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불산 빨치산 게릴라 특수부대

  한국 전쟁 기간 중에 부산(釜山)과 근접한 영남알프스 신불산(神佛山)을 중심으로 빨치산이 활동했다는 것은 왠지 낯설게만 느껴진다.  신불산 빨치산은 부산을 점령하는 것은 목표로 울산, 양산, 동래, 밀양, 청도에서 활동을 하였다.

  빨치산은 파르티잔(Partisan)으로 비정규군 유격요원, 게릴라(Guerrilla)를 말한다. 또는 공비(共匪)라고도 하는데 공산당 비적(匪賊)을 줄인 말이고 비적은 무기를 지니고 떼를 지어 다니며 살인과 약탈을 일삼는 도둑을 말한다.  참고로 조선말기 동학운동당를 동비(東匪)하고 하였다.

   빨치산은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이 활동한 특수부대과 비교가 안되지만 현재 특수부대로 볼 수 있겠다. 빨치산은 한국전쟁 전후로 구빨치와 신빨치로 나뉘는데 구빨치는 미군정의 탄압과 우익세력에 밀려나 무장투쟁을 계속하기 위해 산으로 들어갔는데, 야산대(野山隊)로 라고 불렸다.

 1. 한국 전쟁(1950년 6월 25일) 전 빨치산과 토벌대(討伐隊; 진압대)

 빨치산 야산대가 1949년 9월 총공세를 벌인 후, 군대가 투입되어 군인·경찰·시민 합동작전으로 확대해 상당한 전과를 내었다.

 1.1 울산경찰서 옥동 문수산 토벌

그림1] 1949년 3월 5일 <민주중보> ‘울산방면 무장폭도 추격 중’ 신문기사

 23연대 김종원(金宗元, 1922 ~ 1964) 연대장은 경남지역 공비토벌작전을 참여했다. 1949년 1월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서 박덕수(朴德守, 경남 동부지역 야산대 총사령관)를 검거 사살한다.

1.2 신불산 지구 전투결과

날짜 :  1949년 10월 24일 ~ 26일 (3일간)

장소 :  신불산 방면 울산군 상북면 이천리 죽전부락, 두서면 대종부락

군대 :  3사단 23연대 1대대 소령 서정철, 경남경찰국 보안과장 총경 한학수

         2개 소대, 전투경찰 9개 소대

결과 : 사살 5명, 생포 5명  [출처: 부산일보  1949-11-01]

 1.3 울산 서부지구 전투사령부 군경민(軍警民) 작전 작전결과

날짜 :  1949년 11월 24일 ~ 27일(3일간)

장소 : 신불산 및 간월산

주관 : 울산 서부지구 전투사령부  군경합동작전

결과 : 9개소 아집트 파괴 (남로당 경남도당 동부지구 야산대 본부 포함)

15명 사살(그중 여자 3명), 생포 1명

 1.4 신불산 지구 전투결과

 날짜 :  1950년 2월 24일 ~ 27일(3일간)

장소 : 양산시 원동면 선리 시살등(신불산 남쪽, 신동대굴(신동대 동굴))

김종원(金宗元)은 356부대(三五六部隊), 일명 맹호부대장으로 양산초등학교에 주둔하던 1950년 2월이른 봄, 신불산 일원을 토벌하면서 양산 원동면 대리 앞산에서 사살한 29명의 빨치산 목을 잘라 가마니에 담아 와서 양산군청 동편 목화 창고 앞 광장에 늘어놓고 전시를 하기도 하였다. 

 2. 한국 전쟁(1950년 6월 25일) 후 빨치산과 토벌대(討伐隊; 진압대)

 2.1 동해남부부대

   1) 기본현황

그림2] 동해남부 빨치산 이동 경로

  북한 강동정치학원 군사교관 출신으로 하준수(가명 ‘남도부(南到釜))’ 부대장이 김일성 수상의 ‘부산으로 진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7군단 소속 동해남부부대(300여명)을 지휘하여 1950년 6월 24일 강원도 속초항에서 배를 타고 6월 25일 새벽, 임원진臨院津(현재 삼척시 원덕읍 임원항)에 상륙하여 태백산맥을 따라 남하는 중 7월1일 영덕 칠보산 700고지에서 3사단 23연대(중령 김종원) 전투와 포항 구룡산 전투를 거쳐 7월 15일 신불산 배냇골에 도착한다.

