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가야의 이즈모[出雲] 제철단지 개척사
아라가야왕 소잔명존의 출운제철단지 개척설화와 신라 거타지설화가 유사점이 있어, 반도의 설화를 수집하여 기·기 분식에 활용한 사례로 보여 대비를 해본 것이고 아라가야가 개척한 열도 제일의 제철단지인 시마네[島根]의 이즈모[出雲]가 실사상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분석하여 그 역사적인 비중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소잔명존과 거타지설화 비교》

일본서기 신대기 상 8단 본문을 보면 소잔명존(素잔鳴尊)의 출운지방 개척을 설화로 꾸민 것이 있다. 이 내용과 유사 기이상에 나오는 신라 거타지(居陀知)설화가 유사점이 있으므로 비교해 보면


【설화 본문】


〔소잔명존 설화〕

서기 신대기 상 8단 본문

『이때 소잔명존이 하늘에서 내려와 출운국의 파천 상류에 도착했다. 이때 강 상류에서 우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그래서 소리를 찾아 가보니 노인과 노파가 가운데 한 소녀[童女]를 두고 어루만지며 울고 있었다. 소잔명존이 "그대들은 누구며 무엇 때문에 이렇게 우는가"하자 대답하기를 "나는 국신입니다. 이름은 각마유이고 아내이름은 수마유입니다. 이 아이는 딸인데 이름은 기도전희입니다. 우는 이유는, 전에는 딸이 여덟이나 있었는데 해마다 팔기대사에게 잡아먹혔습니다. 지금은 이 아이가 잡아먹힐 차례입니다. 면할 길이 없어 슬퍼서입니다"했다. 소잔명존이 "만약 그렇게 되지 않으면 이 아이를 내게 주겠는가"라고 하자 "말씀대로 바치겠습니다"했다. 소잔명존이 잠간 동안에 기도전희를 탕진조즐로 만들어 머리에 꽂았다. 그리고 각마유와 수마유에게 팔온주를 빚게 하고 아울러 방 여덟 간을 만들어 방마다 술통을 하나씩 놓고 술을 가득 붓고 기다리고 있었다. 때가 되니 과연 대사가 나타났다. 머리와 꼬리가 각각 여덟이었다. 눈은 붉은 장 같았다[赤酸醬. 등에 송백이 나고 여덟 언덕 여덟 골짜기에 뻗쳤다. 술을 보더니 통마다 머리를 디밀고 술을 마시고 취해서 잤다. 이때 소잔명존이 차고 있던 십악검을 뽑아 그 뱀을 마디마디 잘랐다. 꼬리에 이르러 칼날이 조금 상했다. 그래서 그 꼬리를 갈라서 열어보니 칼이 한 자루 있었다. 이것이 소위 초치검이다[이설에 말하기를 원래 이름은 천총운검인데 대사가 사는 곳 위에는 언제나 구름이 있었기 때문인가. 일본무황자 때에 이름을 바꿔 초치검이라 했다]. 소잔명존이 "이것은 신검이다. 내가 어찌 사사로이 하겠는가"라고 하며 천신에게 헌상하였다. 그 후 혼인할 곳을 찾아갔다. 드디어 출운의 청지(淸地/스가)에 이르렀다. 그래서 "내 마음이 청청(淸淸)하도다"라고 하였다[그리하여 지금 이곳을 청(淸)이라 한다]. 거기에 궁을 지었다. [이설에 말하기를 그때 무소잔명존(武素잔鳴尊)이 노래를 불렀다. "팔운이 피어오르는, 출운의 팔중원이여, 처를 지키는 팔중원을 만들자, 그런 팔중원을"]. 거기서 서로 합하여 아들 대기귀신을 낳았다. 그리고 "내 아이의 궁의 우두머리는 각마유와 수마유다"라고 했다. 그래서 두 신에게 이름을 도전궁주신이라 했다. 그리고 나서 소잔명존은 드디어 근국으로 갔다』


