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 이건욱 연구원의 논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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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치 샤머니즘 고찰
이건욱
〔요약〕
샤머니즘은 시베리아 제 민족들의 전통적 종교관이다. 샤머니즘은 그 안에 그 민족의 역사를 통해 면면이 내려온 정신·물질 문화를 담고 있다. 그래서 샤머니즘에 대한 연구는 시베리아 민족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연구 테마이다.
본 원고는 시베리아에 살고 있는 여러 민족 중 오로치인들의 샤머니즘을 연구하였다. 이들의 샤머니즘 전통은 이웃 민족과의 교류를 통해 집적된 것으로서 오로치 샤머니즘에 대한 연구는 주변 여러 민족들과의 비교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본문에서는 오로치 샤머니즘이라는 큰 주제 아래에 샤먼의 입무, 샤먼의 장비들, 제의 장소와 샤먼의 나무 '뚜', 샤먼의 의례 과정에 대해 살펴보았다. 비록 오로치 샤머니즘의 심오한 의미와 역할들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최신자료(1988년부터 1992까지의 조사)를 통해 현재 오로치의 샤머니즘에 대한 상황까지 살필 수 있었던 데에 의의를 둔다.
들어가는 말
1. 연구 배경
한국문화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시베리아의 제 민족문화는 항상 우리의 원류로 추정되어 왔다. 하지만 시베리아의 정치적인 상황으로 쉽게 접근할 수 없었고 막상 시베리아 지역이 우리에게 문호를 열었지만 원주민 수의 감소와 현지 언어 전공자의 부재로 인해 제대로 된 연구 보고서의 양은 너무나 적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시베리아 샤머니즘과 우리 민족 무속의 연관성을 찾고자 하지만 제대로 된 번역서도 없는 처지에서 그저 여러 가지 가설만이 난무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본 고에서는 한국무속학회 5호에 실렸던 '투바 공화국의 샤머니즘 고찰'에 이어서 오로치 족의 문화, 특히 샤머니즘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무속문화와의 비교 연구 기초 자료를 제공하고자 한다. 본고는 1999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판된 '만주지역 민족의 민속( )'의 두 번째 시리즈인 베레즈니쯔끼( )의 '오로치의 신화와 신앙( )'에서 발췌하여 번역, 편집한 원고이다.
2. 오로치 개관
오로치는 퉁구스-만주어를 사용하는 소수 민족이며 인구는 공식적으로 880여명이다. 하지만 필자(베레즈니쯔끼)가 1988년∼1992년에 직접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467여명에 불과하였다. 대다수의 오로치인들은 극동지역인 하바롭스끄 지역의 로쏘신, 자베트이 일리치, 마이스끼, 인노겐쩨예프 마을에 주거한다. 이외에 바비노와 바닌스크 지역의 다따, 우씨싸-오로츠스까야, 아꾸르, 뚤루취, 께나다 마을과 꼼소몰스크-아무르, 꼼소몰스크 지역의 노보예 옴미 마을, 울치스크 지역의 쏠론차, 침메르마놉, 깔린놉보크, 두다 연해주의 끄라스느이 야르와 악주 마을에 정착해서 살고 있다.
오로치족이 서구에 알려진 것은 프랑스 탐험가 J.F. 라뻬루즈에 의해서이다. 그는 1787년 유럽인들 중 처음으로 타타르 해협을 항해하던 중 자신들을 '오로차( )'라 부르는 민족을 만났다.
오로치인들의 기원은 아무르강 유역과 사할린에 사는 민족들의 기원문제와 마찬가지로 단정지을 수가 없다. 최근에는 오로치인들의 기원을 복합(나나이, 울치, 네기달, 우데게이인들과 섞였다는) 기원설과 특히 나나이-울치의 요소가 좀 더 강하다는 기원설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결국 이러한 복잡한 민족기원은 오로치의 다민족적인 종교 관념과 생활 습관 등을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오로치인들은 크지 않은 씨족집단이 어울려 살고 있다. 오로치인들의 주 경제 생활은 채집, 해수류 포획, 사냥과 어업이다. 여름에는 물고기(연어, 송어, 곤들매기 등)를 잡으며 '볼로졔( )'에서 산다. 겨울에는 모피를 얻을 수 있는 것과 유제류(有蹄類) 동물을 잡을 수 있는 강 상류로 간다.
겨울에는 나무로 만든 반쯤 땅에 묻힌 집에서 산다. 각 씨족들은 자신들의 경제 생활권과 묘지를 가진다. 가부장적인 사회로 경험 많은 노인에게 절대적인 권위가 있어서 이들을 중심으로 씨족의 풍습이 엄격하게 이어진다. 이들은 인간이란 주변 생태환경의 한 분자이기 때문에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하며, 자연을 파괴하고 무지한 동물남획을 하게 되면 자연 정령들로부터 벌을 받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따라서 생업과 관련된 풍습에서 오로치의 샤머니즘이 발전하였다고도 할 수 있다. 오로치의 샤머니즘은 이웃 민족들의 샤머니즘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전 속도가 느린 편이었다. 19세기 초부터 러시아, 우크라이나, 백러시아에서 이주민들이 들어오면서 오로치인들의 삶에 다른 민족의 문화요소가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상인들이 타이가에서 모피동물들을 몰살하고, 강에 서식하는 물고기를 그물로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타타르 해협주변은 생명이 없는 죽은 지역이 되고 말았다. 이주민들이 저지른 생태 문화적 환경의 파괴로 인해 오로치인들은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게 되어 결국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이러한 삶의 변화는 정신세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정교회 선교사들의 적극적인 포교활동으로 대부분의 오로치인들이 세례를 받았으며, 결국 오로치인들의 전통적인 삶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게다가 소비에트 시절에는 협동농장에서 일을 하고, 획일화된 학교 교육 등으로 민족 정체성을 점점 잃어갔다. 90년대에는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시베리아 출신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오로치인들의 전통문화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이다.
