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타이와 대월씨국 - 고조선과 월지국

[신라는 대륙에도 존재했다] 

     신라의 뿌리를 추적하던 중 유물면에서 스키타이와의 연관성을 알게 되고, 그 스키타이인들이 세운 대월씨국(대월지국)과 만나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한단고기에도 등장하는 대월지국은 신라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아직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월지국에 대하여 수집한 자료들을 정리한다.   추후 보완해 나갈 계획이다. 

1. 스키타이의 후손으로 본 월지국
 
1) 스키타이란 : 기원전 제2천년기말에 볼가강의 한 인도유럽어족은 수레를 끌고 자신들의 땅을 떠나 시베리아 땅으로 올라가 예니세이강까지 갔다.   북쪽과 동쪽으로 카스피해를 돌아 이란까지 내려가 거기에서 키메르족이라는 이름을 얻고, 그 다음에는 사카족(석가모니 종족)으로 불리다가, 기원전 7세기에 마침내 스키타이족이 되었다.

    춘추시대 이후 중원계국강대화에 따라 병합, 분리하다가, 전국(戰國)시대에서 한(漢)나라 때까지 중앙아시아 아무다르야강(江) 유역에서 활약한다.   전국시대 말기에는 서몽골로부터 간쑤[甘肅] 서부, 황허강[黃河] 상류, 동(東)투르키스탄, 중가리아, 서(西)투르키스탄의 일부에까지 미치는 대세력으로 하서회랑까지 점령하며 월지국을 세운다.

2) 기원전 177년 흉노의 묵특선우에게 공격을 받고, 월지는 감숙에서 쫓겨나 서쪽(일리-이식쿨유역)으로 이동한다.
 
3) 서쪽으로 이동하여 아무다르야강 북안에 중심을 두고 그 남쪽의 대하(大夏 : 드하라의 음역으로, 아프가니스탄의 北半 드하레스탄을 가리키며, 당시 그리스인 식민왕국박트리아의 중심지)를 지배하였다.   그것은 한(漢)나라가대월지(大月氏) 와 더불어 흉노를 협격(挾擊)하고자 하여 장건(張騫)을 파견한(BC 139) 직후의 일이었다.    대월지는 이 제안을 거절하고 대하 지방의 통치에 힘써 파미르·힌두쿠시의 남북에 토착제후(土着諸侯)인 다섯의흡후(翕侯)를 두고 다스리게 하였다.  
 
4) AD 1세기경 다섯 흡후의 하나인 귀상흡후(貴霜翕侯)가 대두하고, 이어서 대월지에 대신하였다(쿠샨왕조).   또한 황허강 상류 유역에는 대월지의 잔존세력이 남아 있어서 소월지(小月氏)라고 하였다.
 
5)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스키타이 
6) 유물로 보는 스키타이와 신라의 연관성

      아프가니스탄 틸리아 테페(Tillya Tepe)에서 발견된 금관은 신라 금관과 유사하다.   이 시리아․테베 유적의 연대는 대월지 시대에서 쿠샨시대 초, BC1c~ AD1c경 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금관(틸리아 테페) ⓒ김운회                             신라 금관(5~6세기)
 
      수목형 솟은장식과 머리띠형 다이아뎀에 붙여진 꽃모양 장식은 신라 왕관과 다르지만, 다이아뎀에 수목형 솟은장식과 작은 원형의 금제 달개를 매단 형식은 똑같다.   발굴 보고자는 관내부에서 발견되 성스러운 결혼을 부조한 황금장식판과 금알갱이로 세공한 목걸이와 날개 달린 아프로디테상들으로 보아 스키타이 여왕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라 5, 6세기 금관과 이 여왕의 수목형 금관의 연대차는 4,5백년 정도이지만, 간접적이었을지라도 이것이 원류였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 시리아-테베의 금관과 로마유리는 신라문화가 그처럼 오래전부터 스키타이인과 관련 있었고, 그후에도 소중하게 유지하여 로마문화를 흡수하였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요시미즈 츠네오(由水常雄)라는 일본 제1의 유리 공예가가 쓴 「로마문화왕국 - 신라(新羅)」(新潮社)]

2. 고조선의 후손으로 본 월지국
 
(태백일사환국본기)

구다국은 옛날에는 독로국(瀆盧國)이라 칭했고 북개마대령(北蓋馬大嶺=인산산맥?)의 서쪽에 있는 나라다.   월지국(月漬國)은 그 북쪽 500 리에 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韓)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마한(馬韓), 둘째는 진한(辰韓), 셋째는 변한(弁韓)인데, 진한을 옛 진국(辰國)이라 하고, 진왕(辰王)이 월지국을 통치하였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월지국은 진주(辰主)의 치소(治所) 라 했다.   곧 월지국은 진국의 도읍지 라는 것이다.

