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韓族계례의 뿌리와 형성에 대한 새로운 설이 나왔서 소개하려 해요.

2018 9 11일에 개최된 제18차 대동재단 포럼에서 신용하 교수님께서 발표하신 한국민족의 기원과 형성에 대한 ‘한’ ‘맥’ ‘예’ 3부족결합설에 대한 내용인데 간략하게 정리해봤습니다. 

 

한국민족의 기원과 형성에 대한 ‘한’ ‘맥’ ‘예’ 3부족결합설

발표자 :  신용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울산대학교 석좌교수

 

 한반도 초기 신석기인 유형은 성립후, 크게 세갈래로 분화 및 발전하였습니다.

첫째는 고한반도의 북위 40도 이남의 강변과 해안에 정착한 신석기인들이다. 이들은 족으로 호칭했지만 다른 부족과 구별하기 위해 족이라는 호칭을 갖게 되었다.  은 큰, 하나, 하늘의 뜻을 가진 고한반도 고유어라고 해석된다.

한은 중국 고문헌에는  , , , , 등 동일발음의 여러 가지 다른 한자로 借音표기되고 있는데 이 사실 자체가  한은 고대 한국 고유어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한강은  큰 강이라는 뜻이며 이것을  한강漢江이라고 표기하는 것은 가음借音이고 특히  자를 차자借字한 것은 옛 일부 선비의 사대적 악습이라고 해석된다.

 한반도 초기 신석기인 유형의 특징은 선진적인 농업경작을 하고 농업생산을 좌우하는 태양()이 있는 하늘하느님을 숭배하며 태양()이 있는 하늘을 나는 를 토템으로 애호하고 자신들은 천손天孫이라고 생각하는 천손의식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한반도 초기 신석기인 일부가 약 9,000년 전 ~ 6,000년 전 언저리에 서북방이동을 하여 지금의 요서지역, 대릉하, 소릉하, 노합하, 시라무렌강(Xar Moron, 西拉木淪河), 동부지역 일대에 정착한 신석기인들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한자로 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의 상고음上古音은 박(bak), (ba)이었다. ’(bak) ‘ ’(baek)이었다. [후한서]은 음이 백 이다라고 기록하였다.

後漢書후한서 1光武帝紀하무제기 建武건무 25春正月條춘정월조

[貊人穢貊國人也 貊音陌.]

[설문해자]에서는 은 북방의 인데, 종이다. 백으로 발음한다고 하여, 북방종을 가리키는 것이고, ’ 족명의발음이라고 설명하였다.

[說文解字] (段玉裁注단옥재주) 9 , [ 北方  豸種也 (貉讀爲十百之百).]

공자는 자는 으로도 동일하게 쓰인다고 말하였다.

[尙書正義] 18, 周書 孔安國傳, 說文作 北方豸種 孔子曰之言貊.

원래 의 속자俗字자이고 초기에는 자로도 쓰여졌다. . = = 것이다.

 [한서] 무제기에서 주의 무왕成王, 강왕康王 외교관계를 돈독히 한 나라로 숙신肅愼, 북발北撥, 거수渠搜,,을 들었는데,  안사고顔師古북발北發은 북방이고 은 국명이라고 하였다. ‘’ ‘족을 가리킨 것으로서 북방의 밝족족을 가리킨 것으로 해석된다.

漢書 6, 武帝紀 6, 「周之成康 刑錯不用 德及鳥獸 教通四海 海外肅・北發 渠搜來服 의 기록에 대한 顔師古 에서  師古曰 北發非國名也 言北方即可徵發渠搜而役屬之 瓚說近是.

 이 자료들은 족이 한반도에서와 같이 자기 족속을 밝음(光明)’을 의미하고 ,,이라고 호칭한 것을 고대 중국인들이 ’,’이라고 표기했으며, 후대에 변음되어 (make, )으로 읽게 된 것을 알려주고 있다.

부족은 태양()를 숭배하면서 새로이 ()’을 토템으로 정하여 곰토템족이 되었다. 일본어에서 을 음독에서 (bak)이라 일고, 훈독에서는 고마(, goma)라고 읽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셋째는 한반도에서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여 요하의 동쪽으로 이동해서 지금의 요동반도 태자하, 단강, 2 북류 송화강 두만강 하류 일대를 중심으로 널리 분산해서 정착한 신석기인들이다.

 이들은 (, )족이라고 호칭하였다. 고대 중국인들은 ’,’’,’,’등으로 음차 표기했다가 변음되어 (Ye)’ 발음하게 되었다. 양주동 박사에 의하면, 의 원래 발음은 (e)’,(sei)’로서 고대조선어의 의 의미를 음차해서 표기한 의 차자(借字)이다.  새는 , 의 뜻의  새와 동원어同原語古語이다. 현존한 한국어 방언에도 을 새라 하니, 샛바람 (東風), 샛마(東南風), 샛쪽(東方)’ 등과 같은 예이다.

