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進軍合兵薄津口瀕江屯兵忽有鳥廻翔於定方營上使人卜之曰必傷元帥定方懼欲引兵而止庾信謂定方曰豈可以飛鳥之怪違天時也應天順人伐至不仁何不祥之有乃拔神劍擬其鳥割裂而墜於座前於是定方出左涯垂山而陣與之戰百濟軍大敗…

<三國遺事 卷第一 紀異第一 太宗春秋公>

 

…이 떄에 신라군사는 당나라 군사와 연합해 가지고 나루 어귀로 육박하여 강가에 진을 치고 있는데 돌연히 웬 새가 (소)정방의 군영 위로 빙빙 돌므로 사람을 시켜 점을 쳤더니 “반드시 원수님이 부상할 것이외다.” 고 하여 정방이 겁을 먹고 군사를 끌어들여 싸움을 그만 두려고 하였다. 유신이 정방더러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는 새의 요괴스러운 일을 가지고 하늘이 주는 기회를 놓칠 것인가? 하늘과 사람의 의사에 따라 죄악을 정벌하는 이참에 나쁜 조짐이 어디 있을 것인가?” 하고는 곧 신검(神劍)을 뽑아가지고 새를 겨누니 (새가) 찢어져 죽어 소정방의 좌석 앞에 떨어졌다. 이 때 정방이 강 왼편 기슭으로 나와 산 밑에 진을 치고 싸웠더니 백제 군사가 크게 패하였다.…


<삼국유사 권제1 기이 제1 태종 춘추공> 

 

http://myhome.hanafos.com/에서 따옴.

경산 임당동 고분군(慶山 林堂洞 古墳群: 史蹟 第300號) 출토

삼엽문 환두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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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에서 한반도와 그 주변국(중국?일본)에서 출토되는 환두대도(環頭大刀)는 그 연원이 중국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먼저 환두대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刀)와 검(劍)의 차이를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도(刀)라는 것은 날이 곧거나 약간 휘어져 있는 베는 목적으로 쓰이는 외날 칼을 의미하며 검(劍)이라는 것은 날이 곧은 형태의 찌르는 목적으로 쓰이는 양날 칼을 의미한다. 환두대도(環頭大刀)라 함은 칼자루 손잡이에 둥근 고리 장식이 달려 있는 1m~1m 50cm 길이의 외날칼(刀)을 말하며 대개는 한국의 경우 기원후 4C~기원후 7C까지 활발하게 쓰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칼럼에서는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환두대도의 기원, 형식 및 환두대도의 의미(정치?사회), 기능(예도?실용) 등을 살펴보고자 하며 특히 환두대도와 일반 도검(刀劍)과의 차이를 집중적으로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이 칼럼에서 환두대도가 사용된 시기적 범위는 기원전 1C에서 기원후 7C로 한정 짓도록 하며 그 이후 시기는 일반 도검으로 규정하도록 하겠다.) 

 

                                    http://redhothobbies.tripod.com/에서 따옴.

                                                           서양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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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검의 발달사적 측면에서 볼 때 초기 형태 면에서는 검이 압도적으로 쓰였으나 후기에 갈수록 도가 더 많이 쓰였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것은 곧 전쟁의 양상이 검을 사용해 찌르는 것에서 도를 사용해 베는 것으로 변화해 나갔음을 의미한다. 서양의 경우 검이 더 많이 사용된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으나, 서양의 검은 베는 용도보다는 찌르거나 브로드소드(broad sword: 검신의 날 부분의 폭이 넓은 검: 칼럼지기 註)라 하여 머리(투구 부분)를 찍는 용도로 사용됐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맥락이 틀리다고 볼 수 있다. 서양에서 도(刀: sabre)가 활발히 쓰인 때는 십자군 이후 이슬람 세력의 영향으로 화약이 도입되고 총포가 쓰이면서 무거운 무기 보다는 가볍고 날렵한 무기가 선호되면서 부터였다. (알렉산드르 뒤마의 삼총사를 참고하기 바람)        

 

                                         http://www.toonhound.com/에서 따옴.

