을 곁들여가며 여기서 부르고 있다.

이는 알타이-사얀산맥에서 바이칼호 알혼섬-칭기스칸의 태생지 헨티산-대흥안령-백두산-금강산의 감호(鑒湖:고대 투르크말 무당-하느님[사진5:강원도 북고성군 민통선내 소재;양양문화원 부원장 최낙민 작가 제공])에까지 그 맥이 이어진다.여기서 감호는 고대 투르크말로 keam이며 하느님 혹은 무당이란 뜻이다. 때마침 과기부에서 는 동북아민족 기능성 게놈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코리족의 분포와 역사적 이동루트를 구체적으로 연구-추적하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필자는 지난 해 여름 “바이칼의 후예들”이라는 프로젝트를 수행중인 어느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 “바이칼호는 한민족의 성수요 사얀산은 한민족의 성산“이라고 거센 바이칼 호반의 바람을 맞으며 외쳐댔다.초기에 목축과 농경을 함께 하던 한민족과 유목을 위주로 하던 몽골족은 소흥안령 상단 징키르강을 축으로 어느 시기에 이르러 동서로 분기됐다.

북방유목민족 형성의 태반은 이처럼 바이칼 지대이지만 고대국가의 창업은 태평양 해안선을 낀 비옥한 아무르강 남북을 아우르는 대만주권역 곧 바이칼 동남부 몽골-러시아 국경 언저리에서 동북방으로 뻗어 올라간 야블로노보이-스타노보이라는 외흥안령과 몽골-만주와 러시아-만주를 가르는 경계선을 중심으로 뻗은 대ㆍ소흥안령 지역에서 대흥안령 북서부 훌룬부이르 몽골스텝의 훌룬호수와 부이르호수 일대를 근거지로 삼아 접맥되면서 비롯됐다.

물이 북류하여 북극해로 흘러드는 바이칼 몽골고원권과 이 대만주권역 이북과는 달리 물이 동류해 태평양으로 흘러드는 거대하고 비옥한 이 ‘대만주권역’에 진입해 목농생산과 해상무역에 종사하고,대산지대인 천험의 요새, 장백산맥에 둥지를 틀면서 비로소 조선과 부여-고구려가 고대정복제국으로 창업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코리’란 과연 무엇인가? 동몽골에서는 고올리라고 하고 한문으로는 고리(槁離),구려(句驪),곽락(郭洛<guo luo: 현대 중국어 발음>)과 고려(高麗)라고도 적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코리는 ‘순록’이다.투바대학교의 엔.베.아바예프교수는 『몽골비사』9절의 거러거(göre'etei)를 이미 순록으로 보고 있었고 아.오치르 관장은 만주지역의 원주민 오룬춘의 오룬이 옛 문헌에는 코룬(Xorun)으로 되어있다며 코리를 치는 순록유목민이 오룬춘이라는 족명의 본뜻이라 했다.

내몽골의 육사현(陸思賢)교수는 ‘선비곽락대’ 연구 논문에서 ‘곽락’이란 선비족 무덤 출토유물인 허리띠 버클, 곧 대식(帶飾)의 분석을 근거로 볼 때 순록이라고 결론지었으며,마쓰모도 히데오교수는 코리야크 족명의 코리가 그들의 말로 순록이라는 뜻이며 실제로 그들은 오랜 세월 한결같이 순록유목을 주된 생업으로 해오고 있다고 했다.순록은 만주 퉁구스족의 에웽키말로 ‘오롱’이며 오룬춘말로 ‘올렌’이고 다구르말로는 ‘오른 복’이다.러시아어로는 이를 따라 ‘셰베르늬(북방의) 알롄’이라 한다.

이는 ‘오로오’라는 ‘길들지 않은’이란 뜻의 낱말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순록(馴鹿)은 원주민들에게는 한문 이름자와는 정반대로 ‘길들지 않은 ’사슴(不馴鹿)이 되는 것이다.투르크-몽골말로는 또 ‘차아 복’이라고도 하는데 차아는 ‘…을 향해’라는 뜻으로 조선의 조(朝:chao)와 뜻이 같다.지린(吉林)성의 토착 원주민인 조족(朝族)도 본래 순록유목민이다.

