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김현거사의 문학 서재 펌
무궁화에 대한 斷想,
김현거사 2012.08.13 17:18
돌아온 옛집에 무궁화가 볼만하다. 아침마다 담 위에 여나믄개씩 보라빛 꽃송이를 피워 올려, 한여름 독야청청을 보여준다. 무궁화(無窮花)는 말 그대로 꽃이 무궁무진 핀다. 그야말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꽃이다. 7월 초순부터 찬바람 불어오는 10월까지 핀다. 이에 비하면 다른 꽃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이다.
나는 용인에서 폭과 높이가 4미터가 넘는 거대한 무궁화 나무를 본 적 있다. 동대문 앞에서 눈에 뻔쩍 뛸만치 멋진 두 그루 무궁화 나무를 본 적 있다. 옛날 소달구지 다니던 흥인지문의 옹성 앞에 서있는 그 무궁화 나무는 휘어진 가지 전체에, 화려하고 낭만적인 꽃을 가득 달고 있어 장관이었다. 유달영 교수가 1956년, 뉴욕 식물원 정원에서 보았다는 무궁화도 장관이었던 모양이다. 그 분이 우단을 깔아 놓은 듯 곱게 다듬은 푸른 잔디밭 위에 잘 가꾸어진 여러 그루의 무궁화가, 아침나절 밝은 햇볕에 푸른 숲을 배경으로 만발한 광경을, 평생 기억에서 지울 수 없다고 술회한 글을 보았다. 새벽마다 뜰의 무궁화꽃을 볼 때마다, 백번 공감간다. 그런데, 누가 무궁화 전시회 소식을 알려주었다. 바로 내 집 옆 코엑스에서 무궁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 얼른 카메라를 들고 무궁화를 찾아갔다.
나는 사진을 찍으면서 하와이 공항에 내렸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밤새 비행하고 아침 7시에 비행기서 내렸을 때다. 미소 띈 얼굴, 신비스런 눈으로 나를 주시하며, 피부가 가무잡잡한 부르넷 미인이 닥아와서, 내 목에 화환을 걸어주었다. 그 남국 미녀의 왼쪽 귓가에 붉은 한송이 꽃이 꽂혀있었다. 그 하이비스커스 꽃이, 나중에 알아보니, 무궁화 사촌이었다. 그리고 무궁화의 학명은 <Hibiscus syriacus> 였다. 이집트의 아름다운 신 히비스를 닮았다 하여 이리 붙인 모양이다. 시경(詩經)에 '안여순화(顔如舜華)'란 구절이 있다. 순화(舜華)란 무궁화를 말한다. 여인의 안색이 무궁화 같이 아름답더란 표현이다. 부용화도 무궁화의 사촌이다. 무궁화의 영어 이름은 "샤론의 장미"(The Rose of Sharon) 다. "이스라엘의 샤론 평원에 핀 아름다운 꽃"이라고 그리 부른다고 한다.
나라마다 나라꽃이 있다. 미국 같은 데는 주(州)마다 주의 꽃이 정해져 있다. 스코트랜드 사람들은 가시가 많은 엉컹퀴도 그 모습이 용맹한 사자의 발톱을 닮았다면서 나라 꽃으로 사랑한다. 영국은 장미, 프랑스는 백합, 일본은 벚꽃, 중국은 모란 이다. 영국인들은 장미의 모양에도 신경을 써서 가위질도 하고, 벌레도 잡고, 약도 뿌린다. 유독 꽃이 향기로운 나무는 진드기가 있는 법이거늘, 그걸 탓하면서, 꽃이 이뿌지 않다느니, 국화를 다른 꽃으로 바꾸면 좋겠다느니, 천부당 만부당한 타박을 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그래도 되는가.
무궁화에 대한 자료를 검색해보니, 원래 무궁화는 단군조선을 세우기 이전, 신이 통치하던 신시시대(神市時代) 환나라(桓國)의 나라꽃 이다. 그 시대는 단군을 포함한 선교의 주요 인물을 선인(仙人)이라고 불렀다. 고조선에는 하늘에 의식을 행하는 신단(神壇)이 있었다. 소도(蘇塗)다. 그곳을 주관하는 사람을 선인(仙人)이나 신선(神仙)이라고 불렀다. 이곳은 천군(天君)이라는 제사장이 살며, 죄인이 이곳에 도망을 해도 잡지 못하는 신성한 곳이다. 소도(蘇塗)에 ‘훈화(薰華)’, ‘천지화(天指花)’를 심고, 아직 결혼을 안한 자제들에게 독서와 활쏘기를 익히게 하였으니, 이를 국자랑(國子郞)이라 불렀다. 국자랑은 다닐 때에 머리에 천지화를 꽂았기 때문에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 불렀다. 이런 신선사상과 화랑의 전통이 신라로 이어졌으니, 화랑의 꽃은 바로 무궁화다.