〔거타지설화〕

유사 기이2 진성여대왕과 거타지조에 보면

『진성여왕 때 아찬 양패는 왕의 계자였다. 당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 백제의 해적들이 진도(津島)에서 길을 막는다는 말을 듣고 활 잘 쏘는 사람 50명을 뽑아 따르게 했다. 배가 곡도(鵠島/骨大島)에서 풍랑이 크게 일어 10여 일을 머무르게 되었다. 양패공은 걱정하여 사인에게 점을 치게 했다. "섬에 신지(神池)가 있으니 거기에 제사를 지내면 좋겠습니다"했다. 이에 못 위에 제물을 차려놓자 못물이 한 길이나 넘게 솟구치고 그날 밤 꿈에 노인이 나타나 "활 잘 쏘는 사람을 하나 남겨두면 순풍을 얻을 것이오"하자 양패공이 잠에서 깨어 좌우에 일을 묻기를 "누구를 남겨두면 좋겠소"했다. 여러 사람이 " 나무조각 50개에 이름을 써서 가라앉히는 제비를 뽑읍시다"했다. 공이 이에 따르니 군사 중에 거타지가 있어 이름이 물에 가라앉았다. 그리하여 거타지가 남게 되고 바람이 일어 배는 막힘 없이 나아갔다. 거타지가 섬에 서서 걱정을 하는데 노인이 못에서 나타나 "나는 서해약(=海神)이오. 중 하나가 해가 뜰 때면 하늘에서 내려와 다라니를 암송하면서 이 못을 세 번 돌면 우리 부부와 자손들이 물 위에 뜨게 되오. 그러면 중은 내 자손들의 간을 빼먹는 것이오. 그래서 다 먹고 오직 우리 부부와 딸 하나만 남아 있을 뿐이오. 내일 아침에 중이 또 필히 올 테니 그대가 활로 쏘아 주시오"라고 했다. 거타지는 "활 쏘는 일이라면 제가 잘하는 것이니 말씀대로 하겠습니다"했다. 노인은 고맙다하고 사라졌다. 거타지는 숨어서 엎드려 기다렸다. 다음날 아침에 동쪽에서 해가 뜨니 과연 중이 와서 전처럼 주문을 외우면서 늙은 용의 간을 빼먹으려 하였다. 이때 거타지가 활을 쏘아 중을 맞히니 곧 늙은 여우로 변해 땅에 떨어져 죽었다. 이에 노인이 나와 "공의 덕으로 내 성명(性命)을 보전하게 되었으니 내 딸아이를 아내로 삼으시오"라고 사례했다. 거타지는 "제게 주시고 저버리지 않으신다면 바라던 바입니다"했다. 노인은 그 딸을 한 가지 꽃으로 변하게 하여 거타지의 품속에 넣어주고 두 용에게 명하여 거타지를 모시고 사신의 배를 호위해서 당나라에 들어가도록 했다. 당인들은 신라사신의 배를 용이 호위하는 것을 보고 황제에게 보고하니 황제가 "신라의 사신은 필시 비상한 사람일 것이다"하고는 뭇 신하들의 윗자리에 앉히고 금과 비단을 후하게 주었다. 본국에 돌아온 거타지는 꽃을 여자로 변하게 해 함께 살았다』


【설화비교】

비교를 해보면 괴물에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을, 괴물을 처치하고 구해주는 줄거리들이 비슷하다.

〔최초 출발지〕

소잔은 하늘[天]에서 내려왔다. 거타는 신라다.

〔활동지역〕

소잔은 열도의 시마네[島根]현 이즈모[出雲]국 파천상류다. 거타는 남해항로 도중에 있는 진도 부근 곡도(鵠島)다. 소잔의 경우도 일종의 경유지이고 거타도 경유지다.

〔활동대상〕

소잔은 거대한 뱀[八岐大蛇]이다. 거타는 늙은 여우가 중으로 변신한 것이다.

〔대상물의 위력이나 성격〕

소잔의 경우 등에 소나무가 날 정도의 거대한 괴물이고 여덟 언덕 여덟 골짜기 사이에서 나왔다고 할 정도로 거대하다. 실제는 비유를 한 것이지 실물이 아니다. 등에 소나무가 났다거나 언덕, 골짜기란 말에서 산이라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다. 거타는 늙은 여우가 중으로 변신하여 다라니주문을 외울 정도로 영력을 가진 괴물이다. 흔히 여우가 사람을 많이 잡아먹으면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전설이 많은데 그런 사고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괴물의 활동〕

소잔의 경우는 노부부의 딸을 1년에 하나씩 잡아먹는 것이고 거타의 경우는 해뜨는 날 매일 서해약(西海若/海神) 가족 하나의 간을 빼먹고 죽이는 것이다.

