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 공동역사문화 연구소 김정민 박사님의 강의 내용 중 일부를 정리해보았습니다.

동이족 국가 중에 夫餘(부여, Buyeo)는 늑대라는 뜻의 카작어 봬르(бөрі, böri)’, ‘원시 투르크어 붸뤼(бёрю, bȫrü)‘ 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살펴보면,

 

夫餘 (부여, 부려), 不與(불여), 符婁(부루)

Буря́тия (부랴트, Buryat)

бөрі (böri, 봬르), бёрю (bȫrü, 붸뤼)


투르크 아쉬나 전설                      돌궐突厥(Old Gok Turk) 깃발      로마 늑대 깃발


북방민족에 있어서 늑대는 시조 토템(totem)입니다. 민족상징입니다. 늑대, 아쉬나(Ashina , Asen, Asena, or Açina, 阿史那, 阿耳斯它) 전설이라는 것도 있고요

현재 바이칼 호수 서쪽에 사는 부리야트족하고 부려가 같지 않을 까 추정이 됩니다.   부리야트에서 я́т 야트는 복수형이고 민족명칭은 Бур 부리가 됩니다.

 

Буря́тия

부랴트

Bulgad

불가드

Khori

코리

Ekhired

예하리드

Khongodor

훈고도르

夫餘

부여

Buyeo

馬加

마가

Maga

Horse-ga

牛加

우가

Uga

Ox-ga

狗加

구가

Guga

Dog-ga

豬加

저가

Jeoga

Pig-ga

*(ga, )는 족장, 우두머리를 뜻함.

The word -ga (, ) had the meaning of 'clan chieftain, tribal chief'.

상(商)의 기원설화와 새 그리고 상족(族)의 족휘(族徽)

우실하 교수님 '동북아 문화속의 새의 상징성' 강의 내용 중에서

'상商의 기원설화' 를 가져왔습니다. 

                               상족(商族) 족휘(族徽), 현조(玄鳥)

상족휘(族徽)는 현조(玄鳥)와  계()의 어머니를 나타내는 글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위쪽은 나는 새 모양에 알을 물고 있고 아래는 글자 이다.   무릅 위에 포갠 양손은 알을 받는 모양의 부인이고 부인은 전설속 유융씨(有娀氏)의 딸, 간적(簡狄) 이고 계()의 어머니가 됩니다.   간적(簡狄)이 알을 삼기고 계를 출산하는 등 족휘(族徽) 전체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관련되는 핵심 열쇠인 알을 받는 장면만 취한 것 같습니다.

 

󰡔詩經󰡕 「商頌, 玄鳥篇

하늘이 현조에게 명하여 지상세계로 내려가 상을 낳았다.(天命玄鳥, 降而生商)”


󰡔史記󰡕 「殷本記

은나라의 시조 계()의 어머니는 간적(簡狄)인데 유융씨의 딸이다. 제곡 황제의 둘째 황비가 되었다. 세 사람이 목욕을 갔는데 현조(玄鳥)가 알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간적이 그것을 가져다 삼켰다. 이로 인하여 임신을 하였고 계를 낳았다.(殷契 母曰簡狄 有娀氏之女 爲帝嚳次妃 三人行浴 見玄鳥墮氣卵 簡狄取呑之 因孕生契)”


󰡔烈女傳󰡕

계의 어머니는 간적이라는 사람으로 유융씨의 장녀다. ............ 검은 구릉(玄邱)의 물가에서 목욕을 하는데, 현조가 알을 머금고 지나가다가 떨어뜨렸다. 오색이 아주 찬란했다. 간적이 이것을 집어서 삼켰고 계를 낳기에 이르렀다....... (契母簡狄者. 有娀氏之長女也...... 浴于玄邱之水, 有玄鳥銜卵. 過而墜之 五色甚好. 簡狄得而含之 遂生契焉.....)”


의 기원설화에서 현조(玄鳥)는 천상과 지상의 매개체로 천손강림이고 난생(卵生) 즉 알에서 태어납니다.   신라 박혁거세 설화에서는 천마(天馬)가 알을 낳지요.   상족(商族)은 새를 토템으로 하는 동이(東夷)의 한 계통입니다.

고죽뢰(孤竹罍), 고죽국(孤竹國) 문화

 

고죽(孤竹)의 청동제 주기(酒器)인 고죽뢰(孤竹罍)를 살펴보겠습니다.

