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6일 짖개비 눈이와서 오전만 일하고 퇴근했져.
몸이 나른해서 평택 번화가에 있는 한방병원은 가기싫고 해서 지나가다가 본적이 있는 고덕한의원에 가기로 했지요.

고덕한의원 (고덕 궁리 코오롱 하늘채 맞는 편)

2층으로 올라가서 실내화로 갈아신었다. 안내데스크에 신상정보를 제출하고 의원님에게 목과 어깨가 아프다고 하였더니 물리치료실로 가자고 하였어요.

이 자기장 충격파로 10분정도 목에 충격을 줬는데 뭉친근육이 아스크림 녹듯이 빠른 시간에 풀렸어요. 근데 충격파 딱딱,딱딱 소리가 귀에 조금 거슬려요. 통증의학과 병원에서 저주파, 고주파 치료 받았던 기억이 가물가물나네요.

그리고 찜질, 전기 물리치료, 침과 부항 이렇게 치료받았어요. 의원님이 다음날 방문하라고 했는데 그 다음 날 방문해서 치료를 받았어요. 근육통이란게 한번만에 낫는 게 아니어서 주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해요. 개원한지 얼마 안 됐다고 코로나 시절에 필요한 마스크랑 수건을 주었어요.
연장 잔업하는 날에는 화,목 진료받으면 될것같네요

*진료시간


고덕한의원
경기 평택시 고덕면 궁2길 68-1 2층
전화 031-686-8752
http://naver.me/FQalxdCA

고덕한의원 : 네이버

한의원 · 일요일 휴무,공휴일 휴무,월요일 09:40 - 19:00,화요일 09:40 - 20:30,수요일 09:40 - 19:00,목요일 09:40 - 20:30,금요일 09:40 - 19:00,토요일 09:40 - 13:00

store.naver.com

 

[출처: https://90story.tistory.com/6 [90년생 남자이야기], 작성자 : 단정한 바르다임선생, 작성일 : 2020. 4. 19. 23:58 ]

대한제국과 문양

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 (이하 더킹)속 3대 황제 이민호의 대한제국은 1화에서 많은 소품속 문양을 보여주는데 드라마를 보며 지금은 잘 찾아보기 어렵지만 실제 대한제국의 문양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보며 비교해보자.

[출처 : 출처 SBS드라마 홈페이지] 드라마 더 킹 : 영원의 군주 제작 화엔담픽쳐스, 스튜디오 드래곤 

드라마속 대한제국의 문양

드라마 1화에서는 대한제국의 문양이 자주 등장한다. 편전의 끝, 황제가 순국하고 다음 황제를 발표하는 장면, 또한 정7품의 애마 맥시무스의 마구에서도 대한제국의 문양이 쏙쏙 들어가있다. 이러한 디테일을 챙긴 소품팀에 노력이 굉장히 엿보이며 드라마를 보는 즐거움이다.

 

 

드라마속 대한제국의 국장이 가장 잘보이는 장면 이라고 생각한다. 꽃을 연상시키는 5개의 원형과 가운데  꽃술을 표현한 디테일까지 잘 보인다. 그렇다면 실제 대한제국의 국장은 어땠을까 알아보자.

대한제국의 실제 국장

[ 출처 : 나무위키 대한제국 국장 ]

대한제국의 국장은 이화문의 오얏꽃 문장이다. 여기서 이화문은 왕가였던 전주 이씨의 종친회의 이름이며 오얏꽃의 오얏은 자두를 뜯한다. 실제로 아직까지 전주이씨 종친회에선 이 문장을 사용하며 가운데에 전주 이(李) 자를 넣어 사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화에는 두가지의 이화가 있는데 하나는 오얏꽃을 뜻하는 이화 [李花], 배꽃을 뜻하는 이화[梨花]가 있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이화여자대학교'와 '이화 학당'에는 배꽃을 뜻하는 이화가 쓰여진다.

