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숙(甘肅), 매 머리(鷹首) 청동 홀() 주인은 월지(月氏)이다.

 

감숙성(甘肅省) 란주(蘭州) 황하(黃河) 강변 묘()에서 매 머리 청동(鷹首青銅) ()이 출토되었다. 이 홀() 주인은 누구일까?

 

영등(永登), 매 머리 청동(鷹首青銅) ()               사천(四川), 청동방울(鷹首銅鈴)

사정문화(沙井文化유적지(遺蹟地란주(蘭州영등현(永登縣윤수강(榆樹溝)에서 매 머리 청동(鷹首青銅()이 출토되었다청동홀(머리는 숫 매 모양이고 아래는 안장(安裝)용 영패(令牌구멍이 있다.


섬서(陝西) 도응정(陶鷹鼎)                오르도(Ordos) 금관(金冠) 청동단검

매는 유목민족의 숭배대상이어서 그림 문양으로 많이 사용된다.   매머리 형상은 신으로 부여 받은 왕권(王權)을 상징하고 부족(部族)의 우두머리가 신성한 권위의 상징으로 매 머리 홀()을 쥐고 있다.

 

앤더슨(J.G Andersson)1923, 1924년 앙소문화(仰韶文化)와 청동기문화 사이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난주(蘭州)를 중심으로 400km 반경 범위를 대량조사를 하였다. 1924년 앤더슨은 민근현(民勤县) 사정(沙井, Shajing) 23기의 무덤을 발굴하였다. 1948년 배문(裴文)교수가 사정문화(沙井文化)로 정식으로 명명하였다.

1948년 이후, 고고학자들은 감숙(甘肅) 영창(永昌),, 무위(武威), 영등(永登), 난주(蘭州) 등지에서 유사한 유적을 발견하면서 사정문화(沙井文化)는 수면위로 부상하였다.

 사정문화(沙井文化)는 가장 만기(晩期) 채도문화(彩陶文化)이다. 년대(年代)는 상한 BC 3,000년에서 하한 BC 2,500년으로 은주(殷周)시대에서 춘추(春秋)시대이다.

 

사정문화를 창조한 사람은 도대체 언떤 민족일까?

문헌을 보면 감숙(甘肅), 하서회랑(河西回廊) 지방에 월지(月氏)와 오손(烏孫) 두 유목민족이 존재한다. 이들은 돈황(敦煌)과 기련산맥(祁連山脈)사이에 생활한다.

 

사정문화(沙井文化)를 맨든 이는 마땅히 월지(月氏, Yueshi)이다

월지(月氏)는 전국말기(戰國末期)에서 진()나라 때 세력이 가장 왕성하였고 오손(烏孫)을 공격하였다.   오손(烏孫)은 흉노(匈奴)로 도망갔고 월지(月氏)의 공격을 받은 흉노(匈奴)는 패하여 신하(臣下)칭하고 조공(朝貢)을 바쳤고 흉노선우(匈奴單于)는 태자(太子) 묵돌(冒頓)을 월지(月氏)에 인질(人質)로 보내야 했다.

 월지(月氏)는 동쪽 난주(蘭州) 황하(黃河) 변경에서 서쪽으로 신강(新疆) 천산(天山) 남북(南北) 지역에 이러는 웅대한 부족연맹(部落聯盟)을 맨들었다.


          영등(永登), 청동 식패(飾牌)                         스키타이   금 식패(飾牌)  


           영등(永登), 청동 식패(飾牌)                         스키타이   금 식패(飾牌)  


월지(月氏)는 반농경(半農耕 반유목(半遊牧) 생활을 했다. 사정문화(沙井文化) 유적지(遺蹟地)에서는 큰 보습(철리(鐵犁), Plowshare), 끝이 예리한 청동검이 출토되었고 말, , 양이 대량으로 순장(殉葬)된 것도 발견됐다

사정문화(沙井文化) 청동은 동물 문양이다.  이 것은 북방 스키타이 문화 계통을 보여준다.