그림 3]   동해남부부대 조직도

그림3]남도부부대조직도_20200425.pptx
0.07MB

그림3]  동해남부부대 조직도 및 활동지역

동해남부 사령관 남도부 발행 원호증 (소설가 박도 선생 제공)

원호증은 약탈한 물품에 대한 확인증으로 해방통일 후에 값아 주겠다는 내용이다.

* 차진철, 본명 성일기(成日耆)로 북한 김정일의 아내 성혜림의 처남, ‘북위38도선’ 책 펴냄

* 추일(秋一), 본명 김형식(金瀅植, 1926~2016)은 조부 독립운동가 김용응(金鏞應,1870∼1945)이고 출옥 후 고향 충북 괴산에서 화가(畵家) 활동함.

* 구연철 1931년 양산군 하북면 출생. 대신중학교(서울) 1948년 졸업, 1950년 7월 신불산 입산 ‘신불산’ 책 펴냄    * 남명근 :  38 연선부대 11지대장 출신

* 홍길동 본명이 서장윤(1923년 출생) 울주군 범서면 다운리 출신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사망시 같은 이름으로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있어 확인이 필요하다. [참고 ‘영남알프스’, ‘빨치산 남도부, 신불산에 오다’, 128쪽, 저자 이병길]   

2) 전투 실적

  (1) 포항 영일 비행장 공격

그림4] 1950년 8월 10일 포항안강지구 지도

  1950년 8월 11일 01시 20분경, 포항 영일 비행장(위치 : 포항 남구 동해면 도구리)을 공격하기 위해 조선인민군 제766부 및 동해남부유격대가 형산강 남쪽 터널고지(형산兄山 256m고지)에 매복하여 미군 2사단 9연대 3대대 K중대와 미 15포병대대 C포대 일부병력을 공격하여 70여명 인명 손실을 입혔다. 

  그리하여 미군 후발부대는 경주로 철수하고 보고를 받은 브래들리 준장은 3대대 1중대를 출동시켰으나 인민군 766부대 매복으로 기습을 받아 그곳에 고착되었다. 항공지원 요청으로 40전투비행대대 F-51 무스탕 전투기 1개 편대가 출격하여 터널고지대에 집결해 있던 적을 강타하고 이와 함께 미 73 중전차대대(M26퍼싱) 전차소대 다리고(Joseph R. Darrigo) 대위가 터널고지 부근까지 진출하여 기관총사격을 가해적 병력 70여 명을 사살하고 국군 17연대에 인계하고 오후 8시 30분경 영일 비행장으로 진출한다.

 [참고] <한국전쟁>제2권(142) 제4장 8월의 공방전(28) 제7절 동부전선 ① 영덕(盈德) 실함(失陷)

1950년 3월 10일 호계역 기습, 1950년 말 형산강 철교 폭파, 1951년 12월 23일 양산 원동역 제 3225열차 습격 등 동해남부선 수송로 차단 등을 주로 하였다.

 2.2 군인경찰토벌대 전투

  1) 1950년 신불산 국군 1차 토벌

날짜 :  1950년 12월 25일

장소 : 신불산 1209고지 ( 681고지(갈산고지)), 시살등 신동대굴(심종지굴)

군대 : ㄱ) 미군 제10군단 직속 특별공격대대 대장 소령 배동걸裵東傑

          1중대장 대위 윤성모, 2중대장 중위 손장래(孫章來,예비역 소장), 3중대장 대위 정창화

          병력 500명

       ㄴ) 동해남부부대 사령관 남도위, 병력 250명 추정

  군인경찰합동작전을 위해 언양·삼남·상북주민이 동원되어 하룻밤 사이에 언양 남천에 비행장 활주로를 만들었다.  이때문인지 현재도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부산 방향으로 콘크리트 도로인 비상 활주로 및 헬기 비행장이 있다. 