그런가 하면 대흥안령 북부 훌룬부이르맹 선비(鮮卑)족 원주지에서 한국인을 선어(鮮語)를 쓰는 선족(鮮族)이라고 부르는데 이 또한 작은 산 선(鮮)에서 이끼 선(蘚)을 뜯기며 사는 순록유목민을 지칭한다.목초지 선(鮮)에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다.마치 목초지 옹크(onk)에 사는 순록유목민을 ‘에웽키’라 한 명칭관행과 상통하는 사례라 하겠다.

모두 몽골-시베리아 원주민의 토박이말 이름들이고,이 지대에서 유일하게 처음으로 고대 유목제국의 틀을 주도적으로 마련하던 순록유목민에 관한 호칭이다.이처럼 고구려의 족명 내지는 국명인 고려(고올리)는 코리야크족이나 오룬춘족,다구르족이나 투르크-몽골족의 말로 “순록”이라는 뜻이다.당연히 고구려말로도 코리(高麗)다.‘몽골’은 맥(貊)+고려 곧 너구리+순록의 합성 명칭이다.다만 ‘캄’과 ‘부르칸’이 모두 하느님 또는 무당의 뜻을 가지고 있지만 그 갈래의 유래를 아직 모르듯이,‘코리’와 ‘차아복’ 또한 그렇다.연구돼야 할 과제다.

선비족 우두머리 칸의 황금벨트 버클인 선비곽락대(鮮卑郭洛帶)의 장식패([사진 6]北朝 神獸紋 帶飾:내몽골자치구 후흐호트시 투메드좌기 討合氣村 출토<내몽골박물관 소장>)를 분석해보면 이것이 이끼가 나는 목초지 「선」에서 꼴을 뜯고 있는 「순록」의 그림임이 간파된다.그러니까 이런 시각에서 보면, ‘조선’과 ‘고려’는 둘이 아니다.

같은 순록유목민을, 조선(朝鮮)은 목초지 ‘선(鮮)’에 초점을 맞추어 선(鮮)족이라 했고 고려는 고원지대의 끝없이 펼쳐진 작은 산(小山)‘선(鮮)’에서 이끼-‘선(蘚)’이라는 꼴을 뜯어먹고 있는 순록유목의 주인공 순록 곧 ‘코리(高麗)’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곽락(郭洛: khori)-고려족이라고 불렀을 뿐이다. 다만 여기서 유목할 수 있도록 가축화된 순록(馴鹿:chaa bog=rein deer)과 단순한 사냥감인 야생 사슴(鹿:bog=deer)을 준별하는 시각의 세련도는,식량생산단계와 식량채집단계를 가름하는 준거를 세우는데 지극히 중요하다.고려의 여(麗)자가 “아름다운 뿔 한 쌍이 난 사슴”이고 신라시대 관직명인 이벌찬(伊伐餐)-각간(角干)에서 보듯이, 뿔이 대권을 움켜쥔 영도자의 상징이라면 고려(高麗)국명에서 순록을 그런 글자로 의역(意譯)하여 음사하였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사진 7]<시베리아 수린다 타이가 지역의 순록: SBS-TV 홍순철 PD 제공>

  오늘날 한국의 국제적 호칭인 "Korea"가 한국사의 순록유목사적 태반의 소산인 이 선(鮮)의「고려(高麗)」, 소산(小山)의 순록(馴鹿)인 "코리(郭洛)"에서 비롯되었음을 자각하는 일은, 지금 우리에게 특별히 긴요하다. 한민족 시원의 주류인 조선이나 고구려는 농경기원이 아니고 특수목축인 순록유목기원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철기의 제조와 함께 타이가라는 숲의 바다에서 무한경쟁이 강요되는 광활한 스텝으로 나와 대규모 기마양유목(말을 타고 양을 침)을 시작해 기마양유목민으로 변신하고 목축농경민들과 부딪치며 접목되어 마침내 조선,부여, 고구려, 북위,돌궐,발해,거란,여진과 몽골 등 북방민족나름의 정복제국으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유목사적 정체성의 확보야말로  이 시대 조선-고려 겨레의 사활을 가르는 분기점일 수 있다.