신채호의

{조선사연구초}

월지국이 고대의 우리나라 고조선임 을 밝히고 있다.

{국어대사전}

월지국을 목지국(目支國)이라 하고 목지국은 옛 진국의 한 부족국가라 하였다.

옛 진국이란 고조선을 지칭한다.

{불교사전}

"월지(月支)는 월씨(月氏)라고도 하며, 서역에 있던 큰 왕국"

월지국(月支國)을 서역에 있던 대월씨(大月氏)에 결부시키고 있다.

대동방씨족원류사

1. BC230년경 秦나라가 6국을 정벌통합할 때, 韓나라 또한 멸절되었다.

이에 여러 나라[6국]의 부호들을 秦나라의 수도 함양에 옮겨 살게 하였는데 ... 이러한 때에 산동, 장안 등지에서 좋은 물건들을 가지고 서쪽(서역)으로 대상의 길을 다니면서 서쪽 지방에도 안주하면서 한 집단을 이루게 되었다.

2. 서역 그 곳에 대월 , 안식, 사라 라는 지명도 생겨나기도 했다.

한단고기

bc195~ [74기준] 제가의 무리는 상장군 탁을 받들어 모두 산을 넘어 월지에 이르러 나라를 세웠다.

월지는 탁의 태어난 고향이니 이를 일컬어 중마한이라 한다.


    일반적인 개념으로 기준시기(bc195)의 번조선(기자조선)은 연나라세력과 대립하며 요녕지방에 위치한다.  번조선의 상장군 탁은 요녕지방에서 하서회랑에 위치한월지로 이동한다.(bc195)   그리고는 월지와 함께 쿠샨왕조까지 이어지게 된다.   약간의 시대차이가 있기는 하나 대동방씨족원류사에서 멸절한 韓의 부호들이 이동하는 곳도 함양(장안)이며, 장사를 통하여 서역으로 진출하여 대월과 안식, 사라를 세운다는 것은 일치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일봉의 한단고기에서는 월지의 또 다른 이름이 중마한이라 한다.   마한... 우리의 삼한중의 하나로서 일반적으로는 한반도 위치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대륙에 위치하는 마한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조심스레 삼한의 위치에 대한 관념을 의심해 본다.   여기서 대동방씨족원류사의 삼한의 위치에 대하여 살펴보자.
 
삼한의 위치를 대륙에서 찾아보는 또 다른 자료가 있다. 
 
*조선천독(朝鮮天毒) 산해경(山海經. 전한 초 BC 202)원문

"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朝鮮天毒 其人水居외人愛之..."

       동쪽나라 안의 북쪽의 모퉁이 에 있는 나라이름은조선(朝鮮)이며 조선은 천독(天毒)이며, 그 사람은 물이 있는 곳에서 살고 사람을 사랑하며 가까이 한다. ( 율곤선생의 편역)
 
===> 본문에서 동쪽의 나라안 이라고 한 것은 대륙의 중앙을 뜻한다.

       그 다음의 북쪽 나라 모퉁이 라고 한 것은 지금의 동북쪽인 북경(北京)의 동쪽을 뜻한다.
 
        동해지내(東海之內)라고 한 것은 조선(朝鮮)이 대륙을 중심하여 지배하고 있다가 후일에 북해지우(北海之隅) 즉 북쪽의 나라 모퉁이로 옮겨갔음 을 뜻한다.   나라가 있는데 이름은 조선(朝鮮)이라고 했다.
 