 

같지만 다른 디테일

 

실제 국장과 드라마속 국장을 비교해보면 약간의 디테일 차이가 존재한다 드라마속 국장은 외선을 강조하며 내선의 작은 원형선을 한번 더 넣어 볼륨감을 강조하였고 실제 국장은 잎과 꽃 술에 대한 표현만 가진 디자인이다.    같은 듯 다른듯 하지만 가상의 대한제국을 그려내며 어느정도 충분한 고증의 반영을 한듯 하다.

간혹 역사물을 제작할 때 충분한 고증을 하지 않을 채로 드라마 또는 영화를 제작하여 작품의 몰입도를 떨어트리는 경우가 더러 발생하지만 이번 '더 킹'속 소품팀은 고증과 재해석을 통한 수준 높은 퀄리티를 이뤘다. 시청자의 시각적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그에따른 제작사의 충분한 투자와 각 위치에 있는 서로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인것 같다.

 

덕수궁 석조전의 국장

잊혀진 제국의 문양

실제로 주변국인 대만과 일본에서는 아직까지도 여전히 국장을 사용중이다. 우리나라에도 각 성씨별 종친회의 문양들이 꽤나 고급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덕수궁에 가면 실제로 대한제국의 국장의 흔적을 여기저기 찾아볼 수 있고 덕수궁의 대부분은 오얏나무 (자두나무)가 심어져 있다고 하니 덕수궁을 방문하거나 제국의 흔적을 찾고 싶다면 조슴스레 발걸음을 옮겨도 좋아볼 듯 하다.

대한제국 오얏꽃 무늬 군모, 성충보좌라는 글자와 오얏꽃 무늬가 새겨진 제국익문사 인장

 

신불산 빨치산 게릴라 특수부대

  한국 전쟁 기간 중에 부산(釜山)과 근접한 영남알프스 신불산(神佛山)을 중심으로 빨치산이 활동했다는 것은 왠지 낯설게만 느껴진다.  신불산 빨치산은 부산을 점령하는 것은 목표로 울산, 양산, 동래, 밀양, 청도에서 활동을 하였다.

  빨치산은 파르티잔(Partisan)으로 비정규군 유격요원, 게릴라(Guerrilla)를 말한다. 또는 공비(共匪)라고도 하는데 공산당 비적(匪賊)을 줄인 말이고 비적은 무기를 지니고 떼를 지어 다니며 살인과 약탈을 일삼는 도둑을 말한다.  참고로 조선말기 동학운동당를 동비(東匪)하고 하였다.

   빨치산은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이 활동한 특수부대과 비교가 안되지만 현재 특수부대로 볼 수 있겠다. 빨치산은 한국전쟁 전후로 구빨치와 신빨치로 나뉘는데 구빨치는 미군정의 탄압과 우익세력에 밀려나 무장투쟁을 계속하기 위해 산으로 들어갔는데, 야산대(野山隊)로 라고 불렸다.

 1. 한국 전쟁(1950년 6월 25일) 전 빨치산과 토벌대(討伐隊; 진압대)

 빨치산 야산대가 1949년 9월 총공세를 벌인 후, 군대가 투입되어 군인·경찰·시민 합동작전으로 확대해 상당한 전과를 내었다.

 1.1 울산경찰서 옥동 문수산 토벌

그림1] 1949년 3월 5일 <민주중보> ‘울산방면 무장폭도 추격 중’ 신문기사

 23연대 김종원(金宗元, 1922 ~ 1964) 연대장은 경남지역 공비토벌작전을 참여했다. 1949년 1월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서 박덕수(朴德守, 경남 동부지역 야산대 총사령관)를 검거 사살한다.

