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한민족 기원지/ 바이칼호 주민들

우리와 DNA 비슷…현지인들 “고려 사람들 벼농사 지었다”

주채혁 강원대 사학과 교수

주간조선 2002년 12월19일


우리 민족 기원설은 크게 북방기원설과 남방기원설 그리고 남북방혼융기원설로 나뉜다. 이 중 다수설은 북방기원설. 이 학설은 다시 스키토-시베리아기원설과 오르도스기원설로 나눌 수 있다. 몽골학계도 마찬가지다. 스키토-시베리아기원설은 천산북로의 스텝-타이가로드를 위주로 이루어진 민족의 이동을 전제로 한 것이고, 오르도스설은 그 지역을 넘어서 몽골고원과 고비사막의 연장선상에 있는 황하상류의 만곡부를 중심지로 추정한 것이다.

몽골고원과 시베리아의 물은 대부분 북류해 북극해로 흘러들고 일부는 남류 또는 북동류하면서 태평양으로 흘러든다. 하류로 갈수록 습도가 높아져서 혹한기만 피한다면 생산이 용이하고 생존가능성이 높아진다. 한여름 알타이산의 기온이 영상 30~40도에 이르고 일조시간이 18시간이나 된다. 몽골고원 북쪽으로 눈을 돌리는 한민족의 바이칼호 기원설은 이러한 점을 기반으로 삼는다. 최근의 항공사진은 바이칼호 언저리의 논농사 가능성을 시사해주고 있다. 부이르호 언저리의 주민들은 “고올리(고려) 사람들이 벼농사를 지었다”고 말하고 있다. 수로의 흔적은 아직도 뚜렷하다. 바다처럼 드넓은 고올리 농장터도 있다. 그런가 하면 알타이산맥과 항가이산맥지대에서 벼농사를 지었다는 기록도 있다.  


바이칼 호수가 있는 러시아는 ‘모피의 나라’이다. 그리고 그 모피의 주된 공급지는 시베리아다. 그리고 조선, 부여, 고구려, 거란, 발해, 여진과 몽골은 시베리아에 역사적 태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민족의 뿌리를 밝히려면 ‘모피(fur)의 길’ 추적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몽골의 수미야바아타르 교수는 부이르호 남쪽에 있는 고올리칸 훈촐로의 상이 동명성왕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올리족과 고리(槁離; 고려) 그리고 바이칼호 올콘섬을 시조지로 하는 코리족은 호수 동쪽인 눈강상류-할힝골(훌룬부이르) 언저리를 근거지로 삼았던 것 같다. 몽골에선 오래전부터 이들이 같은 계통이라는 견해가 있어왔다. 이에 관한 분석이 이뤄진 것은 1990년대 중반의 일이다. SBS-TV의 ‘몽골리안 루트를 가다’ 제작팀은 데옥시리보핵산(DNA) 검사로 이를 실증했으며 최근 서울대 의대의 이홍규 교수는 이를 좀 더 발전시켜 총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재검증해내고 있다.

DNA방식은 구미의 언어·인류학자들이 추정하고 있던 퉁구스족의 기원지 알타이~바이칼 사이의 사얀산맥 소욘(鮮)족에 관한 연구에도 적용됐다. 그 결과가 2001년 졔례ㅇ코와 마뺘르추크가 쓴 ‘아메리카 원주민의 기원지에 관한 연구’라는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아메리카원주민의 기원지가 사얀산 일대임을 실증하고 있다.

러시아쪽의 연구도 있다. 모스크바대학의 러시아과학원 일반유전학연구소장 자하로프 교수는 데옥시리보핵산 검사 결과 아메리카 원주민과 밀접하게 직관돼 있는 것으로 밝혀진 우리 민족 또한 이 지역에 기원을 두고 있으리라는 가정하에 한국인과 소욘족의 혈연적 관계규명을 위한 검사에 착수했다.



‘소욘’은 산이름에서, ‘퉁구스’는 그 산에서 흘러나오는 강이름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바이칼호 지대라는 개활지에 진출하려면 상당한 힘이 축적돼야 한다. 이 지역은 해발 4000여미터가 넘는 많은 고산지대로 형성되어 있어 외부의 침입을 받지 않을 수 있었고, 수량도 풍족하여 드넓은 땅을 보유해 자급자족할 수 있었다. 학자들은 이 지역에서 힘을 비축하고 인구 수를 늘린 뒤, 바이칼 지역으로 진출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리랑 지명 분포 지역

알타이(Altai) 산맥 기준으로 알타이 서부와 알타이 동부로 나누어진다.

알타이 동부에 대흥령 산맥 너머 오르도스가 있다.

청동기 유물 집중 지역

 


●아메리카 원주민 기원지도 바이칼 유역

필자는 메이원핑(米文平)이 1980년 초에 발견한 선비족의 석각축문 소재지 ‘가셴둥’이 있는 대흥안령 북부의 Sayan(대선비)산이 ‘이르쿠츠크 북쪽에서 퉁구스하 남쪽 사이에 있다’는 정겸(丁謙)의 기록을 따라 2001년 8월에 현지를 답사, 이를 실증한 바 있다. 그리고 1999년 8월에 대흥안령 북부 오룬춘 기(旗)를 답사하면서 선(鮮)이 순록의 겨울주식인 이끼, 즉 선(蘚)이 나는 산임을 ‘시경(詩經)에 관한 모시주소(毛詩注疏)’ 권23을 통해 입증했다. 또 조선(朝鮮)의 ‘조’자는 ‘아침’을 뜻하는 글자가 아니고 ‘찾음’을 뜻하는 글자임은 흥안령 선비족 기원지와 길림성 조선족 자치구를 현지 조사해 확인했다. 또 ‘중국어사전’을 참고해 ‘조선’이 이끼(蘚)가 나는 새 땅을 찾아다니는 ‘순록 유목민’을 의미하는 시베리아 원주민의 토속어란 사실도 밝혀보았다. 이른바 ‘조선 순록유목민설’이 되는 셈이다.

