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과 바이칼



알타이산의 신흥종교 ‘부르한이즘’이 있다. 육당은 이런 부르한 하느님 신앙권을 ‘불함 문화권’이라고 했다. 《산해경》〈대황북경 17〉에 牘老纛?怠탕仄?不咸有肅愼之國)藍繭遮?첫 기록이 있다.

글공부를 하지 않았던 그들은 숙신, 읍루, 물길, 말갈이라 했으며 차차 북쪽으로 쫓기어 만인과 섞이게 되었다. 여진도 다 같은 후손이다. 또한 숙신은 쥬신(主神)으로 읽기도 하였다. 따라서 주신主神이었던 단군(황제헌원)을 말한다.

러시아의 연해주지방에 사는 소수민족인 나나이족이나 우데게족은 모습이 우리와 닮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도 그들의 조상들이 곰과 호랑이와 연관이 있다고 한다. 만주에 사는 중국사람들을 ‘마우자馬牛猪(말, 소, 돼지)’라고 불렀다.

바이칼 호 동남쪽으로 가장 길게 뻗어 있는 유명한 홍류 산맥 속 우드 강 발원지, 거기에 부르한의 원형인 홍류 오보(서낭당)가 제일 잘 보존돼 있다. 허저(赫哲)말로 瀆層約す? 자체를 '부르칸(Purkan)藍繭箚?한다.

홍류 (붉은 버드나무)는 신강성 나포박에도 유명하며 그곳에서도 신성한 나무로 숭배되고 있다. 고주몽의 어머니인 纛??는 瀆層縟이라는 뜻의 이름인데 최희수 교수(연변대)는 그대로 만주인들의 牘링躍떳뚫 모태회귀 신앙과 직관된다고 했다. 햇빛이 여성의 육신에 내재화되어 천손을 잉태한 모태가 될 경우에는 逃歷꼈봅澁喧캣걍侵(장춘, 1926)에서 讀떼굣瀚라고도 불린 홍류로 상징되는 보드마마가 되는데, 바로 이 '보드마마(柳母)'가 牘罐G奈인 이들의 모성 하느님이 된다. 

고원지대 붉은 버드나무 


몽골 여시조 알랑 고아나 유화, 북부여 동명성왕의 어머니, 고리(槁離)국의 시비, 알타이산지 파지리크의 얼음 공주 여사제도 같은 유형일 수 있다. 홍산문화 말기(BC 3500~3000) 우하량 여신 묘(廟)의 여신도 이런 장대한 스키토·시베리안의 여신-부르한 신앙과 접맥될 수 있다.

牘罐G奈은 천손의 모태가 된다. 즉 惇돔藍?잉태하는 모태剌關??沌求윱桐, 곧 毒兆봉岵?하느님藍?된다. ‘서왕모’는 우주 가을철 추수하러 오는 왕을 잉태하는 어머니며 이는 마고여신과 동일하다. 

牘罐G朞ㅔ?檎의 敦?檎을 일종의 버드나무로 보아 牘罐G?不咸)藍?이와 관련시킨다. 원래 시베리아 타이가에 살았던 몽골 겨레의 오보도 실은 처음에는 돌이 아닌 버드나무로 만들어서 버드나무 오보(borgasan oboo)라고 했다.

코리족 시조 탄생 설화의 무대 알혼 섬 부르한-하느님 바위가 자리 잡은 마을은 후지르 이다.

부루의 어원은 ‘불’ 또는 ‘푸루’라고 발음되면 ‘풀’로 된다. ‘한’은 하늘에서 온 사람인 천신을 뜻한다.32)

‘불한’은 태양신 즉 불의 신이 되고, ‘풀한’은 초목의 신이며 목축의 신이 된다.

추운 지방 사람들은 태양과 불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환영하며 불의 색인 붉은 색은 매우 숭배되는 대상이었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은 혁명이전부터 존경받는 곳이었다.

따라서 박달나무는 붉은 땅 나무라는 설도 있다. 실제로 구채구의 박달나무는 껍질이 모두 붉은색이었다. 따라서 《한단고기》에 등장하는 주수朱樹는 화수火樹와 동일하며 목화木禾역시 목화木火, 자작나무를 백화수白樺樹라고 하는데 화수樺樹는 원래 화수火樹를 한자로 적으면서 변했을 가능성이 있다. 박달나무는 자작나무과에 속하며 자작나무가 남쪽에 내려가면 박달나무가 된다.

몽골에서 토끼를 타루박이라 하는데 거꾸로 하면 ‘박탈’이 된다. 마고여신에 해당되고 그 남성성이 황제헌원이 되고 그 여성성이 치우가 된다. 밝달은 밝은 달로 해석하면 보름달이 되고 달 속에 옥토끼가 있다. 계수나무는 달 속에 있으며 월계수이다. 이난나 신화에 등장하는 훌루우프 나무이며 아폴로가 사랑한 다프네가 변한 나무이며 월계수는 버드나무일 가능성이 매우 많다.

