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숙 甘肅과 롱서 隴西 의 관계에 대하여

최두환 2008.12.27 09:02  http://blog.daum.net/chosunsachoyduhway/8755161

우리는 지금 조선의 력사를 연구함에 있어 가장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고 있는 것이 지명의 정체성이다. 력사 속의 그 지명이 현재의 지도 위에 있는 것과 동일하냐? 하는 것이다.
현재의 지도는 분명 력사 속의 지명으로 표시된 것이라야 할진대, 대개 그렇지 않기 때문에 력사학자들이 노고를 아끼지 않고 그것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아시아=조선 력사의 패러다임에서는 이에 대해 아주 민감하게 접근하며 아예 통째로 부정하는 경우도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얼마만큼 변화가 있으며, 얼마만큼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정도의 차이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한반도가 조선의 터전이었다는 패러다임에서는 어떤 지명도 그대로 받아들여졌다고 본다. 아무리 한반도 북쪽이 만주이고, 고조선의 터전이 지금의 중국대륙의 동부지역을 상당히 차지했을 것이라는 강역의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은 큰 테두리 안에서의 변화는 없다고 본다. 말하자면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 료녕성 지역에 있다손 해도.
그러나 이젠 한반도니, 일본렬도로서는 조선의 중심적 력사의 터전으로는 인정하지 않으며, 아시아 자체가 꼬리아=조선이라는 패러다임에서는 모든 지명이 1900±50년 당시에 만들어 놓은 그대로를 결코 인정할 수 없다.
여러 곳의 지명을 한 곳으로 묶어서 편집하기도 하고, 한 곳의 지명을 다른 이름으로 고쳐서 여러 곳에다 붙여놓기도 했거니와, 아예 지명 자체를 다른 곳으로 옮겨버린 경우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웬만하면 그 지명 속에 들어있는 력사를 알 수 없게 되어 있다. 이 사실을 알 수 있다면 력사의 진실 찾기는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좀은 어렵지만 결코 어렵지 않은 한 가지 사례의 지명의 이동된 현상을 찾아보자.

(1) 甘肅省: 在我國中部. 地居 西之西. 故亦曰隴西. … 禹貢雍州之域.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이 말은 "감숙성은 우리나라[지금의 중국]의 중심부에 있다. 그 당은 롱서의 서쪽에 있다. 그래서 '롱서'라고도 한다. … 옛날 우공 시절엔 '옹주'의 땅이었다."는 말이다.
옛날엔 천하를 9주로 나누었는데, 그 가운데 "옹주(雍州)" 땅이 "감숙성"이라는 말이며, 곧 "롱서도"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롱서"라는 말은 도대체 무엇인가?

(2) 西突厥 : 동서쪽으로 44 N-56 E에서 44 N-96 E까지, 남북쪽으로 34 N-80 E에서 50 N-84 E까지.[중국력사지도집 제5책, p.30-31]

이 말은 "서-투르크"의 강역이 천산(天山)과 이식크호 [Issyk: 熱海]를 중심으로 동서쪽 5000km, 남북으로 1800km의 넓은 지역이라는 말인데, 그것이 수조(隋朝) 시절에 그랬다는 말이다. 그 서쪽이 무려 아랄해 서쪽을 넘는다.
그런데 이 "서-투르크[西突厥]" 지역이라고 지도에 표시된 것이 당조(唐朝) 때에는 어땠는가?
위의 책 p.63-64에 보면, 거의 같은 강역인데, 아프가니스탄[阿富汗] 지역이 더 포함디어 있고, 아랄해 서쪽이 잘려나갔을 뿐인 이 지역을 "隴右道西部"[롱우도서부]라고 하였다. 물론 그 중심지는 천산과 이시크호[熱海]이다.
이것은 지역이 西突厥[서-투르크]= 右道西部인 것이다. 물론 西=右이다.