술잔 뢰, 술독 뢰, 세수대야 뢰’ = 밭갈피 뢰 + 장군 부 입니다.

주기(酒器) 즉 술을 부어 마시는 쓰는 기물(器物)을 말하고 대형술병이 뢰()입니다.


요령성(遼寧省)박물관   서주시대(西周時代)  부정고죽뢰(父丁孤竹罍)

 

                   고죽(孤竹) 족휘(族徽)   父丁孤竹亞微(부정고죽아미)

주기(酒器)父丁 孤竹 亞微명문(銘文)이 있다.  명문(銘文)은 고죽(孤竹)의 도등(圖騰), 족휘(族徽) 즉 부족을 대표하는 상징물, 토템(Totem)으로 볼 수 있다.   父丁(부정)은 칭호이고 孤竹(고죽)은 국명(國名)이고 亞微(아미)父丁(부정)의 아들이다.

  

상해(上海)박물관     은말기(殷末期)   亞憲孤竹方罍(아헌고죽방뢰)


청동기에 족휘(族徽) 亞憲孤竹아헌고죽네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래서 명칭이 아헌고죽방뢰亞憲孤竹方罍 이다. 는 상대(商代) 관직 중 무관(武官)으로 지위가 비교적 높다. 아헌(亞憲)은 기물(器物)을 제작한 족명(族名)이고 고죽(孤竹)은 제작자의 국명(國名)이다.

 

       상해(上海)박물관    은말기(殷末期)  거부을굉(擧父乙觥)

 뿔잔 굉’ = 뿔 각 + 빛 광 이고 시굉(兕觥) 은 술을 담거나 마시는데 사용하는 기물(器物)이다. (외뿔들소 시)   타원형 또는 장방형의 복부에 네 개의 다리 또는 굽이 있으며, 술이 흘러나오는 주둥이와 손잡이가 있다.   뚜껑은 동물의 머리나 코끼의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백이 숙제와 관련으로 거부을굉은 귀여운 외양으로 동물의 모습이다.

는 족명(族名)이고 상대 대부족(大部族)으로 이 족명의 청동기가 여러 지방에서 출토되었다. 父乙(부을)은 부친의 이름고 은 부친에게 바친 잔()으로 상대에는 천간순서로 이름을 지었는데 제사명(祭祀名)에도 천간을 사용했고 은 제명(祭名)이다.

 

고죽국(孤竹國)

고죽(孤竹)의 고대중국 음가는 Kutsu(쿠추)로 고추려 왕족의 신분명칭에 고추가(古鄒加)’와 동일합니다.  고죽국(孤竹国)이 고구려 (高句麗)의 전신입니다.

자성(子姓) 묵태씨(墨胎氏)

대수

칭호稱號

신분身分

출처出處

7

부정(父丁)

죽유(竹猷)

墨胎竹猷

第七任孤竹國國君

亞微罍考釋

8

아미(亞微)

()

墨胎初

父丁之子

亞微罍考釋》、《史記索隱

9

아빙(亞憑)

()

墨胎馮

亞微之次子

史記·伯夷列傳》、《路史·國名記


고죽국군(孤竹国君)은 묵태씨(墨胎氏)로 묵씨墨氏, 묵이씨墨夷氏, 목이씨目夷氏, 목자성目子姓으로 써였고 은왕(殷王)과 동성(同姓)인 자를 사용하는데 동이(東夷)의 한 갈래입니다.   은대(殷代)에 고죽국군은 묵태씨(墨胎氏)’였으나, ()이 멸망한 후에는 고죽씨(孤竹氏)’로 바뀝니다. 약칭으로 죽씨(竹氏)라고 합니다.


1) ‘고죽孤竹은 역시 고죽觚竹으로 쓸 수 있는데 은 청동으로 제조한 주기(酒器)이다

2) 급취편(急就篇)에 따르면, ‘안사(颜师)가 주석을 달기를, ’는 학서(學書)의 목간(木簡) 혹은 나무를 새겨서 사실을 기록하는 것으로, 은 같은 뜻으로 필기용 물건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죽孤竹명칭 자체에서 , 주기(酒器)를 사용하고 글을 기록하는 풍부하고 문화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갑골문에 부죽(婦竹)”, “처죽(妻竹)”, “죽첩(竹妾)” 등의 말이 많이 나옵니다.   이는 고죽국의 여자가 상왕실(商王室)에 시집간 부인에 대한 호칭입니다.   고죽국과 상왕실(商王室)의 통혼(通婚)으로 혼인연맹으로 묶여져 있었습니다.

