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발전사에 있어 가장 큰 두 가지 동기라면 불의 발견과 철의 발견이다. 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 다시 철기시대로 발달해 감에 따라 각 시대의 사회적 생산력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였으며 쇠는 인류가 발전하는 문명의 지렛대 역할을 하는 한편, 힘의 상징으로 국가를 장악했고 부와 영광을 함께 누렸다. 사람들의 지혜에 의해 쇠를 처음으로 녹여낸 것은 서기전 2050년경. 메소포타미아 우르탑 옆에 쇠를 녹인 가마자리와 쇠 찌꺼기가 발견됐다. 동양에서는 서기전 1100년경 중국 은나라의 유적이 발견되었지만 널리 이용된 것은 서기전 770년 무렵 춘추전국시대. 우리나라는 서기 200년경부터며 이 철을 직접 생산하는 최초의 철광지가 울산이다. 울산 북구 달천동 산 20-1번지 일원으로 삼한~조선시대까지 철광석의 원산지였고 철광석 산출은 국가의 기반산업으로 삼국시대 국가의 원동력이 되었다. 특히 경주 황성동 유적에서 출토된 철기 비소 함량이 달천광산 철광석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것으로 볼 때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으로 기록된다. 따라서 달천철장은 삼한시대부터 중요 산업유적이며, 조선시대 철광산지이다. 철장이란 철의 원료인 토철이나 철광석을 캐던 곳을 일컫는다. 달천동 및 상안동 일대에 분포하는 이 유적은 원래 이름인 달내에서 유래하였다. 그 역사는 삼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중국 문헌 '후한서'와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한(漢), 예(濊), 왜(倭)가 여기서 철을 가져가며 모든 시장에서 철을 사용하여 매매하는 것이 마치 중국에서 돈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는 내용이 있다. 이는 곧 철이 당시에는 화폐경제에 크게 기여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우리나라 문헌에 달천철장이 등장하는 시기는 조선시대 세종조부터로 '세종실록지리지'에 1452년 달천에서 생산된 철 1만2500근이 수납됐다고 명기돼 있다. 울산의 자랑이자 역사인 쇠생산을 축하하고 옛 울산의 선조들이 철광을 깨면서 노래를 불렀던 쇠부리 놀이. 울산의 정서를 표현했다는 울매가를 부르며 쇠부리 놀이를 행해 왔던 것을 기념하여 오늘날 쇠부리 축제로 승화 시켰다. 쇠부리란 철성분이 다량 함유된 광물을 쇠를 뽑아내는 광물작업이다. 쇠부리 과정에서 많은 인력이 필요했지만 그 가운데 특히 풀무를 밟아 바람을 내는 불매꾼(풀매꾼의 경상도 사투리)의 역할은 대단했다. 8명씩 조가 되어 선조 후조 모두 16명의 불매꾼이 불매질을 하면서 힘을 돋구고 불매꾼의 행동을 일치시키자 소리를 하는 것을 '불매소리'라고 한다. 쇠부리를 녹여 내던 장소를 쇠부리터라라고 하며 달내(달천) 철장에서 나온 토철은 흙과 비슷한 상태로 파내어져 가마니에 담아졌다. 이 덩어리는 십리, 백리 밖으로 이송됐다. 울산 북구문화원 홍중곤 자문위원은 "울산은 쇠와 함께 지내온 역사의 산실로 울산의 문화축제는 거두절미하고 쇠불이 축제가 근원이다"라고 말한다. 올해로 제 3회째를 맞는 쇠부리축제는 옛 쇠부리 놀이를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학술적 세미나를 가미해 그 의미를 한층 수준을 높였다. 더 나아가 울산 북구문화원은 울산의 취약한 문화콘텐츠에 역사적 철기문화와 현대의 산업 철기문화와 현대의 산업 철기문화, 노동문화에다, 울산의 전통 및 역사, 문화가 어우러지는 가장 이상적인 비전으로, 달천철장 역사 테마파크의 개발을 추진 중이다. 또 하나의 울산 랜드 마크를 준비하는 과정인 것이다. 한반도에 철기시대를 연 땅 울산. 울산에서 이뤄지던 쇠부리가 자취를 감춘 지 반세기를 지난 지금 '울산 달내 쇠부리'는 민속문화로 다시 태어났다. 이 놀이는 단순한 민속놀이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흥망성사의 내력을 간직한 역사의 키워드다. 쇠의 장악을 바탕으로7~8세기의 통일신라는 당대 지구상 최고의 문명을 누렸다. 주변국들이 멸망과 혼란을 거칠 때 부흥의 시기의 원동력이 되었던 달내철장. 울산의 삶과 같이하며 쇠의 문화를 전파하여 우수한 국가의 면모를 과시, 그 정기를 모아 우리나라 산업수도의 위용을 펼치고 있는 울산의 고민은 옛 선조들의 위대함을 지켜 나가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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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북구 농소동 농서지역인 달천리에 울산의 대표 민속인 울산쇠부리의 발원지이며 토철의 공급지였던 달천철장(達川鐵場)이 있다. 지금은 매립공사가 한찬 진행중인 이 철장은 삼한시대 이전부터 약 10여년전까지 2천500여년간 채굴되어 온 철산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철산지이다.