 隴右에 天水가 있다. 그런데 "강/물"이라는 "水"를 가졌지만, 天水는 강이 아니다. 그 옆에 다른 이름의 강이 있다. 아마도 본디 강이름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西部"(서부)의 상대적 개념은 "東部"(동부)이니, 반드시 "롱右道東部"(롱우도동부)가 있을 것이며, "롱우도서부"의 동쪽에 있는 것이 당연하며, 그곳은 그 동쪽 경계에 있는 지명 과주(瓜州: 옥문관)·사주(沙州: 돈황)가 있는 90 E의 이동쪽에서 106 E까지의 지금의 감숙성 지역이다. 그렇다면 西部와 東部의 경계에 있는 지역이 "롱"(롱)이라는 말이며, 그곳에 "天水"가 있다는 말이라야 더 합리적 해석이 될 것이다.

이 天山은 너무 커서 중앙아시아에 있는 서쪽 파미르고원에서부터 시작하여 동쪽으로 알타이산[金山: Altai]까지 2000km나 뻗어있다. 알타이산과 가장 가까운 천산산맥의 동쪽 끝자락에 박달산[博格達山=貪汗山=時羅漫山]의 남쪽에 "天山郡/天山軍"(천산군)이 있고, "交河郡"(교하군)이 있고, 그 바로 옆에 "들판[트루판: 吐魯蕃]"이 있다.

"롱서"지역은 중앙아시아의 훨씬 서쪽이며, 서아시아의 동부지역에 해당되는 56 E에서부터 지금의 섬서성 서쪽 106 E까지라야 옳지 않을까? 이것은 그만큼 지역/지명이 동쪽으로 옮겨졌다는 말이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西"와 "右"는 같은 개념이므로, " 西"는 " 右"와 일치해야 설득력이 있다. 지금 "롱서"는 감숙성 지역에 실려있고, 위의 지도 p.61-62에서 보면, 34.9 N-104.9 E에 있다. 그렇다면 이 " 西"는 사실 " 東"에 해당되어야 한다. 그래서 "롱西道東部"라고 하는 모양이다. 이 사실이 바로 "롱서"가 그만큼 동쪽으로, 즉 현재의 감숙성 자리로 옮겨졌음을 말해준다.

天水는 天山과 다르지 않다. 산과 물은 바로 그 이름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미름은 사실 같은 지명이거나, 거의 같은 지역에 나란히 있어야 할 이름이다.

그런데 "天水軍"은 현재 감숙성 천수현 서남쪽 70리에 있다고『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 나와 있다. 그런데 위의 지도에서 보면, 물론『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天山軍"이 신강성 동북부에 "西州/高昌" 옆에 적어놓았다.
아무리 보아도 이 두 지명은 본디 같은 것으로 보이며, 지명이 옮겨진 뒤의 왜곡이라고 본다.

우리는 롱서/롱우의 지역을 동경 106도에 있는 것으로써 력사의 기준점으로 삼아 해석한다면, 력사의 진실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리덕유(李德裕)의 호가, 리춘경(李春卿)의 호가, 리첨(李詹)의 호가 " 西"(롱서)이고, 입만 벌였다 하면 시가 되고, 노래가 만들어졌다는 리백(李白)의 고향이 "롱서"이다. 그곳은 조선의 땅이었다.

《단군신화》의 발상지 문제우리 민족은 어디서 왔는가?(6)

http://www.dbanews.com  동북아신문
박문희  |  pwx0907@yahoo.com.cn  2008.03.14


《단군신화》를 보면 460여자 되는 짧은 글속에 수천년간에 걸친 아름찬 력사내용을 압축해 담고있다. 환웅의 삼위태백 강림, 단군의 탄생, 조선국 창설, 백악산아사달 천도, 장당경 은둔...하다면 환웅이 내렸다는 삼위 태백은 진실일가, 허구일가? 아니면 태백의 수식어에 불과한 것일가? 진실이라면 그 위치는?

《尚書·舜典》에 “三危”란 지명이 追記된 이래 력대의 문헌기록과 후세 사람들의 연구자료를 보면 “고삼위”의 존재는 확실하며 위치도 서북지역임이 분명하다.