우리 민족은 하늘의 뜻을 따르고, 태양을 숭앙하던 태양족이다. 밝고 맑은 색, 흰빛을 사랑하기에 백의민족이라고도 일컬었다. 무궁화는 태양족이 사랑한 꽃이다. 무궁화의 또다른 이름이 천지화(天指花)인데, 지(指)는, ‘가리키다’, ‘뜻하다’, ‘아름답다’의 뜻을 가진 글자이다. 천지화란 곧 ‘하늘을 가리키는 꽃’, ‘하늘을 뜻하는 꽃’, ‘하늘의 아름다운 꽃’을 의미한다. 이 꽃을 신라 화랑들이 머리에 꽂고 다닌 것이다.
<단기고사>에는 '환인(桓仁)을 임금으로 추대하는 단상(壇上) 주위에 온통 환화가 둘러싸여 있었다'는 기록과, '16년에 임금께서 고력산(古歷山)에 행차하여 제천단(祭天壇)을 쌓고 주변에 근수(槿樹)를 많이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단군세기>에는 '5대 단군 구을(丘Z)이 16년 정축(丁丑)에 친히 장당경(藏唐京)에 행차하여 삼신단(三神壇)을 쌓고 환화를 많이 심었다.'고 적혀있다. 15대(代) 단군은 ‘훈화’를 뜰 아래 심어 정자(亭子)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산해경>에는 '해동에 군자국이 있는데, 의관을 정제하고 칼을 차며, 양보하기를 좋아하고 다투지 않으며, 무궁화가 많은데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진다'고 하였다. <고금기>에는 '군자국은 지방이 천리인데, 무궁화 나무가 많다'고 하였다. 이런 사실들은 4천 년 전에 쓰여진 중국 고대 기록에 실려있는 것이다. 우리 문헌인 <조대기>, <단군세기>, <단기고사>, <규원사화> 등에도 실려있다.
무궁화는 수수한 베옷을 입고, 살부채를 들고, 초당을 거니는 은자에게 알맞은 꽃이다. 무궁화 중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흰색 무궁화다. 바탕에 붉은 화심(花心)을 가진 것은 백단심(白丹心)이다.
문일평은 화하만필(花下漫筆)에서 <무궁화는 빛이 몇 가지가 있으나 분홍과 백색이 가장 고우니, 여름 아침 일찍이 동산에 나가면, 번무(緊茂)한 가지와 잎 사이로 여기저기 하얗게 핀 꽃은 이슬에 젖은 그 청아한 자태가, 청계수(淸溪水)에 새로 목욕한 선아(仙娥)의 풍격(風格), 그것을 어렴풋이 생각케 하는 바 있다.>고 하였다.
최영전(崔永典)의 <백화보(百花譜)>에는 “무궁화는 어사화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옛날에는 문무과(文武科)에 급제하면, 임금께서 종이로 만든 무궁화를 하사하여, 복두에 꽂고 삼일 유가에 나서게 했다"는 구절이 있다. 조선은 왕조의 표상을 오얏꽃(李花)으로 삼았으나, 과거에 장원한 사람에게 임금이 내리는 어사화(御賜花)는 종이로 만든 무궁화였다. 궁중에서 임금을 모신 가운데 베풀어지는 연회에도 신하들이 사모에 꽂는 꽃은 무궁화였다. 이것을 진찬화(進饌花)라 부른다.
김정상(金正詳)의 <무궁화보(無窮花譜)>에는 '우리 나라나 중국에서 무궁화는 거의 전부가 울타리로 이용되는데, 이에 대한 습속을 고찰해 보면, 무궁화는 음장(陰障)을 제거하는 효력이 있으므로 사람의 집울타리로 쓰면, 장기를 막는다는 옛 기록을 믿음에서 된 것이다. 또 물리적으로는 산울타리(生藩籬)로 세워두면, 울막기에 편리하고 꽃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잎은 나물로 쓰고, 소가 지칠 때에 죽 끓여 먹이면 쉽게 회복되므로, 우마의 먹이가 손쉽게 들어오고, 약으로도 필요하므로, 사람의 가장 가까운 울타리로 쓰게 되었고, 번식이 빠르고, 그 키가 작지도 크지도 아니하고 울타리에 적당한 까닭이다.'라는 설명이 보인다.