*  곽박의 주

朝鮮今樂浪郡也 天毒卽天竺國貴遣德有文書金銀錢貨□屠出此國中也晉大興四年天竺胡王獻珍寶.... 생략

    곽박에 의하면 조선(朝鮮)은 낙랑군(樂浪郡)이라 했다.   원가(袁珂)는 조선(朝鮮)은 해내북경(海內北經)에 있다고 했다.   또한 곽박은 천독(天毒)은 천축국(天竺國) 이며 도덕(道德)을 귀중하게 생각하고, 문서(文書)가 있으며 금은(金銀)과 돈을 갖고 있으며, 나라 가운데서 죽음을 무릅쓰고 떠나갔다고 했다.(이중재씨의 편역)
 
*당(唐)나라의 요사겸(姚思廉)이 지은 양서(梁書.629년)에 의하면

     "중천축국(中天竺國)은 대월지국(大月支國) 동남으로 수천리(數千里) 떨어진 곳에 있는데, 그 지역은 3만리(三萬里)이다.   일명 신독국(身毒國)이라고도 한다."  고 하였는데 통전(766년)에서는 월지국(月支國)을월씨 국(月氏國) 이라고 하였다.   감숙성 돈황 남쪽에서 흉노에게 쫓겨 서역인 토노번까지 도망을 갔다고 한다.  이들은 본래 월지국(月支國)이었으며 신독국(身毒國)이라고도 하였다.   [월지국이 곧 신독(조선)이였음을 말한다]
 
*통전(通典)

    천축은 후한(後漢 A.D.25∼220년) 때 있었다.   전한(前漢 B.C.206∼AD.220년) 때는 신독국(身毒國)이다.   전한 초에 장건(張騫)이 대하(大夏)에 사신으로 갔는데, 그는 그곳에서 공( )의 죽장(竹杖)과 촉(蜀)의 포목을 보았다.   어떻게 이것을 얻었으냐고 대하국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말하기를, 신독국의 시장에 가서 사왔다고 했다.
    신독국이 곧 천축국(天竺國)이다.   천축을 혹 마가타(摩伽0)라고도, 바라문(婆羅門)이라고도 했는데, 총령( 嶺)의 남쪽에 있었다.   즉, 총령은 곤륜산맥(崑崙山脈)을 뜻한다.   이곳은 신강성(新疆省) 남부이며 서장성(西藏省) 북부지역을 말한다.   월씨국(月氏國)에서 동남으로 수천리(數千里) 떨어진 곳인데, 지역은 3만여리(三萬餘里)였다.

=== 따라서 곤륜산맥의 서북으로 수천리 떨어진 곳이 월씨국이 된다.

=== 律坤 율곤 李重宰著「한民族史」284쪽 
    東夷 朝鮮人들이 너무도 영리하고 용맹스럽고 지혜가 있어 무서운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별명처럼 불려진 것이 신독(身毒) 또는 천독(天毒)이다.   그리고 후일 천축(天竺)으로 불려져 중천축 · 북천축 · 서천축 · 남천축 · 동천축으로 불리게 되었다.   문헌에 의하면 광동성(廣東省) 지방의 천축산(天竺山)에서 유래되어 청해성(靑海省)이 있는 곳으로 갔다는 기록도 보이나, 본래 天毒·身毒은 곤륜산을 배경삼아 천산산맥 등지와 타림 분지 등 여러 곳에서 수렵을 했던 용맹스러운 묘족(苗族)의 후예였다.

=== 전한(前漢 B.C.206∼AD.8년) 때는 연독국(捐毒國)이나 신독국(身毒國)으로 불리었고, 후한(後漢 A.D.25∼220년) 때 와서 천축국(天竺國)으로 불렸음을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다.

 

     한(漢)나라 때는 또한 연독국(捐毒國) 이 있었는데, 장안(長安)으로부터 9,800리에 있다.   장안(長安)에서 9,800리라고 한다면 신강성(新疆省) 남부에 있는 지금의 화전(和田)인 옛 이전원(伊甸園) 일대를 말한다.   도호부가 있는 곳으로부터는 2,800리 떨어진 곳이다.   남쪽으로는 총령( 嶺)인 곤륜산맥과 서로 연결되어 있고, 북쪽으로는 오손(烏孫)과 접하고 있다.   오손(烏孫)은 신강성(新疆省) 천산(天山)과 알타이 산록 일대에 있었다.   연독국 사람들의 의복은 오손 사람들과 비슷했으며, 물과 풀을 따라 이동했다.   옛날의 색종(塞種)이다.