공조孔晁 일주서逸周書 왕회해에서예인穢人 한예韓穢이니 동이東夷 별종이다 라고 하였다.  일주서逸周書7, 왕회해王會解59, 「穢人前兒  穢韓穢 東夷別種

족은 농업경작을 하면서 태양()’를 숭배하면서 울창한 삼림지대에 적응하여, ‘()’를 토템으로 정하고 새를 부토템으로 한 범토템족이 되었다.

 

고조선은 한, , 3부족이 결합하여 생긴 고대국가이다. 고조선 강역이었던 요녕성 평강지구 유적에서 고조선 말기 (중국학자들이 중국 서한 초기의 것으로 추정한) 금도금 장식품이 출토되었는데 커다란 새(독수리 또는 삼족오)의 지휘와 돌봄 아래 곰과 범이 모여 순종하고 있는 도안의 장식품이었다.

 

요령성 평강지구에서 출토된 새 토템족이 곰토템족, 범토템족, 이리토템족을 휘하에 거느린 도안의 청동장식

 

 이 커다란 새를 삼족오로 해석하면 삼족오는 환인, 환웅, 단군의 3대 태양신이므로, ‘족에서 나온 제왕의 지배아래서 곰토템부족(맥족), 범토템부족(예족)이 연맹하여 고조선이 형성된 사실을 표상한 것으로 해석된다.

신용하慎鏞廈, 고조선문명권古朝鮮文明圈 삼족오 태양三足烏太陽 상징과 조양朝陽 원태자벽화묘袁台子壁畵墓 삼족오태양三足烏太陽, 한국학보 제105 , 2001; [한국 원민족原民族형성과 역사적 전통], 나남출판, 2005 재수록

고조선이  고대국가라는 사실은 고조선의 중앙정부  관료제도인 8(八加)제도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고조선의 중앙정부는 단군팔가(檀君八加)제도로 알려진 다음과 같은 8개 부처로 조직된 고대 관료제도를 갖추고 있었다.

 

호가(虎加) - 모든 가들을 총괄 큰 아들 부루[(夫婁)를 임명]

마가(馬加) - 주명(主命) 담당  옛 신지[(神誌)씨를 임명]

우가(牛加) - 주곡(主穀) 담당  고시[(高矢)씨를 임명]

웅가(熊加) - 주병(主兵) 담당  치우[(蚩尤)씨를 임명]

응가(鷹加) - 주형(主刑) 담당  둘째 아들 부소[(夫蘇)를 임명]

로가(鷺加) - 주병(主病) 담당  셋째 아들 부위[(夫虞)를 임명]

학가(鶴加) - 주선악(主善惡) 담당  주인[(朱因)씨를 임명]

구가(狗加) - 분만제주(分管諸州) [여수기(余守己)를 임명]

 

단군 8가제

 

고고선의 후국인 한족이 세운 진국 지역의 천군天君이 사용했던 의기의기에 고조선과 후국들의 종속관계를 평면으로 도안한 청동제 팔주령八珠鈴이 있다.

 천군의 8주령에서 중앙의 태양()은 고조선 본국과 단군을 상징하는 것이고, 중앙의 햇빛을 받은 주변의 연결된 8방의 작은 태양()들은 고조선의 지배를 받는 8방 후국들을 상징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에는 고조선이 1개 중앙 본국과 8방의 주변 소국들의 9개국 체제로 되어 있었다는 전통적인 의식이 존재해 왔으면, 고중국에서는 동이가 9개족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구이라는 별병이 있는 것으로 의식해 왔다.

 

고조선 문명의 천군天君의 의기 8주령珠鈴에 도안된 고조선 8방 후국들의 관계 상징

 

수메르와 고조선의 갑옷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다음 그림은 수메르 우르 왕의 무덤에서 발굴한 우르의 군기 (Standard of Ur)이다.

우루의 군기(Standard of Ur) , 기원전 2,600 , 대영박물관

 수메르 병사에 대한 복장을 보겠습니다.

수메르 병사

수메르 병사 갑옷 도안 

수메르 메스칼람덕(Meskalamdug) 금투구 , 기원전 2,600년, 바그다드 이라크박물관

수메르 병사는 모자(투구)를 쓰고 망토같이 생긴 가죽으로 된 갑옷을 입고 있습니다. 망토 곳곳에 원형이 있는데 이것은 동그랗게 자를 구리판을 박아놓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구리판은 반짝이는 장신구 기능과 보호구 기능을 하였고 적에게는 위화감을 주었을 것이다. 

  

 고조선의 갑옷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신석기 후기는 뼈 값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청동기, 철기 시대에 찰갑을 입었습니다.