중국 한(漢)족은 황하유역의 그리 넓지 않은 농경지대를 토대로 일어나서 식량생산에 우위를 보이며 수적인 우세를 확보해온 사람들이고,조선-고려 겨레는 유목적 태반의 속성상 그보다 수십 배 또는 수백 배에 달하는 유라시아와 북서 아메리카에 걸치는 스텝-타이가-툰드라지대를 태반으로 태어나 그들나름으로 발전해온 사람들이다.

농경민 인 중국인의 기원지에는 당연히 순록의 주식인 이끼(蘚)도 없고,스텝의 양초(羊草)도 없다.그런데 온전히 순록유목민의 태반을 가진 조선과 고구려가 역사적으로 거기에 존재했단 말인가? 중국의 동북공정이란 실로 가소로운 망나니의 생떼인데도 이에 일일이 대꾸하며 너무 호들갑을 떨고 있는 한국학계가 어른스러운 의연함을 잃은 것 같아 가엾어 보인다.

시장논리가 지배하는 시장경제 하에서의 생존을 고려해야 하는 외교관들이야 어떻게 대응하든,학계는 이럴수록 의연해야 한다. 그리하여 지금은 한민족의 시원으로서 유목사적 정체성을 읽어내는 문법과 시력이 잠재된,황하의 누런 눈동자와 준별되는 “바이칼의 푸른 눈동자”를 소생시켜 나아가야할 때라고 본다.

 추적] 한민족 기원지/ 바이칼호 주민들

우리와 DNA 비슷…현지인들 “고려 사람들 벼농사 지었다”

주채혁 강원대 사학과 교수

주간조선 2002년 12월19일


우리 민족 기원설은 크게 북방기원설과 남방기원설 그리고 남북방혼융기원설로 나뉜다. 이 중 다수설은 북방기원설. 이 학설은 다시 스키토-시베리아기원설과 오르도스기원설로 나눌 수 있다. 몽골학계도 마찬가지다. 스키토-시베리아기원설은 천산북로의 스텝-타이가로드를 위주로 이루어진 민족의 이동을 전제로 한 것이고, 오르도스설은 그 지역을 넘어서 몽골고원과 고비사막의 연장선상에 있는 황하상류의 만곡부를 중심지로 추정한 것이다.

몽골고원과 시베리아의 물은 대부분 북류해 북극해로 흘러들고 일부는 남류 또는 북동류하면서 태평양으로 흘러든다. 하류로 갈수록 습도가 높아져서 혹한기만 피한다면 생산이 용이하고 생존가능성이 높아진다. 한여름 알타이산의 기온이 영상 30~40도에 이르고 일조시간이 18시간이나 된다. 몽골고원 북쪽으로 눈을 돌리는 한민족의 바이칼호 기원설은 이러한 점을 기반으로 삼는다. 최근의 항공사진은 바이칼호 언저리의 논농사 가능성을 시사해주고 있다. 부이르호 언저리의 주민들은 “고올리(고려) 사람들이 벼농사를 지었다”고 말하고 있다. 수로의 흔적은 아직도 뚜렷하다. 바다처럼 드넓은 고올리 농장터도 있다. 그런가 하면 알타이산맥과 항가이산맥지대에서 벼농사를 지었다는 기록도 있다.  


바이칼 호수가 있는 러시아는 ‘모피의 나라’이다. 그리고 그 모피의 주된 공급지는 시베리아다. 그리고 조선, 부여, 고구려, 거란, 발해, 여진과 몽골은 시베리아에 역사적 태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민족의 뿌리를 밝히려면 ‘모피(fur)의 길’ 추적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몽골의 수미야바아타르 교수는 부이르호 남쪽에 있는 고올리칸 훈촐로의 상이 동명성왕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올리족과 고리(槁離; 고려) 그리고 바이칼호 올콘섬을 시조지로 하는 코리족은 호수 동쪽인 눈강상류-할힝골(훌룬부이르) 언저리를 근거지로 삼았던 것 같다. 몽골에선 오래전부터 이들이 같은 계통이라는 견해가 있어왔다. 이에 관한 분석이 이뤄진 것은 1990년대 중반의 일이다. SBS-TV의 ‘몽골리안 루트를 가다’ 제작팀은 데옥시리보핵산(DNA) 검사로 이를 실증했으며 최근 서울대 의대의 이홍규 교수는 이를 좀 더 발전시켜 총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재검증해내고 있다.