감숙성(甘肅省난주(蘭州)에 고란산(皋蘭山)이 라고 있는데 서쪽 용미산(龍尾山)에서 시작해서 동쪽 노랑구(老狼溝)에 이르고 형상이 하늘로 올라가는 용()과 같아 높고 두텁고 구불구불함 양날개를 펼친 것 같다동서(東西)로 아치형 난주성(蘭州城)이 둘러져서 20여리(餘里이어져 난주성(蘭州城)의 병풍(屛風같은 보호벽 역할을 한다.

    고난(皋蘭 Gaolan)오난(烏蘭)가난(賀蘭등은 흉노(匈奴)를 말하는 것이고 현재 몽골(蒙骨)에서는 여전히 장하(將河)를 가리켜 고난(皋蘭)이라 부른다.   고난산은 바로 강가의 큰 산이다.

옥족(玉族) 대월지국(大月支國)


월지(月氏,月支 Yueshi)는 옥(, jade)을 파는 민족이다.

                타림분지(Tarim Basin)  오아시스(oasis) 남로, 옥길 (Jade Road)

옥길(Jade Road) 따라 옥족(玉氏 Jade people)이라 불린다. 옥길은 비단길(silk road) 오아시스(oasis) 남로를 말하고 곤륜산(崑崙山 Kunlun Mt.) 근처 호탄(于闐, Khotan)은 옥() 원산지로 알려져있다.  월지는 중국, 특히 은주(殷周)시대에 옥문화(玉文化)를 연 장본인들이다.

 

                                       청옥(靑玉 Jade) 비취(翡翠

서방에 중국 비단 전달자로 비단족으로도 알려졌다. 서구인에게 BC 5세기경 양잠기술이 전파되었고 최초로 비단을 '세레스'(Seres) 'Serica'라고 칭했고 중국을 세레스로 불렀다.

이렇게 월지는 중국에 옥을 수출하고 중국의 비단을 서방에 중개무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누렸다. 이 중개무역 주도권을 흉노(匈奴), ()나라 쥐려고 전쟁을 불사한다.

 

문헌에 아래와 같이 나타난다.

우씨 도도(禺氏 騊駼) [ 일주서(逸周書)]

우씨의 옥(禺氏之玉) [ 관자(菅子)]

화씨의 벽(和氏之璧) [ 회남자(淮南子)] 위 문헌에 나타난다.


도도(騊駼)

북방산의 일종인 털빛은 푸른색을 위주로 하는 야생마로, 줄곧 역대의 명마로 사람들의 중시를 받아왔다. 사기(史記)에 흉노가 기르는 가축으로 감주(甘洲)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흉노는 말을 잘 타는데, 당연히 말을 잘 길들인다.

 

禺氏, 禺知, 和氏, 于氏는 투르크어 ‘qash, Kash(카쉬)’ 소리대로 표현한 것이라는 설과 호탄(Khotan)의 옛 이름 우기(于闐, 于田)의 음()을 빌린 것이라는 설이 있다. Kash(카쉬)는 옥석(玉石 Jade)이란 뜻이고 우기(于闐)는 티벳어로 옥() 원산지란 뜻이다.

[ 출처 : 실크로드 백과사전 (The Silk Road Encyclopedia) ]

 

월지(月氏,月支 Yueshi)

범어(梵语 Sanscrit) ‘Kosha (코샤)’, 파사어(波斯语 Persia) ‘Chach (차치)’

또는 ‘Jaj(자즈)’, 소그드어(Sogd) ‘Cac (카스)’ 로 뜻은 모두 보석(寶石 Jewel),

옥석(玉石 Jade)”이다.

 

월씨(月氏 Yueshi), 갈석(竭石 Jieshi), 객십(喀什 Kash), 가사(迦舍 Jiashe), 가사(伽師 Gashi), 거사(祛沙 qusha), 소리가 유사하다.

 

헨닝 (W.b. Henning, 1908-1967)은 지적하기를

구트(Gutium)과 토카라(Tukris) 두 민족이 오랜 세월 동안 동쪽으로 이동해서 중국 북서부에서 정착했다. 그 중 토카라인(Tukris)은 신강(新疆) 남부의 고차(龜玆, 庫車 Kucha)와 언기(焉耆, Karashhar Agni)를 정착한 후, 토카라인(吐火羅 Tocharian)이 되었고, 구트인(Gutium)은 하서(河西)에서 여전히 유목생활을 하며 거주했고 월씨(月氏 Yueshi)가 되었다."

