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blog.naver.com/casahoo

대륙절강의 가야

김수로왕의 가야가 한반도로 이동하기 전에 가야의 선조가 대륙의 절강성지역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데 소개합니다


고조선의 명이변한은 옹관묘제를 사용했는데 소호씨(少昊氏)세력과 관계가 있으며 대릉하 대성자(大城子)지역과 산동지역에 있었습니다.

참고- 번한

http://blog.naver.com/casahoo/20001616685

 

그런 소호씨(가야)세력이 남하하여 절강지역의 청양(靑陽)에 정착하였는데 가야와 관계 있는 지명들로 허황옥의 출생지일수도 있는 허촌(許村)이 있고 묘수(廟首)도 있으며 구지봉에 나오는 구지산(九支山)도 있습니다.

 

<산해경>'황제내경'에 청양지역 남쪽에서 파사석이 생산된다는 기록이 있고 가야가 금성을 침범했다가 퇴각하면서 지나가는 지명으로 독산(獨山)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반도에는 김해(金海)에 김수로왕의 묘는 있으나 황산강(黃山江)이 없고 동북쪽에 가야산(加倻山)도 없습니다.


지도- 가야의 위치 추정지명

 


가야세력을 대륙의 절강성 청양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는 이유로 <삼국사기>에 초기신라의 천문관측기록을 보면 양자강유역의 청양지역으로 나오고 귀지(貴地)와 허촌, 묘수, 구지산의 지명이 사서의 수로왕신화에 나오는 지명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가야의 선조 소호씨의 묘가 대륙의 곡부에 있으며 수로왕의 후손인 김유신은 서라벌신라에 귀화하고 후대에 왕의 칭호를 받고 후손들이 왕권을 장악하면서 <삼국사기>'신라본기'에 김수로왕의 선조인 소호씨의 역사가 서라벌신라의 기록에 편입됩니다.


지도- 천문기록도(고구려, 백제, 가야)

 

그래서 <삼국사기>의 천문기록중에 신라가 대륙의 절강지역으로 나오지만 신라가 아니고 가야의 천문기록으로 봐야합니다.


그 이유는 서라벌신라는 3세기경에 요녕지역에 있었는데 조위(曺魏)의 낙랑에 패하여 한반도로 이동하고 5세기경에 고구려로부터 독립하면서 가야계를 흡수했고 김유신은 서라벌신라의 진골로 편입됩니다.

참고- 대륙삼국의 증명(천문기록), 초기삼국의 위치

http://blog.naver.com/casahoo/20001340770

http://blog.naver.com/casahoo/20001639524 



이렇게 가야사가 흡수되면서 서라벌신라의 역사에 혁세씨와 소호씨의 역사가 혼재되어 기록된 것입니다.


가야의 김수로왕 세력은 지금의 한반도 남부(영산강, 김해)로 이주하면서 한반도의 토착세력과 융합하여 강력한 해상세력으로 성장했으나 백제가 한반도로 진출하면서 세력이 약화되어 일본열도로 다시 이주하고 야마토정권와 대화왕조를 건국합니다.

*가야가 백제에 패배한 이유는 기동력의 차이로 보임

                                             (가야는 전차병이고 백제는 기마병)

 

다시 말하면 가야연맹의 왕족들은 백제에 흡수되어 일본열도를 통치하면서 백제사에도 등장하고 일부는 서라벌신라에 편입된 것입니다.


지도- <일본서기>의 천문관측도

 

여기서 <일본서기>의 천문기록을 살펴보면 더욱 자세하게 알 수 있는데 A는 초기'가야사'를 바탕으로 기록한 것이고  B는 김수로왕의 '가야사'의 관측기록이며  C와  D는 일본열도를 가야와 백제가 지배한 후의 관측기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일본서기>는 백제가 멸망한 후에 백제의 속국이던 열도가야(왜)가 일본이라는 국호로 독립하면서 가야사와 백제사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역사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참고- 일본서기의 인식

http://blog.naver.com/casahoo/20001656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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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위치는 한반도 경상도가 아니고 안휘성 궤지(潰池)근처이다. 가라 위치를 확정적으로 찾아야 임나를 찾을 수 있다.