무궁화는 약으로도 사용되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무궁화의 약성은 순하고 독이 없으며, 장풍(腸風)과 사혈(瀉血)을 멎게 하고, 설사한 후 갈증이 심할 때 달여 마시면 효과가 있다. 꽃은 약성이 냉하고 독이 없으며, 적이질·백이질을 고치는데, 장풍·사풍·사혈에는 볶아서 먹거나, 또는 차처럼 달여서 무시로 마시면 낫는다'고 되어 있다. <본초강목>에는 '여인들의 적대하증·백대하증 치료에, 종기의 통증을 멎게 하는 진통제로, 또 옴병 치료제로 사용되었다'고 쓰여있다. '달인 물로 눈을 씻으면 맑아진다. 무궁화의 껍질과 꽃은 다 부드럽기가 해바라기 꽃 같아서 혈액순환을 돕는다. 꽃은 볶아서 약에 넣어 쓰고, 달여서 차 대신으로 쓴다. 감기에 걸리면 담이 생기는데, 담을 삭히는 데도 무궁화차가 좋다'고 쓰여있다.
현대 과학으로 보면, 뿌리껍질(根皮)에는 탄닌산과 점액질이 들어 있고, 꽃에는 사포닌이, 종자에는 말발산, 세루쿨산, 디하이드로 스테로쿨산이 함유되어 있다. 줄기와 뿌리는 이질균과 티프스균에 대한 항균작용이 있다.
중국 사람들도 무궁화를 사랑한 모양이다. 북경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로변 가로수는 우리를 어리둥절케 한다. 그 모두 키가 사람 세배나 되는 거대한 무궁화 나무다. 꽃 피면 얼마나 장관을 이루겠는가. 하필이면 우리나라만 공항에서 서울 들어오는 길에 다른 나무를 심었을가 하는 애석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간혹 고속도로를 달려보면, 무궁화가 여름꽃으로 최고란 생각이 든다. 흰구름과 푸른 들판과 무궁화가 그렇게 화려하게 잘 어울리는 모습에 감탄하게 된다. 언제 쯤 우리도 입국하는 관문에 무궁화를 심을가 싶다. 일본 왕인박사 묘소에도, 그 동네 곳곳에 무궁화가 심겨져 있는 것을 본 적 있다.
<규원사화>를 보면, '단군이 제후를 봉하여 다스리니 세상은 더욱 밝아지고 고요했다. 그러다가 십년 만에 갑비고차(甲比古次)에서 남이(南夷)의 난이 있었다. 임금은 부여(夫餘)에게 군사를 주어 평정하게 했고, 후에 부소(夫蘇)와 부우(夫虞)도 보내어 갑바고차에 성을 쌓게 하여 남쪽을 지키게 했다.'는 글이 있다. 이곳이 지금 강화도의 삼랑성(三郞城)이다. 마리산(摩利山) 참성단(塹城壇)은 단군 시대부터 단을 설치하고 하늘에 제사지내던 머리산(頭嶽) 이다. 이 신단(神壇)에 무슨 나무를 심어야 하겠는가. 태릉 화랑대도 마찬가지다. 육사 생도들을 화랑의 후손이라 부른다. 이곳에 무슨 나무를 심어야겠는가.
아나톨 프랑스는 지나친 향기를 기피하여 목서(木犀)까지 뜰에서 추방하였다고 한다. 무궁화는 은근과 끈기의 나무다. 무궁화의 색은 은근하고, 끊임없이 꽃봉오리를 피워올리는 그 성격은 끈기이다.
이로써 보면, 무궁화는 9천여년 동안 배달겨레가 애끼던 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말이 근역(槿域)이다. 최치원은 당나라에 보낸 국서(國書)에 신라를 근화향(槿花鄕=무궁화 나라)이라고 표현했다. 환화(桓花)는, ‘환인’을 상징하는 꽃이다. 신(神)을 상징하던 ‘신의 꽃’ 이다. 이런 9천년 전통의 신성한 꽃을, 어찌 지금 와서 스스로 외면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