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은 어디를 말하는가!
두만강은 두만강(豆滿江)은 콩이 가득하다는 말이다. 콩은 태극이며 생명이며 시초를 말한다. 아무르의 '아'도
아사에서 나온 말이며 새로움이며 알파벳의 A도 감탄사의 의미도 있지만 생명현상의 명사를 의미한다. '만'은 마르로 연음이 되며 마르->무르로 연음이 된다.그러므로 아무르를 한자로 옮기면 두만강이 되는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50권>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었다.”남쪽으로 흐르는 것은 압록강(鴨綠江), 북쪽으로 흐르는 것은 송화강(松花江)과 혼동강(混同江), 동북으로 흐르는 것은 소하강(蘇下江)과 속평강(速平江), 동쪽으로 흐르는 것은 두만강(豆滿江)이다.” 또 “여진 말로 만(萬)을 두만(豆滿)이라고 하는데, 여러 갈래의 물이 여기로 합류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라고 기술하였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여러 갈래의 물이 하나로 합류되는 것이 두만강이므로 현 압록강이 아닌 것이다. 또한 남으로 압록강이 흐르고 이 압록강이 요하라면 북으로 흐르는 것은 송회강과 여러 지류에 해당된다. 이 지류가 다시 동으로 흘러 하나로 뭉쳐 바다로 흘러간다고 하였다.바로 아무르강을 말하는 것이다.
이순신이 여진족과 싸운 두만강 하류에 녹둔도 전투지역은 어디인가!
녹둔도는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에서 방영되어 유명해진 전투와 지명이다.여진족인 야인의 습격을 막기 위해 전략적 요충지인 녹둔도를 사수한다는 내용이다.실제 역사에서도 그렇게 기록되었다. 1587년(선조 20) 여진족의 습격을 받고 큰 피해를 당해, 당시 책임자였던 조산만호(造山萬戶) 이순신(李舜臣)이 그 책임을 지고 해임된 바 있다.
두만강이 현 한반도 두만강이 아니고 아무르강이라면 두만강 하류에 있는 녹둔도도 아무르 강 하류로 가야한다. 이 뿐만 아니라 녹둔도는 이순신 장군이 여진족과 싸운 섬이며 이 섬이름을 따서 녹둔도 전투라고 한다.역사기록을 보면 최초로 나타나는 것은 세종실록지리지이다.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기에 공주를 거쳐 동류해 25리에 이르면 사차마도에 도달하고 여기서 강물이 나누어져 5리쯤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라고 하고 있다.세조 원년(1455년) 8월에는 이전까지 사차침도, 사차마도라 하던 것이 녹둔도 또는 녹도로 명명된다.>
아무르 강을 두만강으로 옮기다 보니 아무르 강 하구에 있는 사할린 섬을 억지로 끼워 맟추다 보니 코메디를 연출한 것이다.그리고 그것을 사실인냥 우기는 식민지 사학이나 그것을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일반인이나 마찬가지다. 녹둔도가 두만강 하류의 작은 섬이 아니라 아무르 강 하류의 사할린섬이다.이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정황으로 보면 절대 녹둔도가 될 수 없다.여진족은 유라시아 일대를 주름잡은 유목족이며 훗날 금나라를 세우며 나중에 청나라로 발전하여 중국 대룩을 장악한 몽고제국이래로 가장 강력한 유목집단이다.여진족은 몽고 초원과 만주일대를 주름잡은 유목족이다.그런 민족이 가장 작은 척박한 한반도 함경도를 노리고 두만강을 노리겠는가! 만주일대는 화북평야로 한반도 보다 몇배 넓은 농경지와 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 만주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 그래서 절대로 한반도로 넘지 않으며 넘을 필요성을 못 느낀다.그것도 고작 작은 땅인 두만강 하류 작은 땅을 노린단 말인가! 여진족이 그렇게 바보 집단인가! 드넒은 화북평야와 송화강과 아무르강 그리고 흑룡강의 농경지와 목축지를 버리고 어디에 붇어 있는지 모르는 한반도로 가서 그것도 아주 작은 섬 녹둔도를 노린단 말인가!
녹둔도는 어떻게 기록되었는가! 한번만 읽어 보아도 안다.세종실록지리지 내용중에 중요한 것을 열거한다면 다음과 같다.조선 세종 때 6진(鎭)을 개척한 이래 여진족의 약탈을 막기 위하여 섬 안에 길이 1,246척의 토성을 쌓고 높이 6척의 목책을 둘러 병사들이 방비하는 가운데 농민들이 배를 타고 섬을 오가며 농사를 지었다. 농민들은 상주가 금지되었고, 춘경추수기에 한해서만 출입이 허가되었다.
