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한국 24 금제단 센터 뉴스레터 180호
인터넷뉴스팀 2006-03-03 16:54:44
아리랑은 원래 ‘알이랑’이다(알이랑→아리랑). ‘알이랑’은 ‘알’과 ‘이랑’으로 구분된다. ‘알’은 성경의 ‘엘(EL)’, 아랍인의 ‘알아(알라)’처럼 ‘하느님’을 뜻하는 단어다. ‘하느님’이라는 유일신의 신명(神名)은 최초에 ‘알’이었다. 그런데 ‘알’ 앞에 ‘한’이라는 관형사를 붙이고, ‘알’ 뒤엔 ‘님’이라는 접미사를 붙여 ‘한알님’이라고 했다. 이 ‘한알님’이 한알님→하날님→하늘님→하느님으로 변한 것이다. 그러므로 ‘알’은 ‘하느님’을 의미한다. ‘이랑’은 ‘~와 함께’라는 토씨로서 영어의 ‘With’에 해당한다(예: 갑돌이랑= 갑돌이와 함께). 그래서 ‘알이랑’은 ‘하느님과 함께’(With God)’라는 뜻이다. ‘알이랑’은 종교적인 말로서 우리 겨레의 원형이 유일신 하느님께 제사하던 제천민족, 곧 천손민족(天孫民族)이라는 사실을 한 마디로 알려주는 선민 한국인의 키워드(Keyword)이다.
고개를 넘어 간다
그렇다면 ‘고개를 넘어 간다’는 무슨 뜻일까? 그것은 고대 한민족이 이란고원을 지나 파미르고원을 넘어, 천산산맥과 알타이산맥을 넘어갔다는 말이다.
실로 많은 고개를 넘은 것이다. ‘파미르 고원’을 지나(支那) 사람들은 총령(蔥嶺)이라고 하는데, 이는 한국어 파(蔥) 마루(嶺) 그대로 파마루(파미르)이다. 지리학에서도 역시 파미르 고원(蔥嶺)에서는 파(蔥)가 많이 야생한다고 한다. 파미르 고원은 ‘파마루’로서 파(蔥)가 많이 자생하는 산마루(嶺)이기에 파마루(파머루) 고원인 것이다. ‘파미르’라는 지명의 어원이 한국어 ‘파마루’이다. 이러한 언어적인 연관성은 고대 한국인이 참으로 ‘파미르고원’을 지나 천산산맥을 넘고 알타이산맥을 넘어서 동방으로 이동해 왔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고고학적 증거이다. 알타이 고개를 넘어서 동쪽으로 조금 더 이동하면 시비리(시베리아) 벌판이 펼쳐지고 바이칼 호수가 나온다. 우리 겨레는 이 바이칼 호수를 거쳐 동쪽으로 계속 이동하다가 마침내 아시아 동녘에서 제일 높고 밝은 산인 한산(犬白山→白頭山)에 이르러 배달나라를 세웠던 것이다. 백두산 산정에 올라 노아처럼 창조주 한님께 천제(天祭)를 드린 후에!
알이랑 알이랑 알 알이요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간다
따라서 이 노래 가사를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이요
하느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 간다.
(with God, with God, with God, just God.
accompany with God, I will take over the mountains.)
‘아리랑’은 빛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공경하던 고대 한국인이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 동방의 이 땅에 오기까지 수많은 산과 언덕과 고원들을 넘어 오면서 부른 ‘찬송가’였던 것이다. ‘아리랑’이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 그토록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겨레의 역사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해온 민족의 숨결이며 역사의 맥박이기 때문이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란 누구를 뜻할까? 문맥상 그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 된다. 왜냐하면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간다”는 바로 앞의 가사는 “하느님과 함께(with God) 고개를 넘어 간다”는 뜻으로서, 유일신 하느님을 섬기는 자들의 찬송이며 믿음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란 하느님을 버린 자들, 곧 배역자들을 의미한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는 것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에 대한 악담이나 저주가 아니다. 만약 노래 가사가 “나를 버리고 ‘가는 놈’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고 했다면, 그것은 실제로 발에 병이 나라고 욕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가사는 “가는 놈”이 아니고 “가시는 님”이다. 따라서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는 것은 발병이 나서라도 더 떠나가지 못하고 나의 품으로 되돌아오라는 회귀원망(回歸願望)의 연정(戀情)을 노래한 것이다. 즉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버린 자들을 향해 다시 순수한 하느님 신앙으로 되돌아 올 것을 사랑으로 촉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겨레의 노래 ‘알이랑’에는 ‘하느님을 위한 열정’과 ‘잃은 자를 위한 연민’이 함께 깊이 배어 있다. 즉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얼이 담겨 있는 것이다.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
아리랑의 2절은 청천 하늘의 잔별만큼이나 우리 가슴엔 수심도 많다고 노래한다. 왜 알이랑 찬송을 부르며 동방으로 천동(遷動)하던 천손민족(天孫民族) 우리 조상들의 가슴엔 그리도 근심이 많았을까?
그것은 1절의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 때문이었다. 즉 유일신 신앙(제천신앙)을 저버린 자들이 제천민족(祭天民族) 우리 조상들의 커다란 근심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세상 근심과는 차원이 다른 ‘거룩한 근심’이었다.(고후7:10)
이와 같은 역사적 사연을 간직한 알이랑 찬송은 우리 조상이 동방의 산지를 넘어 이 땅에 오기까지 끊임없이 불리어졌다. 그리고 우리 겨레의 삶 가운데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상 자세히 살펴본 바처럼 아리랑은 ‘찬송가’이다. 겨레의 노래 ‘아리랑’은 현존하는 인류 최고(最古)의 찬송가인 것이다.
우리 겨레는 열방 모든 족속들 가운데 민족사를 ‘알이랑’ 곧 ‘하느님과 함께’라는 유일신 신앙(제천신앙)으로 시작한 단 하나의 천손민족(天孫民族)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한국인의 원형이다. 우리 겨레의 근본사상은 ‘이랑 정신’이다. ‘이랑’은 ‘하느님과 함께’(with God)라는 뜻이다. 따라서 그것은 ‘하느님 중심 사상’이요, ‘신본주의 정신’이다. 홍수 후에 그렇게 철저한 ‘유일신 신앙’을 갖고서 동방의 산악지대(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을 넘어 아시아로 천동(遷動)한 족속은 과연 누구였을까?
성경은 그 거룩한 백성이 셈의 현손(玄孫) ‘욕단’ 족속이라고 알려준다. 왜냐하면 성경에 욕단의 가계는 하느님께 선택받은 종족이며(창10:21, 25), 또한 천손민족(天孫民族)인 그들은 홍수 후 ‘산지’를 넘어 ‘동방’으로 이동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창 10:30). 바로 그들이 알이랑민족 우리 겨레의 직계조상이다.
유석근|부천 상동중앙교회 담임목사. <이스라엘의 구원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