 

안사고(顔師古)의 말에 의하면 연독(捐毒)은 즉 신독(身毒)이며,  신독(身毒)은 천축(天竺)이라 했다.

색종(塞種)은 즉 석종(釋種)을 말한다.   말하자면깨달은 사람들의 가문, 석씨(釋氏) 가문의 혈족이라는 말이다.

대륙삼한설에 이어 신라의 위치 또한 의문이 생긴다.

아래 혜초스님의 오언시( 詩) “여수(旅愁)” 를 살펴보자.
 
月夜瞻鄕路   浮雲飄飄歸   緘書參去便   風急不聽廻   我國天岸北   他邦地角西   日南無有雁   誰爲向林飛

월야첨향로   부운표표귀   함서참거편   풍급불청회   아국천안북   타방지각서   일남무유안   수위향림비


달 밝은 밤에 고향길을 바라보니 뜬구름은 너울너울 고향으로 돌아가네

나는 편지를 봉하여 구름편에 보내려 하나 바람은 빨라 내 말을 들으려고 돌아보지도 않네

내 나라는 하늘 끝 북쪽에 있고 다른 나라는 땅 끝 서쪽에 있네

해가 뜨거운 남쪽에는 기러기가 없으니 누가 내 고향 계림으로 나를 위하여 소식 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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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는 혜초((704-787)승이 남천축국에 있으면서 旅愁(여수)를 5언시로 읊은 것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그린 내용이다.   고향을 그리면서도 남천축국의 사정을 잘 묘사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고향인 계림(鷄林)이 하늘 끝 북쪽 이라고 한 사실이다.   남천축(남천축국은 대륙에 위치한 오천축국의 하나로 대륙남쪽에 위치해 있었다)에서 바라보는 하늘 끝 북쪽은 어디일까?   신라의 위치는.... 

이래 지도는 한반도의 신라를 구성하는 辰韓(秦韓)의 유민이 원주지을 표시하고 있는 지도이다.

즉, 한반도 신라의 근원을 추적할 수 있는 자료인 것이다.

 


또한 신라와 관련성 있는 왜(倭) 또한 대륙에도 존재했다. ( 여기를 클릭)

출처 : [正心正道] 무 병 장 수 원 | 글쓴이 : 금빛물결 |원글보기



스크랩] 일종씨 싯다르타 가 월종씨 인 사위국 빈비사라 태자 와 마주 쳤다.

싯다르타가  수행자 가 되어  거지 행색으로  혼자서 사위국을 지나 가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빈비사라 태자 가 급히 말을 타고 싯다르타를 쫒아 갔다
 
" 싯다르타여!  그대의 나라가 소국이어서 욕심이 나지 않아 그대가 수행자 가 되고자 하는 것 이라면  그대의 나라와 나의 나라를 합치고 같이 다스립시다 "

이 말에 싯다르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 아니오 나는 그런 이유로 출가 하러는 게 아니라 영생을 얻기 위해 출가 하는 것이오 "

  "  그리고 그대는 월종씨 이고 나는 일종씨 요  그대의 나라와 나의 나라는 공동으로 다스려 질 수 없는 나라 라오 나의 길을 막지 마시오 나는 영생의 길을 찾을 것이오 " 
 싯다르타의 의중을 확인한 빈비사라는  내심으로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 쉬고  싯다르타에게 말 하였다

" 그대가 만약 그 길을 얻으면 나부터 찾아 주시오  나는 그대를 적극 후원하고 그대의 가르침을 따르겠오 "
 
싯다르타의  대인상 에 항상 주눅 들었던 빈비사라는  카피라 도 자기 것이 될거라는 생각 으로 기쁜 마음이 되어

귀가 하였다
 
윗글에 나타난 것이 태양신 숭배의 일종씨 사카족  싯다르타 와  달 숭배의  월종씨 월지족 사위국 빈비사라 이다

월종씨는 후에 월지국이 된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월종씨는  사카족이 될 수 없다