1.2 신불산 지구 전투결과

날짜 :  1949년 10월 24일 ~ 26일 (3일간)

장소 :  신불산 방면 울산군 상북면 이천리 죽전부락, 두서면 대종부락

군대 :  3사단 23연대 1대대 소령 서정철, 경남경찰국 보안과장 총경 한학수

         2개 소대, 전투경찰 9개 소대

결과 : 사살 5명, 생포 5명  [출처: 부산일보  1949-11-01]

 1.3 울산 서부지구 전투사령부 군경민(軍警民) 작전 작전결과

날짜 :  1949년 11월 24일 ~ 27일(3일간)

장소 : 신불산 및 간월산

주관 : 울산 서부지구 전투사령부  군경합동작전

결과 : 9개소 아집트 파괴 (남로당 경남도당 동부지구 야산대 본부 포함)

15명 사살(그중 여자 3명), 생포 1명

 1.4 신불산 지구 전투결과

 날짜 :  1950년 2월 24일 ~ 27일(3일간)

장소 : 양산시 원동면 선리 시살등(신불산 남쪽, 신동대굴(신동대 동굴))

김종원(金宗元)은 356부대(三五六部隊), 일명 맹호부대장으로 양산초등학교에 주둔하던 1950년 2월이른 봄, 신불산 일원을 토벌하면서 양산 원동면 대리 앞산에서 사살한 29명의 빨치산 목을 잘라 가마니에 담아 와서 양산군청 동편 목화 창고 앞 광장에 늘어놓고 전시를 하기도 하였다. 

 2. 한국 전쟁(1950년 6월 25일) 후 빨치산과 토벌대(討伐隊; 진압대)

 2.1 동해남부부대

   1) 기본현황

그림2] 동해남부 빨치산 이동 경로

  북한 강동정치학원 군사교관 출신으로 하준수(가명 ‘남도부(南到釜))’ 부대장이 김일성 수상의 ‘부산으로 진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7군단 소속 동해남부부대(300여명)을 지휘하여 1950년 6월 24일 강원도 속초항에서 배를 타고 6월 25일 새벽, 임원진臨院津(현재 삼척시 원덕읍 임원항)에 상륙하여 태백산맥을 따라 남하는 중 7월1일 영덕 칠보산 700고지에서 3사단 23연대(중령 김종원) 전투와 포항 구룡산 전투를 거쳐 7월 15일 신불산 배냇골에 도착한다.

그림 3]   동해남부부대 조직도

그림3]남도부부대조직도_20200425.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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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동해남부부대 조직도 및 활동지역

동해남부 사령관 남도부 발행 원호증 (소설가 박도 선생 제공)

원호증은 약탈한 물품에 대한 확인증으로 해방통일 후에 값아 주겠다는 내용이다.

* 차진철, 본명 성일기(成日耆)로 북한 김정일의 아내 성혜림의 처남, ‘북위38도선’ 책 펴냄

* 추일(秋一), 본명 김형식(金瀅植, 1926~2016)은 조부 독립운동가 김용응(金鏞應,1870∼1945)이고 출옥 후 고향 충북 괴산에서 화가(畵家) 활동함.

* 구연철 1931년 양산군 하북면 출생. 대신중학교(서울) 1948년 졸업, 1950년 7월 신불산 입산 ‘신불산’ 책 펴냄    * 남명근 :  38 연선부대 11지대장 출신

* 홍길동 본명이 서장윤(1923년 출생) 울주군 범서면 다운리 출신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사망시 같은 이름으로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있어 확인이 필요하다. [참고 ‘영남알프스’, ‘빨치산 남도부, 신불산에 오다’, 128쪽, 저자 이병길]   

2) 전투 실적

  (1) 포항 영일 비행장 공격

그림4] 1950년 8월 10일 포항안강지구 지도

  1950년 8월 11일 01시 20분경, 포항 영일 비행장(위치 : 포항 남구 동해면 도구리)을 공격하기 위해 조선인민군 제766부 및 동해남부유격대가 형산강 남쪽 터널고지(형산兄山 256m고지)에 매복하여 미군 2사단 9연대 3대대 K중대와 미 15포병대대 C포대 일부병력을 공격하여 70여명 인명 손실을 입혔다. 