  신동대굴에 비행기로 폭격을 하고 681고지(갈산고지)에는 레이팜탄 및 휘발유 드럼통을 투하하여 산을 불마다로 만들고 반대편 재약산 사자평원에서는 대포를 쏘았다.  동해남부부대는 갈산고지를 빼앗기고 사령부를 영취산, 천황산, 밀양 향로봉 등지로 옮긴다.

    2) 1952년 신불산 국군 2차 토벌

  본격적으로 조선인민유격대 빨치산을 토벌하게 된 것은 백야전사령부가 생기면서이다.  백야전사령부는 백선엽 소장(白善燁, 1920년~ 생존)의 성씨를 딴것으로 1951년 12월부터 1952년 3월까지 활동했던 육군과 경찰 합동사령부이다.

그림5] 백 야전사령부 제2기 토벌작전

그림6] 신불산 빨치산 사령부 위치

     신불산 지역에 대한 대규모 공비(빨치산) 토벌작전은 1952년 2월 4일부터 3월 6일까지 거의 한달간 진행되었는데 미 공군의 지원, 수도사단 제1기갑연대 연대장 이용(李龍) (1개 중대, 소장 예편), 경찰, 의용대가 합동하여 남도부 부대의 거점 신불산 681고지(갈산고지)를 빼앗고 89명을 사살하였다. 

그림7] 신불산지구 전투 참전기념 사진 (임진년 단오(1952.05),작천정)

군인, 경찰, 의용대는 1952년 2월의 온양 대운산 작전에서는 김용구를 사살하고, 6월의 아미산 작전을 이어간다.  

일시 :  1952년 6월 12일

지명 : 울산군 두서면 아미산

군대 ㄱ) 국  군 : 10경비대대 1중대 대위 김동록金東鹿 병력 136명

     ㄴ) 인민군 : 동해남부부대 홍길동부대 홍길동 약 40명

결과 :  사살 16명  M1소총 6정, 칼빙 소총 3정, 기관총(다발총) LMG 1정

피해 :  전사 5명  부상 1명

* 석용화(石容華, 1925~) 양산시 화북면 초산리 출생으로 52년 6월 체포되어 비전향 장기수로 72년 4월 출옥하여 2000년으로 북한으로 송환됨

◈ 1953년 군경합동토벌

  경남 동부지구 신불산을 중심으로 각처에서 발악을 하고 있는 잔비를 완전 소탕코저 지난 1953년 1월14일 양성봉(梁聖奉, 1900~1963년) 경남지사 경남 경찰국장 및 각 기관장 읍면장 연석회의를 개최하고 동기 작전계획을 세운 후 본군 출신 대한청년단 1,900명으로 조직한 전투대가 현지로 향발하였다. [출처: 부산일보 1953년 1월 24일 기사]

문봉제(文鳳濟) 치안국장 (현 경찰청장)과 박영근 경남경찰국장 (현 경남경찰청장)은  1953년 1월 20일 울산국민학교  교정에서 경남경북 동부지구 빨치산을 소탕하기 위해 경찰부대와 지방청년으로  구성된 벽력부대(霹靂部隊)를 사열한다.

[출처: 부산일보 1953년 1월 23일 기사]

 * 53년 11경비대대 경찰출동 현황

밀양경찰서 70명, 울산 190명, 양산 50명, 동래 130명, 청도 60명, 경주 80명, 경북특공경찰대 100명, 총합계 680명

울산MBC 탐사기획 돌직구 ‘신불산 빨치산을 말하다!’

https://usmbc.co.kr/programme/hwocoAnMTyLkbyUCqqP-9/p/m-ZxVYPhS/single/49350/page/7

그림8] 신불산전투참전기념비

그림9] 신불산 빨치산의 묘 [인용: 네이버 블로그 정파선인]

그림10] 한국전쟁 북한군 개인 화기

그림 10]  한국전쟁 국군 개인화기

 

 최근 걸그룹 출신 구하라와 전 남자친구 유명 헤어디자이너 최모'씨 간의 쌍방 폭행 사건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 특이 전 연인 최씨가 보복성 영상물 ‘리벤지 포르노’ 협박으로 더욱 논란으로 번졌다.

   생소한 리벤지 포르노 (Revenge Porno)란 어떤 이미일까요?

