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천황 출신계보 및 시호분석    

기ㆍ기는 백제가 반도에서 멸망하고 동조가 있던 열도로 건너가서 반도와의 인연을 끊고 열도에서 자생한 왕조처럼 꾸민 역사서다. 따라서 그 전에 열도의 패권을 놓고 다투던 역사까지도 흡수 기술하게 되었고 그래서 피아가 모호하게 사서를 저술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기ㆍ기를 저술할 당시의 열도 귀족구성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모두 20대 호족(豪族)이 있는데 12대 족벌(族閥)이 백제계고 8대 족벌(族閥)이 가야계로 신찬성씨록에 나온다. 말하자면 "한 지붕 두 가족"인 것이다. 그래서 대체로 가야왕족을 천황으로 등재했을 때는 백제가 적으로 나오고 백제왕족을 천황으로 등재했을 때는 가야가 적으로 나온다.    

똑같은 내용을 가야 중심으로 기술할 때와 백제 중심으로 기술할 때 이칭이 필요하고 지명도 당초지명에서 인접한 곳의 지명, 또는 다른 이름을 지어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 이전에 서로 다투던 역사를 직필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정에서 분식을 하다보니 수많은 이칭들을 지어 쓰고 시대를 무시하고 연대를 무려 천년을 상대로 밀어 올리기도 하고 실사의 편년을 무시하고 이리저리 기사를 흩어놓은 것이다.    

신무천황과 숭신천황 사이의 천황들은 기사다운 기사가 없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한 사람의 왕을 여러 천황으로 등재하고 왕이 된 적도 없는 인물을 천황으로 등재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천일창은 일곱 천황으로 등재되었다. 신공황후 포함하여 41명의 천황 중에서 실존했던 인물은 12명 정도밖에 안 된다. 그것도 신공처럼 왕이 된 적이 없는 인물도 있다. 실제로 열도의 왕을 지낸 인물은 오히려 천황으로 등재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일본고대사에 있어서 여자천황은 실제로는 없었다. 기ㆍ기상 여자천황은 실제로 딱 두 인물을 여러 차례 등재한 가공의 천황이고 아라가야왕 아라사등의 딸 둘을 꾸며서 등재한 인물들이다. 일본의 천황으로 꾸며진 인물들은 아래와 같다.  


○ 가야왕족

1. 가라왕 아라사등이 개화(開化), 청녕(淸寧), 선화(宣化) 등 셋으로

2. 아라사등의 장자 예진별명이 반정(反正), 안한(安閑) 등 둘로

3. 아라사등의 중자 천일창이 신무(神武), 숭신(崇神), 응신(應神), 웅략(雄略), 계체(繼體),
                                       숭준(崇俊), 천지(天智) 등 일곱으로

4. 아라사등의 삼자 진언이 2대 수정(綏靖)천황으로

5. 아라사등의 장녀 반장희가 신공(神功)황후, 황극(皇極), 제명(齊明) 등 셋으로

6. 아라사등의 차녀 목화개야희가 추고(推古), 지통(持統) 등 둘로

7. 아라사등의 고손자 동성대왕이 무열(武烈), 흠명(欽明), 서명(舒明) 등 셋으로 등재되어 있고   


○ 백제왕족

1. 초고대왕이 이중(履中), 인현(仁賢) 등 둘로

2. 귀수대왕이 수인(垂仁), 경행(景行), 윤공(允恭), 민달(敏達), 천무(天武) 등 다섯으로

3. 귀수대왕의 장자 무내숙니가 성무(成務), 인덕(仁德) 등 둘로

4. 귀수대왕의 중자 침류왕이 중애(仲哀), 현종(顯宗), 용명(用明), 효덕(孝德) 등 넷으로

5. 귀수대왕의 삼자 진사왕을 안강(安康)천황으로 등재하였고    

기타 3대부터 8대까지 6명은 식별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기사가 없는 공백상태다. 또 위의 반장희를 등재한 황극과 제명은 동일인이다. 황극천황은 서명천황의 황후로서 서명천황이 몰한 후에 황극천황이 되었다가 효덕천황에게 양위하고 효덕이 일찍 죽자 다시 천황이 되어 제명이라는 시호를 하나 더 가지게 된 경우다. 말하자면 천황을 두 번 역임한 것이다. 이리하여 기사가 부실한 6명을 제외하고도 12명으로 34명을 만든 셈이다. 무려 세 배 가까이 늘렸다.      

