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배달국 http://www.baedalguk.com ]  글쓴이 : 신완순   ( 2006-10-10 22:02:25 , Hit : 891 )  
제목 : <백제의 8대 성씨>-밝혀지는 대륙백제

 (사무불통) 백제의 8대 성씨는 현재도 대륙에 있다

(운영자 주)

사무불통님이 올려주신 자료를 재편집하여 이제야 올립니다 사무불통님의 우리역사찾기에 대한 열정에 감사의 인사를 다시금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서 언)


중국정사인 수서에 보면 백제에는 아래와 같은 8개의 大성씨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한반도에는 없고 대륙에 존재하고 있다.

"백제유 대성팔씨 사씨 해씨 진씨 목씨 국씨 연씨 묘씨(혹 묘씨) 협씨"

"百濟有 大性八氏 沙氏 解氏 眞氏 木氏 國氏 燕氏 (?)씨(或 苗氏) 協氏"

→ (?) 묘씨의 묘자는 “초두”변에 “가로왈” 사용한자임

(본문) 사무불통님이 올려주신 글

<백제의 왕족인 부여(夫餘)씨는 중국절강성 유역에 존재한다>

▒ 부여(夫餘 , 혹은 夫余) 씨

백제의 왕족인 부여(夫餘 , 혹은 夫余) 씨에 관하여 알아봅니다.
부여(夫餘 , 혹은 夫余)씨는 북사(北史)에 기록된 백제 8대성 중의 하나이며 왕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 문헌기재
동한(東漢) 때 쓰여진 <풍속통의(風俗通義)>에 처음으로 보임

2. 역사적 연원
 

1) 풍속통의에 의하면 춘추시대 말 오(吳)나라 태자 부개(夫槪)가 초국(楚國)으로
    달아나고 여자(余子)가 오국에 남았는데 이에 부여씨가 됨
2) 사기 화식전(史記 貨殖傳)에 의하면 한나라 시기에 북쪽의 오환(烏桓), 부여(夫餘) 등이
    그 족명을 성으로 삼음

3. 부여씨의 지역 분포


1) 성씨고략(姓氏考略)에 의하면 부여씨는 오흥군(五興郡)에 나타나 보이는데
    오흥군은 삼국시대 보정원년(266년)에 설치되었다.
2) 지금 차이나의 절강성 임안(臨安)에서 강소성 의흥(宜興)일대
3) 이 지역은 오정(烏程)에서 다스렸는데 지금의 절강성 오흥현(吳興縣) 남쪽이다.

→ 오흥현은 지금의 절강성 호주(湖州)입니다.

절강성 호주는 상해에서 가까운 지역입니다. 왜 이 곳에 백제의 8대성 중의 하나이며
백제의 왕족인 부여씨가 많이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이 곳이 지역상 오(吳)에 해당하는 지역이고 고구려 백제 강성시 유, 연, 제, 노, 오. 월을 평정했다는 기록으로 볼 때
이 곳은 오랜 기간 백제의 땅이 분명합니다.  위의 자료는 1995년 차이나 북경출판사에서 펴낸 중국성씨사전(中國姓氏辭典)을 참조하여 작성된 것입니다.

▒ 목(木)씨

1. 지망분포
1) <성씨고략>에 의하면 목(木)씨는 오흥군(吳興郡)에 분포되어 있음
2) 오흥군은 지금의 절강성 임안(臨安)에서 강소성 의흥(宜興)일대임

→ 백제의 유명한 인물 : 목간나(木幹那)
→ 백제 왕성인 부여(扶餘, 夫餘, 夫余)씨와 분포지역이 똑 같음

▒  추가의견(사무불통)

백제의 왕족인 부여씨는 목(木)씨와 함께 절강성 오흥군(吳興郡)일대외에 다른 지역에는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오흥군은 백제의 수도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오흥군은 지금의 절강성 호주(湖州)일대의 지역으로서 차이나 5대호수 중의 하나인 태호(太湖)의 남쪽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백제는 대륙의 태호의 남쪽 즉 호남(湖南)에 살았기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로 이주해 온 혹은 세력을 넓힌 백제에 의해서 지금의 전라도 지역을 호남으로 부르는게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개인적인 의견임) 백제의 역사가 근 700년에 이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 해(解)씨

1. 지망분포

1) <군망백가성>에 이르기를 해(解)씨는 평양군(平陽郡)에 분포되어 있음
2) 평양군은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임분현(臨汾縣) 서남이다.