[다음 백과사전]

  리벤지 포르노는 당사자의 동의나 인지 없이 배포되는 음란물 화상 또는 영상을 말한다.  연인 등 친밀하거나 아는 관계인 사람간의 이별에 앙심을 품고 상대를 모욕하기 위해 유포하는 경우가 많다.  금전을 노린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동의 없이 유포되는 일반인 음란물도 리벤지 포르노에 포함된다. 2017년에는 리벤지 포르노나 몰카 등의 범죄가 증가하면서 온라인상에 남은 글, 사진, 동영상 등 디지털 흔적을 지워주는 디지털 장의사(디지털 세탁소)가 새로운 직업으로 등장했다.

리벤지 포르노를 우리 말로 바꾸어 볼까요!

연인戀人 보복성 報復 음란물淫亂

********************************************************************

보이스 2018년 10월 05일 12시 24분 KST   작성자 곽상아

지난 6년간 음란물 유포로 '징역형' 받은 피고인 숫자를 들으면 놀랄 것이다 (통계)

불법촬영 피고인 중 남성이 약 99%(7371명)이었으며, 음란물 유포 피고인 중 남성은 94.4%(1586명)이다.

 

지난 6년간 불법촬영으로 재판받은 이들 가운데 ‘징역형’을 받은 피고인은 몇명일까? 10명 중 1명도 안 된다.

그럼, 같은 기간 음란물 유포로 재판받은 이들 가운데 ‘징역형’ 받은 피고인은 몇명일까? 100명 중 2명도 안 된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대법원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1심 판결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이 같은 수치가 나온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6년간 불법촬영 혐의로 재판을 받은 이들은 7446명이며 이중 징역형을 받은 피고인은 647명(8.7%)으로 10명 중 1명이 채 되지 않는다.

‘벌금형’ 선고가 4096명(55%)으로 가장 많았으며, 그 뒤를 ‘집행유예’(2068명, 27.8%)가 잇는다. 선고유예도 373명(5%)나 된다.

솜방망이 판결은 음란물 유포의 경우 더 심각하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 유포) 1심 판결 현황’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7년까지 6년간 음란물 유포로 재판받은 피고인 1680명 가운데 징역형은 30명(1.8%)에 불과했다.

이 역시 ‘벌금형’ 선고(924명, 55%)가 대부분이었으며, 집행유예가 274명(16.3%)가 그 뒤를 잇는다. 오히려 선고유예가 71명(4.2%)으로 징역형 받은 피고인보다 훨씬 많을 정도다.

불법촬영과 음란물 유포 둘다 피고인은 거의 압도적으로 남성이다. 불법촬영 피고인 중 남성이 약 99%(7371명)이었으며, 음란물 유포 피고인 중 남성은 94.4%(1586명)이다.

남인순 의원은 4일 구하라씨 전 남자친구 A씨가 사생활 영상 유포를 협박했다는 보도와 관련해 ”당사자 동의 없는 영상물 유포는 중대한 범죄”라며 이에 엄정 대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남인순 의원은 ”영리를 목적으로 (성적 영상물을) 유포했을 경우 벌금형 없이 징역형으로만 처벌함으로써 조치를 강화하려는 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불법촬영과 관련한 다수의 법률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며 ”저와 더불어민주당은 관련 법안이 신속하게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인순 의원은 ”성관계 영상이 유포되더라도 성별에 따라 피해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가해자는 당당하고 피해자는 어디에도 말 못 하는 것이야말로 젠더 불평등의 현실”이라며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낸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발생되지 않도록 언론도 각별히 신경 쓸 것을 당부드린다”고 전했다.

 

 최근 우리나라 해군 2018년 국제관함식 해상사열에 일본이 일본군기 욱일기 게양에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해상사열은 2018년 10월 11일 목요일에 열린다네요.

중국 함선이 입항하며 사열 준비 모습

관함식(觀艦式, Fleet Review)란 국가의 통수권자가 자국의 군함을 곳에 집결시켜, 전투태세와 군기를 사열하는  해상사열식이다.  지난 1346 6 영국 에드워드 3세가 잉글랜드와 프랑스간 전쟁에 출전하는 함대의 전투태세를 검열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일본군기 욱일기旭日旗

 

욱일기旭日旗 생소해서 좀 알아볼까요.

