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역사 닥큐에서는 몇가지 역사적 의문점이 도출되는데 첫번째로 AD 400년 고구려 광개토 태왕이 임나 종발성에 있었던 가야 왜 연합군을 격파한 역사적 사건 이전에 무슨 이유로 대성동 고분의 주인공 가야계 숭신 왕은 왜열도로 이주하는 지에 대해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고,

두번째로는 가야 민족 이동의 주된 원인으로 여기에서는 고구려 군의 가야 침입을 주목하지만 만일 가야 민족 이동을 주도했다고 하는 인물인 응신(應神)이 애초부터 한반도 현지에서 살았던 토박이 가야인이었다고 간주한다면,

동경대 에가미 교수가 주장하는 대륙으로 부터 한반도로 내려와서 가야를 정복하고 왜열로 진출한 북방 기마 민족의 정체는 누구이며 고분 안에 나타나는 부여식 후장과 순장 풍습의 형체와 북방 민족 계열의 거대한 신체를 지닌 왕의 모습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닥규만 본다면 북방 민족은 고구려로만 볼 수 밖에 없지만 고분 안에 피장된 순장 등의 내용물을 검토한다면 이들은 중국 대륙에 있었던 부여인들이었으며 AD 4C 중엽부터 5C 초까지 역사적 시대를 연계하여 고려해 본다면 근초고왕 시절의 대륙 백제인 들이었을 것이다.

즉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온조계(북부여 족) 제 13대 근초고왕은 AD 346년 선왕인 비류계(졸본 부여 족) 제 12대 계왕을 시해하고 정권을 잡게 되는데 여기서 온조계 세력에 밀린 비류계 계왕의 후손들 진정(眞靜)과 응신(應神) 세력이 중국 요서 백제 지역에서 한반도로 AD 350년 경 들어오게 되고 이들 졸본 부여계 세력이 웅진(현 공주)를 중심으로 한반도 남부의 선주 세력인 가야인들을 공격하여 정복하게 되자 일부 가야인들은 이들 비류 백제계 세력에게 항복하여 동화되거나 나머지 이에 항거하는 가야인들은 이들을 피해 왜열도 지역으로 이주하였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 할 것이다.

또한 한반도로 도피해 와 가야 지방을 점거하면서 온조계 근초고왕에게 계속 저항하던 비류 백제계 진정, 응신 지배세력은 제 일차로 AD 368년 근초고왕의 명을 받은 근구수 태자에게 밀려 가야인와 함께 왜열도 큐슈로 도피하고, 제 이차로는  AD 396년 고구려 광개토 태왕에게 패하여 응신 세력이 자신의 본거지 왜열도 근기 지방으로 달아나 AD 405년 나라 지방에서 강원궁을 세우고 야마토 왜(大和倭) 정부를 세우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만 하는 역사적 인물로서 쟁점이 되고 있는 응신(應神, 일본서기 제 15대 천황으로 이름은 호무다로 성씨찬씨록 眞씨의 시조)은 백제 제 12대 계왕의 친손자로서 AD 4C 중엽 아버지 진정(眞靜)과 함께 근초고왕과 근구수 태자에 패하여 대륙에서 한반도로 도피해 온 졸본 부여계 비류 백제인으로서 이 다큐와는 달리 토박이 가야인이 아니라 졸본 부여인이었고 에가미 교수가 애매모호하게 지적한 북방 기마 민족이었던 것이다.

가야인들은 고구려 태왕의 공격이전 수십년 전에 이미 북방 기마 민족으로 표현되는 비류 백제계 진정과 응신 세력의 공격을 먼저 받아 지배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고 일본서기에서는 응신의 아버지인 진정이 아라사등(阿羅斯等)과 동일 인물로서 아라 가야왕으로 나온다.
그래서 AD 400년 종발성 전투에서는 가야와 왜 연합군이 즉 가야인과 야마토 왜로 표현되는 졸본 부여계 비류 백제 정부의 연합 세력이 고구려와 신라의 연합군과 대결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비류 백제계 세력이 대륙에서 한반도로 와서 현지 가야를 정복하여 가야 왕으로서 외래 지배 세력이 되었기 때문에 현지 원주 가야 세력과 겹치게(Overlapping)되어 결과적으로 이 닥큐에서는 응신을 토박이 가야인으로 착각하였고 이들 제4의 가야제국인들이 일본으로 간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금관 가야국에서 초대 김수로 왕처럼 갑자기 외부에서 나타나 귀지설화의 주인공이 되어 의문시 되었던 그리고 현지 가야 지방을 정벌한 에가미 교수의 북방 기마 민족의 정체는 온조계 근초고왕 세력(북부여인)에게 왕권을 빼앗긴 비류계 계왕 세력인  진정과 응신으로 대변되는 대륙 백제인(졸본 부여인)이었으며  AD 350년 경 이들에게 패하여 왜열도 로 이동한 첫번째 가야 세력이 숭신 왕 계열의 가야 민족이라고 추정되며,
AD 396년 경 고구려 광개토 군이 웅진 백제의 응신 비류 세력과 한성 백제의 아신 온조 세력을 침공하였을 때 비류 백제계 당시 응신 왜후왕이 자신의 지배아래 있었던 가야인들 함께 두번째로 왜열도로 이동하게 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고구려 광개토 태왕의 침공으로 인한 왜열도로 도피하여 일본의 최초의 고대국가인 야마토 왜국을 건설한 지배 계층은 한반도 거주 가야인이 아니라 대륙에서 온조계(해모수계 북부여인) 근초고왕에게 쫓겨와 가야 세력을 석권한 비류계(우태, 소서노계 졸본부여인) 백제인이었던 것이다.

                                    잃어버린 한국고대사 연구회
                                                    회장 홍 순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