화수華水란 말은 중국민족인 하화족의 나무라는 뜻이다. 따라서 중국 한국 몽골 시베리아 민족 모두 동일 조상의 민족임을 알 수가 있다.

만약 붉은 버드나무를 숭배하는 것과 붉은 껍질의 박달나무를 숭배하던 것이 관습이 되어 박달나무의 북쪽변형인 자작나무를 숭배하게 되었다면 이들이 바이칼 등 북쪽에서 한반도로 이동한 민족이 아니라 오히려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한국 사람들은 흰자작 나무를 신수로 숭배하는데 일본사람들은 신라를 시라기白木이라고 불렀다.

운남성 아래 땅은 매우 붉다. ‘밝다.’ ‘붉다’는 모두 ‘불’이라는 어원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박달’이라는 뜻은 ‘밝은 땅’뿐 아니라 ‘붉은 땅’이라고도 풀이할 수도 있다.

치우 역시 ‘붉은 악마’이며 울란바토르는 ‘붉은 영웅’을 뜻한다고 한다. 빨강색은 예전부터 악마를 무찌르는 역할을 해왔다.

용왕의 딸 하백녀 버드나무는 바로 물과 직관된다. 물을 뿌려주면 잘 자라는 순록의 뿔(전병태 교수 보고)이나 쌍어문의 가야 물고기와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오시리스의 상징은 붉은 버드나무이다. 하늘의 별자리는 류수柳宿이고 이는 버드나무별이다.

‘부루 한’은 단군조선의 2대 단군의 이름이 부루(BC 2,240)이다. 단군왕검과 팽우彭虞의 딸 하북녀河北女가 처음 낳은 아들이 부루夫婁이다.

얼마 전까지도 각 가정의 부엌에는 부루단지라는 것을 놓아두고 있었다. 이 단지는 꼭 부엌에 두고 밥을 할 때마다 쌀을 한줌씩 덜어서 그곳에 보관하였다가 그 쌀은 반드시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는 용으로 썼다. 이 부루 단지는 부루단군으로부터 생긴 것이다.

그런데 바이칼호수를 여행하던 중 각 주택마다 모퉁이에 작은 선반이 있고 단지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틀림없는 부루 단지이다. 가정에서 부엌인 화로단지를 지키는 여신의 이름이 헤스티아인데 이 여신은 제우스신의 장녀로 되어있다. 즉 부루단군은 여성이었고 헤스티아였다. 부루단군은 불신이면서 동시에 물신이었다. 즉 태양과 달이 합해진 존재였다.

22대 색부루 단군(BC 1,285) 역시 샤카(스키타이)족의 부루라는 이름의 단군이다.

또한 북부여의 해모수의 아들이 ‘해부루’인데 ‘해’는 ‘한’과 동일한 뜻이므로 해부루는 ‘부루한’이 된다. 가섭원 부여(동부여)는 결국 고구려에 복속되게 되므로 몽골과 흉노는 모두 고구려임을 알 수가 있다.33)

몽골의 어원은 ‘몽 구리’인데 몽은 ‘묘苗’의 전음이다. 즉 묘족은 몽, 마오, 무, 만 등으로 읽었다. 묘는 원래 모내기 할 때 쓰는 모를 뜻한다. 따라서 논농사를 짓는 묘족이 북상한 것이다.

구리는 구려이므로 몽구리는 묘족이 세운 구려(개와 말)국이라는 말이다.

《한단고기》기록에 따르면, ?대 오사구 단군은 동생 오사달을 몽골리의 칸으로 삼았다緞?기록하고 있는데, 몽골은 8세기 무렵 북만주 흑룡강 상류인 에르군네Erg웢e강 유역에서 몽올실위蒙兀室韋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오사달의 후손 홀필열忽必烈이 건국했다.

<흠정만주원류고 제7권> 족의 이름은 징기스칸 이후에 붙여진 이름이고 그 전에는 한汗족이라 칭했고 한汗은 환桓에서 변천한 이름이며 그들 스스로 하느님의 자손들이라고 주장한다. 몽골 징기스칸 공항에는 Gingis Kha-Ann Airport 라고 쓰여 있다. Kha-Ann이라는 철자는 카인을 나타내고 있다.

환웅은 시리우스에서 온 우주인으로 시리우스인은 푸른 피부를 가졌으므로 푸른 개(늑대)로 비유되기도 하고 지구에서 살다가 태양빛을 받아서 검은색으로 변했다고 하므로 검을 려를 쓴다. 고구려는 외몽골 오르콘orkhon에 세워진 옛 돌궐비문에 B쉓li라고 써있다. 옛 터어키에서 고구려는 M쉓li 맥구려貊句麗라고 표현하였다.