→ 백제의 유명한 인물 :  해례곤(解禮昆)

2. 관련지도
   (운영자 생각) 백제의 진평이군(고평/진성)과 고구려 광개토대제의 신하였던 유주자사 진의 관할하에 있던
   산서성 태원태수, 대군래사를 감안할 경우 산서성에 대한 재평가도 이루어 져야 한다
   백제의 장군 해례곤은 과연 여기출신일까 ?  만약 그렇다면 그 땅은 누구의 주강역이었을까 ?
   그것이 궁금합니다

▒ 사(沙)씨

1. 지망분포(地望分布)

1) <군망백가성(郡望百家姓)>에 이르길 사(沙)씨는 여남군(汝南郡)에 나타난다.
2) <성씨고략(姓氏考略)>에 동완(東莞), 여남(汝南)이라 했다.
3) 여남군은 한나라 고제(高帝)때 설치했으며,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중부의 상찰현(上察縣) 및 안휘성(安徽省) 회하(淮河)이북지역이다.
4) 동완군은 진(晉)무제 태시(太始) 원년(265년)에 설치되었으며
   지금의 산동성 기수(沂水), 영현(營縣)일대이며 한나라 양군(陽郡)의 구지(舊地)이다.

→ 백제의 유명한 인물 : 사법명(沙法名)

2. 관련지도

▒ 진(眞)씨

1. 역사연원

1) 백제 8대성 중의 4번째 성씨
2) 신(愼)씨가 진(眞)씨로 됨

2. 지망분포(地望分布)

1) 성씨고략에 의하면 진씨는 상곡군(上谷郡)에 보임
2) 상곡군은 현 하북성 서북부. 회래현(懷來縣) 동남일대

3. 관련지도

4. (참고) 상곡

   (중국 정사 사마천의 사기본기 원문상 탁록在 상곡) 탁록에 상곡이 있었다 그 유명한 치우천자와 제후 소전의 아들 헌원과의 “탁록전투”로 유명한 그 탁록에 상곡이 속하여 있었다는 것이다 (북경대 교재상 지도) 북경대학교 교재상에도 상곡이 탁록지역에 표기되고 있어 윗 사실을 재삼 확인해 준다

(논 점)

(1) 사서에 기록된 백제 8대 성씨가 존재하는 곳은 중국대륙
(2) 사서에 등장하는 백제 장군의 성씨도 중국대륙에는 있어도 반도에는 없다

먼저 소개하는 글은 1981년 11월26일 ~ 27일 양일간 열린 이틀간의 국회 "국사청문회"에서 고 임승국 교수님이 발표하신 국회 속기록 내용중 백제 성씨에 관한 발언 부분입니다

(임승국 교수) “백제 일곱장군의 성씨는 중국에 존재한다” 또 백제 7장군의 성씨만 훑어봐도 사학을 아는 사람은 깜짝 놀랄일이 있어요 왜 그런고 하니 백제에는 본래 8대 성씨가 있는데 중국 25사와 우리 삼국사기는 이렇게 적고 있어요
"백제유 대성팔씨 사씨 해씨 진씨 목씨 국씨 연씨 묘씨(혹 묘씨) 협씨"
"百濟有 大性八氏 沙氏 解氏 眞氏 木氏 國氏 燕氏 (?)씨(或 苗氏) 協氏"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백제 8대성씨가 현재 남북한을 통틀어 단 한 가구도 남지 않았는데 남제서 백제전의 7장군 성씨들은 대부분 유서깊은 8대성씨들이라는 사실이예요   다음은 상기한 고임승국 교수님의 발언내용을 뒷받침 하는 사서의 기록인데 중국정사인 남제서 나오는 기록을 일부 인용하여 소개합니다  

아래 원문을 보면 백제 장군의 이름이 다음과 같다

(1) 沙法名 (사법명)
(2) 贊首流 (찬수류)
(3) 解禮昆 (해례곤)
(4) 木干那 (목간나)

이 성씨들이 백제의 주류 성씨였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얼마나 남아 있는지요  이 자료를 보시는 네티즌 여러분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드시는지 궁금합니다 중국대륙에 흔한 성씨들입니다  아래 자료를 계속 보시길 바랍니다

