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칸민족의 아버지, 단석괴

선비족은 삼한 조선의 비왕족으로서 종족명의 원음은 사비(sabi)인데 그 뜻은 신서(神瑞), 길상(吉祥)을 뜻한다고 하고, 선비는 그 음을 한자로 적은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말은 몽골어, 거란어, 부여어의 요소가 많고 본질적으로 우리 삼한 조선의 일파이다.

선비는 후한 초기에 시람렌 유역에서 유목생활을 하다가 흉노(匈奴)가 쇠퇴하자 세력 범위를 확대하여 후한(後漢)의 환제 (桓帝)때에 단석괴(檀石槐)가 선비족의 부족장으로 추대되면서부터 여러 부족을 통합 정복하여 전 몽고 고원을 통치(166년 경) 하였고 후한을 자 주 침입하였다.

그들의 습속은 오환(烏桓)과 같이 목축,수렵을 생업으로 하고 부차적으로 소규모의 농경을 행하였다. 초기의 부락의 추장은 세습 이 아니고, 용맹하고 현명한 사람을 부중(部衆)이 추대하였는데 단석괴 이후 세습이 행하여졌다.

단석괴가 죽은 뒤 분열이 생겨 모용(募容), 우 문(宇文), 걸복(乞伏), 탁발(拓跋), 독발(禿髮) 등의 세습군장이 중심이 되어 선비계 부족연합체가 조직되어 진(晋)때 중국의 북경을 침입하였고 중국의 망명인들에 의하여 한문화를 받아들여 화북(華北)에 중국적인 왕 국을 건설. 5호(胡)16국 때에는 흉노, 전연(前燕), 후연, 남연, 서연(募 容氏), 서진(西秦;乞伏氏), 남량(南凉;禿髮氏) 등 선비계의 여러 나라가 전후하여 화북에 섰으며, 뒤에 북위(北魏;拓跋氏)가 화북 전토를 통일하 여 북조(北朝)의 터전을 닦았다.

한국에는 285년,346년의 2차에 걸쳐 부 여(夫餘)를 침입(募容氏) 하여 결국 부여 멸망의 결정적 원인이 되게 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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