고조선 투구, 홍산 하가점 하층 문하 기원전 2,700, 중국 조양시 닝청현 박물관

고조선 갑옷에 수메르 갑옷 처럼 청동 조각 및 청동 단추를 이용해서 가죽에 붙였습니다.

고조선 청동기 청동 단추(동포 泡)


고조선 갑옷 그래픽 도










수메르 말과 우리 말이 많이 비슷하다고 연구가들은 말한다.

고대근동 수메르와 고조선 문화가 어떤 것이 비슷한지 알아보려고 한다.


1. 채문도기(채도, 彩文器, Painted Pottery)

수메르, 앙소문화, 홍산문화 채도 순서로 살펴보겠습니다.

수메르 우바이드 시대 채도입니다.

우바이드(Obeid) 시대는 수메르의 도시 우르 근처인 우바이드에서 발전한 문화 시기이다.

우바이드기 3기 (기원전 5,300-4,700년) 채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우바이드 시대 흑색 도기, 영국 대영박물관

마가요 문화(馬家窰文化 Majiayao, 기원전 2,200 ~ 2,000) 채도입니다.

마가요 문화(馬家窰文化 Majiayao, 기원전 2,200 ~ 2,000)  채도

마가요 문화(馬家窰文化 Majiayao, 기원전 2,200 ~ 2,000)  채도

앙소문화(仰韶文化, Yangshao 기원전 7,000 ~ 5,000) 채도

앙소문화(仰韶文化, Yangshao 기원전 7,000 ~ 5,000) 채도

앙소문화(仰韶文化, Yangshao 기원전 7,000 ~ 5,000) 채도


어디서 본 듯한 문양이네 물고기 두마리, 쌍어문(雙魚紋)이라 김수로와 허황옥 왕릉 입구에 있는 문양이네요.

그리고 사람 얼굴인데 2개 뿔이 있고 머리 위에 삼각형이고 빛나에요. 수메르 7대 주신 중에 하나인

엔키랑 비슷하네요. 엔키는 지하수,물의 신으로 강에 연결되어 있는데 강은 스스로 분별력과 판단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메르 엔키 그림을 보면 물고기는 엔키의 어깨에서 내려와는 물줄기를 따라 울라갑니다.

중국 앙소문화 채도도 수메르 문화에 영향을 받아서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 홍산문화 훅륭와 (기원전 6,200년~기원전5,200년) 채도입니다.



한민족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강연자 역사가 정형진

신라얼문화연구원 원장


이전과 전혀 다른 시각에서 한국사의 뿌리를 찾아간다.

『삼국유사』를 보면 자장은 한국사의 뿌리가 동이공공(東夷共工)에 닿아 있다고 했다.

중원에서 황제 세력에 밀려 북경시 밀운현 지역으로 이주한 공공씨는 과연 한국의 역사와 문화의 뿌리를 만든 사람들인가! 『사기』를 비롯한 여러 문헌에 보면 공공씨는 요임금 말년에 현재 북경시 밀운현 연락촌 지역으로 이주했다. 그 연락촌 앞을 흐르는 강을 송나라 때 쓰인 『무경총요』에서는 조선하(朝鮮河)라 했다.

요임금 말년에 개국한 고조선의 비밀과 삼한의 형성사를 더듬어 본다.


 [출처] http://www.coo21.rgro.net/bbs/zboard.php?id=con_4&page=4&sn1=&divpage=4&sn=off&ss=on&sc=on&select_arrange=hit&desc=asc&no=29486




心濟 이진우  

(2014-08-18 07:23:12, Hit : 1252, Vote : 23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화공학과 박사



공공족(共工族)은
누구인가?




1. 단군세기의 공공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들은 어떠한 존재인가?  

단군왕검 (BC2284)

- 홍수가 크게 나서 팽우에게 치수를 명하여 평정하다.

- 아들 부루를 우禹에게 파견하여 황하치수 <도산회맹塗山會盟>을 주재시키다. 


단군 고홀 (BC1341)

- 공공公工인 고홀工忽이 구한九韓의 지도를 만들어 바쳤다.


2. 요시대 堯時代 공공관련 중국기록 

공공은 송나라시대만 해도 삼황오제에 들어가는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다가 중국인들이 황제의 후손이라고 인식한 이후부터 그 기록은 없어졌다.  

한서《漢書》고금인표古今人表 

공공은 여와씨 제후 혹은 여와씨 말기 제후    


회남자《淮南子》

“昔者,共工与颛顼争为帝,怒而触不周之山,天柱折,地维绝.天倾西北,故日月星辰移焉;地不满东南,故水潦塵埃歸焉.”

공공과 전욱이 황제가 되려고 싸웠는데 화가 나서 부주산을 건드리니 하늘기둥이 부러지고 땅이 갈라졌다. 하늘이 서북으로 기우니 일월성신이 움직였다. 땅은 동남으로 차지 않아 물이 그리로 흘러 들어간다.