몽골어는 주어+목적어+동사로 되어있는 한국어와 동일한 구조이다. 또한 몽골의 전통언어인 파스파문자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적는 글자였으며 한글과 매우 유사하며 이 글자는 위구르의 글자였다고 한다.

몽골은 1920년경 마지막왕의 시기에 티벳인들이 통치했다고 하며 지금의 종교도 티벳불교를 믿고 있다. 라마교(티벳불교)는 징기스칸 사망 후 들어온 것이다.

티벳불교는 본교와 불교가 합해진 것인데 몽골의 사원에서는 합체불의 표현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이들은 본교의 영향이 별로 유입되지 않은 티벳식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남녀합체불은 환인桓因을 뜻한다.

몽골인의 조상에 대한 전설은 하늘에서 푸른색의 늑대와 흰 사슴이 내려왔다고 한다. 제주도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은 흰 사슴 호수이다.

흰 사슴에 대한 이야기는 티벳종족의 전설에도 있다.

한국민족의 조상은 레무르(여우원숭이)의 이름을 따서 레무리아라고 했고, 꼬리가 아홉으로 갈라진 구미호가 조상이다. 백족의 왕들은 단씨였고, 이는 단군의 성씨였다.

몽골사람들은 몽골지역에 사자가 살지 않지만 이들은 사자를 숭배하고 있고 사자를 ‘시자’라고 발음하고 있다. 따라서 ‘사’의 발음이 ‘시’로 바뀌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환웅의 표현은 수많은 곳에서 사자-새로 표현되고 있다.

스키타이는 특히 초승달무늬가 많이 있다.

한반도에 도착한 치우는 북상하면서 동시에 산동반도까지 점령하여 그곳에 치우의 무덤이 있고 그의 양아들이며 후계자인 소호금천의 일족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서 흑룡강을 타고 다시 바이칼호수까지 점령한다. 그리고 조상들이 걸어왔던 길을 반대방향으로 되돌아가서 위구르 지역까지 진격하여 결국 우루무치 근처에서 살던 서호족인 훈족들이 이들에게 밀리어 유럽으로 진격하게 되고 훈족들의 진격에 게르만 민족들의 대이동으로 로마를 멸망시키게 된다.

이 건조한 고원인 몽골리안 루트 지역에서는 햇빛은 금빛이고 부르한 모태는 금빛을 하늘로 품어 천손인 알탄우룩(황금씨족)-김(金)씨를 잉태한다. 그래서 스키토· 시베리안에게는 김씨가 고유명사가 아니고 천손-임금 핏줄이라는 보통명사다. 물론 아쿠타도 칭기스칸도 ‘알탄우룩’(Altan urug: 황금씨족)-김씨다. 지금도 만주족 황손들은 아이신교로(愛新覺羅: 황금겨레)로도 쓰고 김씨로 표기하기도 한다.

김알지의 알지閼智 역시 알타이어에서 금을 의미한다. ‘알타이’도 金이라는 뜻이다.

소호금천은 황금의 하늘 신이며 김씨의 조상이다. 즉 소호금천의 시기에 한반도로부터 북상한 민족이 몽골의 선조가 된다.

철기시대는 BC 2천년 경으로 알려져 있는데, 주로 알타이, 몽골지역에서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이는 한반도 암각화의 철기 흔적과 비교하여 훨씬 늦은 시기이다.

인간의 역사는 5,200년을 주기로 되풀이 되어왔는데, 한 주기를 거치는 동안 인류는 동일한 민족이동의 과정을 거쳐서 자신이 왔던 길을 반대로 돌아서 원점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즉, 13,000년 전에 바이칼호수에서 살다가 흑룡강을 타고 한반도에 정착했던 한민족은 수많은 다른 루트를 거친 다음 청동기시기에 다시 한반도로부터 북상하여 바이칼호수에 이르고 그곳으로부터 천산위의 발카시 호수를 거쳐서 터어키로 이동하게 된다. 이러한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역사를 원시반본, 다물, 복본이라고 한다.

바이칼 알혼섬에는 단군신화와 매우 흡사한 샤머니즘의 신화인 ‘게세르’가 아직까지 샤먼들의 입으로 전해져온다.

알혼은 부리아트어로 恬貧떳4夢 라는 뜻이다. 부여라는 말과 발해라는 말도 브리아트와 관련되어 보인다. 부리아트족 전설에 따르면 알혼섬의 주인은 독수리이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독수리를 숭배한다.

몽골은 예전부터 독수리에게 시체를 던져주는 조장을 하였다고 한다. 이 전통은 티벳의 오랜 전통이다. 즉 물어뜯는 사자 새와 뜯기는 달 황소의 관계를 명확히 들어내는 우주의 순환의식이다.