[ 첫 인도유럽인 역사 (The First Indo-Europeans in History)1978 ]

 

Guti(구티)는 고한어(古漢语) 포립본(蒲立本)에서 흉노어 ‘Kiat(캬트)‘ 이고 뜻은 돌(, Stone) 이다. 언어로 비교하면 위구르어(Uygur) ’qash teshi (보석(寶石), Jewel)’,

우즈벡어 ‘qash tashi(옥석(玉石, Jade)’,

키르키즈어(Kyrgyz) ‘qash tash(옥석(玉石, Jade)’,

범어(梵语 Sanscrit) ‘Kosha (코샤)’,

파사어(波斯语 Persia) ‘Chach (차치)’ 또는 ‘Jaj(자즈)’,

소그드어(Sogd) ‘Cac (카스)’  

소그드(Sogdia 속특粟特)과 트랜스옥시아나(Transoxiana)

 

소무구성(昭武九姓) 즉 소무는 아홉 부족이 있는데 구성호(九姓胡, 또는 속특호(粟特胡))라고 불렸다. 소그디아(Sogdia, 粟特) 지역에 여러 군소국을 세웠다. 기련산(祁連山, Qilian) 산 기슭에 있는 소무(昭武 Zhaowu)라는 고향을 떠나 아홉 부족이 이주했다고 한다. 현재 감숙(甘肅), 장애(張掖) 근처 임택(臨澤)을 말한다. 소무(昭武) 뿌리는 한()나라 시대 (BC 206~- AD 220) 서부 지역에서 있었고 흉노(匈奴)의 스텝 연맹에 패해서 소그디아(Sogdia)로 달아났다.

 

                                           기마궁사  배사법

소그드(Sogd)는 옛 인도유럽어 ‘skeud’ 쏘다 (shoot)’라는 뜻에서 나왔는데 이것이

skud > skuda > sugda, suguda 변했다고 한다.   스쿠다(Skuda)는 궁수(弓手, Archer)라는 뜻이다. 스키타이(Scythians), 삭카(Saka) 어원도 동일하다.

[ 7세기 오스왈드 제메레니(Oswald Szemerényi)]

  

트랜스옥시아나(Transoxiana, 하중(河中)) 지도

 [출처 : 소렌스탁(Soren Stark) ; () 무슬림 마와란나할의 초기 투르크인 (Early Turks in pre-Muslim Mawarannahr)

  

소그드(Sogd)아무다리아(Amu Darya, 오허수(烏滸水) 또는 규수(嬀水), 라틴어 옥서스 Oxus)시르다리아(Syr Darya, 약살수(藥殺水) 또는 엽하(葉河)) 강 사이 평원 (트랜스옥시아나(Transoxiana) , 하중(河中))에 도착했다.

 

강 사이에 제라프샨(Zarafshan, River of Soghd)강이 있었고 이 강의 주변에 많은 오아시스 도시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사마르칸트(Samarqand), 부카라(Bukhara), 타시켄트(Tasjkent) 등이 있습니다.

 

이란 사람들은 이 지역을 투르(Tur, 인명)사람들의 땅이라는 뜻으로 도란(圖蘭, Turan, Turiyas,توران)이라 불렀고, 7세기 이후에는 아랍어로 강 사이의 땅을 의미하는 마와란나할(ما وراء النهر, Mā-warā' an-Nahr, Mawarannhr)이라 불렀다.

 

이 지역을 중국 역사서엔 위서(魏書)서역전(西域傳)에 속특(粟特, Sute), 후한서(後漢書) 서역전에서는 속과(粟戈, Suyi)란 이름으로 수당대(隨唐代)에는 솔리(窣利, suli) 중세 페르시아어(Pahlavi)Sulik의 음차(音借)로 보인다.

