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빛이 변하여 나타난 형상이 뱀이다. 

이 뱀 상징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이집트 태양신 라(Ra)

태양신 라가 뱀으로 둘러싸인 태양관을 쓰고 있다.

[출처 : 구글] 이집트 제19왕조(BC 1320 – 1200) 센네젬의 묘(Tomb of Senedjem)영원의 집 벽화, 뱀 모양 태양관을 쓴 라”  


2. 날개달린 태양 원반

상징은 태양과 부분에 두개의 날개가 붙은 모양입니다이집트 전통에서는 2개의 날개에 2개의 뱀을 같이 묘사하였는데, 이것은 , 이집트를 보호하는 여신을 상징합니다. 

Thomas Milton Stewart  이것에 관한 신화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이집트의 메시아 호루스는 위대한  (Ra) 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직접 세상에 내려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날개 달린 태양의 원반으로 변신시켰고, 여신인  Nekhebet Uatchit 뱀의 형태로 하여 자신과 같이 하였습니다. (Ra)신의 적을 성공적으로 없앤 , 호루스는 지혜의 토르(Thoth)에게 , 이집트 땅의 모든 신전에 날개달린 태양과 수직의 모양을 세우도록 명령을 했습니다. "


3. 남아메리카 태양신 케찰코아틀(Quetzalcoatl)

남아메리카 아즈텍 신화에 태양신, 풍요와 평화의 신인 케찰코아틀(Quetzalcoatl) 날개를달린 뱀의 형상을 이다.  ‘전설에 전쟁신의 음모로 쫓겨났지만 하얀 깃털이 달린 뱀으로 묘사되는 케찰코아틀은 하늘을 돌면서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는 말을 남겼다 전설이 있고 아즈텍인들은 케찰코아틀의 재래를 믿었다고 한다.



▲ 태양의 돌 중심에는 대지의 괴물과 태양신이 새겨져 있고, 가장 바깥 쪽에는 두 마리의 뱀과 52년을 주기로 하는 아스텍력을 상징하는 조각들이 새겨져 있어 그 자체로 달력의 기능을 했다고 전해진다.


4. 메소포타미아 뱀신인상과 편두한 토우







'천안함 7년, 의문의 기록-사건의 재구성과 57명의 증언'은 천안암 사건에 합리적 의문을 제기하며 공판 기록을 정리한 것이다. 미디어 오늘 조현호 기자가 천안함 사건 7주기에 즈음해 그간의 취재와 5년 6개월 간 이어진 천안함 관련 공판 기록을 정리했다. 공판에 출석한 증인 중 핵심 증인이라 할 57명의 증언기록을 충실히 반영했다.

이 책은 2장 정부 발표와 결론에 대한 의문, 3장 어뢰폭발과 관련된 의문, 4장 천안함 사건을 육하원칙에 맞춰 사건을 재구성하여 제기하는 의문으로 분류했다. 해당 의문에 맞는 기록을 최대한 수록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5장 '천안함 끝나지 않은 재판'에서는 1심 재판의 첫 공판 출석 증인부터 마지막 출석 증인까지 거의 빠짐없이 법정 증언을 기록했다. 일부 생존장병들 사이에서는 정반대의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이 때문에 주요한 증언의 경우 질문 내용과 답변 내용을 함께 책에 수록했다. 그 결과 드러나는 사실이 있었다. 합동조사단에서 폭발을 연구했다는 사람들은 겉모습만 요란했을 뿐 북한 어뢰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그러면서도 다 아는 양 국민에게 '북한 어뢰라는 것을 밝혀냈다'고 장담했다. 법정 증언을 통해 군 조사책임자들의 무능과 부실함이 들통 났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은 누구 한 사람의 입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의 법정 증언 속에 담긴 행간을 읽고 침묵 속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하는 과정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 핵심증인 57명의 증언기록을 이 책이 충실히 반영한 까닭이자 '사건의 재구성과 57명의 증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긴 내용을 꼭지마다 하나의 기사처럼 전달하고 분석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어지는 6∼7장에서는 언론의 문제점과 아울러 천안함 사건 초기부터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히 묶었다. 

저자는 이 작업을 미완의 결과물로 규정하며, 이번 작업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밝혀보자는 재조사의 분위기를 환기하길 바라고 있다. 