오로치 샤머니즘
1. 입무
오로치 샤먼은 부족사회 안에서 활동을 한다. 각 부족마다 한 명의 강한 샤먼과 그를 돕는 몇 명의 약한 샤먼이 있다. 샤먼은 남·녀 할 것 없이 누구나 될 수 있다. 샤먼은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선한 편이다. 샤먼이 되려는 징조는 주로 18∼20세에 나타난다.
격한 감정의 소유자나 정신병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샤먼이 되기 쉽다. 또한 예술적 재능이 남달리 뛰어나거나, 자기 암시를 논리 정연하게 하는 사람도 그러하다. 이러한 사람들은 최근에 죽은 샤먼의 수호 정령의 도움을 받아 무업의 길로 부름을 받는다. 꿈속에서 정령의 등장은 강력한 신경의 긴장을 불러일으키며, 결국 이 사람은 병이 난다. 며칠이 지나면 사람들이 그를 가장 부족의 가장 강력한 샤먼에게 데리고 간다.
밤새도록 수 차례 치유의례를 받게 되지만, 무병일 경우에는 어떠한 차도도 없으며 오히려 발작만 더 심해진다. 이 발작 증세는 몇 달 동안 지속되기도 한다. 이때 강한 샤먼은 환자를 도와줄 보조 정령들과 수호 정령들을 '구해( )'주게 된다. 그리고 나서 입무 의례가 행해진다. 장차 샤먼이 될 후보에게 그를 도와줄 정령들이 그려진 옷을 입히고 바닥에 앉힌다. 이러한 상태에서 샤먼의 후보는 예전과 다른 정신상태가 될 때까지 앉아있어야 한다.
그리고 소위 다른 정신상태로 전이가 되면 그는 갑자기 북을 잡게 되며, 샤먼이 의례를 행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입무 의례를 받았다고 해서 누구나 샤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본인의 강력한 의지로 샤먼이 되기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는 달리 성적인 간택을 받아서도 샤먼이 될 수 있다. 반대의 성(性)을 가진 영혼(일반적으로 최근에 죽은 샤먼의 수호 정령)과 미래의 샤먼은 꿈속에서 사랑에 빠지고 성행위를 나눈다. 그 상대의 영혼은 미래 샤먼의 수호 정령이 되며 또한 그에게 도움을 주게 될 다른 정령들을 내려준다. 이러한 성적 결합에 의한 샤먼의 선택은 나나이 족에게서 자주 보여진다.
2. 샤먼의 계급과 의례
오로치 샤먼은 크게 두 개의 계층으로 나뉘어진다. 각 부족마다 두세 명의 '작고 약한' 샤먼(니티 싸마니, )이 있다. 이들 작은 샤먼들은 아픈 사람을 고치기도 하는 등 경험과 실력 면에서 그리 떨어지지는 않지만 부족에서 큰 권위를 갖지는 못한다. 이들은 부족에 한 명밖에 없는 큰 샤먼이 의례를 행할 때 시중을 드는 역할을 한다. 오직 큰 무당(싹드이 싸마니, )만이 '우니( )', '하냐바( )' 또는 '하냘라( )'와 같은 의례를 행하며, 태양과 달로의 여행과 죽은 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물론 샤먼의 기본 능력 중의 하나는 정령들과의 접촉이다. 특히 보호정령의 도움으로 악령들과 싸우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일이다. 때로는 악령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악령을 속이거나 깜짝 놀라게 하며 죽이기까지 한다. 수호정령은 샤먼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중요한 결정을 내려주기도 한다.
샤먼이 정령들과 접신을 하면 신체적·정신적으로 많은 긴장을 하게 되어 체력적으로 에너지의 소모가 크다. 따라서 정령들의 도움으로 얼마나 빨리 엑스타시에 빠지느냐는 샤먼의 내공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의례 당일 저녁부터 샤먼은 엑스타시에 빠지기 위해 잠도 자지 않고 금식하며 정신 집중에 몰입한다. 의례는 보통 밤에 행해진다. 의례가 행해질 무렵이 되면 주위 사람들은 샤먼과 샤먼의 수호 정령에 대해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다.
샤먼은 바닷물을 마시고 '바굴닉( , 철쭉의 일종)'을 태운 연기를 온몸으로 흡입하며, '바굴닉'의 뿌리를 씹으며 정령과 접촉하기 위한 상태로 빠져든다. '바굴닉'은 휘발성 정유(精油)가 있으며, 마약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가수면 상태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면 샤먼은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을 의례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준다. 샤먼은 두 팔을 구부렸다 폈다 하며 나는 시늉을 하면서, 엄청난 힘으로 멀리 떨어진 물건도 한번에 달려가 가볍게 집어온다. 여느 샤먼은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자신을 향해 총을 쏘라고 하기도 한다.