                                                              브로드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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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두대도가 중국에서 쓰인 것은 전국시대(戰國時代)부터라고 전해진다. 중국 사상(思想)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춘추전국시대는 난세이자 군웅할거의 시대였으며 능력 본위의 인물이 발탁되는 실력 위주의 사회였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춘추시대는 서주(西周)가 있던 BC 770~BC 453의 기간을 말하며 형식적이나마 주 왕조를 받들고 지방 세력 스스로를 후(侯)로 칭하던 시기였으며 명칭은 공자의 저서 춘추에서 비롯되었다. 전국시대는 한(漢) 나라의 유향(劉向)이 편찬한 전국책(戰國策)에서 유래되었고 각 지방 세력이 스스로 왕(王)을 칭하기도 하였으며 BC 453~BC 221까지의 시기를 무대로 하고 있다. 춘추시대 전쟁 양상의 큰 특징은 철제 무기를 사용한다는 점과 전차가 주요 공격 수단이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전국시대에 들어 큰 변화를 겪는데 전차 위주의 공격에서 중무장 보병으로의 변혁이 그것이었다. 즉 전차를 타고 창과 활로 싸우던 것이 보병들이 맞붙어 싸우는 것으로 바뀐 것이었다. 이후의 전쟁 양상은 원거리 공격 무기 (투창, 활)에서 근거리 공격 무기(창, 칼)로 변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http://protein.biochem.queensu.ca/에서 따옴.

                                                          서한의 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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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전국시대에 등장한 환두대도는 환수도(環首刀)라고 불렸으며 그 특징은 손잡이와 날 사이에 칼코등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이후 한반도에서 출토되는 환두대도의 기본적 형식과 같다. 칼코등의 기본적 용도는 적군과 교전 시 손목을 방어한다는 것과 칼날과 손잡이 부분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러나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 칼코등이 보이는 것은 매우 드물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환두대도가 장식용이나 권위 상징물로만 쓰였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칼코등이 기원후 7C부터 쓰였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그것은 부여 부소산성에서 출토된 것으로 확인된다.   

 

http://www.kendo.com.hk/에서 따옴.

고대 중국의 환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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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은 환두대도의 기원이 중국 전국시대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으나 환두의 경우 그 형식은 이미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Scytho -Siberian Cultural Sphere)에서 보이고 있다. 또 중국의 전국시대는 북방 종족의 문물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기 때문에 그 기원이 곧 중국에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환두대도는 처음 환두검에서 대도로 발전한 것으로 여겨진다.


        환두대도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대략 5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는데 소환두대도, 삼엽문환두대도(삼엽환두대도), 삼루문환두대도(삼루대도), 용봉문환두대도, 규두대도 등이다.


        소환두대도(素環頭大刀)는 민고리자루칼이라고도 하며 가장 간단하고 단순한 형태이다. 즉 고리가 자루에 달려 있으며 고리 안에는 아무런 장식도 달려 있지 않다. 북한 사회과학원에서는 고리에 끈(또는 술)을 달아 풀어지지 않도록 손목에 감아 사용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고리에 오색 끈(또는 술)을 달아 화려하게 보이도록 장식을 했다고도 한다. 기원후 7C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에는 고구려 사신으로 추정되는 두 명의 사절이 보이는데 두 명 모두 환두대도를 차고 있으며 칼코등이 보인다.     

 

http://www.orientarch.uni-halle.de/에서 따옴.

고구려 추정 사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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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엽문환두대도(삼엽환두대도)는 고리 자루 안에 세 잎사귀 모양의 조각이 들어간 것을 지칭하며 이런 종류의 환두대도는 중국 집안 지역과 북한 그리고 한반도 중남부에서 출토되어 발견된 예가 있다. 특이한 점은 고구려의 경우 상당히 실용적인 것을 강조한 것으로 생각되며 이것은 장식대도가 한 점도 출토되지 않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

 

        삼루문환두대도(三累文環頭大刀, 삼루대도三累大刀)는 고리자루 세 개가 맞물려 品자 모양을 하고 있으며 이것은 한반도 남부 쪽의 신라 가야 백제 문화권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래서 추정하는 사람에 따라 이러한 유형의 환두대도는 장식적인 측면이 강해 지방 귀족 세력에게 내려준 위세품의 일종으로 보기도 한다.

 

                                    http://myhome.hanafos.com/에서 따옴.

                      부산 복천동 고분군 10, 11호분 주곽 출토 삼엽(左) 및 삼루문 환두(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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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봉문환두대도(龍鳳文環頭大刀)는 칼자루 고리 장식에 용이나 봉을 조각한 것으로 용과 봉이 함께 조각되기도 하고 각각 따로 조각되기도 한다. 용 한 마리만 조각되었을 때는 단룡문환두대도 봉 한 마리만 조각되었을 때는 단봉문환두대도라고 지칭한다. 그리고 용이 두 마리 일 때는 쌍룡문 봉이 두 마리일 때는 쌍봉문환두대도라고 한다. 이 용봉문환두대도는 피장자의 권위가 가장 큰 것으로 해석되는 유물이며 대표적인 것으로는 충남 공주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단룡문환두대도가 있다.  

 

http://bingoimage.naver.com/에서 따옴.

