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잊혀진 "가야" 그들의 시작과 일본에 끼친 영향력 1부

고대사에 관심이 많은 나로써 일베게이들이 역사글에 반응이 좋고 응원 해주니까 힘이난다.

일베에도 많은 고대사 관련 글들이 등록되길 바라며..

 

2부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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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는 그 기원이 북방에서 한반도로 남하한 북방유목민족과 김해 지역의 토착세력이 연합하여 가야라는 국가를 형성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발굴된 91호 고분에서 또 하나 중요한 유물이 발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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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김해박물관의 보존과확팀이 91호 고분에서 발결된 유물들을 복원하는 작업을 진행 하였고

조각난 사슴뿔을 접착제 등을 사용하여 고정시키고 원형을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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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과 사슴뿔에 대한 숭배역시 유목민족들의 의식과 관련이 깊다.

하단의 연결고리로 볼때 머리에 고정시켜 관 대용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신라금관의 모태가 된다는걸 알 수 있다.    신라금관 또한 북방유목민족의 흔적이다.

 

이번 발굴이 신라금관의 원형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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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가야가 북방유목민족+김해토착민 이설은 거의 확실시 되는 것 같다.

이제는 북방에서 남하해서 넘어와 가야 건국에 큰 영향력을 미친 북방유목민족 그들의 과연 누구인가? 그것을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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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대성동고분 88호,91호 등에서 발결된 유물들이 중국의 유목민족중 하나인 선비족의 유물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말의 후미를 장식했던 말방울의 모습은 거의 흡사한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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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무늬가 새겨진 금동 용문양 말장식도 대성동 말장식과 크게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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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는 물론 생활 도구까지.. 선비족 유물과 흡사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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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가야를 건국하는데 큰 영향력을 행사한 북방유목민족은 대륙에서 세력 싸움에서 밀려 한반도로 남하한 선비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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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선비족의 유물과 비슷하다고 해서 무조건 선비족일거라 단정 지을 수 없다.

 

가야는 자체적으로 역사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 가야사 연구는 유물로 시대를 해석하는 고고학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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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유목민족인 선비족의 흔적이 남아있는 중국 알선동 그곳에서 한반도 김해로 남하한 북방유목민족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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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향토 사학자의 발견으로 1980년 세상에 모습을 들어낸 동굴의 입구에는 중원을 차지한 선비족의 나라 북위 태무제가 남긴 충문이 남아있다.

알선동 동굴은 선비족의 조상이 모여살던 곳이다.

 

대성동 고분과 선비족의 관계를 풀 열쇠가 이곳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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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선동 태무제 충문과 원형이 모두 확인이 가능하다 . 

충문에는 "하늘에 축복을 받아 흉악한 무리와 싸워이긴 선비족의 위업을 기리는 내용이 적혀있다."

 

충문의 내용을 따르면 북방에서 생활하던 선비족이 남하를 하여 중원으로 진출을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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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선동에서 수렵과 목축을 하던 선비족은 기원전 3세기경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음산산맥으로 진출한 선비족은 세력을 늘려 주변 나라들을 통합했고 이어 뤄양까지 장악하며 선비족은 중원을 차지했다.

 

 

차오양 박물관에 선비족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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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는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뭔가 아쉽고 다른점이 분명 나타났다.

선비족 무덤에서 발굴된 허리띠 비교 이미지를 보면 알겠지만 모양은 비슷하나 세부적인 문양은 다른 것이 보인다.

 

재질또한 선비족은 청동 / 대성동은 금동이다.

 

학자들의 의견 또한 선비족의 유물이 88호,91호 분에서 나온 유물들과 비슷한 형태이긴 하나

선비족 유물이 대성동 유물과 비교 했을시에 훨씬 조잡하다는 의견이다.

 

 일단 한반도의 북방유목민족들의 유물을 보면 금을 숭배 한것이 나타난다.

선비족과 대성동의 유물은 청동과 금이라는 확연한 차이점을 보인다.

 

 

대성동의 유물과 확실하게 연관 시킬 수 있는 유물이 있어야 선비족=가야 성립이 가능하다.

 

 

중요한 단서는 랴오닝성 박물관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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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유물들은 라마동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이다.

라마동과 대성동의 관계는 흥미롭다.

 

바로 라마동 유물은 부여인의 고분으로 밝혀진다.

이미지를 더이상 올릴 수 없어 3부에서 계속하겠다.

3부에서는 가야의 실체가 한반도 고대세력 부여인임이 밝혀지고  가야가 향후 일본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게시하겠다.

 

3줄요약

 

1.  가야 대성동 고분과 비슷한 형태의 유물이 선비족의 유물에서도 발견 되었다.  매우 흡사하며 분명히 연관성이 나타났다. 

2.  하지만 대성동 유물과 재질에서 차이가 났고 문양의 형태 또한 차이점이 있어 선비족=가야  성립은 무리가 있다.

3. 라마동 고분에서 발결된 금동제 유물들은 가야 북방유목민족과 재질,형태 모두 흡사함과 중국 사학자 또한 라마동 유물을 부여인의 유물이라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