이것은 견우인 환인桓因이 독수리인 제우스환웅桓仁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우주의 순환의식과 동일하다.

특히 칭기스칸은 1,167년경 바이칼호 서부해안가 근처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그의 어머니가 바이칼호수의 가장 큰 섬인 올혼(olkhon)섬의 동쪽 동바이칼 바르구진(barguzin)의  알혼섬으로 이주하여 왔고 사후에도 알혼섬에 무덤을 썼다고 전한다.

코리족의 ‘코리’는 순록이라는 뜻인데, 그들이 주로 있었던 곳이 북극해 쪽이다. 이들이 예니세이강이나 레나강(옛날에는 바이칼과 연결돼 있었다)을 따라 바이칼로 온 것으로 보인다.

에벤키족의 ‘에벤’은 목초지라는 뜻이다. 레나강변에 사는 그들은 새를 조상의 영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새를 죽인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사람들은 나무에 울긋불긋한 천 조각을 걸어놓고 가족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 이들 역시 곰 토템이 있다. 그리고 오룬춘족의 ‘오룬’은 순록이라는 말이다.

몽골에서는 한반도를 '솔롱고스', 즉 瀆チ側냅?나라鸞箚?부른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즐겨 입는 옷은 무지개의 일곱 색깔 색동옷이다. 또한, 비파 청동검은 몽골에서도 발견된다.

몽골의 시조 禿羌馨藉팹는 禿틘??고아鸞箚?할 수 있다. 아리랑고개는 티벳의 아리고개이므로 아리에서 한반도를 거쳐서 북상한 경로를 설명해주고 있다. ‘고아’는 ‘미인’이라는 뜻이다. 한국은 원래 신선들이 사는 나라였고 이들은 도통하지 못한 자들로서 한국에서 쫓겨 난 자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고향이면서 항상 그리워하는 이상향이 한국인 것이다.

몽골인들은 한국을 현재는 솔롱고스라는 말보다 가오리라는 말을 더 사용하는데 가오리는 동쪽 해뜨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또한 도곤족의 신화에서는 놈모라고 표현되는 물고기들인데 이는 가오리 모양처럼 생겼다. 우리나라 연은 대체로 가오리처럼 생겨서 가오리연이라고 하는데 도곤족이 그린 물고기 인간인 놈모들이 꼭 가오리처럼 보인다.

또한 가오리연은 예전에 주로 통신수단으로 활용하였다. 그리고 가오리가 변한 기러기 천둥오리 역시 전서들을 전달해주는 전령으로 사용하였다.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와 어둠의 신인 마이어 사이에서 태어난 전령의 신이 바로 헤르메스이고 환웅이 바로 헤르메스였다.

《장자》 〈소요유〉에서는 북명이라는 바다 속에 사는 곤이라는 물고기가 붕이라는 거대한 새로 변하는데 이 물고기는 가오리임이 틀림없다. 가오리의 모양이 마치 커다란 새가 날개를 편 모습이다.

흉노문화에서 대표적인 동물문양이 바로 일각수이다. 일각수는 몽골사전으로는 빌게트거르거스 또는 힐렌거르거스로 표현되는데 중국에서는 이를 기린麒麟이라고 상상속의 동물로 표현했다.

몽골에서 문양은 말의 머리에 사슴의 몸통을 하고 있으며 말 이마에 하나의 외뿔이 나있다. 이 동물은 날개로 표현되기도 하고 주로 구름과 함께 그려져 있으므로 하늘을 나는 동물임을 알 수가 있다. 서양에서는 유니콘으로 표현된다. 구려족句麗의 려麗는 당나귀려麗라고 하는데 아래에 사슴록鹿이 보이므로 이 글자는 유니콘을 표상한 것으로 보인다.

시리우스에서 내려온 환웅은 지구에서 살다가 다시 캔타우리라는 별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지구로 내려온다. 그래서 얼굴이 말 모양으로 생긴 것이다.

몽골항공도 천마가 상징이며 울란바토르 호텔도 천마를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바이칼 호수주변 바이칼 박물관 앞 탑이 있는데 그 꼭데기에도 천마가 조각되어 있었다.

말을 신성시하는 부리아트족의 현관문 안쪽 위로 말굽쇠가 걸려있다. 말굽쇠는 여전히 집안의 안녕을 지켜주는 수호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었다. 부리아트족은 집안에 날개달린 말을 그려넣은 천을 중앙에 걸어놓고 가정의 수호신으로 숭배하기도 한다. 말은 행운을 상징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애마(愛馬)를 순장하는 풍습이 있다. 몽골은 우리와 같이 백색 숭배의 풍습이 강하다(몽골이 훨씬 더 심하다).