공주 무령왕릉 출토 단룡문환두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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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두대도는 칼자루가 각이 진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둥그런 구멍이 간단하게 나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규두대도는 일본 남부에서 특히 큐슈를 중심으로 다수가 출토되었으며 한반도에서는 전라남도 나주를 중심으로 출토되었다. 그래서 규두대도는 마한(馬韓) 세력의 위세품(威勢品: prestige goods)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한검(漢劍: 환수검[環首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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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도깨비가 새겨진 귀면문환두대도가 있는데 이것은 벽사의 상징으로 생각되며 특수한 형태로 여겨지고 있다.

 

 

http://www.nonsanmuseum.net/에서 따옴.

한국과 일본의 환두,규두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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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이러한 환두대도의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정치적 의미로는 중앙 권력자가 지방 지배 계급에 내린 권위를 인정해준다는 신표로서의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사회적으로 그것(권위)이 그 지역의 피지배 계층에게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하는 물질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왜냐하면 무덤은 죽은 자가 속해있던 일족이 살아있음으로 인해 만들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경제적으로는 금속(철, 금, 은), 보석, 광물 등을 동원해 칼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경제 규모를 가진 사람이 존재했다는 것과 문화적으로는 금속 입사 기법이나 용과 봉, 도깨비, 나뭇잎 무늬 등을 활용한 집단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의미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규두대도 일본 군마현 후지오카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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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덧붙여 환두대도의 기능을 알아보도록 하자. 크게 두 가지로 나누자면 환두대도는 실용 무기로서의 기능과 예도?제의적 기능이 있을 수 있는데, 실용 무기로서의 기능은 전장에서 실제로 적들과 맞붙어 적을 베고 자신을 방어하는 기능을 생각할 수 있다. 이 경우 출토된 환두대도에서 칼코등이 없는 것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쓰였지만 매장하면서 넣지 않은 경우와 실제로도 보조 무기로만 사용되었기 때문에 칼코등을 쓰지 않았을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칼코등이 실제 유물로 출토된 것은 충남 부여 부소산성의 기원후 7C 유물이었으며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도 기원후 7C경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기원후 7C 이후에나 등장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웃인 일본에서는 군마 현의 경우 기원후 6C 환두대도에도 칼코등이 남아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도 최소한 기원후 6C 이전부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 예도로서의 기능을 살펴본다면 이것은 그 자체가 매납 유물이기 때문에 굳이 칼코등을 달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칼코등은 분리가 되기 때문에 여러 번 재활용할 여지가 충분하고 실제로도 조선시대에 쓰였던 예도(온양민속박물관 소장)에는 칼코등 장식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피장자가 전사로서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하며 함께 묻힌 환두대도가 예(禮)를 갖춰 피장자의 권위를 높이는 기능을 하였음도 생각할 수 있다.

 

http://home.kimo.com.tw/에서 따옴.

한대 환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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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1C에서 기원후 7C까지 시기의 환두대도와 그 이후 시기의 일반 도검류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칼코등의 유무에 있는데 이것은 칼코등이 손목을 보호하는 기능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환두대도에서 칼코등이 없었던 것을 기술이 미발달 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이미 그 이전 단계에 있던 청동검이나 석검에서는 칼코등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창원 다호리 유적과 같은 기원전 1C경의 삼국시대 전기 (원삼국시대)의 철기 유적에서도 칼코등은 존재하며 아직도 환두대도에서만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충분히 규명되지 않은 상황이다.

 

                        http://www.knifegallery.co.kr/에서 따옴.사인검 복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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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두대도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 환두대도는 환도로 발전하였고 검류는 패검(佩劍)으로 발전하였는데 사인검(四寅劍)이나 칠성검(七星劍) 등이 그것이다.


        정리하자면 환두대도는 기본적으로 전사들의 무기였으며 그들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부장되었다. 또한 환두대도는 중앙귀족세력이 지방 군사귀족 세력을 인정하거나 달래기 위해 내려준 하사 공물의 성격을 지니며 그 형식에 따라 차등적인 위세를 보여주기도 한다.             

 

[참고문헌]

 

● 국방군사연구소(1994), 韓國武器發達史, 第1章 古代의 武器, 第2節 三國時代의

     武器, p.63~p.175, 서울: 국방군사연구소.

 

● 盧泰天 著(2000), 韓國古代冶金技術史硏究, 서울:학연문화사.

 

● 金性泰(2000), 三國時代 刀劍의 硏究」,『仁荷史學第8輯, p.3~p.103,

    2000년 12월, 仁荷歷史學會.

 

● 具滋奉(1995),「環頭大刀의 分類와 名稱에 관한 考察」『嶺南史學』17, p.69~95,

    1995년 12월, 嶺南考古學會.

 

●李漢祥(2004), 「三國時代 環頭大刀의 制作과 所有方式」,『한국고대사연구』 36,

     p.257~286, 2004년 12월, 한국고대사학회.

http://cfs3.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JGdU5AZnMz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AvMTEuanBn&filename=1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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