후퉁까라는 샤먼은 까마귀로 변신하였으며,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그의 등에 있는 몽고반점 때문에 어떠한 고통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이미 태어난 아이를 다시 어머니의 뱃속에 넣으려는 듯한 행동으로 어린이의 영혼을 강력한 힘으로 붙잡아서 여자들 몸 속에 다시 넣는 것도 보여주었다. 샤먼은 의례를 행하면서 악한 샤먼을 죽이기도 한다. 때때로 오로치 샤먼은 하늘을 날아 아무르 강을 건너 나나이 족의 악한 샤먼들과 싸움을 하러 가기도 한다.
3. 샤먼의 장비와 제단
1) 샤먼의 장비
샤먼이 정령과 접촉하는 데 있어서 그가 입는 옷과 기타 장비들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일련의 도구들은 샤먼의 능력에 따라 부족 노인들이 만들어 준다. 일반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의례를 행할 때에 샤먼의 장비를 빌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작은 샤먼들은 자신들의 북과 북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의례를 행할 시에는 평상복을 입으며, '일라우( )'라는 작은 나무 조각들을 옷에 단다. 때때로 '씨싸( )'라는 샤먼의 혁대를 매기도 한다. 큰 샤먼의 경우 무복은 몇 종류로 나뉘며, 보통 '하냐바'와 '우니'를 행하며 제물을 바칠 때 입는 옷 등이다.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 샤먼의 무복은 크게 짐승과 새의 형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곰이나 사슴과 같은 짐승 모양의 옷이 천상계라는 개념이 생긴 후, 나타난 새 모양보다는 더 오래된 스타일이라는 게 중론이다. 오로치 샤먼의 무복은 새 모양이다. 하지만 무복을 제외한 다른 소품은 짐승 스타일이다. 예를 들어 북채의 등 쪽(안 때리는 쪽)에는 곰이나 호랑이가 그려져 있으며, 지팡이의 밑 부분은 곰 발바닥이거나 사슴 발굽 모양이다.
샤먼의 복장의 주요 구성요소로는 모자, 망토, 치마, 가슴가리개, 덧소매, 정강이에 대는 것, 신발 등이다. 하박(下膊)과 무릎, 복사뼈에는 '일라우' 다발을 매며, 모자 대신 '일라우'가 달린 관을 쓰기도 한다. 샤먼이 복장 일체를 다 갖춰 입은 모습은 샤먼에게 도움을 주는 정령들의 모습이라고 여긴다.
샤먼의 모자는 흔히 보는 모자와 비슷하게 생겼다. '우니'를 행할 때에는 머리장식으로 특별히 만든 '우니 아이우( )'를 쓴다. 이것은 영양 가죽을 뱀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머리에 쓰기 쉬운 띠로서 위쪽이 열 십자로 매어져 있다. '우니 아이우'의 윗부분에는 사슴, 토끼 등의 모양으로 새겨진 조각이 올려져 있다. '하냐바' 때 쓰는 것과 비슷하지만 짐승 대신 새의 조각이 올려져 있다.
샤먼의 망토(쩨가 싸마니, )는 평소 때 입는 망토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우니'를 행할 때는 중국 비단으로 만든 망토를 걸치기도 한다. 망토의 뒷부분(등 쪽)에는 새 깃털이 7개의 다발로 되어 달려있다. 4개는 양어깨 쪽에, 3개는 척추를 따라 매달려 있다. 각 다발에는 부엉이, 독수리, 매의 깃털이 섞여 있다. 중국 비단으로 만든 망토는 뒷부분에 물고기를 잡는 새의 깃털을, 팔 쪽에 독수리 깃털을 꿰매어 전체적으로 새의 모습이 연상되도록 만들어진다.
뱀처럼 생긴 가죽 끈 양쪽 끝에는 두 개의 가슴가리개가 있으며, 이 끈을 목에 두르게 되어 있다. 두 개중 하나의 가슴가리개에는 심장처럼 생긴 두 개의 작은 입상이 달려 있다. 둥근 머리를 가진 정령 '만기( )'와 뾰족한 머리를 가졌으며, 샤먼의 천상계 부인인 '부우쵸( )'의 정령을 담은 '쎄베끼( )' 이다. 이들은 샤먼을 악령으로부터 보호해준다. 다른 가슴 가리개에는 뱀의 모양을 그려 놓았다. 이것은 아픈 사람들을 건강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고 한다.
샤먼의 덧소매(나꼽따, )는 북을 칠 때 손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덧소매에는 샤먼의 보조 정령인 뱀이 그려져 있거나 바느질로 꿰매어 표현되어 있다.
샤먼의 치마(호쎄, )는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구분된다. 남성용은 바다표범의 모피로 만들어 졌으며, 옷자락은 색깔 있는 천으로 되어 있다. 여성용은 사슴가죽으로 만들어 졌으며, 옷자락에 생선 껍질로 물고기, 도마뱀, 뱀의 모습을 붙여 놓았다.