연대는 빨라야 360년대 정도부터 700년까지 350년 정도인데 서기전 660년까지 밀어 올려서 대략 4배로 늘렸다. 실질적으로 열도의 독자적인 역사는 백제가 망할 때까지는 대화왕조 4대밖에 없다. 그것도 가야의 김씨왕조였고 기간으로 정확히 90년 간이다. 가야계인 동성대왕의 대통합왕국 포함하면 113년 간이다. 그 중에서 응신을 제외한 3명의 왜왕은 아라사등의 삼자와 그 후손들인데도 진언을 제외하고는 천황으로 등재하지 않았다. 천신(天神)이 아니고 국신(國神)이라고 신분차별을 한 것이다. 그래서 대륙사서에 등장하는 왜왕 넷 중에서 응신인 찬왕을 제외하고 진왕, 제왕, 무왕은 서기상의 동시대 천황과 매칭이 안 되는 것이다. 반도에서 열도로 직접 건너간 가야ㆍ백제왕족과 그 후손들만 천신ㆍ천손으로 분류한 것이다. 그래서 일인학자들 중에는 일본의 고대국가 형성시기를 서기 7세기말 정도로 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일인들은 이런 서기의 실사내용을 다 안다는 얘기다. 이런 사정들을 알고서 기ㆍ기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 계보 및 시호분석              

1세 신무천황(神日本磐余彦)        

서기 신대기 하11단 본문에 언파염무노자초즙불합존이 아들을 넷 낳았는데 언오뢰명, 도반명, 삼모입야명, 신일본반여언존 등이고 신일본반여언존이 신무인데 언파불합존의 4자로 나오지만 제대로 된 서열은 이설3에 나온다. 삼모입야명과 순서가 바뀐 것이 맞는 것이다.    

언오뢰명은 신무전기 무오년 5월 8일 기국 조산에서 전사한 인물인데 귀수대왕의 장자 무내숙니다. 백제왕족이지만 칠지도를 들고 후왕으로 도왜하였으나 가야에 협력하였다고 가야인처럼 취급한 것이다. 신무의 형 도반명은 신찬성씨록에 신라왕족으로 아래와 같이 나온다.                              

新良貴; 彦波염武노자草葺不合尊男 稻飯命之後也 是出於新良國 卽爲國主 稻飯命出於新羅國王者祖合(우경황별)      

언파염무노자초즙불합존이란 기다란 이름은 통상 줄여서 언파불합존이라고 부른다. '시라기[新良貴]'라는 성씨는 언파불합존의 아들[男] 도반명(稻飯命)의 후손으로 되어 있는데 도반명은 「신라국출신이며 신라국주도 했다[是出於新良國 卽爲國主]」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시라기[新良貴], 시라기[新良], 시라기[新羅]는 전부 같은 이름이다. 형이 신라인이므로 당연히 신무도 신라인이라는 말이 된다.

이 신라는 경주신라가 아니며 삼국사기 지리지 함안군조의 아시라[阿尸良]>新羅이며 아라가야의 고명이다. 그래서 '아라가야인'이라는 뜻을 가진 아라시또[阿羅斯等 ;아라사등]라는 이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다. 언파불합존은 아라사등과 동일인물이다.  

가계가 언파불합존(=아라사등)> 도반명, 신일본반여언존(=신무), 삼모입야명이며 서기 흠명기 17년 정월조에 「築紫火君[百濟本記云 築紫君兒 火中君弟]」라고 나오는데 '축자군'에 대해 「筑紫國造家이며 繼體紀 22년 12월조에는 筑紫國造 磐井의 아들을 筑紫君葛子라고 쓰고 반정을 繼體記와 釋紀13所引 축후국풍토기에 筑紫君이라고 적고 있다<일본서기/암파문고/2000년/권3/325p/주13>」라고 하므로 이 가계는 축자군(=반정)> 화중군(도반명; 예진별명), 축자화군(신무; 응신)인데 반정이 아라사등이며 화중군이 도반명이고 축자화군이 신무다.    

火君은 신무 형제들이 화공으로 초고대왕을 전사시킨 것을 인연으로 만든 이름이고 신대기 하9단 이설2, 3, 4, 5에서는 도반명이 화명명, 신무가 언화화출견이라는 이름으로도 등장한다. '축자화군'에 대해 「肥(火)國의 호족, 神武記에 神八井耳命은 火君 등의 조라고 되어 있다<일본서기/암파문고/2000년/권3/325p/주11>」하고 성씨록에는 아래와 같이 나온다.    