  그리하여 미군 후발부대는 경주로 철수하고 보고를 받은 브래들리 준장은 3대대 1중대를 출동시켰으나 인민군 766부대 매복으로 기습을 받아 그곳에 고착되었다. 항공지원 요청으로 40전투비행대대 F-51 무스탕 전투기 1개 편대가 출격하여 터널고지대에 집결해 있던 적을 강타하고 이와 함께 미 73 중전차대대(M26퍼싱) 전차소대 다리고(Joseph R. Darrigo) 대위가 터널고지 부근까지 진출하여 기관총사격을 가해적 병력 70여 명을 사살하고 국군 17연대에 인계하고 오후 8시 30분경 영일 비행장으로 진출한다.

 [참고] <한국전쟁>제2권(142) 제4장 8월의 공방전(28) 제7절 동부전선 ① 영덕(盈德) 실함(失陷)

1950년 3월 10일 호계역 기습, 1950년 말 형산강 철교 폭파, 1951년 12월 23일 양산 원동역 제 3225열차 습격 등 동해남부선 수송로 차단 등을 주로 하였다.

 2.2 군인경찰토벌대 전투

  1) 1950년 신불산 국군 1차 토벌

날짜 :  1950년 12월 25일

장소 : 신불산 1209고지 ( 681고지(갈산고지)), 시살등 신동대굴(심종지굴)

군대 : ㄱ) 미군 제10군단 직속 특별공격대대 대장 소령 배동걸裵東傑

          1중대장 대위 윤성모, 2중대장 중위 손장래(孫章來,예비역 소장), 3중대장 대위 정창화

          병력 500명

       ㄴ) 동해남부부대 사령관 남도위, 병력 250명 추정

  군인경찰합동작전을 위해 언양·삼남·상북주민이 동원되어 하룻밤 사이에 언양 남천에 비행장 활주로를 만들었다.  이때문인지 현재도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부산 방향으로 콘크리트 도로인 비상 활주로 및 헬기 비행장이 있다. 

  신동대굴에 비행기로 폭격을 하고 681고지(갈산고지)에는 레이팜탄 및 휘발유 드럼통을 투하하여 산을 불마다로 만들고 반대편 재약산 사자평원에서는 대포를 쏘았다.  동해남부부대는 갈산고지를 빼앗기고 사령부를 영취산, 천황산, 밀양 향로봉 등지로 옮긴다.

    2) 1952년 신불산 국군 2차 토벌

  본격적으로 조선인민유격대 빨치산을 토벌하게 된 것은 백야전사령부가 생기면서이다.  백야전사령부는 백선엽 소장(白善燁, 1920년~ 생존)의 성씨를 딴것으로 1951년 12월부터 1952년 3월까지 활동했던 육군과 경찰 합동사령부이다.

그림5] 백 야전사령부 제2기 토벌작전

그림6] 신불산 빨치산 사령부 위치

     신불산 지역에 대한 대규모 공비(빨치산) 토벌작전은 1952년 2월 4일부터 3월 6일까지 거의 한달간 진행되었는데 미 공군의 지원, 수도사단 제1기갑연대 연대장 이용(李龍) (1개 중대, 소장 예편), 경찰, 의용대가 합동하여 남도부 부대의 거점 신불산 681고지(갈산고지)를 빼앗고 89명을 사살하였다. 

그림7] 신불산지구 전투 참전기념 사진 (임진년 단오(1952.05),작천정)

군인, 경찰, 의용대는 1952년 2월의 온양 대운산 작전에서는 김용구를 사살하고, 6월의 아미산 작전을 이어간다.  

일시 :  1952년 6월 12일

지명 : 울산군 두서면 아미산

군대 ㄱ) 국  군 : 10경비대대 1중대 대위 김동록金東鹿 병력 136명

     ㄴ) 인민군 : 동해남부부대 홍길동부대 홍길동 약 40명

결과 :  사살 16명  M1소총 6정, 칼빙 소총 3정, 기관총(다발총) LMG 1정

피해 :  전사 5명  부상 1명

* 석용화(石容華, 1925~) 양산시 화북면 초산리 출생으로 52년 6월 체포되어 비전향 장기수로 72년 4월 출옥하여 2000년으로 북한으로 송환됨