고죽국 제7대 왕은 부정(父丁)이었는데 상 왕조는 부정(父丁)을 정인(貞人)과 사복(司卜)에 임명했습니다.     관직은 은왕(殷王) 점복(占卜)과 제사를 관장하는 것이고 관위(官位)는 아관(亞官)으로 아주 높았어요. 상왕조와 함께 동이족의 전성시대를 누렸어요.

    점복, 제사와 군사를 관장하는 관원은 조정의 요직이었지요. 8대 왕 아미(亞微: 백이,숙제의 아버지, 9대 왕 아빙(亞憑)을 상왕조에서는 잇따라 아경(亞卿)으로 임명했습니다.  경사(卿史)는 최고의 관직이었습니다. 이름에 붙는 자는 존영(尊營)을 표시합니다.

 

고죽국의 특산품으로 고죽거허(孤竹距虛)가 있습니다. 거허(距虛)는 다른 말로 려라(驢騾)인데 한자로 당나귀 려, 노새 라이고 숫말과 암나귀를 교배종으로 몸이 노새보다 작고 귀가 비교적 크고 꼬리 털이 적다. 결제(駃騠, Hinny)라 부르기도 한다.

                          려라(驢騾, 노새, Hinny) 또는 결제(駃騠)


玄牛 정형진님의 [신라얼문화연구원 강연 제77강] "여우바위의 비밀과 고죽국"

강의  역사 논쟁에 대한 내용입니다.


1. 고죽국(孤竹國)은 은()나라 제후국(諸侯國) 이었나?

2. 고죽국은 제()나라 환공((桓公)이 북벌(北伐)을 단행할 때 공격받아 멸망했다.

[ 관자(管子) ]

A.1 고죽국이 은라라 제후국 이었다는 기록은 당()나라 때의 장수절(張守節)이 사기(史記)

주본기(周本記)에 나오는 주석하며 주장한 것이다.

 

A.2 ()나라 때, 사마정(司馬貞)이 사기(史記)의 주석서로 지은 사기색은(史記索隱)서는

()나라 탕왕(湯王) 3월 병인(丙寅)에 봉()해졌다고 했다.

 

이를 근거로 중국학자들은 상탕의 건국 초에 고죽군에 봉함을 받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전에 위 내용이 없다가 당() 나라 때, 사기(史記)에 주석을 하면서 편입되었다.

 

서진(西晉, 265~316) 황보밀(皇甫謐)의 주장

서진(西晉)의 황보밀(皇甫謐)탕이 특별히 묵태씨(묵태씨)를 고죽에 봉했고 9()뒤에 고죽군의 두 아들 백이(伯夷), 숙제(叔弟)...”라고 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사리에 맞지 않다. 왜 그런지 한 번 따져보자. ()에는 기원전 1600년부터 1046년 까지 555년 동안 31명의 왕이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탕왕에 의해서 제후로 임명된 고죽군의 9대손이 상의 마지막 왕인 주()와 동시대에 살 수 있는가?

한민족(韓民族)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 고깔모자(, a peaked hat)와 무(, Shamanism) 문화 -

 신라얼문화연구원장 현우玄牛 정형진님 강의 내용을 정리했어요.

 

점안식(Eyes opening for Buddhist statue)               승무(僧舞, Buddhist Monk dance)

부처 점안식에 부처상에 고깔모자을 씌워놓습니다.   천축국(天竺國), 인도(印度, India)에서는 분명히 고깔모자를 안했을 겁니다.   그리고 승무(僧舞) 즉 승복을 입고 추는 춤에 고깔 모자를 씁니다.   

왜 고깔모자를 쓸까요?

 

12 거리중 제석거리 장면              단군 영정                               제석 무속화

 조선 후기 한양의 무속을 그림으로 남긴 무당내력이라는 책이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 책에 조선후기 한양지역에서 행해지던 무속 12거리도가 나옵니다. 환인 제석, 단군 할배는 고깔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표준 단군 영정에는 고깔모자를 쓰고 있지 않지만 예전에 고깔모자를 썼을 것입니다.

  

목숨 명영 령갑골문(甲骨文)

 갑골문에서 목숨 명영 령를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예관을 쓴 채로 무릎을 꿇고 있는 모양에서 자 발생했다고 설명합니다.    우측 그림을 보면 고깔모자 같은 것을 써고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입니다.

