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자카르타가 있는 자바 섬을 떠난 비행기는 칼리만탄 남부의 거점 도시 반자르마신(Banjarmasin)에 나를 내려 놓는다. 반자르마신은 바리토강을 중심으로 한 수상 생활이 무척 인상적인 도시이다. 그 반자르마신에서 다시 프로펠러가 달린 16인승 소형 비행기를 타고 팡칼라분(Pankalabun)으로 향했다.

▲ 반자르마신 수상 시장
ⓒ 김비아
가는 도중에 잠빗(Sambit)이란 도시를 거쳤다. 작년에 머리 사냥(head hunting)의 대참사가 벌어졌던 곳, 다약족이 부족의 옛 전통을 부활시켜 마두라족을 시내 한복판에서 육천 명이나 죽인 사건의 발생지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아직 원시적인 칼리만탄을 개발하고자 자바의 마두라족을 대거 이주시켰다. 마두라족이 지역 상권을 장악함으로써 본토인인 다약족과 갈등이 빚어진 것이다. 외부의 자본이 지역을 잠식하고 지역민을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세계화가 초래한 슬픈 현실은 세상 어느 곳도 예외가 아니었다.

잠빗을 지나 드디어 팡칼라분에 도착, 바로 경찰서로 향했다. 오랑우탄 보호 센터가 있는 탄중푸팅 국립공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경찰의 허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허가증을 발급 받은 후 탄중푸팅에서 가장 가까운 강변의 작은 마을 쿠마이(Kumai)까지 갔다
한국인 인도네시아 정글에 교회 100여개 건립


한국인 선교사가 인도네시아 정글 속에서15년 동안 원주민들과 동고동락하며 교회 100여개를 건립해 의료와 교육 봉사 등의 활동을 벌여 온 사실이 드러나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충남 부여 출신의 김익배(53) 목사가 88년 서칼리만탄 주도 폰티아낙에서 차량으로 9시간 떨어진 신탕군(郡)에 첫 발을 내디딘 이래 지금까지 헌신적인 선교사업을 펴 대성공을 거뒀다.

밀림속 판잣집에서 처음 시작한 `아가페 선교원'이 150㏊가 넘는 부지에 현대식 병원과 각급 학교 고아원 목공소 등을 보유할 정도로 성장해 열악한 환경속에 있는 원주민들에게 무료 의료서비스를 포함한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반기독교 성향이 짙은 이슬람세력의 영향력이 강한 신탕지역에서 아가페 선교원의 복음 전파 노력이 값진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김 목사의 선교 방법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선교 초기 외부 세계와 고립된 정글 마을로 무작정 들어가 복음 전파를 시도했으나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원주민들이 말라리아와 장티푸스,간염등 각종 풍토병에 걸려 신음하고 90% 이상이 문맹자인 현실에서 복음이 제대로 전달될 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대부분 원주민은 평소 온순한 편이나 분쟁이 생기면 상대편의 머리를 잘라 장대에 매달거나 시신의 간과 골을 꺼내 날 것으로 먹을 정도로 잔인한 성격을 드러내는 다약족이다.

김 목사는 원주민들과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그들 방식대로 맨손으로 밥을 먹고 손수 이발을 해주며 중병에 걸려 죽어가는 환자들을 부둥켜 안고 눈물로 기도하는 등의 사랑을 쏟는 것만으로는 선교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교육 및 병원 사업을 추진키로 결심했다.

그는 이어 계파와 국적을 초월해 기독교인들에게 선교 취지를 설명하고 지원을 호소해 한국과 미국, 인도네시아 교회 등으로부터 다양한 후원을 받아 학교와 병원을 건립할 수 있었다.

91년 농촌지도자 훈련원이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설립해 학생 100여명을 모집, 성경 공부와 함께 축산 및 양어, 목공 기술을 가르쳤고 97년에는 부지 10㏊에 건물 17동을 신축해 적도신학대(STTK)를 개교했다.

유치원과 초.중.고교도 문을 열어 정글 속의 미개한 다약족 어린이들이 문명 세계에 눈뜰 수 있도록 가르쳤다.

96년에는 부지 27㏊에 병상 100여개를 갖춘 현대식 병원을 건립, 그동안 연평균1만-1만2천명의 환자를 치료했고 의료진들은 STTK 재학생들과 함께 매월 한 차례씩정글을 돌며 무료 진료활동을 벌여왔다.

병원의 헌신적인 의료봉사 덕택에 밀림 지역 원주민들의 유아 사망률이 크게 개선됐다.