녹둔도가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역대 왕들은 자주 언급을 한다.<세조는 함길도 도절제사인 양정과 도사 강효문에게 조산구자(造山口子) 녹둔도 농민이 들에서 일할 때 야인들이 배를 타고 침입, 약탈할 것이 우려되므로 진장(鎭將)과 만호들에게 엄중히 방비하라는 밀유(密諭)를 내리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중종 9년(1514년)에는 봄철 농사를 지을 때면 조산보의 군민이 녹둔도로 들어감으로 본보가 빌 정도라고 하고 있다. >라고 되어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는 것을 알수 있다.
사할린이 왜 녹둔도(鹿屯島)인가!
녹둔도는 한글로 풀어보면 <사슴+ 언덕+섬>이다.과연 사할린이 사슴언덕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사할린 내에 홀름스크는 사할린 남서안의 항구도시로 인구는 약 5만 2,000명이다. 러시아어로 '언덕'을 의미하는 이 마을의 뒤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즉 홀름이 언덕이라는 말이다. 홀름->할림->할린 이니 같은 음운 계열이다.그리고 스크는 섬을 의미하니 홀름(할림->할린-언덕)+스크(섴->섬-도)이니 언덕섬(둔도-屯島)가 된다.그러므로 사할린의 할린은 언덕인 것이다. 그렇다면 샤(사슴)+할린(언덕)이 된다면 샤가 사슴이라는 말인가!
이순신 장군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녹둔도는 사할린섬이다.우리의 6진 최전방 연해주와 사할린은 반드시 찾아야 할 땅이다. 이순신의 젊은 시절 숨결이 묻어 있으며 우리 조상이 개척한 땅이다. 지금 사할린은 유전지대로 탈바꿈되어 황금의 땅이 되었다.특히 사할린의 북쪽은 천연가스가 풍부하며, 1999년 7월부터는 원유가 본격적으로 생산되어 러시아의 보고로 통하는 지역이다. 간단한 도표가 제일 첫 그림에 사할린이 소개되어 있다.사할린은 육지와 8키로 정도로 떨어져 있으며 겨울철에는 바다가 얼어 걸어서 사할린까지 갈 수 있다.그러므로 여진족인 겨울철에 말을 타고 섬에 침공이 가능하며 평상시에는 배로 침공이 가능하다.사할린과 연결된 콤소모몰스크와 하바로프스키가 6진 중에 하나인 경흥인 것이다.그 곳에 조산만호가 존재한다. 사할린이 녹둔도라는 것도 필자가 최초로 주장한다.
사물의 형상을 따라 이름을 짖기 때문에 함경도 녹둔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억지로 아무르 강을 두만강으로 영토를 축소하다 보니 두만강 유역을 뒤져 만들어낸 코메디 자작극인 것이다.누가 이런 자작극을 만들어 내는 것인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아래 그림은 간도지방을 세밀하게 그린 지도이다.요하와 송화강을 결합한 지역을 표시한 것이다. 노란색 지도는 1895년 전후로 하는 조선과 청의 국경지도다. 요하 근처를 절충지로 하여 송화강 지역을 양분한 지도다.그리고 푸른색 지도는 일본이 정밀 측량하면서 백두산 유역의 세부 지도이다.백두산 위쪽으로 표시된 강이 토문강으로 나온다.
두만강은 두만강(豆滿江)은 콩이 가득하다는 말이다. 콩은 태극이며 생명이며 시초를 말한다. 아무르의 '아'도
아사에서 나온 말이며 새로움이며 알파벳의 A도 감탄사의 의미도 있지만 생명현상의 명사를 의미한다. '만'은 마르로 연음이 되며 마르->무르로 연음이 된다.그러므로 아무르를 한자로 옮기면 두만강이 되는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50권>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었다.”남쪽으로 흐르는 것은 압록강(鴨綠江), 북쪽으로 흐르는 것은 송화강(松花江)과 혼동강(混同江), 동북으로 흐르는 것은 소하강(蘇下江)과 속평강(速平江), 동쪽으로 흐르는 것은 두만강(豆滿江)이다.” 또 “여진 말로 만(萬)을 두만(豆滿)이라고 하는데, 여러 갈래의 물이 여기로 합류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라고 기술하였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여러 갈래의 물이 하나로 합류되는 것이 두만강이므로 현 압록강이 아닌 것이다. 또한 남으로 압록강이 흐르고 이 압록강이 요하라면 북으로 흐르는 것은 송회강과 여러 지류에 해당된다. 이 지류가 다시 동으로 흘러 하나로 뭉쳐 바다로 흘러간다고 하였다.바로 아무르강을 말하는 것이다.