공공의 활동은 신석기 중기에서 후기사회로 넘어가는 시기로 보인다 특히 황제계와 격렬한 전쟁을 치른 것으로 추정된다.


공공이 쫒겨난이유  

국어《國語》 주어하周語下 

昔共工棄此道也,虞于湛樂,淫失其身,欲壅防百川,墮高堙庳,以害天下. 皇天弗福,庶民弗助,禍亂并興,共工用滅.其在有虞,有崇伯鯀,播其淫心,稱遂共工之過,堯用殛之于羽山.

치수에 실패하고 민심이 조화하지 못하고 화와 난이 같이 해 망했다. 

중국상고사에서는 공공이 우호적으로 나오다가 한편으로는 요,순과 서로 적대적으로 표현되고 한쪽은 황제를 차지하고 한쪽은 그렇지 아니한 편으로 기록되고있으나 단군세기에서는 공공이 단군의 명령을 받는것으로 기록되어있다.


상서《尙書 》 순전舜典

“流共工于幽州,放驩兜于崇山,窜三苗于三危,殛鲧于羽山,四罪而天下咸服.

공공을 유주로 유배하고, 

환두를 숭산에 놓아주고,

삼묘를 삼위로 내쫒고,

우의 아비를 우산에서 죽이니 천하가 복속했다.

앙소 - 홍산 문화이동로 (출처 : 운영자)


홍산에서 출토된 앙소문화영향을 받은 토기 (출처 : 구글)



3. 요,순과의 경쟁에서 밀린(중국 사서상) 공공은 어디로 갔는가?


괄지지《括地志》

”故龚城在檀州燕乐县界,故老传云舜流共工幽州,居此城。”

옛 기성에 단주가 있는데 연락현 경계에 있다. 옛날부터 전하길 순이 공공을 유주에 유배시켰는데 그 성에서 살았다.(唐 檀州 = 북경)


요임금 말,공공을 유릉으로 유배 보내니 북적으로 변하였다는 기록이 서기 오제본기에 등장한다.

유주는 지금의 하북지역으로 비정되는 곳이다.


《설문해자 》- 貊北方狄也. 북적은 바로 맥이다. 


4. 공공이 정착한 지역은 고조선 개창지開創地 

  공공족은 분명히 농사, 어로, 치수를 담당했던 앙소문화와 관계가 깊어보인다.   왜냐하면 초기 앙소문화의 농업, 치수, 어로의 시기가 홍산보다 연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공공은 요임금시대의 사람인데 여와시대의 제후라고 되어있으나 주周시대 이후 시기적으로 여와시대의 공공을 요시대로 끌어내린듯 하다.  

실제 공공은 중국의 신화상 분명히 존재하는 인물이나 이 인물이 단군세기에도 등장한다. 그런데 이 공공이 치수 전문가로 그려져있다 . 이사람은 한 인물이 아니고 공공족이라고 보아야한다. 

왜냐하면 요시대에서 순시대를 내려가도 공공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집단은 치수, 농사, 천신을 다루는 전문가 집단으로 환웅의 천부인 즉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와 일치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 집단들이 천상에서 내려와 곰족을 교화시켜 인간인 고조선의 첫째임금 단군을 낳았다는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곰토템족이 환웅족보다 문명적으로 뒤졌다는 암시를 알수있다. 실제 고고학적으로도 현재 홍산문명이 발굴된지역은 어로는 할수있는 지역이지만 농사와 치수를 하기엔 앙소지역보다 열등하다.
그만큼 치수, 농사, 어로 분야에 대해서는 앙소문화가 우월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곰토템은 바로 북방의 고민족 웅족이며 즉 맥족이고 홍산문명의 하가점 하층문화를 개시한 민족으로 공공이 북으로 올라가 북맥이 되었다는 고기록과 신화의 시기가 일치한다. 

결론적으로 공공은 환웅족으로 북으로 올라가 맥족인 하가점 하층문화 창조자들에게 그 이전부터 공공족에게 전수되어온 농사, 어로, 치수 방법을 전수한 신화아닌 고고학적인 사실인 것이다.  

치수, 어로, 농사의 방법을 전수한 환웅족은 어디서 왔을까?  바로 앙소문화의 주인공이었다.


심제 글. 



홍영명 (2014-08-20 18:12:55) 
심제님의 글을 보고 한마디 안 할수가 없군요!

우리는 앙소문화의 주인공으로 순임금에 의해 유주로 유배되어온 공공족의 후예로 단군을 낳아 지금에 이르는 민족이군요, 이것 참! 우리가 마고로 부터 시작된 인류의 시원으로 천손의 장자라는 관리자님의 이야기가 잘못된 것이군요!

환인-환웅-단군으로 이어지는 환단고기 등 우리사서의 기록은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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