〔구해준 사람〕

소잔은 각마유, 수마유, 그 딸 셋이고 거타도 서해약 부부 둘과 그 딸까지 셋이다.

〔괴물 처치방법〕

소잔은 대사를 술에 취하게 한 후 잠든 사이에 칼로 벤다. 거타는 활로 쏘아 맞혀 죽인다.

〔활동 후 얻은 것〕

소잔은 노부부의 딸 기도전희를 얻었고 적극적으로 달라고 하여 조건부로 얻었다. 또 청지(淸地)라는 새로운 땅을 얻게 된다. 거타는 활동 후에 딸을 주는 것을 받았고 소극적이다. 반면에 사신길에 호위하는 용의 도움으로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었다는 점이 다르다.

〔딸의 변신〕

소잔은 자신이 빗으로 변하게 해서 머리에 꽂았다. 거타는 서해약이 꽃가지로 변하게 하여 품에 넣어 주었다. 소잔이 적극적이고 거타는 수동적이다.

〔활동계기〕

소잔은 설화상에서는 나오지 않으나 신대기 앞부분을 보면 신들에게 미움받고 천조대신과 서약을 하고 자신이 원해서 내려온다. 거타는 활을 잘 쏘는 덕에 사신일행에 뽑혀서 가게 되었고 제비에 뽑히는 바람에 행운을 차지하게 되었다. 또 그 전에 서해약이 거타일행이 오는 것을 알고 풍랑을 일으켜 곡도에서 머물게 하고 한 사람을 뽑아달라고 하는 것이다. 역시 거타지는 수동적으로 묘사되어있다.

〔최종도착지〕

소잔은 근국(根國)으로 간다. 거타는 신라로 돌아온다.

〔딸과 혼인〕

둘 다 혼인은 하나 소잔은 아들을 낳고 거타는 결혼 이후는 안나온다.

〔연대비교〕

위의 설화 두 가지의 연대를 비교해 보면 소잔은 서기를 편찬할 시점에 수많은 신화·설화 들을 수집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기·기를 분식하는 과정에서 만든 설화이고 거타지설화는 신라 진성여왕대에 만들어진 것이 유사에 채록된 것으로 보이므로 사서를 저술한 시점은 서기가 빠르지만 설화생성연대는 거타지의 경우가 빠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거타지설화를 기·기 저자가 수집하여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소잔명존의 적극성과 거타지의 소극성〕

소잔명존은 대체로 적극적, 능동적으로 활동하고 거타지는 소극적, 수동적으로 활동하는데 이 두 인물의 활동상의 이런 차이는 소잔의 경우는 신천지개척을 나선 인물로서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고 거타지의 경우는 신하의 입장으로서 대체로 소극적으로 그려지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결국은 두 인물의 신분과 입장차이에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로 보인다. 소잔은 개척자의 입장이고 거타는 발탁되는 입장인 것이다.

〔거타지 설화의 실사상의 모델〕

설화의 주인공인 거타지는 실사상의 모델이 누구인지는 알기 어려우나 사기 신라본기의 진성왕조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감안하고 9년조, 10년조, 11년조 기사가 설화와의 분위기와 유사한 점이 있어 거타지는 헌강왕의 서자이자 진성왕의 위를 이어 효공왕이 된 요(嶢)가 아닌가 짐작된다.

신화·설화에서 여성은 영토를 은유하고 여자를 받았다는 것은 그 영토에 대한 통치권을 은유할 경우가 많은데 거타지가 처녀를 받았다는 것은 곧 왕이 된 것과 결부시켜 해석할 수 있고 원래 왕위계승서열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서자였지만 자질이 출중하여 왕이 된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진성왕 9년조에서는 그(=嶢)를 두고 "장체모괴걸(長體貌魁傑)"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성장하자 체격과 풍모가 헌걸차고 빼어났다"는 뜻이다.

또 사기나 유사의 기술태도, 즉 왕실내분이나 쿠데타 등은 대부분의 경우 직필하지 않고 설화 등으로 처리하거나 비교적 정상적인 승계로 분식하였는데 석탈해설화, 동성대왕의 서동설화, 고이왕이나 진사왕, 아신왕, 비유왕, 무령왕 등은 전부 쿠데타로 집권한 것으로 판단되고, 고구려의 경우도 안원왕은 쿠데타, 양원왕은 왕자의 난으로 집권했는데 정상적인 승계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거타지의 경우도 진성왕에 대한 쿠데타로 집권한 것을 분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가기도 한다.