실지로도  월지족이  비씨  158년 에 오스만 의 공격을 받아 사마르칸트로 쫒겨 가서 그 곳의 색종(사카)을 정벌하고
 
 규수 연안의 대하국(박트리아) 도 정복 하여 대왕국을 건설 한다  대왕국 의 3대  가니색가왕은 서쪽으로 페르시아  동쪽으로 중앙아시아 에 걸친 간다라 왕국 을 만들었다 <두산 세계대백과사전 참조 >

 이를 보면 월지국은 사카족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색종은 사마르칸트에 있었고  대하는 규수 연안에 있었으므로

대하 가 색종이 아니라는 것 도 알 수 있다 

알타이문화권에 있던 월씨국이 오손에게 당햇다고 하는  말은  정확하게는 연나라 의  위만에게 속임수를 당하여 나라를 빼앗긴   기자조선의 [기준] 왕을 말하는 것이다
 
사마르 칸트는  마한의 여래비리국인데 기준은  여래비리국의  서가여래 족속인  색족을 정벌 한 것 이다

이 글을 따르면  오손이 연나라가  되는 것이고  위만은 열하 남쪽에 있던  월지국을  속임수로 뺏은 것이므로  위만조선은 열하의 남쪽 에  있었다고 봐야 된다 
 
따라서 가준의 기자조선이 월씨국이 되는 것이고  이 들이  간다라 왕국을  세우는 것이다

주> 사마르 칸트=  우즈백 공화국 동부에 있는 도시 제라프산 강에 가깝고 옛 사원이 있다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스크랩출처 :대륙 조선사 연구회


 중앙아시아 북방 유목민족(사카, 알타이, 신라) 의 꼬깔모자 형태 문화 유사성

 

 

스키타이 민족과 한민족의 관계(펌)

그리스인들이 스키타이 페르시아인들은 사카라고 불렀는데, 넓은 의미로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활동하던 백인종 유목민족(페르시아계 유목인과 같은 의미) 전체를 통칭하며, 좁은 의미로는 페르시아 다리우스왕이 그리이스와 전쟁을 벌였던 스키타이 국가를 말하는데, 대개 스키타이 위치는 크림반도를 포함한 흑해 북부 초원지대이며, 넓게는 동경 30도 선상의 우크라이나 북부의 중심에 있는 키예프(Kiev)에서부터 동경 60도 선상의 우즈베케스탄 서북부의 끝에 있는 아랄(Aral)해[咸海]까지에 걸쳐 활동하였다.

스키 타이란 말의 어원은 ‘사슴’이다. 나중에 ‘사슴’에 대한 설명은 자세히 하기로 하고 낙빈기의 금문에서 자신의 문장을 ‘사슴’으로 그린 자가 누구인지를 찾아보았다.

소호금천씨(함)의 딸 문文과 전욱고양씨 사이에서 태어난 자가 중여곤(곤곤)인데 그의 문장기호가 바로 사슴이다. 전욱고양씨의 아버지가 ‘창의’인데 이 역시 천자가 되지 못한 사람이다.

다시 ‘스키타이’의 어원에 대하여 알아보자. 스키타이의 한국어는 ‘색 탁’이다. ‘색, 탁은 고 와 동일한 뜻으로 성城이라는뜻이었다. 즉 스키타이는 동일한 뜻을 두 번 겹쳐서 부르는 이름이다. ‘색’은 북방에서 ‘새끼’라는 뜻으로 ‘스키’ ‘사키’등으로 되었다.

즉 고구려가 세워질 당시 고구려는 먼저 있던 나라인 ‘고구리’ ‘색구리’ ‘탁구리’ 또는 ‘색리국’ ‘탁리국’ ‘고리국’을 이어 받았다고 하는데 이는 세 나라가 아니라 같은 나라를 부르는 이름이다. 즉 색, 탁, 고는 같은 뜻이다. 고등의 손자가 색부루 단군이다. 색부루 단군의 후손들은 모두 고씨를 성씨로 썼다. 그러므로 고, 색, 탁은 같은 성씨이다.