DNA방식은 구미의 언어·인류학자들이 추정하고 있던 퉁구스족의 기원지 알타이~바이칼 사이의 사얀산맥 소욘(鮮)족에 관한 연구에도 적용됐다. 그 결과가 2001년 졔례ㅇ코와 마뺘르추크가 쓴 ‘아메리카 원주민의 기원지에 관한 연구’라는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아메리카원주민의 기원지가 사얀산 일대임을 실증하고 있다.

러시아쪽의 연구도 있다. 모스크바대학의 러시아과학원 일반유전학연구소장 자하로프 교수는 데옥시리보핵산 검사 결과 아메리카 원주민과 밀접하게 직관돼 있는 것으로 밝혀진 우리 민족 또한 이 지역에 기원을 두고 있으리라는 가정하에 한국인과 소욘족의 혈연적 관계규명을 위한 검사에 착수했다.



‘소욘’은 산이름에서, ‘퉁구스’는 그 산에서 흘러나오는 강이름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바이칼호 지대라는 개활지에 진출하려면 상당한 힘이 축적돼야 한다. 이 지역은 해발 4000여미터가 넘는 많은 고산지대로 형성되어 있어 외부의 침입을 받지 않을 수 있었고, 수량도 풍족하여 드넓은 땅을 보유해 자급자족할 수 있었다. 학자들은 이 지역에서 힘을 비축하고 인구 수를 늘린 뒤, 바이칼 지역으로 진출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리랑 지명 분포 지역

알타이(Altai) 산맥 기준으로 알타이 서부와 알타이 동부로 나누어진다.

알타이 동부에 대흥령 산맥 너머 오르도스가 있다.

청동기 유물 집중 지역

 


●아메리카 원주민 기원지도 바이칼 유역

필자는 메이원핑(米文平)이 1980년 초에 발견한 선비족의 석각축문 소재지 ‘가셴둥’이 있는 대흥안령 북부의 Sayan(대선비)산이 ‘이르쿠츠크 북쪽에서 퉁구스하 남쪽 사이에 있다’는 정겸(丁謙)의 기록을 따라 2001년 8월에 현지를 답사, 이를 실증한 바 있다. 그리고 1999년 8월에 대흥안령 북부 오룬춘 기(旗)를 답사하면서 선(鮮)이 순록의 겨울주식인 이끼, 즉 선(蘚)이 나는 산임을 ‘시경(詩經)에 관한 모시주소(毛詩注疏)’ 권23을 통해 입증했다. 또 조선(朝鮮)의 ‘조’자는 ‘아침’을 뜻하는 글자가 아니고 ‘찾음’을 뜻하는 글자임은 흥안령 선비족 기원지와 길림성 조선족 자치구를 현지 조사해 확인했다. 또 ‘중국어사전’을 참고해 ‘조선’이 이끼(蘚)가 나는 새 땅을 찾아다니는 ‘순록 유목민’을 의미하는 시베리아 원주민의 토속어란 사실도 밝혀보았다. 이른바 ‘조선 순록유목민설’이 되는 셈이다.

이끼는 응달에 많이 나고 습기가 많을수록 잘 자라므로 조선겨레들은 서시베리아쪽에서 산지를 따라 태평양이 있는 동쪽으로 ‘이끼의 길’을 찾아 이주해 왔으리라는 추론도 있다. 아울러 몽골의 맥(貊) 고올리 기원설을 선보이며 맥이 ‘Ussurian Racoon Dog’이라는 학명을 갖는 너구리임을 훌룬부이르대학 생물학과의 황학문 교수와 함께 대흥안령 현지 조사를 통해 입증했다. 또 최남선 선생의 ‘불함문화론’에 나오는 불함(不咸)은 ‘밝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붉음’을 뜻하는 것임을 시베리아-몽골-만주 현지 연구를 통해 정리했다.