아가페 선교원으로부터 강물과 늪지대를 따라 뱃길로 2시간 떨어진 신쿠앙 마을에서 14일 연합뉴스 특파원과 만난 주민 트리시아나(21.주부) 씨는 "아가페 의료팀 덕택에 10년 전 60-70%에 달했던 유아 사망률이 10% 이하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또 지방자치제 도입과 위성TV 보급 등으로 인해 원주민들의 정신세계가 급속히 황폐해지고 있다고 판단, 정글 거주 청소년들의 자활을 돕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 3대 장강으로 꼽히는 카푸아스강 주변의 늪지대 4㏊를 구입해 2002년 목공소와 고아원을 완공한데 이어 태권도와 성경, 컴퓨터, 영어교육센터와 함께 영화관과 음악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종합 오락.교육 센터 건립은 2000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일부 원주민이 벌목권을 갖게 돼 졸부가 되고 위성TV가 보급되면서 도박과 윤락, 사기 범죄가 늘어나밀림 속 청소년들의 장래를 위협할 수 있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방편이다.

김 목사는 원주민들 사이에 `말뚝박는 목사'로 통한다.

정글 곳곳을 누비며 말뚝을 박고 톱으로 나무를 잘라 건물을 세우는 방법으로 손수 건립한 교회 숫자가 100개를 넘은데 따른 별명이다.

그는 33-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정글을 오갈 때 빗물과 강물을 마시며 생활한 탓에 그간 몇 차례 죽을 고비를 겪었으나 한번도 선교활동을 단념할 생각을 갖지는 않았다.

지금도 그의 두 다리는 7년 째 계속된 피부병으로 인해 진물이 나고붉은 반점으로 뒤덮혀 있어 중증 나병환자를 연상케 한다.

그는 "98년과 2000년 각각 대장암, 심장병 수술을 받았고 각종 열대 독충에 물리는 등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맞았다.

병에 걸린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아픔을 주신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육신은 힘들었으나 절망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며 밝게 웃었다.

그는 또 "기독교인들이 `소금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세상이 타락하고 있다.

원주민들의 육체적 아픔을 치유하고 정신세계를 맑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한정글에 남아 선교활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한편 다약족은 42-45년 식민지 점령군 일본군에 의해 2만3천명이 학살당할 당시 징용으로 끌려간 한국인의 만행이라는 거짓 정보에 속아 한국에 대한 적대감이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었으나 아가페 선교원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역사적 진실을 알게된 점도 김 목사의 소중한 업적이다.

(자카르타/연합뉴스)


신동아 2001년8월 오지탐험
인도네시아 마지막 ‘밀림의 전사’ 다약족
올 초 인도네시아 대도시 도로에서 칼로 1000여 명의 목을 베어버리는 살육극을 벌인 다약족은 인도네시아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신비의 종족. 직접 이 종족을 만나봤더니 피부도 한국인과 비슷하고 풍속도 우리와 같은 점이 너무나 많다고 하는데….

 
김병호 < 농학박사 > kimbh38@netian.com  
 
 
때는 2001년이 막 시작되는 1월 어느날. 세계의 오지 인도네시아 칼리만탄에서 보기 드문 잔혹한 사건이 벌어졌다. 밀림 속에서만 살던 다약족이 마침내 봉기한 것이다.

“우리도 인간이다. 더 이상 쫓겨갈 수는 없다.”
원시 무기인 죽창과 칼을 든 그들은 중부 칼리만탄의 큰 도시 팔랑카라야(Palangkaraya)와 삼핏(Sampit)을 점령하고는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표적은 자바 섬의 북쪽 마두라 섬에서 칼리만탄으로 이주해온 마두라족. 인도네시아 정부는 마두라 섬의 인구 과밀 문제를 해소하고 또 원시 상태의 칼리만탄을 개발하기 위해서 문명의 노동력을 가진 상당수의 마두라족을 칼리만탄으로 이주시켰던 것이다.

마두라족의 이주로 쫓겨난 다약족은 살 길을 찾아 정글 속으로 들어가서 어려운 삶을 이어가야 했다. 아메리카에서 백인들에게 삶의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소수민족으로 전락한 인디언의 가슴 아픈 역사가 밀레니엄을 맞은 오늘날, 멀고먼 섬 칼리만탄에서 재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냄새로 적을 가려내

   “마두라족을 죽이자!”
두 도시를 점령한 다약족은 큰 길을 막고 통행하는 사람들을 붙잡아서는 냄새를 맡았다. 통행인들은 죽창을 든 다약족 전사들 앞에서 팔뚝을 내밀어야 했고, 전사들은 코를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았다.