< 삼국유사 >가 발행된 이후


『고려사(高麗史)』를 포함한 조선시대 모든 기록과 안정복 신채호에 의해서도 경상남도에 가라(加羅)가 있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김유신이 황해의 동쪽에서 활동했다고 가르치고 있으나 지명 등 관계로 보아 『삼국사기』 및 『25사』동이전과는 사뭇 다르게 되어 있는 것을 가르치고 있음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첫째  

"가라"가 최초로 기록된 곳은 호태왕비(好太王碑)인데 왜와 신라와 백제 임나가라(任那加羅)는 같은 지역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삼국지에서 남사까지의 동이왜(東夷倭)는 남월, 주애, 회계동야현, 이주(南越, 朱崖, 會計東冶縣, 夷洲)가 있는 지역에 있다고 했으며 고구려의 북평, 태원 남쪽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송나라 때의 지도인 "우적도"에 의하면 북평과 태원이 있는 남쪽인 지금의 양자강 이남 지도상에 왜지명이 기록되어 있으니 왜가 있는 지역에 가라도 있었을 것이며 호태왕비(好太王碑)의 임나가라도 양자강 유역에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세째

가라가 중국 사서에서 최초이고 유일하게 항목으로 기록된 것이 남제서(南齊書)인데 한의 일부라 하였으니 "韓"의 위치에 의하여 가라의 위치가 결정될 수밖에 없으며 삼국지 후한서 동이(東夷)에서 "韓"은 북평, 태원의 고구려와 남월, 주애, 회계동야현, 이주, 단주의 왜 사이에 있었으니 한의 일부였던 가라의 위치 또한 그 사이에 있었을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넷째  

남제서이외에는 양서, 북사, 남사의 "東夷倭" 항목에 임나가라가 있으니 왜의 지명이 있는 양자강 유역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섯째  

삼국유사 가라전은 초기에 구간이 있다고 했으며 또 "九干"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가라와 다른 지역의 구간 기록을 섞어서 가라 기록으로 변경된 것은 아닐까

또한 九干을 마립간(麻立干)과 같은 한반도의 고구려간(高句麗干)이 아닐까 ?

삼국사기 신,구당서에서 한(汗) 또는 간(干)은 고구려 지역통치자로 기록하고 있으니 九干이 경상남도 지역에 있었다면 고구려의 九干인 것이지 加羅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



여섯째  

가라의 위치를 밝히는데 가장 확실하게 추정할 수 있는 방법은 가라의 후예 김유신의 위치로 규명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유신의 선조 소호금천씨가 살던 청양(靑陽 : 소호 : 少昊)이 기자 묘가 있는 몽성(蒙城)의 남쪽에 있고 청양(靑陽)의 주위에 김유신 시대 전쟁 지명인 동성 잠산 독산 덕안 항성이 있으며 가라 위치와 관계가 있는 황산 허촌 묘수 창계 지주(궤지) 구자산등이 있으니 임나가라의 위치는 위의 지명이 있는 지역에서 찾아야 할 것이 아닌가 ?
가야/가락을 찾아라!
  • 글쓴이: 최두환  2007.11.15

    조선의 력사 가운데서 신비한 것이 참으로 많다. 그런 신비한 력사 가운데서 "가야"만큼 아리송한 것도 없을 것이다. 현재 경상도, 특히 김해 지방에서 유물이 나오기만 하면 거의 "가야"유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가야에는 김수로가 건국했다는 "금관가야"에서부터 "대가야·소가야·고녕가야·아라가야·성산가야·비화가야"가 그것이다. 이런 가야의 이름에도 비슷한 소리의 글자가 많다. 이것은 나중에 인도로 지역이 이동되면서 새로운 위치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金官伽倻: 駕洛·南+伽倻·伽耶·加耶
    大伽倻: 高靈·大+加耶·加羅. 伴跛
    小伽倻: 固城+固城. 久差·古嵯·
    古寧伽倻: 咸昌+伽倻·伽耶·加耶
    阿羅伽倻: 咸安·安羅·阿尸良·呵耶+伽倻·伽耶·加耶
    星山伽倻: 星州·碧珍+伽倻·伽耶
    非火伽倻: 昌寧·比自 