무엇을 생각하면 되냐 하면 예전에 굿을 할 때, 무당이 공수를 내린다고 합니다.   하늘의 천신(天神)한테 어떤 신의 말씀을 들어서 전달해주는 것을 공수라고 합니다.    그 문화하고 관련해서 그 고깔모자가 나왔다는 겁니다.

 

단군할배가 고깔모자를 썼으면 이 문화하고 연결이 되는 겁니다.

부처상 점안식에서 고깔모자를 씌우는 이유가 뭔가 하면 점안식 하기 전에는 부처상이 그냥 물질적인 불상(佛像)인데 고깔을 씌워놓으면 하느님의 신령이 내려와서 불상안에 신성(神性)이 들어오게 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점안식에 고깔모자를 씌우는 겁니다.

  

                                          티벳 부녀자 머리 장식


    고깔 변갑골문              금문                         호우총(壺杅塚)

 

티베트 서장자치구(西藏自治區) 강자현(江孜縣)에 있는 부녀자의 머리 장식입니다.

고대미술사학자 왕대유(王大有)가 삼황오제시대(三皇五帝時代)에서 설명하기를, 공공족(共工族)의 큰 산 모양(궁륭(穹窿))에 나무를 세운 천관(天冠)이라고 했습니다.

共工大山建木盖天冠.---[三皇五帝時代]

 고깔 변갑골문과 금문 모양인데 하늘 궁륭(穹窿)을 두손으로 떠받는 겁니다.

 광개토태왕의 업적을 추모하기 위해서 만든 호우총(壺杅塚)에 보면 위쪽 ‘#’ 모양이 있습니다. ‘갑골문에 테두리 안에 동일한 ‘#’ 모양이에요. ‘#’ 입니다. 고구려인(高句麗人)이 자기자신을 천손(天孫)이라는 개념에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당(Shaman) (Mu)‘ 전문(篆文)

고깔 변와 관련하여 무당 무가 나와요.

궁륭(穹窿)은 하늘(, Sky), 북두칠성(北斗七星, The Big Dipper)이고

아래는 땅(, Earth)이고 땅에다 나무를 세운 것이고

사람이 양옆에 있는 겁니다

를 모시던 사람들이 고대 중원에서 공공족(共工族)이었습니다.

 

고깔모자와 소도(蘇塗)

삼국지위서(魏書) 한전(韓傳)

귀신을 믿으므로 국읍(國邑)에서는 각기 한 사람을 뽑아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게 하였는데, 이 사람을 천군(天君)이라 부른다. 또 이들 여러 나라에는 각각 별읍(別邑)이 있는데 이것을 소도(蘇塗)라 한다. 큰 나무를 세우고 거기에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긴다..”

소도(蘇塗)에 세워진 커다란 나무는 북두칠성을 오르내리는 사다리 역할을 하는 나무[=建木=尺木]


 이 문화가 그대로 한민족(韓民族) 에게 전해졌습니다

단군왕검 시대 주종교는 칠성신앙이었습니다.    한민족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 강력한 신앙이 칠성신앙이었습니다.    사실 칠성신앙은 북극성 신앙입니다.    동북아시아에서 문화를 만든 사람이 삼국유사에서는 진한(辰韓)과 연결되는 동이공공족(東夷共工族)’ 라는 기록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천제,천황,천자의 위계질서

대조선 역사 특강 2016년 6월 5일

조홍근님 강의 내용에서 도시화를 해보았습니다.

 

배달나라 시대에 환웅 천황 또는 천황이라고 했어요.

갑골문

王 왕 의 옛날 갑골문을 보면 도끼 모양이에요.

마을 단위 추장은 '도끼'(斧)를 갖고 있었어요. 제후는 儉 (비파형 동검)을 받았고요. 

천군 이상은 거울, 방울, 칼 을 갖고 있었고 하늘에 제사를 할 수 있었어요. 

태호복희, 염제신농, 황제 헌원은 제帝라고 했고 天을 붙이지 못 했어요.

천국에서 천황이 봉한 자작子爵 이라는 벼슬이 천자天子 에요. 

 

진秦나라 영정 시황이 처음으로 황제皇라고 붙였어요. 그 전에는 하왕, 은황, 주왕 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진나라를 무너터리고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이 황제라 칭하고 밑에 왕王, 제후국을 두어요.

   역사를 보면 천자는 천하왕 중, 제후국 중 하나였어요. 단군 왕검이 거수국, 제후국에 봉하였던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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