말뚝을 세우는 장소는 반드시 길목이거나 성스러운 장소이어야 했다. 또한 이 말뚝은 자기 가문을 표시하는 상징이기도 하여 가문마다 다르게 장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가운데 말뚝은 원래 남근석이며 헤르메스인 환웅의 상징이다.

纛?F? 로 불리는 이 팔각집의 출입문은 반드시 남동쪽으로 내야한다. 팔각으로 지은 이유는 동서남북방향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해시계 역할로도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8은 마고의 상징 숫자이다. 창문은 내지 않는다. 집 한가운데에는 陶祺0桐 라고 부르는 자작나무 신목이 가운데 뻥 뚤린 지붕위로 솟아나 있다. 

진주목걸이는 부의 상징이었는데, 이것은 실크로드를 통해 전해진 것이다. 커다란 진주 하나가 소 세 마리에 해당되기도 하였다. 진주는 모든 보석 중에서도 최고로 여기는 보물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조상이 바닷가에서 살던 종족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신석기시대 후기 문화로 연해주에 자이사노브카 문화라는 것이 있는데, 번개무늬 토기가 특징이며 두만강과 압록강 유적에 신석기시대 후기에 집중적으로 확인되었다. 또 한반도 동해안·남해안 지역과 제주도와 일본에 신석기시대 전기의 평저 융기문토기가 널리 사용되었는데, 이런 토기는 아무르 강 중류지역에서도 보인다.

암사동과 북한 평양에서 발견된 빗살무늬 토기는 시베리아의 것과 상당히 다르다. 그런데 이런 토기는 발해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농경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석기도 다르다. 대표적인 것이 반월형 석도인데, 산동반도나 황하 하류 등에서 다 나오지만 시베리아에는 없다.

‘옥결’과 같은 옥으로 만든 귀고리는 운암리에서 나온 것이 BC 6,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르쿠츠크나 블라디보스토크 박물관에서도 똑같은게 나오지만 우리보다 2,000년이 늦다.

평안남도 성천군 백원리 9호 고인돌에서 발굴된 세형동검의 제작년도는 10세기나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BC 1,400년경으로 밝혀졌다.

신라금관의 형태는 자작나무를 형상화한 것이라고도 하며 이는 사슴의 뿔 형태와도 닮았다. 보통 시베리아 무당의 옷과 머리두건에는 사슴뿔이 있다. 사슴뿔의 전통은 보통 새와 관련된다. 녹각장식이 삼국시대 관모의 토대가 되었다.

사슴문양은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는 41마리가 나타나고 울산 두동면 천천리 암각화에서는 사슴이 대거 등장한다. 이들 그림들은 신석기시대말부터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를 거쳐서 나타나고 BC 5,000~BC 2,000년경까지 그린 것으로 보인다.

울산으로 흐르는 태화강 상류 대곡리 반구대암각화는 BC 6,000년경 신석기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이곳에는 고래전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수많은 종류의 고래들이 매우 정확한 특징으로 그려져 있다.

특히 사람들이 이 고래를 잡거나 잡은 고래를 배에 연결해 끌고 가는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고래 그림위에 육지동물들이 덧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이곳은 육지 이전에 깊은 바다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현재 이곳은 바다로부터 26㎞나 내륙이다.

수많은 고래와 함께 호랑이, 사슴, 양, 멧돼지, 표범, 여우, 늑대, 족제비 등 75종 200여점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곳의 그림들 역시 라스코 동굴그림과 마찬가지로 학자들의 의견과는 반대로 식용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이 동물들을 많이 잡게 해 달라는 기원으로 그린 것이 아니다.

호랑이나 표범 등 수많은 맹수는 식탁에 오르기에는 너무나 부적절한 동물이다.

사슴의 그림이 매우 많이 나타나는데, 이는 라스코동굴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슴은 스키타이의 매우 중요한 상징이었다. 맷돼지는 페르세포네의 상징이었다. 고래는 고래과 영장류가 변한 것으로 고래와 소는 밀접한 유전적관계가 있다고 밝혀졌다. 만약 고래는 소가 변한 것이라면 고래 그림들은 라스코 동굴속의 소 그림들과 정확히 같은 의미로 읽혀질 수가 있다. 이는 순환적 우주의식의 상징이며 소는 ‘쇠고기’에서 처럼 쇠로 발음되므로 쇠金, 새鳥와도 통하고 있다.

이 그림들 중 14개의 인간그림이 있는데 대부분 제사장이 기도하는 측면 그림이다. 그림 중 가장 높은 곳에 기도하는 인간의 모습 옆에 거북이가 그려져 있다. 반구대그림을 설명하는 학자들이 크게 간과하고 있는 것은 거북이 그림이다. 거북이는 마고 환인과 염제신농의 상징이다.