 

[출처]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jhleetck

 

Amu Daria, Amu Darya: 아무다리야강, 아무강, 오호수(烏滸水) 또는규수(嬀水)

 

n 천산산맥에서 발원하여 아랄해로 흐르는 길이 2,500Km의 강. Darya는 바다() 또는 큰 강을 의미하는 페르시아어를 투르크어로 읽는 것.

강의 이름인 아무(Amu)는 지금의 투르크메니스탄의 레바프(Lebap)주도인 투르크메나바트(Turkmenabat, Chardzhou, Charjew)인 아물(Amul/Amol)에서 온 것으로 추정.

 

중국에선 고대에 규수(嬀水, Kuishui) 또는 오호하(烏滸河, Wuhu)라 불렸고 지금은 아모하(阿姆河)라 부름

 

인도아리안들은 박수(Vaksu), 인도 힌두문학 장르인 푸라나(Purana) - Vayu PuranaMatsya Purana 에서는 Chakshu라 불림,

 

그리스에선 Οξας(Oxas, Oxos)

히랍어로는 Oxus

소그드어로는 와후슈(wxwšw)

중기 페르시아와 사산조 시대에는 좋은 강’(Good river)라는 뜻의 Wehrod로 불림

이란어로는 Wakhsu/ Vaksa 중국어 규수(嬀水)는 이에 대한 음역

아랍어로는 성경 창세기 213절에 나오는 에덴동산에서 흘러나오는 4개의 강 중 하나인 기혼(Gihon)강에서 유래한 자이훈(جيحون, Jayḥūn, Jayhun, Jayhoun)이라 불

 

Syr Darya/ Sir Darya: 시르 다리야강, 약살수(藥殺水), 섭하(葉河)

 

n 알렉산더대왕 시대에는 타나이스(Tanais) (Don)?

고대 페르시아에선 약사 아르트 (Yakhsha Arta ; 진주(珍珠) True, Genuine Pearl’의 뜻)

희랍어로는 약사르테스(ὁ Ιαξάρτης, Jaxartes 또는 Yaxartes)

Pliny에 의하면 스키타이인들은 실리스(Silis)

 

n 수서(隋書), 신당서(新唐書)에서는 약살수(藥殺水)

현장(玄奬)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엔 섭하(葉河)

자은사전(慈恩辭典)에는 섭섭하(葉葉河, Yap-yap)

서유기(西遊記)에는 Khojend muran, 서사기(西使記, 1263)에는 홀견하(忽牽河)

원사(元史)에선 홀장(忽章), 홀선(忽禪)

명사(明史)에는 화점하(火站河)이라 기록됨

지금은 석이하(錫爾河)라 부름

 

n 신당서(新唐書) 서역전(西域傳)의 석국(石國)조에 진주하(眞珠河), 질하(質河)는 나르인(Naryn)강으로 비정됨.

 

제라프샨 강(Zarafshan, River of Soghd)

Zeravshan, Zarafshan/ Zarafshon/ Zaraohsan (제라프샨) 페르시아어로 황금을 뿌리는’ (the Sprayer of gold)”를 의미하는 zar afshan에서 나옴.

 

희랍어로는 폴리티메우스(Polytimetus)라고 불렸고, 지금은 소그드강(River of Sughd)이라고도 불림). 중국에서는 당나라 때 나밀수(那密水)라 불렸고, 지금은 시랍부선하(柴拉夫善河)라고 부름.

월지(月支)가 우지 (禺知 또는 禺支)와 소리가 비슷해 월지(月支)가 춘추전국시대에 존재하였다는견해가 있다.

