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蔚山) 진위대(鎭衛隊) 참령(參領) 구연하(具然河)

  대한제국 시대 울산 지방군인 진위대(鎭衛隊) 대대장 참령(參領) 구연하(具然河)로 나온다. 울산시 언양 작천정(酌川亭)  맞은편  암반에  헌산시사(巘山詩社)에  을재(乙齋) 구연하(具然河) 새겨져있다.

작천정,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작괘들길 67-16 일대

  1900년 고종 37년(광무 4년) 8월 14일에 참령 구연하를 진위 3연대 3대대(울산) 대대장에 임명되었다. 3대대 본영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영(兵馬節度使營)이 있었던 울산 병영동(兵營洞) 거마곡(巨磨谷)에 있다가 1년 후 경주로 옮겨진다.  그래서 참령 구연하(具然河) 송덕비도 두 곳에 모두 있다.

 ~ 참령(參領) 강한준(姜漢駿)  진위(鎭衛) 제2연대(第二聯隊) 제1대대 대대장(第一大隊大隊長), 참령(參領) 구연하(具然河) 補 진위(鎭衛) 제3연대(第三聯隊) 제3대대 대대장(第三大隊大隊長), 참령(參領) 박선빈(朴善斌)  진위(鎭衛) 제5연대(第五聯隊) 제1대대 대대장(第一大隊大隊長) ~

[출처 : 승정원 일기 3123책 (탈초본 140책) 고종 37년 7월 20일 [양력8월14일] 기미 6/8 기사] 

참령 구연하(具然河) 송덕비, 울산광역시 중구 병영3길 8, 병영1동 행정복지센터

참령 구연하(具然河) 송덕비, 경북 경주시 황성동산 1-1, 황성공원

   승정원 일기에 1876년(고종 13년) 5월 부장(副將) 13단 능성구씨(綾城具氏) 구연하(具然河), 1891년(고종 28년) 4월 29일 건원릉에서 왕세자가 섭행제를 지낼 때 따른 이로 통위영(統衛營) 영관(領官) 구연하가 나온다.

  고종(高宗)은 아관파천(俄館播遷, 1896년) 이후 2년 후 1897년에 대한제국(1897 ~1910) 을 수립하고 연호는 연호는 광무(光武)로 하는데  빛나는 무력으로 군대를 제일로 한다는 것이다.  아관파천의 뜻은 ‘아(俄)는 아라사(俄羅斯) 즉 러시아(Russia), 관(館)은 대사관, 파천(播遷)은 임금이 도성을 떠나 난리를 피하는 일, 말모이 하면 고종께서 러시아 대사관으로 망명하시는 것이다.

[참고 : https://news.joins.com/article/21110678 '아관파천 대시 아관망명으로']  

  대한제국 광무4년 1900년 8월 14일 참령 구연하를 진위 3연대 3대대(울산) 대대장에 임명되었다. 참령은 현재 군대계급으로 소령이지만 정3품으로 장군으로 불렸다.  1901년 8월 11일 잠시 휴직 후 3대대 본영은 경주로 옮기고 1901 11월 28일 3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1902년 10월 30일 참령 신학(申)이 3대대장(경주)에, 참령 구연하(具然河)는 진위 5연대 3대대장(함경북도 종성)에 발령된다. 

  1904년 10월 30일 경기도순찰사 병으로 물러난 조경준(趙慶濬)을 대신하여 임명되고 1905년 2월 5일에 시위대 대대장으로, 1905년 3월 20일 부령 (현재 중령 계급)으로, 1906년 4월 21일 정령(正領), 1906년 10월 14일 시종무관(侍從武官, 현재 경호실 요원), 1907년 4월 17일 시종무관장(현재 경호실장) 서리가 된다.

1907년 (순종1년) 9월 3일 일제의 강압에 의해 대한제국 군대해산시 정령 구연하도 해임된다.

  감리교 목사 최병헌(崔炳憲, 1858~1927)이 1908년 2월 6일부터 3월 10일까지 선유활동을 한 내용을 기록한 충청남도 선유문안 (忠淸南道宣諭文案) 부록 충남선유일록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양지촌(陽地村) 전(前) 정령(正領) 구연하(具然河) – 그때그때 일을 잘 하는 사람(識時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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