北魏의 酈道元 등은 “삼위산은 돈황현 남쪽에 있다”(《水經注》)고,  

唐의 리태 등은 “삼위산은 沙州(돈황)의 동남쪽으로 30리 떨어진 곳에 있다”(《括地志》)고, 

《한서》,《후한서》,《상서정의》,《상서법》,《태평어람》등은 “三危가 감숙과 청해성 경내에 있다"고 기술했고  

동한시기 마융의 《상서주》와《한서·공안국전》,  

唐나라 공영달의《尚書正義》등 史籍은 “三危”가 서부지역에 있다고 기록했다.

 그중 “대삼위”, “대돈황”설과 최신판《辭海》력사지리 분책에 올린 감숙성 롱서현(隴西縣) 서북부 지역설 등이 상대적으로 설득력을 얻고있다.

초보자 위한 강좌 - 영주(營州)의 흔적.. 玄朝_문무의 조선사 / 역사

玄朝..  2010.10.09


   http://cafe.daum.net/munmoo-chosunsa/3pCY/23

# 롱서(隴西)의 수양산(首陽山)은 확실히 고죽국(孤竹國)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확대해서 보면 다음 아래와 같다..

{ ※ 우연하게도 현 감숙성(甘肅省) 서남부의 위원(渭源)은 근세 조선(朝鮮)의 평안도(平安道) 관련 지명이기도 하는데, 평양(平壤)과 양평(襄平)도 역시 평안도(平安道)에 속하는 지명이기도 한다.. }

롱서(隴西)는 현 감숙성(甘肅省) 서남부에 실존하는 지명이고, 롱서(隴西)의 북쪽 경계에는 란주(蘭州 : 金城)와 령주(靈州)가 있는데..

營州,鄰海軍,下,刺史。本商孤竹國。

영주,인해군,하,자사。본상고죽국。
[ # 요사(遼史) 권040.. ]

 # 간단히 보면, 영주(營州)는 본디 상나라(商) 당시의 고죽국(孤竹國)이라고 했다..

 地理誌曰 : 令支有孤竹城, 故孤竹國也..
지리지왈 : 영지유고죽성, 고고죽국야..
史記曰 : 孤竹君之二子伯夷 · 叔齊, 讓國於此, 而餓死於首陽..
사기왈 : 고죽군지이자백이 · 숙제, 양국어차, 이아사어수양..
[ # 수경주(水經注) 권014.. ]

 지리지(地理誌)가 말하기를 : 영지(令支)에 고죽성(孤竹城)이 있고,(그 곳은) 옛 고죽국(孤竹國)이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가 말하기를 : 고죽(孤竹) 임금의 아들 2명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이고, (고죽국에) 나라(고죽국)의 자리를 사양하였고, 수양산(首陽山)에 굶어 죽었다..

 # 윗 문구를 보아 알수 있듯이..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굶어 죽은 곳 - 수양산(首陽山)은 고죽국(孤竹國)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 수양산(首陽山)을 단서로 삼아 추적하기 전에 근세 조선(朝鮮)의 시를 읊어보면서 감상해보기를 권한다..

 得聖之淸孰與齊 : 성인으론 맑은 이를 누가 겨루랴
首山道便此憑隮 : 수양산 가는 길 이로 좇아 올랐도다
爲傳公信及公達 : 백이와 숙제를 전하기 위함인데 
底較遼西復隴西 : 요서와 농서는 비교나 되랴 
何事宋朝賜圭冕 : 송 나라선 무엇하러 규면을 내렸는지 
可知夫子視塗泥 : 부자께서 흙덩이로 여김 알 수 있네 
史遷慨羡靑雲士 : 사마천은 청운의 선비 부러워했으니 
未識浮名本稗稊 : 뜬 소문 원래 쓸데없음을 몰라서지 
[ # 계산기정(薊山紀程) 제4권 - 돌아오는 길[復路] : 근세 조선(朝鮮).. ]

 # 요서(遼西)와 롱서(隴西), 수양산(首陽山)을 고죽국(孤竹國)의 위치를 찾는데 중요한 단서로 얻었다..

그 전에 다음 아래의 글을 읽기 전에 마음을 비워두기를 바란다..