이 달천철장에서 산출된 철은 일본에도 건너갔고 또 이 달천철장의 제철기술자들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의 초기 철산업(鐵産業)을 일으켰고 늘어난 생산력이 일본 고대국가를 형성시켰다.
고대 울산의 대표산업은 염철(鹽鐵)인데 소금은 울산에 염포란 지명이 대표하고 철은 이 달천철장과 쇠부리민속으로 대표된다.
조선시대까지 울산 달천철장(達川鐵場)에서 산출된 쇠로 만든 가마솥이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역에 팔려 나갔는데 이는 우리나라 민요에도 등장하고 있다.
울산을 비롯 경주와 청도, 밀양지역에 걸쳐 약 250여곳의 야철유적이 땔감이 풍부하고 물이 있는 산간계곡에 남아있다. 흔히 쇠부리터로 불리는 이 야철유적에서의 토철제련은 일제시대 초까지 있었고 이 제련에서 생산된 우수한 철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야와다(八幡)제철소에 군납용으로 납품되었다.
사실 일본은 이 울산의 달천철장에서 생산된 철로 세계2차대전을 치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달천의 철은 품질이 우수했다. 달천의 철만이 일본의 총기류 내부강선(內部鋼線)용으로 쓰였다 전한다.
달천의 철은 황비철(黃砒鐵) 성분이 섞인 자철광이다. 황비철은 철에 비소(AS)성분이 든 것이다. 이 비소성분은 달천철광만의 특유의 성분으로 이 비소가 다른 철산지의 철과 달천철을 구분하게 한다.
일본의 고대유적에서 발굴되는 철유물들에서도 비소가 검출되었다. 1992년 일본 신일본제철사에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 고대철유물들마다 비소가 다량 발견되었다고 한다. 일본의 철산지는 비소와 무관하며 비소의 철은 한반도 울산 달천의 것이 분명하며 이 철이 철정(鐵鋌)형태로 건너온 것이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등장하는 변진의 철은 바로 울산 달천철장의 철이기도 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석탈해는 단야족(鍛冶族)이라고 했는데 단야족은 야철세력을 의미한다. 석탈해는 철기술을 바탕으로 사라벌에 입성해 왕이 됐는데 그 철은 바로 이 울산의 달천철장(達川鐵場)의 철이다. 이는 최근 달천철장 일원에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단야족의 유구로도 확인된다.
석탈해는 다파나국 출신으로 삼국유사에 등장하는데 그 다파나국은 왜국(대마도)의 동북 1천리라 했으니 다파나국은 바로 울산이다. 그외 여러 사실로 미루어 보아 신라 4대 석탈해왕은 울산출신임이 틀림없다. 석탈해 이후 150년간 신라석씨왕조가 열리니 울산세력들이 신라왕이 된 것이다.
이토록 중요한 달천철장은 지금 날로 파괴되어가고 있다.
택지지역으로 지정되어 그 정지작업이 바삐 이뤄지고 있다. 옛날 지하 250미터에 이르던 수직갱은 오래전에 사라졌고 매립과 합께 주변 어디에서도 광산의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울산인들의 문화적 무관심이 달천철장을 파괴하고 있다.
2000년 12월 일본제철학회의 교수들과 학자들이 연명으로 울산시에 탄원서를 보내왔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울산광역시 시장 귀하
달천철광산 보존 요망서
일본히로시마대학 문학부 고고학연구실 야철연구회 회장 시오미(히로시마대학 명예교수)
謹啓
시장님께서 늘 건강하시며 안녕하실 줄 믿습니다. 초면에 실례를 무릅쓰고 글을 올리는 무례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들은 고대야철을 연구하는 단체로 일본학술회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듣자니 귀市의 도시계획에 의거해 달천철광산이 소멸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합이다. 달천철광산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을 포함한 고대 동아시아의 고대국가 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철생산지입니다. 당시의 철 생산과 유통을 고찰함에 있어 이 광산은 예사로 소중한 유적이 아닙이다.
이런 귀중한 유적을 귀市의 도시계획과 공존시켜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습니까.
급히 보존요망서와 보존요망서명부(연명부)를 첨부해 올리오니 배려하시어 보존토록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끝으로 귀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첨부된 연명부에는 시오미 회장외 타대학 교수등 일본 전국의 야철연구회 회원 40여명이 서명했다.
이토록 소중한 국제문화재가 무참히 사라져 가는 것은 울산지도층과 관련학계의 무관심, 시민들의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 울산쇠부리의 원류 달천철장(達川鐵場)이 보존되도록 시민들이 뜻을 모으고 당국은 도시계획을 변경해야 한다.
달천철장 시내에서 먼 곳이 아니다. 북구 농서초등학교 뒤에 있다. 농소 쌍용아진아파트 뒷길로 올라가면 바로 이 달천철장을 내려다 볼 수 있다.
http://ulsan.kbs.co.kr/bbs/ezboard.cgi?db=k_ulsanpla&action=read&dbf=122&page=43&depth=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