◈ 1953년 군경합동토벌

  경남 동부지구 신불산을 중심으로 각처에서 발악을 하고 있는 잔비를 완전 소탕코저 지난 1953년 1월14일 양성봉(梁聖奉, 1900~1963년) 경남지사 경남 경찰국장 및 각 기관장 읍면장 연석회의를 개최하고 동기 작전계획을 세운 후 본군 출신 대한청년단 1,900명으로 조직한 전투대가 현지로 향발하였다. [출처: 부산일보 1953년 1월 24일 기사]

문봉제(文鳳濟) 치안국장 (현 경찰청장)과 박영근 경남경찰국장 (현 경남경찰청장)은  1953년 1월 20일 울산국민학교  교정에서 경남경북 동부지구 빨치산을 소탕하기 위해 경찰부대와 지방청년으로  구성된 벽력부대(霹靂部隊)를 사열한다.

[출처: 부산일보 1953년 1월 23일 기사]

 * 53년 11경비대대 경찰출동 현황

밀양경찰서 70명, 울산 190명, 양산 50명, 동래 130명, 청도 60명, 경주 80명, 경북특공경찰대 100명, 총합계 680명

울산MBC 탐사기획 돌직구 ‘신불산 빨치산을 말하다!’

https://usmbc.co.kr/programme/hwocoAnMTyLkbyUCqqP-9/p/m-ZxVYPhS/single/49350/page/7

그림8] 신불산전투참전기념비

그림9] 신불산 빨치산의 묘 [인용: 네이버 블로그 정파선인]

그림10] 한국전쟁 북한군 개인 화기

그림 10]  한국전쟁 국군 개인화기

 

 최근 걸그룹 출신 구하라와 전 남자친구 유명 헤어디자이너 최모'씨 간의 쌍방 폭행 사건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 특이 전 연인 최씨가 보복성 영상물 ‘리벤지 포르노’ 협박으로 더욱 논란으로 번졌다.

   생소한 리벤지 포르노 (Revenge Porno)란 어떤 이미일까요?

[다음 백과사전]

  리벤지 포르노는 당사자의 동의나 인지 없이 배포되는 음란물 화상 또는 영상을 말한다.  연인 등 친밀하거나 아는 관계인 사람간의 이별에 앙심을 품고 상대를 모욕하기 위해 유포하는 경우가 많다.  금전을 노린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동의 없이 유포되는 일반인 음란물도 리벤지 포르노에 포함된다. 2017년에는 리벤지 포르노나 몰카 등의 범죄가 증가하면서 온라인상에 남은 글, 사진, 동영상 등 디지털 흔적을 지워주는 디지털 장의사(디지털 세탁소)가 새로운 직업으로 등장했다.

리벤지 포르노를 우리 말로 바꾸어 볼까요!

연인戀人 보복성 報復 음란물淫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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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 2018년 10월 05일 12시 24분 KST   작성자 곽상아

지난 6년간 음란물 유포로 '징역형' 받은 피고인 숫자를 들으면 놀랄 것이다 (통계)

불법촬영 피고인 중 남성이 약 99%(7371명)이었으며, 음란물 유포 피고인 중 남성은 94.4%(1586명)이다.

 

지난 6년간 불법촬영으로 재판받은 이들 가운데 ‘징역형’을 받은 피고인은 몇명일까? 10명 중 1명도 안 된다.

그럼, 같은 기간 음란물 유포로 재판받은 이들 가운데 ‘징역형’ 받은 피고인은 몇명일까? 100명 중 2명도 안 된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대법원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1심 판결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이 같은 수치가 나온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6년간 불법촬영 혐의로 재판을 받은 이들은 7446명이며 이중 징역형을 받은 피고인은 647명(8.7%)으로 10명 중 1명이 채 되지 않는다.

‘벌금형’ 선고가 4096명(55%)으로 가장 많았으며, 그 뒤를 ‘집행유예’(2068명, 27.8%)가 잇는다. 선고유예도 373명(5%)나 된다.