 阮籍《詠懷詩》亦以爲然。今此二山。竝有夷、齊祠耳。
완적《영회시》역이위연。금차이산。병유이、제사이。
而曹大家注《幽通賦》云。隴西首陽縣是也。今隴西亦有首陽山。
이조대가주《유통부》운。롱서수양현시야。금롱서역유수양산。
許愼云。首陽山在遼西。諸說不同。致有疑惑。
허신운。수양산재료서。제설부동。치유의혹。
而《伯夷歌》云。登彼西山。則當隴西者近爲是也。
이《백이가》운。등피서산。칙당롱서자근위시야。 
[ #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 고죽수양산변증설(孤竹首陽山辨證說) : 근세 조선(朝鮮).. ]

 완적(阮籍)의 영회시(詠懷詩)는 역시 그렇다고 여겼고, 지금의 두 산이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제사를 기울이면서 아울러 가졌다..
조대가(曹大家)의 주석 유통부(幽通賦)가 이르기를 롱서(隴西)의 수양현(首陽縣)이 옳다.. 지금 롱서(隴西)에 역시 수양산(首陽山)이 있다..

허신(許愼)이 이르기를 수양산(首陽山)은 요서(遼西)에 위치한다.. 여러 사람이 주장하는 말이 똑같지 않고, 의혹하기를 이르렀다..
백이가(伯夷歌)가 이르기를 서산에 오르면, 당연히 롱서(隴西)와 가까우니 옳다고 한다..

 # 윗 기록을 읽으면서 알수 있듯이  요서(遼西) 위치설에 대하여 여러 사람마다 주장이 다르니 의혹을 가지게 된 것이다..

{ # 우리 나라의 사학계와 지나(支那 : 중화) 사학계는 이를 알지 못하는채, 의혹스러운 요서(遼西) 위치설을 고집하고 있는데, 잘못된 것이다.. }

 # 확실한 것은 고조선(古朝鮮) 시대부터 근세 조선(朝鮮) 시대까지 백이(伯夷) 숙제(叔齊)의 수양산(首陽山)은 롱서(隴西)에 위치하는 것은 옳기 때문에 시대를 초월하는 정론으로 볼 수 있다..

 

東漢經文學家曹大家(即班昭)注《幽通賦》說:"夷齊餓於首陽山在隴西首陽。" …
동한경문학가조대가(즉반소)주《유통부》설:"이제아어수양산재롱서수양。" …
正義曰曹大家注幽通賦云:「夷齊餓於首陽山,在隴西首。」
정의왈조대가주유통부운:「이제아어수양산,재롱서수。」
[ # 사기(史記) 권061 백이열전제일(伯夷列傳第一).. ]

 동한경(東漢經)의 문학가 - 조대가(曹大家 : 즉 반소(班昭)이다)의 주석 유통부(幽通賦) 설에 따르면,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굶은 수양산(首陽山)은 롱서(隴西)의 수양(首陽)에 위치한다..

정의(正義)가 말하기를 조대가(曹大家)의 주석 유통부(幽通賦)가 이르기를 :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굶은 수양산(首陽山)은 롱서(隴西)의 수양(首陽)에 위치한다..

 #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근세 조선(朝鮮) 당시의 기록과 후한(後漢) 당시의 기록에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굶어 죽은 수양산(首陽山)은 롱서(隴西)에 있다는 것이다..

 首陽山, 古孤竹國之地, 伯夷 · 叔齊, 孤竹君之二子, 餓死首陽山之下, 即此山也..
수양산, 고고죽국지지, 백이 · 숙제, 고죽군지이자, 아사수양산지하, 즉차산야..
[ # 무경총요(武經總要) 전집(前集) 권022.. ]

 수양산(首陽山)은 옛 고죽국(孤竹國)의 지역이고, 백이(伯夷) 숙제(叔齊)는 고죽국(孤竹國) 임금의 아들 2명이다..  수양산(首陽山)의 아래에 아사하여 죽었고, 즉 이 산(롱서의 수양산)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