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상 부도지(符都誌)』 는 파미르(Pamir) , 파미르 帕米爾, 파내류 波奈留 에서 마고(麻姑) 할매가 인류의 시작으로 나온다. 파미르 및 주변 (텐산, 곤륜산)이 포도, 사과, 복숭아 원산지라고 한다. 동박석, 손오공이 금기하는 복숭아를 먹고 장수하는 얘기가 있다. 신선 즉 도인이 사는 곳에 복숭아 나무가 이 열매를 먹고 불로장생하는 신화나 설화가 있다. 여기서 이상적인 무릉도원 武陵桃源 나왔는지도 모른다. 

복사나무는 신성시하여 귀신을 막는 부적인 도부(桃符)로 사용되기도 했다.

[퍼옴] 설날 세시풍속 도부(桃符, 복숭아나무 부적) 복원  

작성자 : 조용호 yongbang@daum.net , 작성일 : 2016-12-11

도부(桃符)란, 복숭아나무 판자에 사악한 잡귀를 퇴치하는 신장의 모습을 그려 섣달 그믐날 자정 무렵에 대문에 부착하여 새해를 맞이하는 풍속으로 집안에 사악한 잡귀의 출입을 방어하는 일종의 부적으로 혹은 도판(桃板) 혹은 도경(桃梗)이라고도 한다.

도부에 관해서는 우리나라의 『동국세시기』와『조선왕조실록』중국의 『형초세시기』를 비롯하여 『풍속통의(風俗通義)』 등에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도부의 기원은 이미 4,700여 년 전인 삼황오제 중의 황제 헌원 시대에 시작되어 동양에서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세시풍속이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말기에 이르기까지 성행하였던 풍속이다. 또한 도부의 주인공인 신도와 울루가 사는 곳은 삼족오(三足烏)와 같이 해 뜨는 구역인 동방이라고 하였으니 바로 우리나라에 해당한다.

문에 붙이는 첩자(帖子)에 ‘신도 울루(神荼鬱壘)’ 라고 네 글자를 쓴다. 옛 풍속에 설날에 도부(桃符)에 신도(神荼)와 울루(鬱壘) 두 신인(神人)의 형상을 그려 대문이나 출입문에 설치하여 흉악한 귀신을 막는다. 이 제도는 중국 황제(黃帝)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지금은 입춘의 첩자로 사용한다.
門帖 有神荼鬱壘四字 古俗 元日桃符 畵神荼鬱壘像 置之門戶 以禦凶鬼 其制自黃帝始 今用於春帖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입춘

[신라 풍속에] 설날을 중히 여겨서 서로 경축하고 잔치를 베풀며 차례를 지내는데, 해마다 이 날에는 일월신(日月神)께 예배한다.
重元日, 相慶賀燕饗 每以其日拜日月神
『구당서(舊唐書)』 동이전 신라 풍속

~ 자세한 내용은 첨부 파일 참조  

도부(桃符).hwp


[퍼옴] 다음 백과사전 복사나무

다른 표기 언어 Peach , , モモ桃

분류 : 장미과, 학명 :  Prunus persica

복사나무는 중국 서북부의 황하 상류 고산지대가 원산지로 아주 옛날부터 중국 사람들이 재배한 과일나무로 자리를 잡았다. 복숭아라는 맛있는 과일은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뿐만 아니라 차츰 신선이 먹는 선과(仙果)로 품격이 올라갔다. 복사나무에 대한 수많은 전설이 만들어지고 민속이 얽혀 들었으며, 병마를 쫓아내는 선약(仙藥)의 나무가 되기도 했다.

고대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서왕모(西王母)는 곤륜산에 사는 신선인데, 어느 날 한무제를 만나게 된다. 서왕모는 3천 년에 한 번씩 열리는 천도복숭아 일곱 개를 선물로 가져가 서로 나누어 먹는다. 복숭아를 신선이 먹는 불로장생의 과일로 받아들이게 된 시발점이다.

이런 복사나무와 여기에 얽힌 설화가 중국에서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삼국사기》에 벌써 그 기록이 나온다. 거의 2천 년 전인 백제 온조왕 3년(15)에 “겨울이 가까워 오는 10월에 벼락이 치고 복사나무와 자두나무 꽃이 피었다”라는 내용이다. 이렇게 이상 기후의 상징으로 예를 들 정도이니, 이미 이보다 훨씬 전에 들어와 당시에는 널리 퍼져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삼국시대와 고려 및 조선왕조를 거치는 동안 복사나무는 우리의 재래 과일나무로 갈수록 더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더 맛있고 굵은 품종을 골라 키우는 안목도 있었을 터이나 기록으로는 반도(蟠桃), 홍도(紅桃), 벽도(碧桃) 등의 이름만 찾을 수 있을 뿐이다. 1910년경 경기도에서 조사한 자료에는 10종의 품종 이름이 나온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먹는 개량 복숭아는 1906년 뚝섬에 원예시험장이 설치되면서 미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 새 품종을 들여온 것들이다.

복사나무는 복숭아라는 과일을 생산할 뿐만 아니라, 봄날을 화사하고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복사꽃을 선사한다. 연분홍의 아름다운 꽃이 핀 복사 밭은 도연명이 지은 《도화원기(桃花源記)》각주1) 에서도 그렸듯이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향을 대신했다.

복사나무가 갖는 또 다른 상징성은 못된 귀신을 쫓아내고 요사스러운 기운을 없애주는 주술적인 징표이다. 옛날 중국에는 동해 가운데 도삭산이 있고, 거기에 큰 복사나무가 3천 리에 걸쳐 뻗쳐 있었다고 한다. 가지가 뻗은 동북쪽의 작은 귀문(鬼門)을 통해 모든 귀신들이 출입했다. 문지기 귀신인 울루(鬱壘)와 신다(神茶)는 악독한 귀신이 들어오면 꽁꽁 묶어서 호랑이에게 바로 넘겨주었다. 이후 중국에서는 설날 아침, 마귀를 쫓기 위하여 문짝에 복사나무로 만든 도부(桃符), 혹은 도판(桃板)이라는 작은 나뭇조각에 울루와 신다의 이름을 적어서 걸어두기 시작했다. 이 풍속은 우리나라에 전해져 설날, 입춘, 단오에 도부를 걸거나 복사나무 그림을 그려 붙였다.각주2) 도삭산의 복사나무처럼 아무 귀신이나 출입할 수 있으므로 울루와 신다가 지키지 않는 복사나무는 자칫 못된 귀신의 소굴이 된다. 그래서 옛 풍습으로 집 안에는 복사나무를 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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