    이렇게 많은 가야에서 그것이 정작 어디라고 말하기에는 마땅찮기도 하다.
    그런데 "가야"니, "가락"이니 하는 것에는 뭔가 공통적인 것이 보인다. 이들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1) 加耶[三國史記]
    伽耶[三國史記/三國遺事]
    伽倻[高麗史/東國輿地勝覽]
    (2) 加羅[廣開土王碑/南齊書/日本書紀]
    伽羅[梁書倭傳]
    迦羅[隋書/北史]
     羅[三國遺事]
    柯羅[日本書紀]
    (3) 狗邪[三國志魏書東夷]
    拘邪
    (4) 加良[三國史記]
    駕洛[三國史記/三國遺事]
    駕落[三國史記]

    위의 글들은 우리들이 통상 "가야/가락"으로 두 가지의 형태를 부르는 말인데, 한자로는 4가지 부류로 구분했지만, 각각 다른 글자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 하나의 소리를 다르게 썼을 뿐인데, 어떤 의미가 있으며,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지 보자.

    위의 (1)은 그 소리가 그대로 [가야][gaya], (2)는 [가라][gara], (3)은 [구사][kusa][쿠추][kuchu], (4)는 [가라][쟈로][zalo]이다.
    결국 이들은 [gaya][gara][kuchu][zalo]의 4가지로 줄어지며, 앞의 [gaya]는 가야[Gaya] 또는 부다가야[Buddha Gaya]로서 현재 인도의 동북부 지방이다.
    두 번째 [gara]는 [goro]로도 모음변화가 가능하며, [ghore]로도 쓰여 아프가니스탄 고르[Ghore: 북위 34도 동경 65도]로 보인다.
    세 번째 [kusa]는 [kush]로, [kash]로 변형이 가능하며, 이곳은 카슈[Khash][북위 30도 동경 63도
    ]일 것이다.
    네 번째 [zalo]는 [lo]가 [벌/불/부루]와도 같은 변화로 보면, [zambul][잠불]로도 볼 수 있다. 이곳은 고르 동남쪽에 있다.
    이렇게 가야/가락국 지역을 중앙아시아로 보는 까닭은 결코 한반도 경상도의 그 김해 중심의 가야니, 가락국이라는 것이 옳은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곳의 이름을 한반도에서는 하나로 얼버무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지『신증 동국여지승람』(권32 김해도호부)에 나오는 설명부터 알아보고 넘어가자.

    (5) 성곽: 정몽주의 기문에, …그리하여 당시에 왜적을 방어하던 자취를 대개 볼 수 있었다. 지난적에 글안(契丹)·금(金)나라·원(元)나라와 국경을 린접한 敵이며, 몇 해나 항전하였으나, 옛 강토를 잃지 않고 지금에 이르렀음에도, 어찌 우연한 일이리요. 지금 국가에서 20여 년이나 군사를 움직이고 있으니, 성과 못은 곳마다 퇴폐하여 태평성대와 다름이 없다. … 내 장차 옛 가야 터를 찾으려는 바, 새 성 위에서 술잔을 들며 박위(朴 ) 후(侯)의 정적(政敵)에 성공이 있음을 축하하리라.