 

[오다니 나카오의 대월지에서 발췌]

 

일본 에가미 나미오, 마츠오 하사오, 구와하라 지츠조 역사가 있다. 그리스 로마의 프톨에마이오수가 서술한 카시(Casii)의 나라 이름은 Quasch 에서 유래하며 우지(禺支)와 동일한 이름으로 보았다. 기원자 200년경 그리스, 박트리아왕들이 세력을 뻗치려고 했던 동방의 프루노이(Phrynoi)와 세레스(Seres)가 나란히 기록되어 있는데 전자를 흉노, 후자를 비단민족을 뜨하므로 우지(禺支)라고 보는게 타당하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우지도도(禺氏 騊駼)” [일주서(逸周書)], “우씨의 옥(禺氏之玉)”[관자(菅子)], “화씨의 벽(和氏之璧) 등에 나오는 우씨(禺氏)”화씨(和氏)” 와 음이 비슷한 월씨(月氏)가 춘추전국시대에 존재하였다. 고고학적인 발국 성과를 기초로 문화적인 면에서 기원자 4~3세기경 몽골 초원, 중국 서부에서 아무다리아 지역까지 퍼져 있었던 이란 계통인 사카 유목민 집단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月氏的“”字或作“”,破音字。《文解字》中“()”是形似而不同的两个部首,但常被混淆。中國大陸新版的《海》“月支”音改“越”。“月氏”在先秦史籍中早就见诸记载,即《逸周》和《管子》中所记载的“禺氏禺、月是同一来语音的不同译写,不应当读为“肉”。中華民國育部國語辭典中,月氏亦讀「ㄩㄝˋ 」(Yuèzhī)。但兼收「ㄖㄡˋ 」(Ròuzhī)、「ㄖㄨˋ 」(Rùzhī)兩種讀音。(위키백과, 基百科)

 

중국 위키백과를 보면, 월지(月氏)의 ‘月’자 혹 독으로 쓰는 ‘肉’은 破音字(한 글자가 두가지 이상으로 발음이 되는 글자)이다. 설문해자에서 ‘月’은 ‘肉()’과 같다고 한다. 흉노를 훈육이라고도 하고 수유, 슝노 등등 여러 유사한 이칭이 있는 것처럼 유----월 등의 음은 모두 흉노와 관련된 스키타이에 대한 명칭에서 나오는 것이다. ‘중국대륙신판의 《海》에 월지는 독음을 월()로 고쳤다’고 한다.

월지를 이르는 禺知、禺支 라고도 기록된, 외래어를 음으로 기록한 것도 북방흉노를 칭하는 말이라고 하는 누지(Nuzi)와 같은 소리이며, 월지 우지 누지 등이 큰 범주에서 통칭적으로 모두 흉노를 이르는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월지(月氏)족이 인도-유럽어족이라고 보고있고 고문헌의 토하리인(Tocharians)과 같거나 긴밀힌 연결된 종족으로 믿고 있다. 중앙 아시아 연구가인 르네 그루쎄(René Grousset)는 당시 중국 문헌과 서방 측의 자료를 종합해보면 월지는 토하리인과 함께 인도-스키타이의 일종이라고 주장한다. 한 예로 당시 그리스의 역사가 프톨레미는 월지의 영역을 토가라(Thogara)로 기록해 두었다. 또한 그리스 지리학자 스트라본은 박트리아의 침략 민족을 토하로이(Tokharoi)라고 부르고 있다. 이 때는 월지가 대하를 정복하고 대월지를 세운 때와 일치하고 있다. 한편 르네 그루쎄에 따르면 감숙성에 남아있던 소월지는 이우 쿠차와 연관이 있다. 이들은 당나라에 정복될 때까지 실크로드 지역 최동부의 인도유럽어족 국가로 남아 있었다.

고대 중앙 아시아 역사 연구가 아데시 카타리야 (Adesh Katariya)가 쓴 월지족 (소제: 구자라 Gujars)의 기원의 내용에서 일부 발췌하여 번역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은 아래 사이트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www.slideshare.net/adesh1986/origin-of-yuezhi-tribe

 

마누법전(Manu Smriti)에 따르면 토처(Tocher, 월지 月支 Yuezhi) 는 아리안 부족이고 왕국은 인도의 북서쪽에 위치해 있고 달 근원 (찬드라 밴시 Chandra Vanshi) 아리안이다중국에서는 토하라인(Tocharian)은 월지로 언급되었고 달 종족  ( Yue = Moon ), = Family 종족)을 의미한다. 토하라어가 산스크리트어(Sankrit)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토하라인이 아리아 기원 민족이이었다는 것이다. 원 토하라인(Tocharian) 또는 툭하라인(Tukhara) 은 이란계 박트리아인이었고 그것은 이란은 고대시대에 인도의 일부분이었기 때문에 이란 박테리아 쪽으로 이주한 아리아인의 아리아 언어였다.