샤먼의 허리띠(씨싸, )는 사슴가죽으로 만들었다. 허리띠는 앞으로 매게 되어 있고, 뒤쪽에는 원추형 쇳조각들로 만든 방울들이 달려 있다. 때때로 다른 종류의 금속 조각들을 덧붙이기도 한다. 이 방울 소리는 샤먼의 움직임에 따라 소리를 내게 되어 있으며, 이 소리에 악령들은 놀라 도망가고 선한 정령들이 모여든다. 허리띠에는 구리로 만든 거울 '똘리( )'가 달려 있기도 하다. 학자들은 이 똘리를 만주지역 샤머니즘의 영향이라고 분석한다.
거울의 역할은 방패처럼 악령의 공격으로부터 샤먼을 지켜주는 것이다. 거울에 구멍들이 뚫려있는 것도 볼 수 있다. 구멍의 개수는 샤먼과 악령들과의 싸움의 횟수이다. 거울은 태양을 상징하기도 하며, 저승계(부니, )로의 여행시 샤먼에게 길을 비춰준다.
샤먼 각반의 특징은 일반 보통 사람들의 각반에는 없는 박쥐와 지렁이, 뱀의 형상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때때로 이 각반대신 샤먼들은 형형색색의 긴 양말을 신기도 한다.
샤먼의 신발은 '운따 싸마니( )'라 부른다. 이 신발도 일반 신발과는 달리 샤먼의 보조 정령들인 도마뱀, 뱀, 물고기, 개구리 등의 형상이 그려져 있다.
때때로 의례 전에 샤먼은 악령들을 겁주기 위해 얼굴에 그을음으로 색칠을 하기도 한다. 또한 샤먼의 젖꼭지 사이에 사람머리를 그리며 복부 쪽에 개구리와 새를, 양쪽 갈비뼈와 허리에 뱀 한 마리씩을 그린다. 뱀 머리는 밑을 향한다. 오로치 샤먼은 문신을 하지 않는다.
샤먼의 북 '운뚜( )'는 짧은 띠 모양의 나무테에 사슴 가죽을 붙인 것이다. 북의 안쪽은 십자가형 손잡이가 있다. 이 손잡이는 '운뚜 띠드줴니( )'라 부르며 두꺼운 사슴 가죽으로 만들었다. 손잡이의 끝 부분은 뱀의 머리 모양이며, 북 테두리에 가는 가죽끈으로 고정시킨다(때때로 뱀의 혀로 고정시키기도 한다). 손잡이에는 '만기'와 '부우쵸'의 머리가 그려져 있다. 가죽끈의 매듭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 가운데에 금속 반지가 끼워져 있다.
북의 앞면에는 '도쏘( )'라는 정령 또는 나는 뱀, 수탉, 도마뱀, 개구리, 용철갑상어와 쥐노래미 등 물고기 그림이 그려져 있다. 큰 무당의 경우 북을 두세 개정도 가지고 있다. 의례 중간 샤먼이 자리를 바꾸거나, 이동시에는 특별한 케이스에 북을 담아 보관한다.
여자 샤먼일 경우, 북 대신 소리내는 장비(죠삐, )를 사용한다. '죠삐'는 두 개의 나무판을 때려서 소리를 내거나, 하나의 나무판을 물고기 가죽으로 싸고 그 안에 작은 돌맹이를 넣어 소리를 내기도 한다.
북채인 '기씨( )'는 북에서 여러 소리를 내게 하는 매개물이다. 그것으로 북의 중앙과 테두리 등을 때려서 각기 다른 소리가 나게 한다. 북채는 단단한 나무로 되어 있으며, 때리는 부분에는 수달이나 개 또는 사슴의 모피를 붙인다. 때리는 부분 뒤쪽에는 물고기 가죽으로 수호 정령들인 뱀, 여우, 늑대, 곰, 개구리, 도마뱀, 지렁이 등의 형상으로 붙여 놓는다. 이외에 토끼나 여우의 발을 바싹 말려서 북채를 대용하기도 한다.
샤먼은 여러 종류의 지팡이를 사용한다. 아픈 사람의 영혼을 찾기 위한 의례에서는 나무 지팡이의 끝을 뾰족하게 깎은 '꾸바라( )'를 사용한다. '우니'를 행할 때에는 두 개의 지팡이를 사용한다. 그중 하나의 윗부분에는 머리 두개 - 곰과 부우쵸 정령 -와 지팡이 아랫부분은 곰 발바닥으로 만들어져 있다. 나머지 하나의 윗부분은 새와 만기의 정령, 아랫부분은 사슴 발굽 모양이다.
샤먼의 창인 '게다( )'에는 곰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종려나무 창인 '라우이차( )'는 '만기'의 머리와 뱀 머리가 조각되어 있다. '하냐바' 의례 때는 영혼을 붙잡기 위해 '부우쵸'의 모습이 나무에 새겨진 갈고리를 이용한다.
점을 칠 때 이용되는 돌을 '한고우끼( )'라고 한다. 이 돌은 어떤 악령이 사람을 아프게 하는지 없어진 물건이 어디 있는지 날씨가 어떻게 될지 등을 알아내는 데 도움을 준다. 이 돌은 옆에서 보면 사람얼굴처럼 생겼기 때문에 얼굴 부분인 '도( )'와 입술 부분인 '호무( )'로 나누기도 한다. 이 돌은 나무에 묶인 끈으로 매달려 있으며, 나무 끝에 '부우쵸'의 얼굴을 새겨져 있다.