한자는 '旭아침해 욱, 日날 일, 旗기 기' 이고 욱일旭日은 아침에 돋는 밝은 해란 의미네요.

승천昇天의 한자는 昇오를 승 (예 승강기, 탑승), 天하늘 천' 네요.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로 부르기도 하는데 욱일승천(旭日昇天)은 고사성어로 '떠오르는 아침 해처럼 세력()이 성대()해짐을 이르는 말' 말이에요.

[참고 다음 백과]

일본의 군기(軍旗).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깃발이며 현 자위대의 군기이기도 하다. 종종 우리나라에서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로 잘못 사용되고 있는데, 이 말은 일본에서도 사용되지 않는 말로 고사성어 욱일승천(旭日昇天)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일본이 군국주의를 강화하던 1870년대였다. 1870년 16방향으로 뻗어나가는 문양의 욱일기가 일본 제국주의 육군의 군기로 공식 채택됐으며, 1889년에는 해군도 군기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40년대 태평양전쟁 당시에는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우면서 ‘대동아기(大東亞旗)’로 부르기도 했다.

독일 나치의 하켄크로이츠(Hakenkreuz)와 같이 전범기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하켄크로이츠의 사용을 법적으로 금지했던 것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종전 이후 잠시 동안만 사용되지 않았을 뿐 1952년 해상자위대와 육상자위대를 창설하면서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해상자위대는 군국주의의 깃발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육상자위대의 깃발은 줄기 수만 8줄기로 바뀌었을 뿐이다.

일본 내에서는 욱일기를 전범기로 인식하지 못하며, 아무런 규제 없이 상품의 로고, 응원기, 대중문화에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의 인식과는 달리 한국과 중국에서는 욱일기를 전범기이며,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긴다.

 

최근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주말 드라마가 이병헌, 김태리 주인공으로 방영되고 있습니다. 

제작비가 약 400억원이나 들었고 넷플릭스와의 방영권 계약 체결로 전 세계 190여 개국에서 동시 방송하게 된다는 것에 놀랍고 화제가 되었지요.

고애신 배역을 맡은 김태리가 조준하고 있는 모습.



여기 아무개 의병(義兵)에 대한 얘기가 있다.

뜨겁고 의로운 이름, 의병(義兵)

역사는 기록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기억해야 할, 

무명의 의병(義兵)을,

노비로 백정으로 아녀자로 유생으로 천민으로 살아가던 그들이 원한 단 하나는

돈도 이름도 명예도 아닌, 제 나라 조선[朝鮮]의 '주권'이었다.

[미스터 션샤인]은 흘들리고 부서지면서도 엄중한 사명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는 이름 없는 영웅들의,

유괘하고 애달픈, 통괘하고 묵직한 항일투쟁사다.


'미스터 선샤인 Mr. Sunshine' 뜻에 대해 알아볼까요?   네이버에 검색해보면  "미국 의회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브라이언 웨스버리가 2009년 말 처음 사용한 용어로, 한국을 세계 경제에 밝은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는 국가" 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한국 경제가 돋보인 측면도 있지만, 신흥국 가운데 첫 G20정상회의 의장국으로 그만큼 기대를 모은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미스터 선샤인 [Mr.sunshine] (한경 경제용어사전, 한국경제신문/한경닷컴 )


역사 시간에 구한말이라 배웠는데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애매한 단어네요. 조선 말기도 대한제국 시기도

아닌 것이. 독립 운동을 한 집안은 3대가 망한다고 이런 서글픈 얘기가 있지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대한제국 시기 의병 (동학농민혁명, 을미의병(을미왜변, 을미사변), 을사의병(을사능약), 정미의병(고종 퇴위))은 일제 강점기 독립군이나 광복군으로 이어집니다. 조선 말기 의병은 어떻게 시작됐을까요?  1984년 7월 일본군이 경복궁을 포위하고 고종 황제를 포로로 사로잡고 김홍집을 수반으로 하는 친일 정권을 수립하고 갑오왜란, 갑오경장, 갑오개혁을 일으킵니다.  갑오개혁의 연장에서 을미개혁을 하게 되고 체감할 수 있는 단발령, 머리카락을 짧게 자를 것을 하게 됩니다.  예전에 신체는 부모님께 물러받은 것으로 목숨은 내줘도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는 것이 양반, 유생의 생각이었습니다.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 것을 수치로 생각했던 시대였어요.  그리고 일본 낭인(사무라이)에게 명성황후, 민비(민자영)가 시해, 살인을 비참하게 당합니다.  그러면서 의병 운동이 본격적으로 막이 오르게 되고 일본군과 정부에 탄압받던 동학혁명군도 함께 참여하게 됩니다.  