【소잔명존설화의 실사적인 해석】


〔소잔명존은 누구인가?〕

스사노오노미꼬또[素盞鳴尊]아라가야왕 아라사등이고 사기 백제본기 근초고왕 2년조에 나오는 백제의 좌평 진정(眞淨)이고 고사기 신대기 대국주신조에 나오는 오호아나무지노가미[大穴牟遲神]이며 한편으로는 기·기상에서 반정(磐井) 등 많은 이칭을 가지고 활약하는 인물이다. 시대적으로는 4세기 중반인 서기 340년대부터 350년대 정도로 본다. 백제의 근초고대왕 재위 전반기 정도인 것이다.

〔출운에 온 목적〕

출운에 온 목적은 신천지개척이고 출운은 고대 열도에서 제일 질 좋은 사철광산지역으로 최고의 제철단지였다. 지금의 시마네[島根]현 출운으로서 이곳에서 나는 철을 바탕으로 질 좋은 병기와 농기를 생산하는 것이 열도에 고대국가를 건설하는 지름길이었기 때문이다. 이 소잔명존의 팔기대사 설화도 <백제에 의한 왜국통치 삼백년사/윤영식/98∼102p>에 잘 해설되어 있는데 거기에 인용된 출운이란 지방의 성격을 나타내는 글을 인용해보면

『이즈모의 시마네현에 安來라는 곳이 있다. 현지에서는 '야스기'라고 하는데 이 '야스기'라는 것도 출운의 현지인 말로는 "편안하게 사람들이 도래하여 와서 산 땅이란 데서 安來라는 지명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거야 어찌되었든 安來에는 화동기념관이 있다. 이 '和'라는 것은 日本을 가리키는 和로서 히다찌제작소가 지금도 그곳에 철강을 만드는 대공장을 가지고 있는데, 그 공장이 철생산을 기념하여 만든 철박물관인 것이다. 中國산맥에서 채취된 사철로 철을 만들었다. 그것은 고대부터의 일이지만 지금까지도 그곳에는 대단히 질이 좋은 사철이 채취되고 있다. 그 사철로 만든 철강이 일본에서 가장 좋다. 가장 좋은 철이 이곳에서 생산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화동기념관에 가서 보면 철이 도래하여 온 철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출운에 상륙하였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사철에서 철이 될 때까지의 과정을 따라서 찍은 사진도 있고 여러 가지 모형도 있어 아주 알기 쉽게 되어있다. 그것을 보면 고대에 사철로부터 철을 획득한 집단은 대단한 힘을 가진 주도세력이었음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된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원자력에 필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했으리라는 것을 깊이 느꼈는데 출운과 신라와는 철에 의한 연관성이 대단히 짙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출운의 고대 유적은 거의 신라계이다. 이 신라와의 관계가 아주 상세히 쓰여진 것으로 水野裕氏의 '고대의 출운'이란 책이 있다. 이를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는데, 고대 출운의 주인공이라 해도 좋을 須佐之男命(素盞鳴尊을 말함)은 신라의 도래인이 그들의 조신으로서 받들어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고 분명히 쓰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일본에는 스사노오노미꼬또[須佐之男命]를 제신으로 한 신사만도 8천쯤이 되는데 출운에는 스사족[須佐族]이라 한 집단도 있었다고 쓰여 있다<고대일조관계사입문/김달수/筑摩書房/18p>』라고 나온다.

아라가야왕 소잔명존이 출운의 제철단지를 개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 나오는 신라도 아라가야의 고칭 아시라[阿尸良]=신라(新羅)를 지칭하는 것이다. 경주신라는 제철과는 거리가 먼 나라였다.

〔하늘[天]이란?〕

백제 또는 한반도 전체를 말하기도 한다.

〔각마유·수마유는 출운지역의 원주민〕

원주민이라고 해서 반드시 열도원주민이라고는 볼 수 없다. 반도에서 기원전부터 수없이 건너갔기 때문이다. 시마네현은 구주 북부와 마찬가지로 반도에서도 가장 가까운 곳이다. 이들도 반도에서 선진농업기술을 가지고 건너간 반도출신일 가능성이 많다. '다리 脚', '순 手'를 이름에 쓰고 있어 피지배층임을 짐작할 수 있다.