샤먼은 나무나 금속으로 자신의 보조 정령들의 모습을 직접 만든다. 이것을 '쎄베끼 싸마니( )'라고 한다. '쎄베끼 싸마니'는 사람이나 동물의 모습이며, 최근에는 '쎄베끼 싸마니'에 모피를 입히기도 한다. 하지만 호랑이 입상인 경우, 호랑이 모피는 샤먼조차 손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칠하기만 한다. 사람 모양 입상은 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히기도 한다. 몇몇 입상들 머리에 새나 곰 모양을 조각해 넣기도 한다.
제의를 지낼 때 샤먼들은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깔개(흐이쌰, )를 바닥에 깐다. 동물 모피로 만든 깔개는 '꾸말란( )'이라고 달리 지칭된다. 만약 샤먼이 '꾸말란'을 준비하지 못해서 제 지내는 집의 주인 것을 사용했다면, 제의 후에는 샤먼의 것이 된다. 이는 샤먼이 쓰던 물건을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것이 금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2) 제의 장소
샤먼이 제의를 올리는 장소에는 자신의 수호 정령과 보조 정령들에게 제물을 바치기 위한 나무기둥 몇 개, 이른바 샤먼의 나무라 불리는 '뚜( )'를 준비한다. 종종 나무 가지가 두 갈래로 된 생나무를 사용하기도 한다. 드물지만 잘 마른 나무를 사용할 때도 있다. '뚜'에는 보조 정령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거나, 새겨져 있다. '뚜' 위에는 나무로 깎은 독수리나 오리를 올려놓는다.
이것은 거대한 철(鐵) 새의 모습을 한 악령 '꼬리( )'를 상징한다. '뚜' 앞에는 통을 가져다 놓는데, 이 통에다 '바굴닉'을 태워 연기를 내기 위함이다. 큰 샤먼과 작은 샤먼의 제의 장소의 준비는 차이가 있으며, 큰 샤먼만이 제대로 된 제단을 꾸밀 수 있다. 또한 제의 장소는 일생동안 몇 번이고 '뚜'나 향로를 새 것으로 바꿀 수 있다. 담당 샤먼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일반 사람들이 함부로 나무들을 벨 수 없다. 아래의 '뚜'는 마리아라는 여자 샤먼의 예전 제단이다.
마리아는 개, 수탉, 돼지를 제물로 바쳤으나 그림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뒤쪽으로 '만기(동그란 머리)'와 '부우쵸(뾰족한 머리)'의 머리가 조각되어 있는 두 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다. 바로 앞에 한 개의 기둥이 횡목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횡목에는 샤먼의 지팡이가 기대어져 있다. 그리고 그 앞쪽에 두 개의 기둥은 뭔가 알 수 없는 형상으로 조각되어 서 있다.
다음 그림은 마리아 샤먼의 새 제단으로 조사 당시 5년 전에 만들어 진 것이다.
위 부분의 가지가 양쪽으로 갈라진 나무를 '부우쟈( )'라고 한다. 가지 양끝에는 얼굴이 있으며, 그 위에 '꼬리'의 암·수가 올려져 있다. 양끝으로 갈라지기 시작하는 지점의 왼쪽에는 물감으로 '쎄우( )', 즉 태양과 '아버지 북'인 '아미네 운뚜( )'가 그려져 있다. 오른쪽 가지에는 달('베'/ )과 '어머니 북'인 '아뇨 운뚜( )'가 그려져 있다.
북 밑에는 박쥐의 혼이 그려져 있다. 나무의 줄기가 갈라지는 부분에는 모자를 쓴 샤먼을 그리고 그 위에 소나무 등지에 나는 구과(毬果)가 그려져 있다. 거기에서 약간 밑으로 둥근 테가 끼워져 있다. 이 테 위에는 새 6쌍이 놓여있고, 오른쪽으로 작은 나무로 기대어 놓은 그늘진 공간에 샤먼의 영혼인 '두쌰 마씨( )'가 조각되어 놓여져 있다. 테의 아래 부분에는 물고기(붕어나 잉어) 모양이 그려져 있으며, 그 아래는 용(무두르, ) 모양이다.
'부우쟈'의 양옆 끝으로 '만기'와 '부우쵸'의 얼굴이 새겨진 기둥 두 개가 있다. 사각형의 기둥의 머리 위에는 곰 형상이 올려져있는 것은 '두운따 마씨( )'이다. 이 세 기둥에는 긴 횡목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횡목에는 흰 수탉 한 마리가 제물로 매달려 있다. 횡목 앞쪽으로 샤먼의 지팡이가 가로로 매달려 있다. '두운따 마씨' 앞에는 작고 뾰족한 지붕 모양으로 창고 역할을 하는 것이 세워져 있다.
창고의 내부 가운데에 사람모양의 '두운따 마씨' 입상과 오른쪽에 공과 비슷한 '두운따 야비( )'가 있다. 기타 샤먼의 모자, 질병 퇴치 부적 등이 놓여있다. 제단 의 맨 앞에 놓인 두 개의 장식물은 향로(헴프, )이며, 왼쪽 향로에 손잡이처럼 뾰족하게 달려 있는 것은 동물 머리 모양으로 조각한 것이다.