스키타이의 상징은 사슴뿔이라고 이미 말씀드렸다. 신라의 금관은 바로 사슴뿔의 형상이며 금관을 만든 민족은 오직 삼국과 아프가니스탄 밖에는 없다. 즉 페르시아 위 쪽에 있던 민족이 한반도로 이주해온 것이다. 백제의 칠지도도 역시 사슴뿔의 형상이다. 그러면 사슴의 그림이 엄청많이 등장하여야만 할 것 아닌가? 몽골의 알타이 지방에 가 보면 온통 천지가 사슴그림이다. 알타이라는 말 자체가 황금인데, ‘알타이’ 역시 ‘스키타이’와 같은 뜻이다. 즉 ‘아리+타이’로 구성된 단어이다.

알타이 지방 순록 암각화

색의 페르시아나 인도식발음이 ‘샤카’이다. 즉 ‘석가모니’에서 ‘석가’는 ‘샤카’를 한문식으로다시 옮겨 쓴 것이다. 그러므로 샤카족은 모두 고구려의 ‘고’씨를 부르는 말이다. 이 고씨들을 ‘마馬’라고도 부른 것이다. 그래서 고구려는 5개의 씨족으로 구성되었는데 가장 으뜸인 종족이 마가이다. 즉 마가馬加가 바로 고씨인 것이다. ‘마가’가 변하여 ‘마기’가 되었고 그것을 스페인어로는 ‘마고’라고 한다. ‘마기’는 페르시아에서 배화교의 승려를 부르는 말이다.

좌우간 스키타이 족은 말을 타고 활을 쏘는 부족이며 최초에 철기를 다루던 부족이다. 세계사에서는 힛타이트족이 최초로 철기를 발명한 부족이라고 하는데 사실 힛타이트 족은 스키타이족으로부터 갈려져나간 부족이다.

스키타이족의 다른 이름이 ‘샤카’족 인데 일본어로 ‘시카’는 ‘사슴’을 뜻한다. BC 2000년경에 ‘아’가 ‘이’로 바뀌는 음운현상이 있었다. 이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바로 ‘샤카’가 ‘시카’로 바뀐 것이다.

치우는 여신으로 이집트의 ‘이시스’이며 이가 곧 ‘아르테미스’이며 또는 ‘페르세포네’ 로마에서는 ‘코레’라는 여신이라고 이미 말씀드렸다. 페르세포네의 상징동물은 맷돼지이며, 가끔은 곰으로도 나타난다. 그런데 아르테미스 여신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 바로 ‘사슴’이며 그녀는 ‘사슴’의 보호자를 자처하고 나선다. 몽골 암각화 전문연구가인 김호석박사와 예서원의 최삼주 실장이 알타이지방에 가서 실제로 찍은 사진들이다. 아래 호랑이처럼 보이는 동물은사실 맷돼지이다. 맷돼지는 치우의 상징이므로 사슴 그림을 끄릴때면 항상 같이 등장하는 것이다.

스키타이에게는 신라의 골품제도와 같은 제도가 있었는데 이들은 계급을 왕, 아크 수이에크 무사 (흰 뼈 무사), 승려계급, 농민-유목민계급, 노예계급으로 나누었는데 이들은 신분에 따라 각기 다른 색깔의 옷을 입어야 했다.

Темір Дәуіріндегі Қазақстан Сақ Тайпалары


Сақ тайпалары одақтарға бірікті. Одақтары көсемдер (патшалар) басқарды. Сақ қоғамы сословие және тоитарға бөлінді: 1. тайпа көсемдері мен ақсүйек жауынгерлер; 2. Абыздар; 3. малцылар мен егінщілер; 4. Құлдар. Оларды киімлеріне қарап ажыратқан: жауынгерлер – қызыл, абыздар – ақ, малщылар мен егінщілер - сары мен көк тісті киім киген.


철기 시대의 카자흐스탄 사크족의 역사 (윗글 해석)


사크족의 왕국들은 연합부족국가로 이루어져 있다. 이 연합부족의 지도자들은 이 부족국가들을 지배했는데, 사크족의 사회와 왕국은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제1계급 왕국의 지도자와 흰 뼈 무사들, 제2계급 승려들, 제3계급, 목동과 농민들, 제4계급 노예들이었다. 이들의 복장을 보면 이들의 계급을 알 수 있는데: 흰 뼈 무사는 적색, 승려는 흰색, 목동과 농민은 노랑색과 청색을 입었다.