기도하는 인간의 머리는 새의 머리처럼 보이고 곧추선 성기가 새의 부리처럼 생겼다. 이 인물의 형상은 라스코동굴 우물이란 곳에서 발견된 소의 뿔에 받힌 새머리인간의 모습과 형태나 양식에서 놀랍도록 일치하게 보인다.

부산 동래패총에서는 조개껍질 속에 고래뼈들이 발견되었다.

특히 천전리에는 남성성기문양과 태양의 문양이 함께 나타나는데 사슴, 태양, 남성성기는 모두 헤르메스(환웅)의 상징이었다. 이 암각화는 시기적으로 바이칼과 몽골의 암각화보다 앞서고 표현도 정확한 것으로 보아서 스키타이문명이 한반도에서 바이칼과 몽골 쪽으로 북상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고대 암각화에 나타나는 문자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발견되는 문자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고분이나 토기도 기본적으로 고구려 계통이다. 종전에는 온돌의 기원을 고구려로 봤는데, 지금은 크로우노브카, 즉 옥저 지역에서 온돌이 기원한 걸로 보고 있다.

따라서 청동기시기에 바이칼이나 몽골로부터 한반도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 한반도로부터 만주를 거쳐서 몽골로 문화가 전파 된 것을 알 수가 있다. 내몽골 쪽에는 Xia-Xia라는 도시가 있는데 이는 하나라였음을 증명한다. 하나라를 Xia라고 썼다.

하나라夏Xia는 원래 아래下를 뜻하는 말이고 더운 지방이므로 여름하夏를 썼다. 운남성의 유웅국을 부르던 말이었다. 따라서 하나라가 아래에서 북상한 것을 알 수가 있다.

은나라의 수도는 상이었고 은나라는 상商이라고도 불렀다. 상업의 신은 헤르메스이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지었으므로 헤르메스인 복희씨가 세운 도시임이 틀림없다.

김욱 단국대 교수(인류유전학) 연구팀은 17일 “한국인을 비롯한 중국·일본·베트남·몽골 등 동아시아 11개 민족집단에서 1,949명의 유전자를 조사·분석한 결과 한국인은 북방계보다는 주로 남방계에서 비롯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그러나 북방계도 뚜렷해 ‘이중의 민족기원’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밝혔다. 이런 결과는 저명한 국제학술지 〈휴먼 지네틱스〉에 발표됐다.

김 교수 연구팀은 2001~2003년 한국과학재단 지원으로 11개 민족 738명의 와이염색체를, 2002~2003년엔 8개 민족 1,211명의 미토콘드리아 염색체를 비교 분석해 이런 결과를 얻어냈다.

한국인 10명 가운데 7, 8명이 아시아 남쪽으로 이동하던 2만~3만년전의 집단과 동일한 Y염색체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또한 몽골인을 뺀 동아시아인 대부분에서 M175 유전자형의 주류를 이루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선 중국 중북부 농경민족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남방계와 별개로, 한국인에선 몽골·시베리아 북방계 Y염색체의 유전자형(20%)도 발견되었다.

이홍규(서울대 의대)는 유전자 조사 결과 동남아에서 들어온 소수(25%)와 시베리아를 통해 들어온 다수 75%로 보았다.

최근 덩Deng을 비롯한 중국학자들의 Y염색체 연구를 통해 중국인들은 중국북부와 서부 중앙아시아 시베리아와 비슷하다고 조사되었다.

 [출처] 마고문명연구소

 추적] 한민족 기원지/ 바이칼호 주민들

우리와 DNA 비슷…현지인들 “고려 사람들 벼농사 지었다”

주채혁 강원대 사학과 교수

주간조선 2002년 12월19일


우리 민족 기원설은 크게 북방기원설과 남방기원설 그리고 남북방혼융기원설로 나뉜다. 이 중 다수설은 북방기원설. 이 학설은 다시 스키토-시베리아기원설과 오르도스기원설로 나눌 수 있다. 몽골학계도 마찬가지다. 스키토-시베리아기원설은 천산북로의 스텝-타이가로드를 위주로 이루어진 민족의 이동을 전제로 한 것이고, 오르도스설은 그 지역을 넘어서 몽골고원과 고비사막의 연장선상에 있는 황하상류의 만곡부를 중심지로 추정한 것이다.

몽골고원과 시베리아의 물은 대부분 북류해 북극해로 흘러들고 일부는 남류 또는 북동류하면서 태평양으로 흘러든다. 하류로 갈수록 습도가 높아져서 혹한기만 피한다면 생산이 용이하고 생존가능성이 높아진다. 한여름 알타이산의 기온이 영상 30~40도에 이르고 일조시간이 18시간이나 된다. 몽골고원 북쪽으로 눈을 돌리는 한민족의 바이칼호 기원설은 이러한 점을 기반으로 삼는다. 최근의 항공사진은 바이칼호 언저리의 논농사 가능성을 시사해주고 있다. 부이르호 언저리의 주민들은 “고올리(고려) 사람들이 벼농사를 지었다”고 말하고 있다. 수로의 흔적은 아직도 뚜렷하다. 바다처럼 드넓은 고올리 농장터도 있다. 그런가 하면 알타이산맥과 항가이산맥지대에서 벼농사를 지었다는 기록도 있다.  