〔기도전희(奇稻田姬)〕

이름 그 자체를 보더라도 아주 비옥한 전답(田畓)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사람이 아니다. 새로 개척한 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은유한 것이다. 도전(稻田)은 논[畓]을 뜻하는 말이다. 奇는 신령스럽다는 뜻이다.

〔탕진조즐〕

빗[櫛]으로 표현하기는 했어도 탕이란 것이 제철용탕을 말하므로 제철용구의 일종으로 보이고 예컨대 용탕(熔湯)의 위에 뜨는 찌꺼기, 불순물을 걷어내는 도구로 보인다.

〔팔온주〕

여덟 번 깨물은 술이라고 하는데 불순물을 걸러내기 위해 여러 단계의 야철공정을 거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온=酉+(日 밑에 그릇 皿)

〔사스기[假기]〕

제철로를 설치한 공장과 단조하는 대장간, 주조하는 주물공장으로 보면 된다. 가기(假기)의 기( ) 자를 보면 재주 기(技) 자가 들어있다. 즉 '재주[技術]가 발휘되는 집'이란 뜻이니 바로 요즘말로 공장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술통이 곧 제철도가니인 셈이다. 기·기를 읽다보면 절묘한 은유·비유·상징들이 수없이 등장하는데 한편으로는 그 속에 한자를 파자(破字)를 해봐야 그 뜻이 명확히 드러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위의 기( ) 자도 그 중의 하나다. 돌집 엄(엄) 밑에 재주 技

〔팔기대사(八岐大蛇)〕

출운의 질 좋은 노천사철광산에서 흘러내리는 산화철 녹물을 말하는 것이다. 이 녹물이 연례적으로 우기만 되면 농사를 지을 수 없을 정도로 농토를 황폐화시켰기 때문에 딸을 낳자마자 대사에게 잡아먹혔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 녹[청=金+靑]으로 인한 피해는 철광석의 품위(=평균함량)가 높을수록 심해진다.

"등에 소나무가 나고 여덟 언덕 여덟 골짜기"란 말에서 보듯이 팔은 성수(聖數)이긴 하지만 대사란 것이 노천철광산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고사기/강담사학술문고/次田眞幸/2000년/上/104p>에 보면 팔기대사를 두고

「대사의 꼬리에서 초치검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히노가와[肥河]의 상류일대가 우수한 사철산지고 비하(肥河) 유역에서 검(劍)이 단조된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대사의 배[腹]가 언제나 피에 진물러 있었다고 하는 것도 비하의 철을 함유한 붉은 물이 흘러드는 모양으로 볼 수도 있다」라고 나오는데 정확한 지적으로 본다.

〔천총운검(天叢雲劒)〕

갖고 있던 십악검(十握劒)으로 뱀의 꼬리를 자르다가 칼날이 빠졌는데 보니 뱀의 꼬리에서 칼 한 자루가 나왔다는 것은 출운에서 만든 칼이 더 좋은 칼이라는 뜻이다. 출운의 사철 질이 그만큼 좋았다는 말이다. 반도의 가라지역도 기원전부터 유명한 철산지였지만 그곳에서 만든 가라사히[韓鋤], 아라사히[추正]보다 출운의 철이 질이 좋았다는 의미다. 추(추)는 사슴 녹(鹿) 자가 석 자다. <일본서기/암파문고/2000년/권1/96p>에는 아라마사[추正]라고 읽고 있으나 사히[正]로 음독해야하고 반도어 '(ㅅ+아래아)이[金]'에서 나온 말이고 칼[刀]을 의미할 때가 많다.

천총운검은 나중에 천신에게 바치는데 백제왕실에 헌상한 것이다. 천신은 백제왕실에서 파견한 경진주신(經津主神/근구수왕)이고 항복하고 나라를 바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것이 지금도 일본왕실에 전승되고 있는 삼종신기(三種神器) 중의 하나다.

〔구름[雲]이란?〕

출운이나 천총운검의 '구름 운(雲)'은 사실은 구름이 아니고 제철단지에서 나오는 연기였던 것이다. 제철용 숯을 굽는 연기를 구름이라고 한 것이다.