“너는 아니야. 갓!”
안색이 파랗게 질렸던 통행인들은 자기 목숨이 붙어 있는 것에 대해 “후휴”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줄행랑을 친다.

그러나 “너는 마두라족임에 틀림없다!”는 말이 떨어지면 옆에서 칼을 치켜든 채 대기하고 있던 다른 전사가 즉시 통행인의 목을 베어버린다.

이렇게 죽은 마두라족이 무려 1000여 명에 이르렀다.

흥미로운 것은 다약족의 동물 같은 야성(野性). 그들은 후각이 매우 발달해서 사물을 보지 않고서도 냄새로 분별해낸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정글 속에서만 생활해왔기 때문에 문명인에게서 볼 수 없는 초능력이 생겨난 것일까?

필자는 하도 기가 막혀서 인도네시아인 안내원에게 물었다.

“아니, 그처럼 큰 도시에 경찰은 없었소? 총을 가진 경찰 말이오.”

그러나 그 안내원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약족은 매직(마술)을 사용하는 종족이라 어떻게 손을 써볼 도리가 없었지요.”

그의 설명에 따르면, 다약족은 총을 쏴도 총알이 몸에서 튕겨나가고 칼로 내리쳐도 오히려 칼이 부러진다는 것이다. 다약족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조차 신비한 종족이었다.

 

한국인과 유사한 민속

   필자는 인도 북부의 나가족 마을을 탐사했을 때, 그들이 우리 민족 고유의 씨름을 하는 광경을 보고는 놀란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 다약족 마을에서도 긴 장대 끝에 새를 얹어 놓은, 우리나라 솟대와 영락없이 닮은 그들의 솟대 앞에서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그들이 도대체 어떤 종족이기에 마한(馬韓)시대 이래로 간직해온 우리의 솟대와 유사한 민속을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필자가 다음으로 놀란 것은 키. 옛날 우리나라 농촌에서는 방아를 찧고 난 다음 벼 껍질을 쌀과 분리하기 위해서 키를 사용했는데, 다약족 마을에서 생김새가 우리 것과 아주 유사한 키를 보았던 것이다.

세계의 미작지대에서 사용하는 키는 모두가 원형(圓形)이고, 오직 우리나라만 마름모꼴을 닮은 부챗살 모양의 독특한 키를 사용해 왔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다약족이 우리 것과 닮은 키를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셋째로 불가사의했던 것은 다약족의 아이를 업는 풍속. 필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아이를 등에 업고 다니는 민족은 세계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 민족과 한 갈래가 분명한 일본족, 라후족, 리수족, 아카족 등 극히 일부다. 그러니 다약족이 아이를 등에 업고 다니는 것을 보았을 때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충격적인 것은 그들의 생김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열대지방 사람답게 가무잡잡한 얼굴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다약족은 열대지방, 그것도 정글 속에서 살고 있는데도 어찌해서 동아시아 사람(한국, 일본, 중국인) 같은 모습에 누런 피부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섹스파트너 구하기

   옛날 옛적 그들의 조상들이 서아시아 혹은 인도에서 출발해 한반도 쪽을 향해 가다가 도중에 낙오되었거나 아니면 그 역으로 한반도 쪽에서 인도 방향으로 가다가 보르네오 섬(칼리만탄)에 주저앉아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그곳에 멀지 않은 슬라베시 섬 최북단 마나도(Manado)에도 그들과 똑같은 피부에 얼굴 생김새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고 지금도 ‘금강산과 선녀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면 갈피를 잡을 것 같기도 하다.

이같은 상상력을 더해주는 데는 한 가지 근거가 있다. 한반도에서 배가 표류하면 대만이나 필리핀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마나도나 칼리만탄 지역에 이른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그들은 현대문명과 단절된 채 오랫동안 그들끼리만 살아서 그런지 우리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풍속이 많다. 그 가운데서 몇 가지를 골라서 소개한다.

다약족은 외부에서 남자 손님이 오면 그날 밤 마을의 처녀들이 수청을 든다. 낮 시간에 그 남자 손님의 눈길을 가장 많이 받은 처녀가 그날 밤의 당번. 저녁 식사를 끝낸 손님이 우리나라의 시골 원두막처럼 생긴 집에 누워 있으면 곱게 치장한 그 처녀가 원두막 밑으로 와서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서는 매듭 지은 풀을 건넨다.

