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의 발상지 문제우리 민족은 어디서 왔는가?(6)
http://www.dbanews.com 동북아신문
박문희 | pwx0907@yahoo.com.cn 2008.03.14
《단군신화》를 보면 460여자 되는 짧은 글속에 수천년간에 걸친 아름찬 력사내용을 압축해 담고있다. 환웅의 삼위태백
강림, 단군의 탄생, 조선국 창설, 백악산아사달 천도, 장당경 은둔...하다면 환웅이 내렸다는 삼위 태백은 진실일가, 허구일가?
아니면 태백의 수식어에 불과한 것일가? 진실이라면 그 위치는?
《尚書·舜典》에 “三危”란 지명이 追記된 이래 력대의 문헌기록과 후세 사람들의 연구자료를 보면 “고삼위”의 존재는 확실하며 위치도
서북지역임이 분명하다.
北魏의 酈道元 등은 “삼위산은 돈황현 남쪽에 있다”(《水經注》)고,
唐의 리태 등은 “삼위산은
沙州(돈황)의 동남쪽으로 30리 떨어진 곳에 있다”(《括地志》)고,
《한서》,《후한서》,《상서정의》,《상서법》,《태평어람》등은
“三危가 감숙과 청해성 경내에 있다"고 기술했고
동한시기 마융의 《상서주》와《한서·공안국전》,
唐나라 공영달의《尚書正義》등 史籍은
“三危”가 서부지역에 있다고 기록했다.
그중 “대삼위”, “대돈황”설과 최신판《辭海》력사지리 분책에 올린 감숙성 롱서현(隴西縣)
서북부 지역설 등이 상대적으로 설득력을 얻고있다.
玄朝..2010.10.09
# 롱서(隴西)의 수양산(首陽山)은 확실히 고죽국(孤竹國)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확대해서 보면 다음 아래와 같다..
{ ※ 우연하게도 현 감숙성(甘肅省) 서남부의 위원(渭源)은 근세 조선(朝鮮)의 평안도(平安道) 관련 지명이기도 하는데, 평양(平壤)과 양평(襄平)도 역시 평안도(平安道)에 속하는 지명이기도 한다.. }
롱서(隴西)는 현 감숙성(甘肅省) 서남부에 실존하는 지명이고, 롱서(隴西)의 북쪽 경계에는 란주(蘭州 : 金城)와 령주(靈州)가 있는데..
營州,鄰海軍,下,刺史。本商孤竹國。영주,인해군,하,자사。본상고죽국。
[ # 요사(遼史) 권040.. ]
# 간단히 보면, 영주(營州)는 본디 상나라(商) 당시의 고죽국(孤竹國)이라고 했다..
地理誌曰 : 令支有孤竹城, 故孤竹國也..
지리지왈 : 영지유고죽성, 고고죽국야..
史記曰 : 孤竹君之二子伯夷 · 叔齊, 讓國於此, 而餓死於首陽..
사기왈 : 고죽군지이자백이 · 숙제, 양국어차, 이아사어수양..
[ # 수경주(水經注) 권014.. ]
지리지(地理誌)가 말하기를 : 영지(令支)에 고죽성(孤竹城)이 있고,(그 곳은) 옛 고죽국(孤竹國)이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가 말하기를 : 고죽(孤竹) 임금의 아들 2명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이고, (고죽국에) 나라(고죽국)의 자리를 사양하였고, 수양산(首陽山)에 굶어 죽었다..
# 윗 문구를 보아 알수 있듯이..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굶어 죽은 곳 - 수양산(首陽山)은 고죽국(孤竹國)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 수양산(首陽山)을 단서로 삼아 추적하기 전에 근세 조선(朝鮮)의 시를 읊어보면서 감상해보기를 권한다..
得聖之淸孰與齊 : 성인으론 맑은 이를 누가 겨루랴
首山道便此憑隮 : 수양산 가는 길 이로 좇아 올랐도다
爲傳公信及公達 : 백이와 숙제를 전하기 위함인데
底較遼西復隴西 : 요서와 농서는 비교나 되랴
何事宋朝賜圭冕 : 송 나라선 무엇하러 규면을 내렸는지
可知夫子視塗泥 : 부자께서 흙덩이로 여김 알 수 있네
史遷慨羡靑雲士 : 사마천은 청운의 선비 부러워했으니
未識浮名本稗稊 : 뜬 소문 원래 쓸데없음을 몰라서지
[ # 계산기정(薊山紀程) 제4권 - 돌아오는 길[復路] : 근세 조선(朝鮮).. ]
# 요서(遼西)와 롱서(隴西), 수양산(首陽山)을 고죽국(孤竹國)의 위치를 찾는데 중요한 단서로 얻었다..
그 전에 다음 아래의 글을 읽기 전에 마음을 비워두기를 바란다..