〔스가[淸地]란?〕

이것은 소잔명존의 땅이라는 뜻이다. 청(淸)이 소잔의 이칭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소잔의 백제이름은 진정(眞淨)으로 청(淸)과 정(淨)은 통하는 말이다. 또 반정(磐井)으로도 나오는데 역시 우물 정(井)도 같이 통하는 말이다.

<고사기/강담사학술문고/次田眞幸/2000년/上/103p>에 보면

「島根縣 大原郡 大東町 須賀의 땅. 여기에 須佐之男命과 稻田比賣命을 제사지내는 須賀社가 있다」고 한다.

스가[淸地]=스가[須賀], 스사노오노미꼬또[素잔鳴尊]=스사노오노미꼬또[須佐之男命], 구시이나다히메[奇稻田姬]=이나다히메노미꼬또[稻田比賣命]다. 신령스럽다는 뜻의 구시[奇]는 미꼬또[命]와 대응되는 존칭이고 히메[姬]와 히메[比賣]는 같다. 사실은 이것도 8세기 이후에 여기에 심은 내용이다. 기도전희란 이름도 기·기 저자들이 지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니고 의인화된 땅을 지칭한다.

사기에 나오는 진정(眞淨)이란 이름에서 정(淨)도 기·기에 나오는 청(淸), 정(井)과 발음과 의미가 통하는 말로 바꾸어 실은 것으로 보인다.

〔청(淸)은 소잔명존의 이칭〕

소잔이 아라사등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기·기저자들은 "내 마음이 청청(淸淸)하도다"라는 노래까지 지어서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이게 기·기상에서 암시를 해주는 전형적인 기법이다. 물론 이 말에도 중의적인 의미가 들어있기는 하다. 백제의 그늘로부터 벗어나서 독립왕국을 건설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감상도 들어있는 말이다. 그런데 소잔이 청(淸)이라고 알려주는 기사가 이설1에 바로 나온다.

「소잔명존이 도전궁주 책협지팔개이의 딸 도전원(稻田媛)을 보고 기어호(=침소)를 세워 낳은 아들을 스가[淸]의 탕산주(湯山主) 3명 협루언팔도소(狹漏彦八島篠)라 불렀다」라고 하여 소잔(素盞)이 청(淸)이고 그 아들이 셋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도전원이 기도전희를 말하는데 사실은 땅을 차지한 것을 은유한 것이다.

〔소잔명존의 세 아들〕

판경언팔도수명(坂輕彦 八島 手命), 협루언팔도야(狹漏彦 八島 野)라고도 한다고 되어있다.
사루히꼬[狹漏彦]=사루히꼬[坂輕彦]는 장자 예진별명(譽津別命)이다. 야시마[八島]는 응신이고 예전별명(譽田別命)이다. 야시마[八島]란 "대팔주(大八洲)를 최초로 통일한 인물"이란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야시마[八島]=야시마[八洲]다.      소(篠)=수명(手命)=야(野)로 아라사등의 셋째 아들 진언(珍彦)이다. 소(篠)는 '시노'라고 읽고 '소죽(小竹)'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도 암호다. 죽(竹)은 그 훈이 '대'로서 이것으로 큰 대(大) 대신에 쓴다. 다께[武]와 다께[竹]도 발음이 같은데 뜻이 '크다[大]'로 쓰인다. 소죽(小竹)은 치무(稚武)와 뜻이 같다.

가야왕족의 백제에서의 성씨 진(眞)은 열도발음으로는 신[眞]이 되는데 받침 없이 읽어서 시노[眞]가 될 수 있다. 일인들은 사까가루[坂輕]라고 읽고 있으나 사루[坂輕]라고 읽어야 한다. 이것이 신대기 하 9단 천손강림조에서는 바로 사루[원/원田彦神]로 나오고 천손강림신화를 인대기에서는 일본무존(=구수대왕)이 축자평정하는 것으로 분식해 놓았는데 서기 경행기 18년 7월조에는 사루[猿/猿大海]로 기록하고 있다. 사루[坂輕]에서 발음을 따고 대(大)는 장자라는 뜻이고 해(海)는 가야계를 나타내는 해신(海神)에서 딴 것이다. 이름이 '사루'라는 가야왕실의 장자집안인물이라는 의미다. 원=猿에서 오른 쪽의 袁 대신에 爰이 있는 글자인데 뜻과 음이 같다.