출처: 카자흐스탄 역사, 청동기시대

표6) 스키타이의 골품제도[1]

 

계급(Class)

옷 색(Clothes Color)

왕국의 지도자 (Royality)

흰 뼈 무사들 (Warrior)

적색

승려 (Clergy)

흰색

목동과 농민(Patrol, Farmer)

노랑색과 청색을

노예(Slaves)


전 세계에 계급사회가 공통적으로 있었지만 이렇게 신라와 스키타이처럼 계급에 따른 옷의 색깔까지 이렇게 비슷한 민족이 또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진골의 자주색과 카자흐스탄의 붉은색은 색깔이 다르지만 같은 붉은색 계열의 색이며, 스키타이와 신라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던 진시황의 진 (秦)나라는 중국대륙 통일 이후 진시황만이 붉은색을 사용하고 다른 사람들은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는 일화가 있는데 이러한 제도가 생겨난 것은 바로 진나라의 지배계급이 바로 스키타이족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기이한 제도를 만들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중국 서진 (西晉)때 진수 (陳壽)가 쓴 삼국지에 의하면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있는데 그 나라 노인들이 하는 말에 의하면 옛날 진나라의 괴로운 부역을 피하여 유민들이 한나라로 오자, 마한에서 그들에게 일부의 땅을 주었다.”


라는 내용이 나온다. 또한 진서 (晉書)에는 진한 (辰韓)사람들과 진 (秦)나라 사람들의 말이 비슷한데가 많아서 진한 (辰韓)을 진한 (秦韓)으로 쓰기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진나라와 진한은 같은 민족이 건국한 나라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진나라는 중국 한족이 건설한 나라가 아니라, 바로 한반도에 건설된 진한의 전신인 스키타이계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키타이와 신라는 그 조상이 같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4) 스키타이는 동이족인가?


우리 한민족의 조상민족은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동이족이다. 동이족 (東夷族)이라는 말의 어원은 중국이 자신을 중심에 두고 주변 민족을 부르면서 생겨난 것으로 동이족이란 동쪽에 있는 활을 잘 쏘는 종족이라는 뜻이다. 동이족이라는 단어에는 활의 의미가 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스키타이란 말의 어원은 무엇일까? 스키타이를 지칭하는 명칭은 상당히 많다. 그 중에 스키타이 (Scythian) 혹은 스키프 (Скиф)라로 불려지게된 어원을 보면 이들의 명칭이 스쿠타 (Skuta)라는 고대 이란어에서 왔으며 오늘날 영어의 궁수 (Shooter)의 의미이다. 즉 동이족과 동일하게 ‘활’과 관련된 단어가 자신의 민족을 상징하는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한자로 한민족과 카자흐족을 표기하게 되면 한민족은 동이족 (東夷族), 카자흐민족은 서이족 (西夷族)이 되는 것이다. 과거 몽골인들은 우리를 색리국 (索離國)이라고 불렀는데 사크 (Сақ)족의 한자표기로는 ‘새 (塞)’로서 ‘사이 (Sai)’로도 읽히는데 고대에는 ‘석 (Sək)’으로 읽었다. 따라서 상기의 내용을 종합해서 색리국 (索離國)의 한자를 다시 표기하면 ‘석이국 (塞夷國)’으로 표기할 수 있다. 따라서 한민족과 카자흐족은 그 기원이 만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갔거나 아니면 중앙아시아에서 만주로 이동해서 형성된 민족임을 추측할 수 있다. 환단고기에 보면 사크족으로 추측되는 묘사가 나오는데


“색족 (色族) 중에 황부 (黃部)의 사람은 피부가 누렇고 코는 튀어 나오지 않았으며 광대뼈가 튀어 나오고 머리털은 검고 눈은 펑퍼짐하며 청흑색이고, 백부 (白部)의 사람의 피부는 밝고 뺨은 높고 코도 크며 머리털은 회색이며, 적부 (赤部)의 사람은 피부가 녹 쓴 구리색이고, 코는 낮아 뭉툭하며 이마는 넓고 뒤로 기울고 머리털은 곱슬머리로 황부인과 비슷하며, 남부 (籃部)의 사람은 풍족 (風族)이라고도 하며 야자나무색의 인종이라고도 한다.”[2]