아래의 것은 바실리라는 샤먼의 제단으로 위의 마리아 샤먼의 것보다 간단하게 구성되어 있다. 중앙의 굵은 기둥인 '무끄데니( )'의 두 개 모두 머리부분을 안으로 움푹 파서 '부우쵸'를 안치하고 있다. 기둥의 아래쪽 놓인 옆으로 긴 나무 상자 내부에는 '쎄베끼' 4개가 들어있다. 오른쪽 나무 한 그루에는 제물용 수탉이 걸려있다.
마찬가지로 제단의 맨 앞에 향로 세 개가 세워져 있다. 그 중 가운데의 것은 호랑이와 뱀, 그리고 '부우쵸'의 머리가 장식되어 있으며, 양쪽 두 개의 향로 각각에는 새와 두꺼비 모양이 장식되어 있다.
4. 샤먼의 정령들
1) 샤먼의 수호 정령
오로치인들은 강하고도 선한 샤먼의 수호 정령은 '엔두리( )'와 그의 부인인 '엔두리 마마챠( )'로 여기고 있다. '엔두리'는 선하면서 강력한 정령으로서 하늘의 주인이다. '엔두리'는 긴 수염을 한 체격 좋은 노인의 모습으로 묘사되며, 오직 큰 샤먼만이 볼 수 있다고 한다.
2) 샤먼의 보조 정령
선하고 악함을 불문하고 샤먼들은 모두 보조 정령들을 가지고 있다. 악한 샤먼은 흑담비나 족제비 등의 맹수들을 보조 정령으로 모신다. 선한 샤먼은 악한 샤먼보다 많은 보조 정령을 가지고 있다. 호랑이와 곰은 강력한 샤먼의 보조 정령이다.
보조 정령은 아니지만 '부씨부( )'라는 정령들이 있다. 선악의 개념을 잘 모르며 갑자기 나타나서 샤먼들을 놀라게 한다. 샤먼들이 치료 의례를 행하면서 결과가 신통치 않으면 '부씨부' 정령들이 방해하기 때문이라 하기도 한다.
5. 샤먼의 의례
1) 치료 의례
오로치인들은 가벼운 질병은 스스로 치료를 한다. 하지만 중병일 경우 샤먼을 찾아가 병 치료를 의뢰한다. 오로치 샤먼들은 치료 능력은 매우 유명해서 인근 러시아 농민들까지 찾아와서 주문할 정도이다. 샤먼이 주문을 받게 되면 장소가 어디이건 상관없이 치료를 해줘야 한다. 부득이하게 장소가 멀어서 가기 불편한 경우에는 의례를 부탁한 쪽에서 급사를 보내 정중히 모셔간다.
오로치인들은 나쁜 정령이 사람의 몸안에 들어와서 혼(하냐, )을 빼앗아 갔기 때문에 발병하며, 샤먼이 나쁜 정령을 달래거나 속이든지, 아니면 겁을 주든지 해서라도 반드시 '하냐'를 찾아와야 병이 낫는다고 굳게 믿고 있다.
샤먼은 의례를 행하기에 앞서 어떤 악령이 환자의 하냐를 앗아갔는지를 말해줄 보조 정령들과 접신한다.(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수호 정령과는 접신하지 않는다.) 의례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환자의 친척들이 샤먼의 시중을 들게 된다. 샤먼의 몸과 샤먼의 옷을 '바굴닉'으로 문지르며, 담배나 물 등을 가져다 준다. 아래의 내용은 병을 일으킨 나쁜 정령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한 샤먼의 주문이다.
,
도와주고, 안타깝게 여겨다오
( ) 병 없이
잘 살수 있게 도와다오
다시 한번 도와다오
다시 한번 안타깝게 여겨다오
나쁜 것 없이 잘 살 수 있었건만
( )도쏘가 듣지 못하고
꼬로가 이간질 할 수 없게
내가 병을 노래하는 동안
난 어떤 병인지 모른다네
?
곰에게로부터 온 것인가?
?
바다로부터 온 것인가?
?
호랑이로부터 온 것인가
악마가 보지 못하게 해다오.
이 주문이 끝나면 샤먼은 '쎄베끼'에게 음식 등을 대접한다. 그리고 다시 짧은 주문을 올리고, '한고우끼'에 얼굴을 대고 주문을 외운다.
샤먼이 환자의 몸에서 악령을 끄집어내면 미리 준비해 놓은 저장함(뿌당꾸, )으로 옮겨 넣고, '뿌당꾸'를 조각조각 내거나 불질러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상태가 좋아지지 않는다면, 다른 '뿌당꾸'를 준비해서 다시 시작한다. 아무리해도 치료되지 않는다면 보조 정령(또는 수호 정령)이 샤먼의 꿈에 나타나 치료 방법을 알려준다. 꿈에서 깬 샤먼은 다시 '뿌당꾸'를 준비해서 악령을 끄집어 낼 때까지 의례를 행한다.
샤먼은 좀 더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서 직접 만들었거나 전임 샤먼으로부터 물려받은 '쎄베끼'나 무복의 일부를 이용한다. 하지만 샤먼의 실수나 능력 부족으로 환자가 차도를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샤먼은 아주 심한 중병으로 결핵, 여성의 불임(간혹 불임을 치료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등과 같은 경우는 치료를 기피한다.