남자 손님이 그 매듭을 풀어서 처녀에게 되돌려주면 두 사람은 그날 밤 동침 하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외부 손님들에게 인기 있는 처녀일수록 다약족 총각들이 서로 장가를 가겠다고 쟁탈전을 벌인다는 것이다. 만약 한 처녀를 두 총각이 좋아하면 결투를 해서 승자가 차지한다. 그러나 한 총각을 두 처녀가 좋아하는 경우는 두 처녀 모두 포기한다. 얼마나 사려 깊은 행동인가.

다약족의 축제날이 되면 더욱 이상스런 광경이 벌어진다. 숫제 이것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라고 할 만하다. 밤이 되면 기다란 칸막이 집에 처녀들이 한 명씩 들어가 섹스파트너를 기다린다.

섹스 파트너는 그날 벌어진 경기의 승자들. 경기에 참가한 남자들(외부인도 동참할 수 있음)은 칸막이 집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지점에서 동시에 출발을 한다. 칠흑같이 어두운 밀림 속을 뚫고 전진하는 ‘사랑의 용사’들 앞에는 온갖 장애물이 놓여 있다. 도중에 일부러 만들어 놓은 함정에 빠지기도 하고 덫에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수백 명이 출발하지만, 온갖 역경을 헤치고 최후의 지점에 도달하는 용사 중의 용사는 몇 명 되지 않는다고 한다.

바로 이들이 그날 밤의 황제가 되는 것이다. 필자가 찾아간 다약족 마을에는 미인이 꽤 많아서 사나이라면 한번 그와 같은 모험을 거쳐 용사가 될만한 값어치가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은 처녀가 총각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경우다. 처녀는 일생 동안 총각이 어디를 가든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데 도망쳐도 소용이 없다.

다약족 사람들 말에 따르면, 처녀들은 마술을 사용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가 어디에 있는지 금방 알아내 지구 끝이라도 찾아간다고 했다.

다약족은 대개 여자 나이 16세, 남자 나이 18~21세면 결혼을 한다. 여자나 남자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다가 아이를 낳으면 분가한다. 결혼식은 의외로 성대해서 피로연은 결혼 전에 일주일, 결혼 후에 일주일, 이렇게 반 달 동안이나 계속된다.

필자가 경험한 오지의 소수민족들은 마치 결혼이 자기 삶의 전부인 양 아주 성대하게 치르는데, 다약족도 예외는 아니어서 결혼식 기간 내내 온 동네가 잔칫 집처럼 붕붕 뜬다.

다약족은 혼전에 성에 대한 제약이 없지만, 결혼한 후에는 죽을 때까지 일부일처제를 철저하게 지킨다. 만약 남자가 이혼을 하고 싶으면 위자료로 큰돈을 주거나 가장 값나가는 물건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이혼할 마음을 먹지 못한다고 한다.

다약족 사람들은 귀를 크게 뚫어서 귀고리를 하거나 장식품을 끼워 넣는다. 그래서 그들은 금방 표가 난다. 또 여자들은 팔꿈치부터 손가락에 이르기까지 청동색 문신을 하는데, 아름답게 보이고 또 그렇게 하면 용기가 생긴다고 해서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아주 먼 옛날 그들의 조상이 강이나 바다에 나가서 물고기를 잡을 때 몸을 보호하기 위해 그런 문신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 다약족의 집은 우리네 이층집만큼이나 높은데, 밤에는 사다리를 치워버려서 외부 침입자가 접근할 수 없는 구조다.

중국의 와족이나 미얀마의 나가족처럼 사람의 머리를 즐겨 자르는 풍속이 있었던 이들에게는 자연 적이 많았을 것이고,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높은 집에서 공동 생활을 했을 것이다.

그들의 신(神)은 ‘붕안’. 곧 전쟁의 신으로, 마을 회관의 넓은 벽면에 현대식 도안이 겹쳐 있는 것 같은 큰 그림을 그려놓고 그 중앙에 창과 방패를 쥐고 있는 붕안 신의 모습을 그려 떠받든다.

마을에 들어서면 맨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나무로 만든 무수한 조각들. 대개 남녀의 성교와 수태 등을 묘사한 것인데 이는 다산을 비는 마음에서 그렇게 한다.

그래서인지 다약족 마을에 들어서면 먼저 나와서 맞는 것이 와글거리는 아이들이다.

다약족은 칼리만탄 정글 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판 아메리카 인디언이라 할 수 있다. 하룻밤을 묵은 필자는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보호구역 안에서 살고 있는 그들을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며 문명사회로 귀환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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