이끼는 응달에 많이 나고 습기가 많을수록 잘 자라므로 조선겨레들은 서시베리아쪽에서 산지를 따라 태평양이 있는 동쪽으로 ‘이끼의 길’을 찾아 이주해 왔으리라는 추론도 있다. 아울러 몽골의 맥(貊) 고올리 기원설을 선보이며 맥이 ‘Ussurian Racoon Dog’이라는 학명을 갖는 너구리임을 훌룬부이르대학 생물학과의 황학문 교수와 함께 대흥안령 현지 조사를 통해 입증했다. 또 최남선 선생의 ‘불함문화론’에 나오는 불함(不咸)은 ‘밝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붉음’을 뜻하는 것임을 시베리아-몽골-만주 현지 연구를 통해 정리했다.



현지 원주민들에게는 타이가의 자작나무와 물가의 버드나무가 신앙의 대상이다. 버드나무 중에도 붉은 가지를 가진 버드나무가 특히 그렇다. 현지 나나이족 언어로 버드나무를 푸르칸(purkan)이라 한다. 이는 그대로 burqan(不咸: 하느님)으로 적을 수 있다. 만주에는 ‘보드마마’굿이라는 무당굿 메뉴가 있는데 이는 ‘버들어머니’굿과 같은 것으로 ‘버들꽃’을 의미하는 주몽의 어머니 하백녀 유화(柳花)에 대한 모태회귀신앙과 접맥된다는 논문이 1993년에 조선족 동포 최희수 교수에 의해 발표된 바 있다.

‘길림성야생경제식물지’(1961년)에 보면 조선버드나무(朝鮮柳)의 별칭이 붉은 버드나무(紅柳)다. 물가에서 자라는 버드나무는 분포밀도로 보아 전 몽골리안루트-스텝로드에 걸쳐 퍼졌을 가능성이 있다.

‘박혁거세’란 이름도 ‘붉을 혁(赫)’자를 사용해 ‘혁거세’라 한 것이나 ‘弗矩內’라 이두식으로 음독한 것으로 보아 ‘밝음’이기보다는 ‘붉음’을 상징색으로 하는 제사장 종족을 지칭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올 유월 우리의 잠든 영혼을 강타한 ‘붉은 악마’ 신드롬을, 적어도 이 정도의 역사적 안목은 가지고 천착해 봐야 할 것 같다.

저명한 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총,균,쇠’라는 불후의 명저에서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대륙이 남북 축으로 돼 있는 데 대해 유라시아 대륙은 동서 축으로 퍼져 등온대(等溫帶)를 이루기 때문에 사람과 기술의 이전이 용이했다”며 “따라서 유라시아 대륙인이 다른 대륙을 지배하는 주체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필자는 이에 다시 몽골리안 루트로 접맥되는 유목민의 기동성이 가세하는 중심축을 이루는 곳이 유라시아 대륙임을 강조한다. 더구나 야생식물의 작물화와 야생동물의 가축화가 맨먼저 가장 다양하고 풍부하게 이루어진 곳이 서아시아다.



●“유라시아인, 이동 쉬워 다른 대륙 지배”



유라시아의 거대한 섬이라 할 중국은 히말라야산맥-천산산맥 등과 타크라마칸사막 등으로 그 서부와 북부가 가로막혀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고립되었던 데에 대해, 칭기즈칸의 안방처럼 스텝과 타이가로 탁 트인 천산북로-스텝로드는 사람과 기술의 이동이 자유로워 그 언저리들에 또 다른 선진 문화권을 이룰 수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 배경 위에서 조악한 유목적 생산환경에 도전·응전하며 적응해 오는 역사를 펼치다 보니 그 부산물로 뛰어난 군사력이 생겨나서 북방민족이 중원의 안보를 담보하는 역할을 해내며 농업생산 환경을 보장하는 정치적 경영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베이징은 바로 이런 스텝로드와 중원농경지대의 농산물 집산지. 한반도와 만주세력이 되새김질해 키워낸 수렵-유목 민족들의 중원 경영역량이 발산돼 나오는 길이 만나는 곳이다. 실로 북방민족의 중원 정복왕조 창업 및 수성 능력은 흑룡강 북쪽으로 만주보다 훨씬 더 드넓은 대만주로 이어지는 거대하고 비옥한 지역을 기반 삼아 스텝로드로부터 주입되는 수준 높은 인력과 물력을 포용해 생겨난 것이라 하겠다.

여기서 건조지대란 고원지대라 바람을 많이 맞아 습기가 적어진 스텝-준 사막지대를 주로 일컫는데 그런 생태환경에서 빚어진 인간들의 한 부류가 북방민족이고 그들이 한민족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들은 북유럽에서 티베트고원으로 이어지는 지대에도 진출하고, 북극해를 건너 툰드라-타이가-스텝으로 이루어진 북서부 아메리카에도 진출해 간 것이었다.



(주채혁 강원대 사학과 교수)


주간조선 2002년 12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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