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blog.naver.com/neveera/220618978171 2016. 2. 5. 6:53

고요(皐陶)는 누구인가? 

고요(皋陶,皐陶)는 요(堯)·순(舜)시대의 인물로 구요(咎繇)라고도 한다. 는 요(陶, 공자의 고향인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 지역, 소호少昊의 터)라는 지역에서 태어났고, 훗날 우(禹)임금이 그를 고(皐, 皐城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육안시六安市 지역)라는 땅에 봉(封)하였다. 그래서 그를 고요(皋陶,皐陶)라 한다. 그의 선조(先祖)는 새(현조玄鳥)를 토템으로 하는 동이족(東夷族)으로, 그는 동이족(東夷族)의 수령(首領, 우두머리)이었다. 진씨족보(秦氏族譜)에 의하면, 그는 황제(黃帝)의 증손 제곡(帝嚳) 고신씨(高辛氏)의 넷째 아들로서, 요(堯)임금, 순(舜)임금 때에 팔원(八元)의 한 사람인 계중(季仲)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부계(父系)로는 요(堯)임금과 같은 혈통(血統)이고 모계(母系)로는 순(舜)임금과 같은 혈통(血統)이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은본기(殷本紀)에 의하면, 그는 순(舜)임금에 의해 사도(司徒)로 임명되었으며, 형벌(刑罰)로서 오형(五刑)을 제정(制定)하였고 백성들에게 오교(五教)를 겸하여 가르쳤으며, 우(禹)의 치수사업을 도운 상(商)나라 상족(商族)의 시조 설(契)이라는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 또한 진본기(秦本紀)에는, 진(秦)나라 진족(秦族)의 시조인 대업(大業)이라는 인물로도 등장하고 있다. 그의 활동 근거지는 엄(奄=偃, ()은 영(嬴)을 굴린(轉) 소리(音)이다.)이었다.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홍동현(洪洞縣) 감정진(甘亭鎭) 사사촌(士師村)에 고요(臯陶)의 고리(故里)가 있고,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수현(壽縣) 육안시(六安市) 소재지 동쪽 이십리포(二十里鋪) 소묘촌(小廟村)에 고요(皋陶)의 고묘(古墓)가 있다. 

  

고요(皋陶)는 진씨족보(秦氏族譜)에 의하면, 팔원(八元)의 한 사람인 계중(季仲)이라는 인물로 젊어서부터 요(堯)임금에게 중용되었는데, 형정(刑政)을 주관하는 사(士, 사사士師, 대리관大理官, 구주목九州牧 사법장관司法長官)에 임명됐으며, 구관(九官)의 한 사람으로서 요(堯)임금을 계승한 순(舜)임금을 보좌하면서 큰 치적을 남긴 명신(名臣)이다.

그는 법리(法理)에 통달하여 법(法)을 세우고 형벌(刑罰)을 제정(制定)하였으며, 옥(獄)을 만들었다고 한다. 순(舜)임금은 그를 사도(司徒)로 임명하였다. 그는 형벌(刑罰)로서 오형(五刑)과 교육(敎育)을 겸하여, 요구부의(要求父義), 모자(母慈), 형우(兄友), 제공(弟恭), 자효(子孝) 등의 오교(五教)를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그의 가르침은 상고시기(上古時期)부터 하(夏) · 상(商) · 주(周)를 거쳐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이르기까지 그의 후손들에 의해 면면(綿綿)히 이어져 중국문명(中國文明)의 토대(土臺)가 되었다. 특히 그의 사상은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의 도가사상(道家思想)과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의 유가사상(儒家思想) 그리고 순자(荀子)로 이어지는 법가사상(法家思想)으로 발전하여 이후 중국의 정치(政治), 경제(經濟), 사회(社會), 문화(文化) 등의 각 분야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고요(皐陶)는 법(法)과 덕(德)으로 백성들을 다스린 상고시기(上古時期)의 위대한 사상가(思想家), 교육자(敎育者), 정치가(政治家)였다. 사학계(史學界)와 사법계(司法界)에서는 그를 중국의 사법비조(司法鼻祖)로 간주한다. 그는 요(堯) · 순(舜) · 우(禹)임금과 함께 ‘상고사성(上古四聖)’이라 일컬어(칭稱해)지고 있다.

고요(皐陶)에 관한 기록은 사기《史記》, 좌전《左傳》, 수경주《水經注》, 괄지지《括地誌》, 상서《尚書- 우서(虞書) -皋陶篇》,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 등의 사서(史書)에 상세(詳細)하게 기재(記載)되어 있다. 그 중 중국 역사서의 시초로 불리는 ‘서(書)’(상서尙書 또는 서경書經)의 첫 편 ‘우서(虞書)’ 제4 ‘고요모(皐陶謨)’가 원전이다. 사기(史記)의 ‘하본기(夏本紀)’는 고요모(皐陶謨)의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사기(史記) 하본기(夏本紀)>에는 순(舜)임금과 더불어 우(禹)와 함께 통치의 요체에 관해 진지하게 담론하는 고요(皐陶)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기원전 2,000년 즈음, 순(舜)임금이 신하의 팔로어십(followership)을 전제로 한 리더십(Leadership)을 거론하자 고요(皐陶)는 ‘진실한 리더십(Leadership) 없이는 팔로어십(followership)도 없다’는 말로 대답한다. 그는 법도(法度)를 준수하고 현명한 판단력으로 비전과 이상을 제시하는 바람직한 리더상을 주문했다. 그리고 고요(皐陶)는 리더(Leader)가 갖춰야 할 자질로 ‘구덕론(九德論)’을 제시한다. 구덕(九德)은 리더(Leader)의 자질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모든 유형의 리더십(Leadership)을 정의할 정도로 논리가 정교하다. 이는 오늘날 리더십(Leadership) 이론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참신하다. 그는 세계 최초의 리더십(Leadership) 전문가라 할 수 있다.

순(舜)임금은 고요(皐陶)를 최고의 현신(賢臣)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는 순(舜)임금이 즉위한 후에도 계속 중용되었다. 그는 대리직(大理職 - 士, 이관理官, 사법장관司法長官)에 있어 천하의 죄악을 잘 평정하였으므로 사람들은 편안히 살면서 즐겁게 직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그는 천하를 다스리려면 반드시 ‘인간을 아는 것(知人)과 백성을 편안(安民)하게 하는 통치'의 큰 틀을 제시하여 우(禹) 못지않은 공을 세웠으나 백성들 사이에서 우(禹)의 위신을 크게 세우는데 힘을 다했다. 순(舜)임금이 죽자 그는 직접 나서 우(禹)를 제위(帝位)에 올렸다. 우(禹)임금은 그의 유능함을 인정하여 후계자로 선정하고 아울러 정무를 처리할 권력까지 주었으나 제위(帝位)를 승계받지 못하고 먼저 죽었다.

사법연수원 법관연수소 앞에 서 있는 상상속의 동물 해태(海陀). 해치(獬豸)라고도 한다. 부정을 저지르거나 거짓말하는 사람은 저 뿔로 받아버릴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해태(海陀)는 중국 한나라의 왕충이 지은 사상서 논형(論衡)에 선악을 아는 외뿔짐승의 양(羊)이라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고요(皐陶)는 일종의 특이한 외뿔 짐승인 해태(海陀)를 길렀는데, 그는 선악의 진위(眞僞)를 가릴 때 이 짐승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는 시비선악(是非善惡)을 잘 가리는 바로 이 신령한 짐승(독각기수獨角奇獸)에 힘입어 옥리(獄理)를 판단하여 형옥(刑獄)을 다스렸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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