두만강은 만주강을 말하며 만주 일대를 가득차게 채우는 강역을 의미한다.그리고 흑룡강이라는 별칭이 붙는 것은 동단국-조선족-고구려의 상징색이 흑색이기 때문에 붙은 명칭인 것이지 현 두만강의 짧은 강이 아니다.
이순신이 여진족과 싸운 두만강 하류에 녹둔도 전투지역은 어디인가!
녹둔도는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에서 방영되어 유명해진 전투와 지명이다.여진족인 야인의 습격을 막기 위해 전략적 요충지인 녹둔도를 사수한다는 내용이다.실제 역사에서도 그렇게 기록되었다. 1587년(선조 20) 여진족의 습격을 받고 큰 피해를 당해, 당시 책임자였던 조산만호(造山萬戶) 이순신(李舜臣)이 그 책임을 지고 해임된 바 있다.
두만강이 현 한반도 두만강이 아니고 아무르강이라면 두만강 하류에 있는 녹둔도도 아무르 강 하류로 가야한다. 이 뿐만 아니라 녹둔도는 이순신 장군이 여진족과 싸운 섬이며 이 섬이름을 따서 녹둔도 전투라고 한다.역사기록을 보면 최초로 나타나는 것은 세종실록지리지이다.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기에 공주를 거쳐 동류해 25리에 이르면 사차마도에 도달하고 여기서 강물이 나누어져 5리쯤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라고 하고 있다.세조 원년(1455년) 8월에는 이전까지 사차침도, 사차마도라 하던 것이 녹둔도 또는 녹도로 명명된다.>
현 두만강 하류에 삼각주로 된 지명이 녹둔도라고 한다.두만강 하구에 있는 둘레가 8키로인 타원형의 자그마한 땅이다. 직사각형으로 환산하면 가로 세로 2키로에 해당한다.과연 그곳이 녹둔도인가! 얼마가 그곳이 중요하길레 여진족이 목숨을 걸고 침범하였으며 얼마나 중요하길레 그 안에 성을 쌓고 목책을 설치했을까!그 땅속에서 금이라고 나오는 비밀이 있는 것인가!
아무르 강을 두만강으로 옮기다 보니 아무르 강 하구에 있는 사할린 섬을 억지로 끼워 맟추다 보니 코메디를 연출한 것이다.그리고 그것을 사실인냥 우기는 식민지 사학이나 그것을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일반인이나 마찬가지다. 녹둔도가 두만강 하류의 작은 섬이 아니라 아무르 강 하류의 사할린섬이다.이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정황으로 보면 절대 녹둔도가 될 수 없다.여진족은 유라시아 일대를 주름잡은 유목족이며 훗날 금나라를 세우며 나중에 청나라로 발전하여 중국 대룩을 장악한 몽고제국이래로 가장 강력한 유목집단이다.여진족은 몽고 초원과 만주일대를 주름잡은 유목족이다.그런 민족이 가장 작은 척박한 한반도 함경도를 노리고 두만강을 노리겠는가! 만주일대는 화북평야로 한반도 보다 몇배 넓은 농경지와 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 만주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 그래서 절대로 한반도로 넘지 않으며 넘을 필요성을 못 느낀다.그것도 고작 작은 땅인 두만강 하류 작은 땅을 노린단 말인가! 여진족이 그렇게 바보 집단인가! 드넒은 화북평야와 송화강과 아무르강 그리고 흑룡강의 농경지와 목축지를 버리고 어디에 붇어 있는지 모르는 한반도로 가서 그것도 아주 작은 섬 녹둔도를 노린단 말인가!
녹둔도는 어떻게 기록되었는가! 한번만 읽어 보아도 안다.세종실록지리지 내용중에 중요한 것을 열거한다면 다음과 같다.조선 세종 때 6진(鎭)을 개척한 이래 여진족의 약탈을 막기 위하여 섬 안에 길이 1,246척의 토성을 쌓고 높이 6척의 목책을 둘러 병사들이 방비하는 가운데 농민들이 배를 타고 섬을 오가며 농사를 지었다. 농민들은 상주가 금지되었고, 춘경추수기에 한해서만 출입이 허가되었다.
여기서 녹둔도가 두만강 내에 섬이라면 성을 쌓고 군대가 상주하고 그리고 농사를 지을 땅면적이 나오는가! 그것도 직경 2키로 안에 모든 것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인가!사할린 섬이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녹둔도가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역대 왕들은 자주 언급을 한다.<세조는 함길도 도절제사인 양정과 도사 강효문에게 조산구자(造山口子) 녹둔도 농민이 들에서 일할 때 야인들이 배를 타고 침입, 약탈할 것이 우려되므로 진장(鎭將)과 만호들에게 엄중히 방비하라는 밀유(密諭)를 내리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중종 9년(1514년)에는 봄철 농사를 지을 때면 조산보의 군민이 녹둔도로 들어감으로 본보가 빌 정도라고 하고 있다. >라고 되어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는 것을 알수 있다.