多朝臣; 出自諡神武皇子 神八井耳命之後也(우경황별)            
火;       多朝臣同祖 神八井耳命之後也(우경황별)
肥直;    多朝臣同祖 神八井耳命之後也(대화국황별)

오호.노.아소미[多朝臣]는 오호.노.아소미[太朝臣]와도 같고 고사기저자 태조신안만려도 신무의 후손이다. 호[火]는 호[肥], 오호[多/太]와 같은 성씨다.    

서기 민달기 12년 7월조에 「 火·葦北國造(화위부국조) 阿利斯等(아라사등)의 아들 달솔 日羅(일라)」라고 나오고 시세조에는 「火·葦北國造 형부차부 阿利斯等의 아들 달솔 日羅」라고 나온다. 화·위북국조라는 것은 화국과 위북국을 관장하는 집안이란 뜻이고 형부차부란 법과 군을 장악하고 있다는 뜻으로 고대엔 곧 인 것이다. 화국은 지금의 구마모도현 서부지역이고 위북국은 지금의 구마모도현에 해당하며 아시[葦]는 '아침'이란 뜻이고 위북국은 北新羅라는 의미다. 이것은 구주 서남부에 있던 구주신라북쪽에 있는 신라라는 뜻이며 성씨록 '시라기[新良貴]'조에 나오는 신라는 이 두 신라와 본국인 아라가야의 고명 신라를 가리키는 것이다. 구주신라는 고사기 응신기에 실려 있는 천지일모의 신라국이며 서기 수인기 3년 시세조의 신라왕자 천일창(일라,예진별명,도반명,화중군)이 개척한 신라국이다.        

서기 민달기 12년 7월조를 계속 보면 일라가 모반을 하여 죽이려고 하는데 일라의 몸에서 화염 같은 빛이 나서 두려워 못 죽이다가 12월 그믐날 그 身光이 사라질 때 죽였다고 나온다. 日羅라는 이름은 바로 "몸에서 화염 같은 빛이 난다"는 의미를 이름으로 표현한 것인데 "빛이 사방으로 발산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 화염이란 말도 연결고리인데 성씨록에서 찾아보면 아래와 같이 나온다.    

爲名眞人; 宣化天皇皇子 火焰王之後也(우경황별)
爲奈眞人; 宣化皇子 火焰王之後也(섭진국황별)
川原公;    爲奈眞人同祖 火焰親王之後也(섭진국황별)  

민달기의 일라가 선화천황의 황자로도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고사기 수인기에 천황이 황후에게 아이의 이름을 지어라고 하자 「볏짚성[稻城]을 태울 때 火中에서 태어났으므로 호무지와께.노.미꼬[本牟智 和氣御子]로 하겠다」라고 하였는데 火中이 키워드로서 이 인물이 위에 나온 축자군(반정,아라사등 )의 장자 화중군(火中君; 도반명,예진별명)이며 축자화군(신무)의 형이다. 호무지[本牟智]는 호무쯔[品牟都], 호무쯔[譽津]라고도 하는데 '무쯔[牟都]'는 가야왕족 수직돌림자 '마다'계열 이칭이며 호[本/品]는 호[火]와 같기도 하고 존칭이기도 하다.  

또 고사기 개화기에 대오왕의 아들에 서립왕과 토상왕이 있다 했는데 서립왕을 품지부군(品遲ㅇ君)의 조라 하였고 이 호무지[品遲]도 호무쯔[品牟都/譽津], 호무지[本牟智]와 같은 이름으로 서립왕이 곧 화중군이기도 한 것이다. '새벽 서(曙)'는 아스까[飛鳥] 직전의 동성대왕시대를 가리키고 "새벽을 세운 왕" 즉 서립왕은 동성대왕의 증조부 예진별명이기 때문이다. 예진별명은 예전별명인 응신천황의 형이다.      

토상왕의 우사기[兎]는 고사기 신대기 대국주신조의 백토설화에 나오는 가야계를 가리키는 키워드이며 '上'은 가야계 중에서 가장 먼저 왕이 된 응신을 가리키는 키워드다. 토상왕이 응신이기 때문이다. 가계가 대오왕>(서립왕, 토상왕)이다. 오호마다[大오]왕은 오호마다[大派]왕과 같고 "큰 末多王"이라는 뜻이며 아라사등의 이칭인 고노마다간기[己能 末多 干岐]와도 같은 뜻의 이름이다.  