바이칼 호수가 있는 러시아는 ‘모피의 나라’이다. 그리고 그 모피의 주된 공급지는 시베리아다. 그리고 조선, 부여, 고구려, 거란, 발해, 여진과 몽골은 시베리아에 역사적 태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민족의 뿌리를 밝히려면 ‘모피(fur)의 길’ 추적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몽골의 수미야바아타르 교수는 부이르호 남쪽에 있는 고올리칸 훈촐로의 상이 동명성왕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올리족과 고리(槁離; 고려) 그리고 바이칼호 올콘섬을 시조지로 하는 코리족은 호수 동쪽인 눈강상류-할힝골(훌룬부이르) 언저리를 근거지로 삼았던 것 같다. 몽골에선 오래전부터 이들이 같은 계통이라는 견해가 있어왔다. 이에 관한 분석이 이뤄진 것은 1990년대 중반의 일이다. SBS-TV의 ‘몽골리안 루트를 가다’ 제작팀은 데옥시리보핵산(DNA) 검사로 이를 실증했으며 최근 서울대 의대의 이홍규 교수는 이를 좀 더 발전시켜 총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재검증해내고 있다.

DNA방식은 구미의 언어·인류학자들이 추정하고 있던 퉁구스족의 기원지 알타이~바이칼 사이의 사얀산맥 소욘(鮮)족에 관한 연구에도 적용됐다. 그 결과가 2001년 졔례ㅇ코와 마뺘르추크가 쓴 ‘아메리카 원주민의 기원지에 관한 연구’라는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아메리카원주민의 기원지가 사얀산 일대임을 실증하고 있다.

러시아쪽의 연구도 있다. 모스크바대학의 러시아과학원 일반유전학연구소장 자하로프 교수는 데옥시리보핵산 검사 결과 아메리카 원주민과 밀접하게 직관돼 있는 것으로 밝혀진 우리 민족 또한 이 지역에 기원을 두고 있으리라는 가정하에 한국인과 소욘족의 혈연적 관계규명을 위한 검사에 착수했다.



‘소욘’은 산이름에서, ‘퉁구스’는 그 산에서 흘러나오는 강이름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바이칼호 지대라는 개활지에 진출하려면 상당한 힘이 축적돼야 한다. 이 지역은 해발 4000여미터가 넘는 많은 고산지대로 형성되어 있어 외부의 침입을 받지 않을 수 있었고, 수량도 풍족하여 드넓은 땅을 보유해 자급자족할 수 있었다. 학자들은 이 지역에서 힘을 비축하고 인구 수를 늘린 뒤, 바이칼 지역으로 진출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리랑 지명 분포 지역

알타이(Altai) 산맥 기준으로 알타이 서부와 알타이 동부로 나누어진다.

알타이 동부에 대흥령 산맥 너머 오르도스가 있다.

청동기 유물 집중 지역

 


●아메리카 원주민 기원지도 바이칼 유역

필자는 메이원핑(米文平)이 1980년 초에 발견한 선비족의 석각축문 소재지 ‘가셴둥’이 있는 대흥안령 북부의 Sayan(대선비)산이 ‘이르쿠츠크 북쪽에서 퉁구스하 남쪽 사이에 있다’는 정겸(丁謙)의 기록을 따라 2001년 8월에 현지를 답사, 이를 실증한 바 있다. 그리고 1999년 8월에 대흥안령 북부 오룬춘 기(旗)를 답사하면서 선(鮮)이 순록의 겨울주식인 이끼, 즉 선(蘚)이 나는 산임을 ‘시경(詩經)에 관한 모시주소(毛詩注疏)’ 권23을 통해 입증했다. 또 조선(朝鮮)의 ‘조’자는 ‘아침’을 뜻하는 글자가 아니고 ‘찾음’을 뜻하는 글자임은 흥안령 선비족 기원지와 길림성 조선족 자치구를 현지 조사해 확인했다. 또 ‘중국어사전’을 참고해 ‘조선’이 이끼(蘚)가 나는 새 땅을 찾아다니는 ‘순록 유목민’을 의미하는 시베리아 원주민의 토속어란 사실도 밝혀보았다. 이른바 ‘조선 순록유목민설’이 되는 셈이다.