현지 원주민들에게는 타이가의 자작나무와 물가의 버드나무가 신앙의 대상이다. 버드나무 중에도 붉은 가지를 가진 버드나무가 특히 그렇다. 현지 나나이족 언어로 버드나무를 푸르칸(purkan)이라 한다. 이는 그대로 burqan(不咸: 하느님)으로 적을 수 있다. 만주에는 ‘보드마마’굿이라는 무당굿 메뉴가 있는데 이는 ‘버들어머니’굿과 같은 것으로 ‘버들꽃’을 의미하는 주몽의 어머니 하백녀 유화(柳花)에 대한 모태회귀신앙과 접맥된다는 논문이 1993년에 조선족 동포 최희수 교수에 의해 발표된 바 있다.

‘길림성야생경제식물지’(1961년)에 보면 조선버드나무(朝鮮柳)의 별칭이 붉은 버드나무(紅柳)다. 물가에서 자라는 버드나무는 분포밀도로 보아 전 몽골리안루트-스텝로드에 걸쳐 퍼졌을 가능성이 있다.

‘박혁거세’란 이름도 ‘붉을 혁(赫)’자를 사용해 ‘혁거세’라 한 것이나 ‘弗矩內’라 이두식으로 음독한 것으로 보아 ‘밝음’이기보다는 ‘붉음’을 상징색으로 하는 제사장 종족을 지칭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올 유월 우리의 잠든 영혼을 강타한 ‘붉은 악마’ 신드롬을, 적어도 이 정도의 역사적 안목은 가지고 천착해 봐야 할 것 같다.

저명한 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총,균,쇠’라는 불후의 명저에서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대륙이 남북 축으로 돼 있는 데 대해 유라시아 대륙은 동서 축으로 퍼져 등온대(等溫帶)를 이루기 때문에 사람과 기술의 이전이 용이했다”며 “따라서 유라시아 대륙인이 다른 대륙을 지배하는 주체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필자는 이에 다시 몽골리안 루트로 접맥되는 유목민의 기동성이 가세하는 중심축을 이루는 곳이 유라시아 대륙임을 강조한다. 더구나 야생식물의 작물화와 야생동물의 가축화가 맨먼저 가장 다양하고 풍부하게 이루어진 곳이 서아시아다.



●“유라시아인, 이동 쉬워 다른 대륙 지배”



유라시아의 거대한 섬이라 할 중국은 히말라야산맥-천산산맥 등과 타크라마칸사막 등으로 그 서부와 북부가 가로막혀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고립되었던 데에 대해, 칭기즈칸의 안방처럼 스텝과 타이가로 탁 트인 천산북로-스텝로드는 사람과 기술의 이동이 자유로워 그 언저리들에 또 다른 선진 문화권을 이룰 수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 배경 위에서 조악한 유목적 생산환경에 도전·응전하며 적응해 오는 역사를 펼치다 보니 그 부산물로 뛰어난 군사력이 생겨나서 북방민족이 중원의 안보를 담보하는 역할을 해내며 농업생산 환경을 보장하는 정치적 경영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베이징은 바로 이런 스텝로드와 중원농경지대의 농산물 집산지. 한반도와 만주세력이 되새김질해 키워낸 수렵-유목 민족들의 중원 경영역량이 발산돼 나오는 길이 만나는 곳이다. 실로 북방민족의 중원 정복왕조 창업 및 수성 능력은 흑룡강 북쪽으로 만주보다 훨씬 더 드넓은 대만주로 이어지는 거대하고 비옥한 지역을 기반 삼아 스텝로드로부터 주입되는 수준 높은 인력과 물력을 포용해 생겨난 것이라 하겠다.

여기서 건조지대란 고원지대라 바람을 많이 맞아 습기가 적어진 스텝-준 사막지대를 주로 일컫는데 그런 생태환경에서 빚어진 인간들의 한 부류가 북방민족이고 그들이 한민족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들은 북유럽에서 티베트고원으로 이어지는 지대에도 진출하고, 북극해를 건너 툰드라-타이가-스텝으로 이루어진 북서부 아메리카에도 진출해 간 것이었다.



(주채혁 강원대 사학과 교수)


주간조선 2002년 12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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