〔파천과 가애천은 발원지가 동일〕

이설2에 보면 출운의 파천 상류를 안예국의 가애천(可愛川) 상류라고 말을 돌려놓았다. 강은 다르지만 지도를 보더라도 두 강의 발원지는 동일한 지역이다. 파=대 竹 변 밑에 (其+皮)

〔초치검은 천총운검〕

서기 신대기 상 8단 이설2에 보면 초치검은 미장국의 오탕시촌에 있고 열전(熱田)의 축부(祝部)가 관장하는 신이라고 한다. 뱀을 벤 칼 추정(추正)은 '아라사이'라고 하며 '아라가야의 쇠[金]'라는 뜻이고 석상에 있다고 되어있다. 석상은 근초고대왕을 모신, 나라현 천리시의 석상신궁(石上神宮)을 말한다. 아라가야왕 소잔명존(=眞淨)이 만든 칼이 백제왕실의 신보가 된 것이다. 가라나 백제는 칼을 신보로 하는 전통이 있었던 것이다. 치=초 두 변 밑에 꿩 치(雉)

〔팔운(八雲)이 피어오르는 출운〕

역동적으로 돌아가는 출운의 제철단지를 나타내는 말이고 출운의 팔중원(八重垣)이란 출운을 단단히 확보하여 열도개척의 전진기지로 삼자고 다짐하는 말이다. 말하자면 출운은 그 당시로는 더할 수 없는 병기기지에, 기도전희로 상징되는 병참기지 기능을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八은 성수다.

〔처를 가두는 팔중원(八重垣)〕

처를 가두는 팔중원이란 말은 지킨다, 보호한다는 의미로서 처는 결혼을 한 사람이므로 열도통치권를 말한다. 즉 백제로부터 독립된 열도왕국을 꿈꾸는 노래인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출운을 단단히 개발하고 지키자는 의지를 표현한 노래인 것이다. 팔중의 울타리[垣]를 말한다.

소잔명존=대기귀신〕

소잔명존이 본문에서는 대기귀신(大己貴神)을 낳고 있고 이설1에서는 5세손이 대국주신(大國主神)이라고 나와 있는데 소잔명존 본인이다. 대기(大己)는 발음이 '오호아나'로서 '대아나(大阿那)' 또는 '대안(大安)'의 다른 표기이고 '대가라'를 말한다. '대가야의 귀한 신'이라는 뜻이다. 고사기에서는 대혈모지신(大穴牟遲神)으로 나온다. 대기(大己)와 대혈(大穴)이 발음이 같고 무지[貴]와 무지[牟遲]가 같다. 이설2에서는 소잔의 6세손이 대기귀명(大己貴命)이라고 나온다. 아들인 대기귀신과 6세손인 대기귀명이 동일인인 것이다. 대수 자체는 대개가 이런 식으로 신대기에서부터 분식하여 홀리고 있다. 사실은 전부 본인이다. 대수만 늘려놓은 것이다.

<백제에 의한 애국통치삼백년사/윤영식/102p>에 보면 「그의 異名도 좋은 쇠[鐵]를 뜻하는 백철(白鐵), 즉 素쇠, 素잔(스사)로 짓고서...」라고 나오는데 일리 있는 해석이다. 잔(盞)인데 밑의 그릇 명(皿)을 뺀 약자 형태로 전(箋-대 竹 변)으로도 쓰인다.

이 소잔명존이 최초에 열도로 건너간 곳은 신대기에 보면 구주쪽으로 나온다. 신대기 상8단 이설4에

「소잔명존의 소행이 무상하였다. 그래서 여러 신이 천좌치호를 과하고 쫓아내었다. 이때 소잔명존은 아들 오십맹신을 데리고 신라국으로 내려가 소시모리[曾尸茂梨]라는 곳에 있었다. 그런데 말을 하기를 "이 땅은 내가 살고 싶지 않다"라고 하고는 진흙으로 배를 만들어 타고 동쪽으로 가서 출운의 파천 상류에 있는 조상봉(鳥上峰)으로 갔다」라고 나오는데 백제의 많은 신들로부터 박해받고 열도로 건너온 것인데 먼저 구주로 갔다가 출운으로 다시 건너간 것이다.