 

스키타이인은 월지(月支) 영역과 이웃에 있었다. 스키타이인과 토하라인은 거의 친근한데 그들은 인도유럽 공통 유산을 공유하고 급격하게 그들의 문화를 변화할 수 있는 고도의 발전된 문명으로부터 오랫동안 분리되어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더 길게 오랜 인도유럽 관습과 전통을 보존할 수 있었다.

 스키타이는 후에 토하라인보다 늦게 타림 분지에 정착했을 것이지만 중국 기록은 스키타이 침입을 기록하지 않았다. 이미 이 지역에 호탄에 관한 첫 번째 중국 기록이 쓰여졌던 기원전 200 전에 이주했기 때문이다.

 

더글라스 아담스 (Douglas Q. Adams)에 따르면, 토하라인은 국경주민의 의미로 그들 자신을 아니(Akni)로 불렀다. 역사가 버나드 서전트 (Bernard Sergent)는 아시쿠치(Arsi-Kuci)로 불렀고 최근 악느쿠치 (Agni-Kuci)로 바꾸었다.

 

모합하라타 서사에 투차(Tuchar)로 불려진 토처(tocher)는 고대 달 왕조의 후손이었다. 흰두 신화에서 달 왕조는 (Soma-vansha, Chandra-vansha 그리고 Ailas 로 알려진)는 크샤트리아 바르나 (Kshatriya Varna) 또는 전투 계급의 4개 주요 가게중의 하나였다. 이 전설적인 왕조는 달 (소마 Soma 또는 찬드라 Chandra)로 부터 내려왔고 반면 다른 주요 가게인 태양 왕조(Surya-vanshi)는 태양 (Surya)로 부터 내려왔다. 일라(Ila)와 부다의 아들, 달신 소마의 불법적인 아이, 푸루라바스(Pururava)가 발견한 달 왕조의 전설적인 수도는 프라티스타나(Pratisthan)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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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트리아는 아리안족의 고향이었으며, 그들은 BC2500-2000년에 남서쪽으로는 이란에 들어갔고, 인도 북서부에 들어갔다. 그 후 중앙아시아의 페르시아 제국 (550?330 BC)의 북부 주가 되었다. 바로 이 지역은 산이 많은 나라의 비옥한 토지가 투란 사막으로 둘러쌓여 있으며, 조로아스터교의 예언자 Zarathushtra가 태어나고 첫번째 신봉자들을 얻었던 지역으로 알려졌다. 아베스탄 언어는 조로아스터교 성전의 고대 언어로, 산스크리트어와 관련있는 고() 이란어였다. 오늘날 몇몇 학자들은 아베스탄 언어는 산스크리트어의 서부 방언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두 언어가 아리안족의 가장 오래된 인도-이란어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베스탄(Avestan) 언어는 서양식으로 발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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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스크리트어로 찬드라(Candra)는 힌두신화에서 달의 신이다.

चन्द्र, Chandra, 또는 Candra. 산스크리트어 '빛나다'는 뜻이다.

인도 신화에 나오는 과 구요(九曜. 인도천문학에서 취급하는 아홉 개의 천체). 라자니파티(밤의 왕)이라고도 한다. 베다 시대에 달을 관장하는 신은 소마였으나 힌두교 시대가 되면서 달의 신격 소마는 찬드라와 동일시되었다. 간다라가 달의 신이라는 말은 카니쉬카왕이 세운 간다라제국이 달의 신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말과 동일한 것이다.

 

이는 이전의 마우리아 찬드라 굽타나 아육왕의 나라와 구별될 이유가 없는 동일한 나라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단지 그 지배세력의 중추가 쿠샨이라 불리는 계층이었다는 것인데, 사실 귀상(贵霜)이나 쿠시라는 말도 월지족과는 분리될 수 없는 ‘달’의 개념이다.

 

샤히는 월지족, 무로다는 샤카족 추장의 호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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