솜방망이 판결은 음란물 유포의 경우 더 심각하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 유포) 1심 판결 현황’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7년까지 6년간 음란물 유포로 재판받은 피고인 1680명 가운데 징역형은 30명(1.8%)에 불과했다.

이 역시 ‘벌금형’ 선고(924명, 55%)가 대부분이었으며, 집행유예가 274명(16.3%)가 그 뒤를 잇는다. 오히려 선고유예가 71명(4.2%)으로 징역형 받은 피고인보다 훨씬 많을 정도다.

불법촬영과 음란물 유포 둘다 피고인은 거의 압도적으로 남성이다. 불법촬영 피고인 중 남성이 약 99%(7371명)이었으며, 음란물 유포 피고인 중 남성은 94.4%(1586명)이다.

남인순 의원은 4일 구하라씨 전 남자친구 A씨가 사생활 영상 유포를 협박했다는 보도와 관련해 ”당사자 동의 없는 영상물 유포는 중대한 범죄”라며 이에 엄정 대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남인순 의원은 ”영리를 목적으로 (성적 영상물을) 유포했을 경우 벌금형 없이 징역형으로만 처벌함으로써 조치를 강화하려는 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불법촬영과 관련한 다수의 법률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며 ”저와 더불어민주당은 관련 법안이 신속하게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인순 의원은 ”성관계 영상이 유포되더라도 성별에 따라 피해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가해자는 당당하고 피해자는 어디에도 말 못 하는 것이야말로 젠더 불평등의 현실”이라며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낸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발생되지 않도록 언론도 각별히 신경 쓸 것을 당부드린다”고 전했다.

 

 최근 우리나라 해군 2018년 국제관함식 해상사열에 일본이 일본군기 욱일기 게양에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해상사열은 2018년 10월 11일 목요일에 열린다네요.

중국 함선이 입항하며 사열 준비 모습

관함식(觀艦式, Fleet Review)란 국가의 통수권자가 자국의 군함을 곳에 집결시켜, 전투태세와 군기를 사열하는  해상사열식이다.  지난 1346 6 영국 에드워드 3세가 잉글랜드와 프랑스간 전쟁에 출전하는 함대의 전투태세를 검열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일본군기 욱일기旭日旗

 

욱일기旭日旗 생소해서 좀 알아볼까요.

한자는 '旭아침해 욱, 日날 일, 旗기 기' 이고 욱일旭日은 아침에 돋는 밝은 해란 의미네요.

승천昇天의 한자는 昇오를 승 (예 승강기, 탑승), 天하늘 천' 네요.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로 부르기도 하는데 욱일승천(旭日昇天)은 고사성어로 '떠오르는 아침 해처럼 세력()이 성대()해짐을 이르는 말' 말이에요.

[참고 다음 백과]

일본의 군기(軍旗).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깃발이며 현 자위대의 군기이기도 하다. 종종 우리나라에서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로 잘못 사용되고 있는데, 이 말은 일본에서도 사용되지 않는 말로 고사성어 욱일승천(旭日昇天)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일본이 군국주의를 강화하던 1870년대였다. 1870년 16방향으로 뻗어나가는 문양의 욱일기가 일본 제국주의 육군의 군기로 공식 채택됐으며, 1889년에는 해군도 군기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40년대 태평양전쟁 당시에는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우면서 ‘대동아기(大東亞旗)’로 부르기도 했다.

독일 나치의 하켄크로이츠(Hakenkreuz)와 같이 전범기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하켄크로이츠의 사용을 법적으로 금지했던 것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종전 이후 잠시 동안만 사용되지 않았을 뿐 1952년 해상자위대와 육상자위대를 창설하면서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해상자위대는 군국주의의 깃발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육상자위대의 깃발은 줄기 수만 8줄기로 바뀌었을 뿐이다.

일본 내에서는 욱일기를 전범기로 인식하지 못하며, 아무런 규제 없이 상품의 로고, 응원기, 대중문화에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의 인식과는 달리 한국과 중국에서는 욱일기를 전범기이며,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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