의병운동은 항일구국 즉 일본에 항거하고 나라를 구하겠다는 의지입니다. 

구한말 의병운동을 깊이 연구해 온 역사학자인 연세대 오영섭 연구교수는   "현재 의병운동 연구는 일반 민중에 의한 의병운동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의병 지도부를 꾸린 유림층과 병사를 구성한 평민층이 연합했다는 것"이라며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시 중앙에는 고종(1852~1919)이 있었고, 그 주변에는 수많은 대신들이 있었다. 이 대신들은 다들 지방에 자기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 각자 근거지에 수많은 마름, 소작인들이 있었기에 쉽게 전력화·무력화할 기반을 지녔다. 고종이 위에서부터 내려보내는 항일구국 움직임, 일반 민중이 가지고 있던 원초적인 항일의지가 맞물리면서 의병이 일어났다고 본다." 

그는 "그런데 현재 연구는 이러한 고종의 역할은 싹 빼고 의병운동을 이야기한다"며 "교과서 역시 의병운동을 철저하게 일반 민중에 의한 자발적인 항일운동이라고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병은 군사집단이다. 총, 총알 등 무장을 갖추고 밥을 먹이려면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 엄청난 돈을 재야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마련할 수는 없었다.   고종을 비롯해 그 측근 대신들과 연결된 지방 부호들이 그 돈을 마련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박경리 소설 '토지'에 이러한 이야기가 잘 묘사돼 있다. 결국 의병은 중앙에 포진한 고종과 그 측근의 구국의지가 재야에 있는 유림·농민 등 민중의 항일의지와 합쳐지면서 일어났다고 봐야 한다.     " 이회영 선생은 국내에 있을 때 의병 조직에 엄청난 자금을 지원했다. 주변에 있는 부호들에게도 '의병에게 자금을 지원하라'고 독려했다. 

그렇게 하느라고 엄청난 고통을 겪었는데 성과가 별로 없어서 고민했다고 측근들이 써둔 기록에도 나온다.   조선의 부호·지주층이 해외로 망명하는 과정에서 들고 간 재산이 독립군을 키우는 1차적인 재원이 된 셈이다." 

조금 빗나간 얘기지만 2차 동학혁명 경우, 전봉준에게 내린 고종의 거의(擧義) 밀서 등 새로운 사료들이 발굴되면서 동학의 2차 봉기는 일본에 맞선 고종과 동학의 연합항전이었음이 새롭게 밝혀지고 있습니다. 

오 교수는 "당대 의병운동은 실패할 소지를 100% 안고 시작했던 것"이라며 "의병장 최익현(1833~1906)의 경우 '내가 패배할 것을 안다. 그렇지만 나는 나라를 위하는 사람이니 목숨을 걸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의병은 그런 것이다. 현실적으로 패배할 것을 뻔히 알고, 성공하지 못할 것을 안다. 하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 가치 있는 인간 존재로서 자신을 나타내려는, 궁극적인 가치 실현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활동인 것이다." 



터키 전통 보드게임으로 타블라(Tavla)라라고 하고 타울라 또는 백개먼(Backgamon)이라고도 한다.

주사위를 이용한다는 것만 제외하면 우리나라 윷놀이와 비슷한다. 

윷놀이 숫자 읽는 것과 터기 읽는 것이 비슷하다.

2개 주사위 굴려서 1점 나면 '도'

2개 주사위 굴려서 2점 나면 '괘'

2개 주사위 굴려서 3점 나면 '골'

2개 주사위 굴려서 4점 나면 '윷'

2개 주사위 굴려서 5점 나면 '오(모)'

2개 주사위 굴려서 6점 나면 '도모'


아래 설명 타블라 동영상을 참고하세요.

https://youtu.be/jWczN9ae1Vo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