    여기서 잘 보자! 경상도 김해 가야가 어디인데, 그 국경이 되는 쪽의 위치에 "글안(契丹)·금(金)나라·원(元)나라"가 있다는 건가? 참으로 얼토당토 않다. 그것이 한반도라면 말이다.
    이 "가야 김해"를 중앙아시아 "고르(Ghore)"로 보자. 그러면 위의 김해성각의 기록이 어떻게 풀어지는가를 말이다.
    지금까지 글안이라는 서북쪽의 키타이, 알타이가 중심이된 금[金]나라, 우랄·알타이 바로 그 지역에 말갈이 있었고, 그 말갈의 다른 이름의 몽고라는 원이 있었다고 보면 모두가 풀어질 것이다.
    또 그 김해도호부에 있는 지명을 보자.

    (6) 신교천(薪橋川): 김해부 서북쪽 30리에 있다. 물의 근원이 창원부 렴산(簾山)에서 나오며, 동북쪽으로 흘러 락송지(落松池)에 합치고, 북쪽으로 흘러 해양강(海陽江)에 들어간다.

    이 설명에서 렴산은 바로 내가 살았던 고향 뒷산이름이며, 그 이웃 동네의 진산인데, 우리들은 그저 "구룡산(九龍山)"이란 이름으로 통하며, 신라 배극렴(裵克簾)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전해온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여기에는 "강"이 없다. 물론 "낙동강"줄기라는 개구리 몇 마리, 송사시 몇 마리는 살 수 있는 실개천은 있다. 그러니 더더욱 "해양강"이란 거창한 이름의 강은 전혀 없다.
    이런 지형 설명은 어디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 그런데 이 "해양강"은 밀양부(密陽府) 룡진(龍津) 하류의 강이라고 하는데, 한반도 경상도 밀양군, 지금은 밀양시에는 이런 강은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밀양"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그 발음이 [미량]인데, 본디 "推火郡"[추화군]이었으니, 이것은 "밀불>미르벌>미라벌"로도 된다. 이 지명의 소리는 아프가니스탄의 고르(Ghore)의 남쪽에 있는 카슈(Khash)의 남쪽 헬만드 강가에 "Mirabad"(미라바드)가 있다. 바로 이곳이 그 "밀양"일 것이며, "海陽江"이란 이름이 혹시 그 "Helmand"일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러게 해서 다음의 기록에서 어렴풋이나마 정말 그렇겠구나 하는 말이 나올 것이다.

    (7) (김해부의) 서남쪽으로 큰 바다가 있고 세 갈래의 물이 빙 둘렀다.[西南際大海, 三叉經帶]

    이 지형 설명은 현재 한반도 김해의 먼 남쪽에 바다는 있을지언정, 서남쪽엔 바다가 없다. 이 "大海"라는 말은 아마도 헬만드(helmand)호일 것이다. 거기에는 북쪽의 하리 강(Hari Rud), 남쪽의 헬만드 강(Helmand Rud), 그 중간의 샛강 파라 강(Farrah Rud)이 너무도 어울린다. 지도에서 한번 감상이나 해보면 좋을 것이다.
    그래서 그『신증 동국여지승람』에 설명된 황산강(黃山江)을 읊은 강혼(姜渾)의 시 한 수를 감상도 적절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8) 김해부에 배를 대고 [泊舟金海府]
    문득 진양산을 바라보니 [却望晉陽山]
    넓고 넓은 구름 하늘이 멀고 [納納雲天遠]
    아득히 물이 질펀한 나라는 넓어[茫茫水國寬]
    강과 호수에 이 밤이 흥겨워라.[江湖今夜興]

    김해에서 진양산(晉陽山)을 바라본다니 우습다. 그 진양산이 중앙아시아에서도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한반도 김해 근처에서는 없다.
    그리고 물이 질펀한 나라[水國]이니, 강과 호수[江湖]는 바로 헬만드 호가 안성마춤이다. 게다가 그곳의 흐르는 강을 보며, 이것은『신증 동국여지승람』의 김해부 형승을 설명한 것을 쏙 빼 닮았다.

    http://cafe.daum.net/chosu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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