만일 샤먼이 병이 낫을 경우 자신의 병은 고치지 못하므로, 다른 샤먼에게 치료를 부탁하거나 자신의 수호 정령이 지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탓한다. 그래서 병이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부적을 지니고 다닌다.
2) '하바냐'
하냐바는 오직 강한 샤먼만이 할 수 있다. 하바냐를 행하는 샤먼은 바다표범, 물고기, 보트, 고래, 강치 등으로 변신하여 자신의 '쎄베끼'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또는 환자의 주위를 빙빙 돌면서 "암바야, 암바야 영혼을 물에다 숨겼느냐, 땅에다 숨겼느냐"하며 영혼을 찾는 동작을 반복한다. 마침내 환자의 영혼을 발견하면, 샤먼은 갈고리로 영혼을 붙잡아서(하냐 쟈랄리, ), 영혼을 삼키고는 환자의 입에 불어넣는다.
3) '우니'
봄과 여름에 강한 샤먼은 일년에 두세 번 정도 '우니'를 행한다. '우니'는 수호 정령과 보조 정령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의례이자, 영적 능력을 배가시키고 마을을 악령으로부터 정화시키는 의례이다. '우니'는 '우네이니( )'라는 말에서 파생되었으며, 눈과 얼음이 녹는 시간이라는 의미가 있다.
'우니'는 오로치 샤먼들에게 가장 큰 의례이다. 샤먼들에게는 생일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축제나 다름없다.
샤먼은 '우니'를 준비하기 위해 버드나무 줄기 등으로 옷을 만들어 술을 달고, 의례 보조자 18명을 선임한다. 보조자들은 두 패로 나뉘며, 한 패는 '만기'의 정령들이며 다른 한패는 '부우쵸'의 정령들이며, 각 무리에 맞춰서 옷을 입는다. 보조자들 중에는 약한 샤먼도 포함되어 있는데, 강한 샤먼에게서 힘을 얻어내기 위해서 참가한다.
샤먼은 양쪽 무리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의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인 '오댜니( )'를 지도자로서 임명한다. 의례가 진행되는 동안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샤먼의 뒤에서 참관할 수 있다. 참관자들은 제일 좋은 옷으로 깔끔하게 차려 입는다.
우니는 샤먼의 처소와 주변 가정들을 악령으로부터 정화하는 '축빠르 꿀리끄타하니( )'로 시작된다. 샤먼은 북을 치고 기도문을 외우며 근처에서 제일 가까운 집으로 향한다. 집 앞에 도착하면 샤먼은 여러 물건들을 들고있으므로 '오댜니'가 앞에 서서 문을 연다. 샤먼이 문지방을 밟고 들어가자마자 집 주인은 샤먼에게 '바굴닉' 잎을 우려낸 '쏜께 무니( )'와 파즙인 '쏘드이 무니( )'를 다른 그릇에 담아 대접한다. 샤먼은 먼저 '쏘드이 무니'를 한 모금 마신 후, '쏜께 무니'를 또 한 모금 마신다. '바굴닉'의 가지와 나머지 잎은 화로에 태운다.
손님들은 슬슬 화로 주변에 앉기 시작한다. 샤먼은 북을 치며 노래를 한다. 그리고 화로 주위를 태양이 도는 반대방향으로 도는데, 태양이 도는 방향으로 돌게 되면 태양이 금방 저물어 죽음의 세계인 '부니'로 가게 되기 때문에 매우 금기시 한다. 샤먼은 상체를 흔들며 돌며 '호롤리니( )'라는 춤을 춘다.
샤먼의 몸놀림에 따라 허리띠에 매달린 쇳조각들이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이 소리는 좋은 정령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면서 의례를 행하는 집 주인에게 복을 가져다 주고 악령을 내 쫓는 역할을 한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샤먼은 추던 춤을 멈추고 화로 옆에 앉는다. 이때 샤먼의 창과 '만기' 무리는 샤먼의 왼쪽, '부우쵸' 패와 종려나무는 오른쪽에 자리잡는다.
집 주인은 참석자들에게 죽, 생선, 고기 수프 등을 약간씩 대접한다. 음식을 먹고 나면 '오댜니'는 문을 열고 샤먼을 앞세우고 모두들 나간다. 샤먼은 집 주위를 반 시계 방향으로 돌며, 보조자들 역시 샤먼의 뒤를 따라서 같이 돈다. 그리고 다른 집으로 다시 가서 같은 의례를 진행한다. 이런 식으로 부족의 모든 집을 도는데, 중간에 날이 어두워지면 어느 한 집을 골라서 샤먼과 그의 일행들이 머물게 된다. 그리고 이 집에서 야간 의례를 행한다.
야간 의례는 보통은 샤먼보다 나이도 많고, 경험이 많은 사람이 시작한다. 그 다음 약한 샤먼이 진행하고, 맨 마지막에 큰 샤먼이 의례를 진행한다. 의례의 시작은 춤이다. 춤은 특별한 방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대로 춰도 된다. 하지만 화로 주위를 세 바퀴 이상 돌 수 없다. 큰 샤먼의 의례는 2∼3시간 정도 걸린다. 선한 정령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추종자들에게 복을 부탁한다.