이끼는 응달에 많이 나고 습기가 많을수록 잘 자라므로 조선겨레들은 서시베리아쪽에서 산지를 따라 태평양이 있는 동쪽으로 ‘이끼의 길’을 찾아 이주해 왔으리라는 추론도 있다. 아울러 몽골의 맥(貊) 고올리 기원설을 선보이며 맥이 ‘Ussurian Racoon Dog’이라는 학명을 갖는 너구리임을 훌룬부이르대학 생물학과의 황학문 교수와 함께 대흥안령 현지 조사를 통해 입증했다. 또 최남선 선생의 ‘불함문화론’에 나오는 불함(不咸)은 ‘밝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붉음’을 뜻하는 것임을 시베리아-몽골-만주 현지 연구를 통해 정리했다.



현지 원주민들에게는 타이가의 자작나무와 물가의 버드나무가 신앙의 대상이다. 버드나무 중에도 붉은 가지를 가진 버드나무가 특히 그렇다. 현지 나나이족 언어로 버드나무를 푸르칸(purkan)이라 한다. 이는 그대로 burqan(不咸: 하느님)으로 적을 수 있다. 만주에는 ‘보드마마’굿이라는 무당굿 메뉴가 있는데 이는 ‘버들어머니’굿과 같은 것으로 ‘버들꽃’을 의미하는 주몽의 어머니 하백녀 유화(柳花)에 대한 모태회귀신앙과 접맥된다는 논문이 1993년에 조선족 동포 최희수 교수에 의해 발표된 바 있다.

‘길림성야생경제식물지’(1961년)에 보면 조선버드나무(朝鮮柳)의 별칭이 붉은 버드나무(紅柳)다. 물가에서 자라는 버드나무는 분포밀도로 보아 전 몽골리안루트-스텝로드에 걸쳐 퍼졌을 가능성이 있다.

‘박혁거세’란 이름도 ‘붉을 혁(赫)’자를 사용해 ‘혁거세’라 한 것이나 ‘弗矩內’라 이두식으로 음독한 것으로 보아 ‘밝음’이기보다는 ‘붉음’을 상징색으로 하는 제사장 종족을 지칭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올 유월 우리의 잠든 영혼을 강타한 ‘붉은 악마’ 신드롬을, 적어도 이 정도의 역사적 안목은 가지고 천착해 봐야 할 것 같다.

저명한 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총,균,쇠’라는 불후의 명저에서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대륙이 남북 축으로 돼 있는 데 대해 유라시아 대륙은 동서 축으로 퍼져 등온대(等溫帶)를 이루기 때문에 사람과 기술의 이전이 용이했다”며 “따라서 유라시아 대륙인이 다른 대륙을 지배하는 주체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필자는 이에 다시 몽골리안 루트로 접맥되는 유목민의 기동성이 가세하는 중심축을 이루는 곳이 유라시아 대륙임을 강조한다. 더구나 야생식물의 작물화와 야생동물의 가축화가 맨먼저 가장 다양하고 풍부하게 이루어진 곳이 서아시아다.



●“유라시아인, 이동 쉬워 다른 대륙 지배”



유라시아의 거대한 섬이라 할 중국은 히말라야산맥-천산산맥 등과 타크라마칸사막 등으로 그 서부와 북부가 가로막혀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고립되었던 데에 대해, 칭기즈칸의 안방처럼 스텝과 타이가로 탁 트인 천산북로-스텝로드는 사람과 기술의 이동이 자유로워 그 언저리들에 또 다른 선진 문화권을 이룰 수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 배경 위에서 조악한 유목적 생산환경에 도전·응전하며 적응해 오는 역사를 펼치다 보니 그 부산물로 뛰어난 군사력이 생겨나서 북방민족이 중원의 안보를 담보하는 역할을 해내며 농업생산 환경을 보장하는 정치적 경영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베이징은 바로 이런 스텝로드와 중원농경지대의 농산물 집산지. 한반도와 만주세력이 되새김질해 키워낸 수렵-유목 민족들의 중원 경영역량이 발산돼 나오는 길이 만나는 곳이다. 실로 북방민족의 중원 정복왕조 창업 및 수성 능력은 흑룡강 북쪽으로 만주보다 훨씬 더 드넓은 대만주로 이어지는 거대하고 비옥한 지역을 기반 삼아 스텝로드로부터 주입되는 수준 높은 인력과 물력을 포용해 생겨난 것이라 하겠다.

여기서 건조지대란 고원지대라 바람을 많이 맞아 습기가 적어진 스텝-준 사막지대를 주로 일컫는데 그런 생태환경에서 빚어진 인간들의 한 부류가 북방민족이고 그들이 한민족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들은 북유럽에서 티베트고원으로 이어지는 지대에도 진출하고, 북극해를 건너 툰드라-타이가-스텝으로 이루어진 북서부 아메리카에도 진출해 간 것이었다.



(주채혁 강원대 사학과 교수)


주간조선 2002년 12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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