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후 1세기가 되어서야 앙코르 선조에 의해 문명이 나타났다. 이 나라의 실제 이름은 알려지지않았지만 2세기 중국왕조에 의해 푸난(Funan)으로 불러졌다. 사실 푸난은 언덕을 의미하는 고대 크메르 단어 브남(Bnam; 현대 크메르 Phnom)의 중국식 발음이다. 위치는 메콩강 삼각주(Mekong Delt) 지역과 현대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남부 해안으로 여겨진다.      푸난이 실제 고대 해상로를 아우르는 강력한 해상국가였다는 증거가 있는데 옥에오(Oc Eo)유물에 의하면 옥에오는 현대 베트남 안장성 롱슈엔(Long Xuyen, An Giang)지방에 위치한 푸난 왕국의 중요한 항구였다. 발굴가들은 인도,중국 심지어 로마제국에서부터 서유럽에 이르는 지역의 무역 상품과 생산물인 많은 공예품이 발견하였다.
푸난은 대략 1세기에서 촐라(Chola)왕국에 점령되는 7세기까지 존재하였다.
   
   광범위한 곳에서 온 무역인이었던 푸난인은 지식인들과 강력한 해상나라를 건국했고 몇 백년 고도로 발전한 인도 문명의 문화를 받아들었고  이 것은 그 당시 바다 항해를 하는 인도 무역인들과의 밀접한 접촉결과 이다.  인도 무역인들은 원주민 왕국을 발전을 기여하는 철학과 종교 뿐만 아니라 지식과 사고를 들여왔다. 지배영역 곳곳에 인도 문명의 중요성은 간과될 수 없고 심지어 푸난 신화 그 자체가 근거가 되는데 신화에  '흰두(Hindu) 물의 신 '나가왕'이 세상을 창조하였고 푸난의 기원은 인도 브라민 카운딘야(Brahmin Koundinya)와 소마(Soma)로 불리는 토착 '나가' 공주와 결혼으로 시작한다'고 한다.


부남의 왕들은 '산의 왕 (크메르어 KurungBnam, 산스크리스트어 Parvatabhypala)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고  '산의 왕'이라는 명칭에서 산은 흰두교와 불교 모두의 성산인 수미산(須彌山)을 의미한다. 푸난인에 대해서 크메로(Khmer) 계통이란 설이 있으나 최근 연구의해 오스트로네시아 (Austronesia) 계통의 민족(자바인과 가까운 혈족)으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2세기 말즘 푸난에는 반반(盤盤)이라는 왕이 있었는데 왕 즉위 3년만에 죽자 범사만(范師曼)이 왕위에 올랐다. 양서(梁書)에 제이부남조(諸夷扶南條)에 의하면  범사만왕은 용감하고 지략이 뛰어났으며 열렬한 불교신자였고 막강한 군사력으로 주변 여러 나라를 정복하여 스스로 부남대왕(扶南大王)이라 칭한다. (중략) 주응과 강태는 부남토속(扶南土俗)과 부남이물지(扶南異物誌)라는 견문록을 각각 남겼는데 이 기록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는 물론이고 인도에서 서아시아까지 10여개국의 지리,정치,사회풍속,등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산실되어 현재 존재하지않는다.

[남제서]에 의하면 1세기에 격(激)으로부터 '사귀신자(事鬼神者) 혼전'이 배를 타고 부남지역에 도달하여 그 곳 여왕 유엽을 안로 삼아 부남국을 세웠다고 한다.  인도계가 계속적으로 부남 왕위 계승을 했지만 정확한 계승순서를 알 수 없다. 푸난 왕들은 '-varman'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는데 산스크리트어로 수호자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양서] 임읍전(林邑傳)에는 5세기말 부남의 왕자 범당근순(范當根純)이란 자가 임읍의 왕위를 찬탈했다는 기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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