선화천황의 또 하나의 아들을 성씨록에서 찾아보면 아래와 같이 나온다.

多治眞人; 宣化天皇皇子 賀美惠波王 之後也(우경황별)        

화염왕이 예진별명이므로 그 아우 하미혜파왕은 응신이며 선화천황은 아라사등인 것이다. 다지[多治]는 서기 수인기 3년 3월조의 이설에 등장하는 淸彦의 아들 다지마모리[田道間守]의 다지[田道]를 한자만 바꾼 것이며 인덕기 53년 5월조에 등장하는 상모야군의 조 다까하세[竹葉瀨]의 아우 다지[田道]와 동일인물이다. 다까하세가 예진별명이고 다지는 예전별명 즉 응신이다. 가계가 선화천황>(화염왕, 하미혜파왕)이며 淸彦(청언)>전도간수이며 청언은 서기 신대기 상8단 팔기대사설화에 등장하는 소잔명존(=아라사등)의 이칭 淸이다. 청의 아들에 사루히꼬[坂輕彦; 예진별명], 야시마[八島; 예전별명,응신], 시노[篠; 진언]가 있는데 사루히꼬는 예진별명이고 야시마는 대팔주를 최초로 통일한 예전별명 즉 응신이며, 시노는 그 아우 珍彦이고 신대기 하11단의 삼모입야명인 것이다.          

서기 선화기 원년조에 보면 화염황자가 있고 아우에 상식엽황자도 있는데 일명 '椀子'라고 부르고 있다. 별명은 전부 키워드로서 연결고리로 쓰이므로 성씨록을 찾아보면 아래와 같이 나온다.      

三國眞人; 諡繼體皇子 椀子王之後也(우경황별)  
三國眞人; 繼體皇子 椀子王之後也(산성국황별)
酒人眞人; 繼體皇子 兎王之後也(대화국황별)      

선화천황의 아들 상식엽황자(=椀子)가 계체천황의 아들로도 되어 있고, 고사기 개화기에 나오는 대오왕의 아들 토상왕과 '주인진인'조의 계체천황의 아들 토왕도 같은 인물이다. 上은 상식엽황자의 上과 같은 뜻으로 가야계 중에서 가장 먼저 왕이 되었다는 뜻으로서 응신기 22년 9월조에는 上道縣이라는 지명으로도 나오고 응신의 후손 성씨 중에 上道臣으로도 표현되고 있으며 응신기 13년 9월조에는 上枝라는 말로도 표현하고 있다. 가장 늦게 왕이 배출된 장자집안 예진별명의 후손성씨에는 下道臣이 있다.        

마리꼬/마로꼬[椀子]는 뜻이 '그릇'으로서 응신의 별칭인 게히[氣比/사飯]와 같은 뜻이다. 응신이 완자와 동일인물이라는 암호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신무전기 무오년 9월조에는 귀수대왕과의 근강전투가 기록되어 있고 기미년 3월조에는 「이 달에 유사에 명하여 제택을 경영하게 했다」라고 나오며 이것은 실사상 서기 389년이고 응신이 즉위하기 전년에 해당한다. 이 무렵 아신과 백제·왜분립을 위한 밀약을 맺는 것이 서기 황극기 3년 정월조에 중신겸자와 중대형의 스토리로 꾸며져 실려 있다.  

서기 신무기 원년 정월조에는 신무를 시어천하지천황(始馭天下之天皇)이라 부르고 있는데 "처음으로 천하를 다스린 천황"이라는 뜻으로서 신무가 시조라는 의미인데 왜의 최초의 왕조는 서기 390년에 성립된 대화왕조이므로 그 초대왕 응신과 신무가 동일인물인 것이다. 그래서 신대기 하11단에는 신무의 어릴 때 이름이 사노[狹野]라고 하고 있는데 이것은 응신의 본명 讚을 열도어로 음독한 사노[讚]와 같은 것이다.              

신무천황은 가야왕 아라사등의 중자로서 대화왕조를 연 응신을 달리 꾸민 인물 중의 하나다. 신라왕자 천일창이 가져온 신보 중에 '이사사[膽狹淺]'의 大刀가 있는데 응신의 별칭 '이사사[去來紗]'별신과 같아 천일창이 곧 신무이기도 한 것이다.  

출처 블로그 > 또다른 세계
원본 http://blog.naver.com/wjdrudtkdsla/8001095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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