그림) 흉노족의 편두[3]


즉 색족 (色族)은 하나의 단일민족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여러 민족이 함께 건설한 연립국가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전통적으로 스키타이족에서 지도자가 나온 계층은 ‘흰뼈 무사 (아크 수이에크, АҚ сүйек, 적색 계급)에서 나왔는데 이들이 한단고기에 의하면 '피부가 녹 쓴 구리색이고 코는 낮아 뭉툭하며 이마는 넓고 뒤로 기울고 머리털은 곱슬머리로 황색 계급과 비슷하다.' 라고 묘사한 것으로 보아 아시아계 민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들이 아시아인의 얼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시아계 황색 계급 (황부, 黃部)과 다른 점은 이들의 이마가 넓고 뒤로 기울었다는 점인데 이는 이들 적색 계급이 편두를 해서 이마가 넓고 뒤로 넘어가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이 된다. 그 뒤를 잇는 신관계급인 백색 스키타이 (백부, 白部)는 피부가 밝고 뺨은 높고 코도 크며 머러털이 하얗다고 한 것으로 보아 코카서스인이 아니었을까 추측이 된다.

한국의 골품제도와 중앙아시아의 골품제도를 비교할 때 한국에는 제사장 계급이 없이 ‘6두품’ 즉 ‘청색’이 ‘흰색’ 대신에 있는 것은 동북아시아 지역에는 백인이 없었기 때문에 백색 계급이 없어서 신라의 골품제도에서는 빠지고 그 대신 동남아시아계로 보이는 ‘청색 계급 (남부, 籃部)’을 더해 세분화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이로인해 알 수 있는 것은 한단고기가 묘사한 환국이 존재하였던 지역은 아마도 중앙아시아지역서부터 티베트지역 사이가 아니였을까 하는 것을 더욱 더 확고히 해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중아앙시아에는 환단고기에서 말하는 인종이 전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의 골품제도로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은 한반도에는 동남아시아계 민족과 동남아시아 민족과는 다른 아시아계 종족 (아이누족으로 추정)이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편두를 한 몽골계 아시아인이 한반도에 들어와서 지배계급을 형성하고 그 밑으로 다른 아시아계 인종들이 하위계급을 형성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스키타이족의 5계급 골품제도를 보면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을 골고루 다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들의 언어는 어땠을까? 5계급 중에 1계급 (황금색), 2계급 (적색), 5계급 (황색)이 아시아계 몽골로이드인 점으로 보아 이들 인구의 대부분은 아시아계가 차지하고 일부분은 백인인 3계급 (백색)과 흑인 4계급 (청색)이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일까? 아마도 이들은 스키타이 (환국)이 확장되어 가면서 현지 원주민과 혼혈이 이루어져 탄생한 그룹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실질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에 있는 투르크 민족을 보면 이들의 얼굴이 가지각색인데 이들은 전형적인 몽골로이드 얼굴에서부터 서양인의 얼굴, 아랍인처럼 검은색의 피부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투르크민족이다. 따라서 스키타이의 골품제도 속에 있던 백색, 청색 계급은 비록 혼혈이 되었지만 스키타이문화 속에 살면서 스키타이화 된 민족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된다. 투르크계민족이 세계사에서 현지 원주민과 혼혈한 사례는 너무나도 많고 그 증거는 오늘날 21세기에 그들의 얼굴에서도 나타나는 불변의 진리이다. 그 예로 헝가리인과 불가리아인, 타타르인은 서양인의 외모를 하고 있으나 이들은 모두 스키타이족이 공동조상이다. 즉 백색계급의 후손인 것이고 인도 남부에 있는 드라비다족은 바로 청색계급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백인, 흑인의 얼굴을 하고 있어도 알타이-투르크계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환단고기에서 언급한 적부 (赤部), 백부 (白部), 남부 (藍部), 황부 (黃部)는 사크족의 골품제도에서 나타나는 적색 (무사 계급), 백색 (승려 계급), 남색 (농민 계급), 황색 (목동 계급)과 색깔이 일치하므로 환단고기에서 언급한 색족은 사크족이며 이들이 건국했던 나라가 바로 색리국이었음을 알 수 있음과 동시에 이들이 바로 조선 (주신)을 건국했던 주역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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