신라국이란?〕

구주 서남부에 아구네[阿久根]와 누마[野間]반도를 연결하는 지역에 가라가 개척한 신라라는 나라가 있었다. 이것도 원래 본국인 아라가야의 고명 신라(新羅/阿尸良) 그대로인 것이다. 아라사등의 중자 천일창이 개척한 나라다. 그리고 그 동쪽에 인접하여 웅습국(熊襲國)이 있었다. 이 웅습국이 바로 반도어로 '큰 소의 나라'라는 뜻을 가지는 가야가 개척한 소국이다. 구마소노구니[熊襲國]에서 '구마[熊]'는 반도어 '크다'의 명사형 '큼'이 원순모음화현상을 일으켜 '쿰(굼)'이 되고 다시 받침 없이 명사형어미를 붙여 발음하여 "쿠마(구마)'가 된 것이다. 소[襲]는 반도어 소[牛]를 열도발음으로 치환하여 이두표기한 말이다.

〔소시모리는 어디?〕

열도어 소[曾]는 역시 반도어 소[牛]를 달리 표기한 것이고 '시'는 사이시옷이고 모리[茂梨]는 머리[頭]를 달리 표기한 것이다. 열도어에는 '어' 발음이 없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오'로 발음하고 표기된다. 즉 원래는 '쇠머리'라는 뜻이고 신라국과 웅습국의 사이를 말하는 것으로 두 나라를 동시에 지칭하는 구주남부의 지명으로 판단된다.

〔출운은 열도제일의 철산지〕

그런데 이곳을 살 곳이 아니라고 하고 출운으로 건너간 것은 역시 출운의 사철광산을 개발하여 제철단지를 만들어 열도경략의 전초기지로 삼겠다는 전략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시마네[島根]의 출운이란 지명에서 볼 때 "(열)島 (개척의) 根(본)"이란 뜻이다.

〔천좌치호(千座置戶)〕

어떤 형벌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신대기의 분위기를 볼 때 백제의 좌평이었던 진정이 자꾸 열도로 가기를 원했지만 '가야영역만 다스려라'는 뜻이 아닌가 생각된다. 직역하면 "천년 동안 집에만 앉아 있어라"라는 뜻으로 보이고 일종의 연금(軟禁)과 같은 상태로 비유한 것이다. 백제의 좌평이란 사실은 가야사·백제사를 개작하여 기·기를 분식한 결과이고 원래는 아니었다고 본다. 백제가 가라를 침탈하여 후국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소잔명존(=아라사등)이 출운을 개척하고 이어서 구주까지 개척하여 아들들을 왕으로 봉하고 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직전에 백제가 본격적으로 가야를 정복하고 열도에 무내숙이를 후왕(侯王)으로 임명하여 보낸 것이다. 출운을 개척해 놓은 후에 다시 근국으로 갔다는 것이 위에 나왔다. 여기서 말하는 근국(根國)은 구주의 서남부에 있는 아구네[阿久根]를 말한다. 실사상의 연대를 보면 이 일들은 서기 4세기중반에서 5세기초반에 걸쳐 일어난 일들을 신화화한 것이다. 진흙배란 보잘것없다는 뜻으로 비하하여 표현한 것이다.

〔도리가미[鳥上]=도리가미[鳥神]〕

조상봉에서 도리가미[鳥上]란 말은 도리가미[鳥神]라는 뜻으로서 기·기상에서 무내숙이를 새[鳥]로 은유하고 있으므로 무내를 가리키는 말이다. 무내는 출운국조(出雲國造)이기도 하고 출운대신(出雲大神)이라고도 한다. 이 출운국이 서기 신공기 62년 시세조에는 신라(=가라)의 미인으로 의인화하여 은유되어 나온다. 미인 둘 중 하나가 바로 이 출운국을 지칭하는 것이다.

* 위의 설화는 일본열도를 처음으로 대규모로 본격개척한 시발이 되는 사건으로서 그것도 바로 우수한 농기구와 병기를 생산하는 제철단지라는 것은 동북아 제일가는 제철왕국이었던 가야다운 일이기도 하고 고대에 있어 중차대한 전략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이 정도 되니 그곳을 "(열)島 (개척의) 根(본)"=島根이라는 이름까지 붙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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