(백제와 위나라의 전투는 대륙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보여짐) 
(중국 정사인 25사 중)

『남제서(南齊書)』권58 동남이전(東南夷傳) 동이 백제에 나오는 기록입니다

(원문)

是歲 魏虜又發騎數十萬攻百濟 入其界

牟大遣將 沙法名 贊首流 解禮昆 木干那 率衆襲擊虜軍 大破之

(시세 위로우발기수십만공백제 입기계) (모대견장 사법명 찬수류 해례곤 목간나 솔중습격로군 대파지)

(해 설)

① 이 해에 (490년 동성왕 12년)
    위나라 오랑캐가 또다시 기마병 수십만을 동원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그 국경에 들어가니,

② 모대(牟大)가(백제 24대 동성왕)
    장군 사법명(沙法名)·찬수류(贊首流)·해례곤(解禮昆)·목간나(木干那)를 파견하여
    무리를 거느리고 오랑캐군을 기습, 공격하여 그들을 크게 무찔렀다.

① 이 해(是歲):남제(南齊)영명 8년, 490년, 백제동성왕 12년
② 모대:백제 제24대 동성왕(東成王)(479∼501)


(백제 7태수의 위치) (백제 태수의 이름)

- 광양태수 : 고달 → 후에 대방태수가 됨
- 조선태수 : 양무 → 후에 광릉태수가 됨 → 후임 "장색"
- 대방태수 : 고달(前 광양태수)
- 광릉태수 : 양무(前 조선태수)
- 청하태수 : 회매
- 낙랑태수 : 모견
- 성양태수 : 왕무

그런데 이 백제의 성씨 부분을 국내에서 전문적으로 연구한 자료가 없어 (사) 한배달에서 대만대교수인 진첩선씨의 글을 인용하여 “백제 8대 성씨에 대해”라는 자료를 소개하고 있는데 아래와 같습니다 이자료를 참고하시어 백제 8대성씨에 대한 의문을 풀어나가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것을 대륙백제의 흔적이라 한다면 “무어라 하시는 분”들이 많겠지요(^.^)

(한국의 성씨 통계) 한반도에는 백제 성씨가 없다

한국의 성씨 통계를 보면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신구당서나 삼국사기에는 백제의 경우 2백 여개의 성(城)과 76만호(戶)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래자료를 보시면 알겠지만 백제 8대성중 국(國)씨와 진(眞)씨를 제외한 6대 성씨가 한반도에는 없다  무슨이유일까 ? 그나마 남아 있는 국(國)씨와 진(眞)씨 성도 희귀성이다 가구 남아 있지를 않다
왜일까 ?

(성씨관련 순위)(관련사이트 “클릭”)
http://www.shinjongwoo.co.kr/html/area_name.html

위 자료를 보면 한국의 성씨중 100위  예(芮)씨로 1985년 조사에서는 가구수 2,574가구로 274성 중 제100위에 랭크 되어있다 백제의 8성중 단하나의 성씨도 100위 이내에 들어있지 못하다 백제의 주류성씨 였는데 말이다
그나마 8개성중 진(眞)씨가 151위, 국(國)씨가 159위로 두개가 남아있다 산동성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남아있는 백제 8대성은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

(주) 상기사이트에는 안나타나나 다른 사이트에는 연(燕)씨가 104명 있는 것으로 나온다  (제일 마지막 자료 참고)

진씨 1,511명
국씨 978명
연씨 104명

“대륙백제의 흔적”은 아닐까 ?
(백제의 8대 성씨에 대해)
- 출처 : 한배달 1992년 6월호

(주의사항)

한배달은 동자료를 소개하면서 “이글은 대만학자의 글을 번역한 것으로 국내에 백제 8성에 대한 연구가 없어
게재하는바 특히 아전인수격인 논조임을 염두에 두고 읽기 바람“ 이라는 당부사항을 적시 하고 있으므로 감안하시어 보아주시길 당부합니다

(내용요약)

한배달은 결론적 부분에

백제의 8성이 우리나라엔 많지 않지만 지금의 산동성을 중심으로 대만에 더 많은 성씨가 존재한다는 것은
백제의 위치와 더불어 재삼 숙고하여야 할 문제다


라는 지적하고 있다

본문중 특이사항은 다음과 같다

(1) 사(沙)씨는 산동성과 하남성에 나온 2가지가 있다고 소개하고 있으며
(2) 협(協)씨는 음이 려(黎)라고 한 것으로 보아
     혹시 치우천자의 “구려(九黎)”와의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3) 해(解)씨는 산서성 지명을 성씨로 만든 것이라 한다
(4) 진(眞)씨는 원래 신(愼)씨에서 바꾼 것이라 한다.