사할린이 왜 녹둔도(鹿屯島)인가!
녹둔도는 한글로 풀어보면 <사슴+ 언덕+섬>이다.과연 사할린이 사슴언덕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사할린 내에 홀름스크는 사할린 남서안의 항구도시로 인구는 약 5만 2,000명이다. 러시아어로 '언덕'을 의미하는 이 마을의 뒤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즉 홀름이 언덕이라는 말이다. 홀름->할림->할린 이니 같은 음운 계열이다.그리고 스크는 섬을 의미하니 홀름(할림->할린-언덕)+스크(섴->섬-도)이니 언덕섬(둔도-屯島)가 된다.그러므로 사할린의 할린은 언덕인 것이다. 그렇다면 샤(사슴)+할린(언덕)이 된다면 샤가 사슴이라는 말인가!
샤할린은 영어로 Sakhalin(Sak+hill+lin)으로 표현되며 사슴이나 양 소고기를 뜻하는 영문은 다음과 같다.
sheep(숫양) Stag(숫사슴)Caribou(순록)Steak(쇠고기)로 발음된다.일본어로 보면 鹿しか (시카)로 발음된다.
즉 한글은 사슴이며 일본은 시카이며 영어는 샤가 공통으로 발음된다. 그러므로 샤는 사슴을 말한다. 샤할린은 사슴언덕이 되며 녹둔이 된다. 사할린은 완벽한 녹둔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할린은 목축으로 소와 사슴을 기르고 있기 때문에 사슴섬으로 부른 것이다. 녹둔도라는 이름을 지을 때에는 반그시 사물의 특성을 보고 지은 것인데 현 두만강 녹둔도는 전혀 특징이 없다는 것이다.
즉 한글은 사슴이며 일본은 시카이며 영어는 샤가 공통으로 발음된다. 그러므로 샤는 사슴을 말한다. 샤할린은 사슴언덕이 되며 녹둔이 된다. 사할린은 완벽한 녹둔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할린은 목축으로 소와 사슴을 기르고 있기 때문에 사슴섬으로 부른 것이다. 녹둔도라는 이름을 지을 때에는 반그시 사물의 특성을 보고 지은 것인데 현 두만강 녹둔도는 전혀 특징이 없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녹둔도는 사할린섬이다.우리의 6진 최전방 연해주와 사할린은 반드시 찾아야 할 땅이다. 이순신의 젊은 시절 숨결이 묻어 있으며 우리 조상이 개척한 땅이다. 지금 사할린은 유전지대로 탈바꿈되어 황금의 땅이 되었다.특히 사할린의 북쪽은 천연가스가 풍부하며, 1999년 7월부터는 원유가 본격적으로 생산되어 러시아의 보고로 통하는 지역이다. 간단한 도표가 제일 첫 그림에 사할린이 소개되어 있다.사할린은 육지와 8키로 정도로 떨어져 있으며 겨울철에는 바다가 얼어 걸어서 사할린까지 갈 수 있다.그러므로 여진족인 겨울철에 말을 타고 섬에 침공이 가능하며 평상시에는 배로 침공이 가능하다.사할린과 연결된 콤소모몰스크와 하바로프스키가 6진 중에 하나인 경흥인 것이다.그 곳에 조산만호가 존재한다. 사할린이 녹둔도라는 것도 필자가 최초로 주장한다.
사물의 형상을 따라 이름을 짖기 때문에 함경도 녹둔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억지로 아무르 강을 두만강으로 영토를 축소하다 보니 두만강 유역을 뒤져 만들어낸 코메디 자작극인 것이다.누가 이런 자작극을 만들어 내는 것인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아래 그림은 간도지방을 세밀하게 그린 지도이다.요하와 송화강을 결합한 지역을 표시한 것이다. 노란색 지도는 1895년 전후로 하는 조선과 청의 국경지도다. 요하 근처를 절충지로 하여 송화강 지역을 양분한 지도다.그리고 푸른색 지도는 일본이 정밀 측량하면서 백두산 유역의 세부 지도이다.백두산 위쪽으로 표시된 강이 토문강으로 나온다.
우리는 중국으로 부터 간도반환 운동과 함께
러시아로 부터 연해주와 사할린 반환운동을 해야 한다.
아직 국제법 상 법적 청구가 가능한 시점이다.
이순신이 지켜낸 녹둔도가 사할린이며
우리는 녹둔도 회복운동을 해야 한다!
김종서의 6진중에 한 지역이 바이칼호 남쪽에 회령진을 설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