阮籍《詠懷詩》亦以爲然。今此二山。竝有夷、齊祠耳。
완적《영회시》역이위연。금차이산。병유이、제사이。
而曹大家注《幽通賦》云。隴西首陽縣是也。今隴西亦有首陽山。
이조대가주《유통부》운。롱서수양현시야。금롱서역유수양산。
許愼云。首陽山在遼西。諸說不同。致有疑惑。
허신운。수양산재료서。제설부동。치유의혹。
而《伯夷歌》云。登彼西山。則當隴西者近爲是也。
이《백이가》운。등피서산。칙당롱서자근위시야。
[ #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 고죽수양산변증설(孤竹首陽山辨證說) : 근세 조선(朝鮮).. ]
완적(阮籍)의 영회시(詠懷詩)는 역시 그렇다고 여겼고, 지금의 두 산이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제사를 기울이면서 아울러 가졌다..
조대가(曹大家)의 주석 유통부(幽通賦)가 이르기를 롱서(隴西)의 수양현(首陽縣)이 옳다.. 지금 롱서(隴西)에 역시 수양산(首陽山)이 있다..
허신(許愼)이 이르기를 수양산(首陽山)은 요서(遼西)에 위치한다.. 여러 사람이 주장하는 말이 똑같지 않고, 의혹하기를 이르렀다..
백이가(伯夷歌)가 이르기를 서산에 오르면, 당연히 롱서(隴西)와 가까우니 옳다고 한다..
# 윗 기록을 읽으면서 알수 있듯이 요서(遼西) 위치설에 대하여 여러 사람마다 주장이 다르니 의혹을 가지게 된 것이다..
{ # 우리 나라의 사학계와 지나(支那 : 중화) 사학계는 이를 알지 못하는채, 의혹스러운 요서(遼西) 위치설을 고집하고 있는데, 잘못된 것이다.. }
# 확실한 것은 고조선(古朝鮮) 시대부터 근세 조선(朝鮮) 시대까지 백이(伯夷) 숙제(叔齊)의 수양산(首陽山)은 롱서(隴西)에 위치하는 것은 옳기 때문에 시대를 초월하는 정론으로 볼 수 있다..
東漢經文學家曹大家(即班昭)注《幽通賦》說:"夷齊餓於首陽山在隴西首陽。" …
동한경문학가조대가(즉반소)주《유통부》설:"이제아어수양산재롱서수양。" …
正義曰曹大家注幽通賦云:「夷齊餓於首陽山,在隴西首。」
정의왈조대가주유통부운:「이제아어수양산,재롱서수。」
[ # 사기(史記) 권061 백이열전제일(伯夷列傳第一).. ]
동한경(東漢經)의 문학가 - 조대가(曹大家 : 즉 반소(班昭)이다)의 주석 유통부(幽通賦) 설에 따르면,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굶은 수양산(首陽山)은 롱서(隴西)의 수양(首陽)에 위치한다..
정의(正義)가 말하기를 조대가(曹大家)의 주석 유통부(幽通賦)가 이르기를 :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굶은 수양산(首陽山)은 롱서(隴西)의 수양(首陽)에 위치한다..
#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근세 조선(朝鮮) 당시의 기록과 후한(後漢) 당시의 기록에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굶어 죽은 수양산(首陽山)은 롱서(隴西)에 있다는 것이다..
首陽山, 古孤竹國之地, 伯夷 · 叔齊, 孤竹君之二子, 餓死首陽山之下, 即此山也..
수양산, 고고죽국지지, 백이 · 숙제, 고죽군지이자, 아사수양산지하, 즉차산야..
[ # 무경총요(武經總要) 전집(前集) 권022.. ]
수양산(首陽山)은 옛 고죽국(孤竹國)의 지역이고, 백이(伯夷) 숙제(叔齊)는 고죽국(孤竹國) 임금의 아들 2명이다.. 수양산(首陽山)의 아래에 아사하여 죽었고, 즉 이 산(롱서의 수양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