완)

(보충자료)
(성씨 자료에 나타난 국씨, 진씨, 연씨 인구수)
(출처 : "클릭“)
http://www.anyroot.com/


<진씨(眞氏)>

진씨(眞氏)는 중국(中國) 상곡(上谷)에서 계출(系出)된 성씨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백제 8대 성의 하나로 알려졌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백제(百濟)고이왕(古爾王) 때 내두좌평(內頭佐平)을 지낸 진가(眞 可)라는 사람과
동성왕(東城王) 때 병관좌평(兵官佐平) 에 오른 진로(眞 老), 삼근왕(三斤王) 때의 좌평(佐平) 진남(眞 男),
아신왕(阿莘王) 때의 병관좌평(兵官佐平)에 오른 진무(眞 武), 근초고왕(近肖古王) 때 조정좌평(朝廷佐平) 을 역임한 진정(眞  淨)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신라(新羅) 때도 진공(眞 功) 이 신문왕(神文王) 때 대아찬(大阿 )을 지냈고, 진복(眞 福)은 상대등(上大等)을 지냈다고 한다. 고려 때 와서는 925년(태조 8) 견훤(甄萱)이 진호(眞 號)를 고려에 볼모로 보낸 사실이 문헌(文獻)에 나타나 있다.

진씨(眞氏)의 본관(本貫)은 서산(西山) 단본(單本)이며,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南韓)에 총 292 가구, 1,51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人口(1985년 현재)] 1,511명이 있다.

(국씨(國氏))

국씨(國氏)의 본관은 담양(潭陽)·풍천(豊川)·현풍(玄風)·영양(英陽)·김해(金海)·대명(大明) 등이 문헌에 전해지고 있지만 시조와 연원에 대해서는 미상이다. 국씨는 본래 백제의 8대성(八大姓)인 사(沙)·연(燕)·예(예)·해(解)·진(眞)·국(國)·목(木)·백(백) 중의 하나이다.  역사상의 인물로는 백제의 대신으로 611년(무왕 12) 수(隋)나라에 들어가 공물을 바치고 고구려 정벌을 의논한 국지모(國智牟), 고려 태조 때 원외랑(員外郞)인 국현(國 ) 등이 있는데 오늘날의 국씨와의 관계는 확실하지 않다. 1930년 국세조사 당시 평남 강서군에 담양국씨(潭陽國氏) 4가구와 함남 영흥군에 풍천국씨(豊川國氏) 3가구, 함남 단천군에 전주국씨(全州國氏) 1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人口(1985년 현재)] 978명이 있다.

<연씨(燕氏)>

연씨(燕氏)는 원래 중국(中國) 범양(范陽)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서 주(周)나라 때 공자(孔子)의 제자(弟子)인 연 급(燕 伋)의 후손이 나라 이름을 성(姓)으로 삼은 것이 시초가 되었다.   우리 나라 연씨(燕氏)는 백제(百濟)의 8대성(姓)으로 손꼽혔으며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성왕(聖王) 때 병관좌평(兵官佐平)을 지낸 연 실(燕 實) 등 연씨(燕氏)가 나오지만 시조 및 연원(淵源)은 알 수 없다.

본관(本貫)은 정주(定州) 외에 영평(永平)·전주(全州)·평주(平州 : 평산의 별호)·곡산(谷山)·덕원(德原)·장곡(長谷) 등이 문헌에 나타나 있다.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 정평(定平)·영흥(永興)·이원(利原) 등 이북에 22가구가 있었고 남한에 3가구가 살고 있었으며,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南韓)에 총 26가구, 10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人口(1985년 현재)] 104명이 있다.

-> 백제의 8대 대성이라 하였는데 200여개의 성터와 76만호의 인구중 대부분을 차지하던 8대 성씨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 어디가 백제 본토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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