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드라마 '신사임당, 빛의 일기' 가 신사임당 주인공으로 이영애씨로 하여 방영되고 있더래요. 5만원 권 지폐에 신사임당이 들어가 있습니다.
많이 들어봤는데 과연 신사임당에 대해 한번 자세히 살펴보더래요.
신사임당申師任堂 에서 사임당은 호인데 이름은 신인선(師任堂申仁善)이다.
사임당은 중국 은나라 걸왕을 폐하고 주나라를 건국한 문왕의 어머니 태임을 흠모하여 자신의 호로 삼인데 조선시대에는 자칫 역모로도 3족이 멸할 수 있십더.
사임당 가게도
아바이 신명화(申命和)는 장인 이사온(李思溫)과 기묘사화에 참여하였고 관직을 단념하고 강릉 향리에 은거하였다. 기묘사화는 살짝 알아보겠습니다.
http://blog.naver.com/apforhis 2006.10.12
기묘사화, 기묘명현 己卯名賢
기묘사화는 중종 때에 일어난 사화입니다.
연산군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중종은 새로운 정치를 구현하고자 조광조를 위시한 신진사람을 대거 등용합니다. 그래서 현량과를 실시하고 소격서를 폐지하는 등의 개혁정치를 시도합니다만 그들의 사상자체는 너무 급진적이었는지 기존의 훈구파 (중종등극의 공신들)들의 반감을 사게됩니다. 그러던 중 연산군의 폐위와 중종등극에 관한 공신록에서 훈구파 자신들의 공훈이 대거 삭제되자 반감이 극에 다다른 훈구대신 남곤, 심정 등에 의해 탁핸되어 조광조를 위시한 신진사림들은 우배 또는 사사되기에 이릅니다. 이것을 기묘사화라고 하는데 이때 기존의 훈구세력에게 희생된 신진사림들을 일컫어 바로 “기묘명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사임당의 아버지였던 신명화도 이 신진 사림들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었으나 정국에 적극 참여하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한 이유로 원래는 기묘명현의 한 사람으로 처벌받았어야 했으나 정상참작이 되어 화를 면한 것입니다.
아바이 신명화(申命和)는 평산 신씨 시조 신숭겸의 19대손이다.
고조부 신개 세종대왕와 재위 시 위의정과 좌의정을 지냈다.
증조부 신자승 성균관 대사성은 태종의 딸 정선공주와 남이 장군사이에서 태어난 큰딸과 혼인했다. 조부 신숙권은 영월군수를 역임했다.
아버지 신명화는 41살에 소과에 응시하여 진사가 되었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에서 전사한 신립은 그의 9촌 조카였고, 대한민국의 정치인 해공 신익희는 14대 방손이 된다.
신사임당 신인선의 외가는 용인 이씨 집안이다.
세조 때의 원종공신(原從功臣) 이유약(李有若)의 손자인 이사온(李思溫)
이씨의 증조부 최치운은 세종대왕 재위시 이조참판을 지냈으며, 조부 최응현은 형조참판을 지냈다. 강릉 오죽헌을 지은 사람이 용인 이씨의 외조부 최치운이며, 최치운은 아들 최응현에게 최응현은 사위 (용인 이씨) 이사온에게, 이사온은 사위 신명화에게 주었다.
신사임당의 남편 이원수는 덕수 이씨로 사대부 집안이었다.
덕수 이씨 이기, 이행 형제의 조카인 이원수 당시 이원수는 이렇다 할 관직도 없었고,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두 당숙이 영의정과 좌의정 등을 역임한 고관이었지만 그의 집안은 가난했다. 이원수는 돈령부사 이명진의 4대손으로 할아버지 이의석은 최만리의 사위로 현감을 지냈고, 증조부 이추는 대제학 윤회의 사위로 군수를 역임한 바 있다.
신사임당의 자년 5남3년인데 그 중에 첫째 이선, 둘째 이번, 셋째 아들 대학자이자 정치인으로 이이, 넷째 문인 화가로 이우, 다섯째 이번, 문인화가 딸 이매창이 있다.
아버지 신명화(申命和)공의 집은 한성(漢城)이었고 어머니 이(李)씨의 친정은 강릉 북평촌이다. 어머니 이씨는 외조부 생원(生員) 이사온(李思溫)과 외조모 최(崔)씨 사이에서 난 무남 독녀라 항상 친정 부모를 모시고 강릉에서 살았기 때문에 사임당(師任堂)도 어려서 늘 어머니의 친정인 북평촌에서 살며 외조부의 교훈과 어머니의 훈도 아래서 자랐다. 안견(安堅=세종 때 사람)의 화풍을 본받아 산수 포도 풀벌레 등 여러 가지 그림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