샤먼의 의례가 끝나면 모두 잠자리에 든다. 이날 밤은 모두에게 성행위의 자유가 주어진다. 이 날밤의 성행위는 삶의 에너지를 키워주며, 좋은 정령들과의 관계가 깊어진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적 자유는 샤먼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아침이 되면 간단히 차를 마시고 샤먼이 지정한 다른 집으로 간다. 겨울에 강가나 호수를 지날 때에는 개썰매를 타고 건너거나 여름에는 보트를 이용한다. 이러한 교통수단을 이용할 경우, 샤먼이 탄 썰매나 보트가 항상 앞장서며 샤먼은 북을 치며 큰소리로 기도를 한다. 보트로 이동할 경우에는 향로인 '헴프'에 '바굴닉'을 넣고 계속 태운다.
이 향로는 새 모양(독수리, 오리 등)으로 생겼다. 보트를 타고 가서 육지에 내릴 경우 땅을 처음 밟을 수 있는 것도 샤먼이며, 그 뒤에 '오댜니'가 내릴 수 있다. '우니'는 다른 큰 샤먼의 구역을 넘지 않는다. 만약 다른 샤먼의 구역에서 '우니'를 행하는 것은 월권행위로, 이는 곧 전쟁을 선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의례를 마치고 자기 집으로 돌아온 샤먼은 곧바로 자신의 '뚜'로 가서 수호 정령과 보조 정령들에게 개, 돼지, 수탉을 제물로 바친다. 이들 제물은 먼저 방망이로 두들겨 팬 다음, 칼로 심장을 찌른다. 이때 제물에서 나는 피는 종이 등에 묻혀 나중에 장대 위에 묶어서 달아 두던가, '쎄베끼'의 입술에 발라준다. 재물 중 개의 시체는 샤먼이 '뚜' 주변에 묻어준다. 그리고 나서 뜨거운 '바굴닉'을 손에 들고 무덤 주위를 9번 돌며 기도를 올린다. 돼지와 수탉은 의례에 참석한 사람들이 나눠 먹는다. 하지만 샤먼은 오직 코, 심장, 신장, 간, 귀, 꼬리 약간씩만 먹을 수 있다.
나가는 말
위에 서술한 의례 외에도 샤먼은 산모를 정화 시켜준다든지, 미래를 예언한다든지,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등 많은 일을 한다. 이미 위에 서술했듯이 오로치 샤먼의 권위는 이 지역에 이주해 간 러시아 농민들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찾아올 정도로 유명하다. 하지만 때때로 별 것 아닌 것을 도와달라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짝사랑하는 처녀와 결혼하게 해달라는 식의 주문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으나 이에 응하게 되면 샤먼이 처벌을 받는다고 한다.
샤먼에게 감사를 표할 때는 항상 샤먼이 자신들의 정령들과 같이 나눌 수 있는 것으로 해야한다. 일반적으로 개나 망토를 선물하며, 가죽끈은 필수이다. 만약 샤먼이 비싼 선물을 받았다면 '엔두리'가 죽음의 형벌을 내린다고 한다. 샤먼은 일반 사람들처럼 다른 생계 수단이 있기 때문에 의례 대가로 받은 것만으로 생활하지 않는다.
1930년 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오로치인들은 가정에서 벌어지는 의례를 행할 때 샤먼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또한 말다툼이나 분쟁이 벌어졌을 때에는 심판관 역할까지 맡았다고 한다. 오늘날 샤머니즘은 오로치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는 있으나, 중요한 종교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못한다. 샤먼은 부족의 몇몇 의례에서 소외되며, 곰 축제, 쌍둥이 의례의 진행자로서 참석할 수 없다.
이렇게 지속되어 오던 오로치 샤머니즘이 변하게 되는 두 가지 큰 사건이 있었다. 첫 번째는 사건은 19세기 중엽 러시아 정교회 선교사들의 적극적인 포교활동이다. 이때 대부분의 오로치인들이 세례를 받고, 러시아 이름으로 개명을 하였다. 러시아 이름은 오로치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큰 샤먼인 니꼴라이 아꾸닌이 선교사에게 두 개의 좋은 이름을 요구한 것은 유명한 일화로 전해져 온다.
십자가(쎄베끼)를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이 샤먼들에게 널리 퍼져있으나, 러시아 정교회는 샤머니즘에 비해 민중들 속 깊이 침투하지는 못했다. 두 번째 사건은 1930년대 중반 공산주의 권력에 의해 오로치 샤머니즘이 탄압을 받게 되어 샤머니즘을 비롯하여 오로치의 전통문화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붕괴된다.
소련이 붕괴되고 각 민족들이 자 문화의 원형을 찾고자 노력중이다. 하지만 오로치인들에게서는 이러한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다. 아무래도 오로치인들의 숫자가 적고, 전통적인 경제활동이 변화됨으로써 더 이상 옛 문화의 도움이 필요치 않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언젠가 이들 내부에서도 자 문화의 원형 찾기에 대한 운동이 일어날 것이고, 그때가 되면 당당했던 오로치 샤먼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오로치 샤머니즘 고찰 - 국립민속박물관 이건욱
2015. 2. 8. 2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