"7년을 취재하고 쫓아다녔지만 나는 천안함을 침몰시킨 대참사의 진실을 모른다. 그러므로 내가 기록한 것은 진실의 기록이 아니라 의문의 기록일 수밖에 없다.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하고 물어봐야 한다. 그것이 진실을 향하는 시작이다." 

 

 


조현호 지음 | 생각비행 | 800쪽 | 25,000원 

MBC 드라마 군주, 가면의 주인의 주내용이 왕과 물을 사유화하려는 세력과 권력 싸움입니다.

편수회 片手會 는 물을 관리하는 양수청을 이용하여 돈과 권력을 움켜쥐고 편수회의 이익을 위해 왕을 마음대로 움직입니다. 왕은 자신이 세자를 보호하기 위해 가면의 씌워 세자의 얼굴을 알지 못 하게 합니다.

편수회를 생각하면 일제 강정기 시대 조선사 편수회가 먼저 떠오른다. 이 편수회는 아니겠지요. 편수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도편수 [都邊首]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도편수 都邊首 조선후기 건축공사를 담당하던 기술자의 호칭으로, 각 분야의 책임자인 변수(邊首)의 우두머리라는 뜻을 지님.

도편수는 17세기부터 궁궐이나 불교사찰을 짓는 공사의 기술자 책임자로 불렸으며 목수도편수, 석수도편수 등 직종별로 도편수가 조직되었다. 조선후기에는 기술자의 사회적 대우가 낮아졌기 때문에 고려말, 조선초기의 기술자 우두머리였던 대목(大木) 우월한 신분에서 공사를 이끌었던데 비해서 도편수는 낮은 사회적 대우 속에서 담당한 직종의 범주 안에서만 활동하는 한계를 지녔다. 궁궐 사료에서는 도변수(都邊首)로 표기되지만 통상적으로는 도편수(都片手)로 칭한다.

 

군주에서 나오는 편수회片手會는 편수片手의 모임 즉 건축기술책임자의 조직이라는 의미입니다. 도편수가 건축기술자 우두머리인데 드라마내 편수회의 우두머리를 대목大木이라 부르고 있지요.

물을 돈을 받고 판 내용은실제로 [서울 600년사]에 실린 <청계천의 역사와 문화>에 따르면, "청계 주변에는 건기에도 마르지 않는 샘터가 몇 개 있는데, 각각에는 소유주가 있어서 철저히 관리되고 있었다"고 한다그 마르지 않는 샘을 사들여 물을 팔아 돈을 챙기고, 특히 가뭄이 들 때는 더 많은 돈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1700년대 배경으로 보면 숙종 ~ 정조까지 해당되는데 살해된 왕은 경종이 있었습니다. 경종 다음은 영조 즉 연잉군입니다. 드라마에서 편수회가 금녕대군과 손잡고 선왕을 살해하고 왕을 만들게 됩니다. 드라마 흐름과 비슷한 것은 연산군 뒤 중종일 것입니다. 무력으로 일으켜서 왕권을 잡은 중종반정입니다. 중종 다음 인종도 1년만에 죽습니다.

 

 

 

 

 

[퍼옴]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김해모 2016.02.05 16:20 http://blog.daum.net/ky1002027/6583072

술을 마셔도 석잔!!!

못 먹어도 고!!!

그러다 못 나면 독박을 쓰는데 3번 고를 하면 따따블로 받고!

싸면 피를 못 가지고 오는데 3번 싸면 불행이 행운이 되어 이깁니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합니다. 

또한 가위 바위 보에서 보듯이 우리 민족은 3이란 숫자를 유난히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무의식 속에 있는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항공대 우실하 교수님의 강의 내용을 정리합니다. 

무지개 색이 몇종류냐고 물어보면 7가지 색깔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무지개는 모든 가시광선의 색이 포함돼 있어 특정 갯수의 색깔로 나누는 것은 우리의 사유체계의 산물일 뿐이다. 

우리나라엔 개항기 이후에 7색이라고 인식이 되었을 것이다. 

만일 조선시대에 무지개 색이 몇 종류냐고 물어보면 5색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음양 오행의 사고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 오래로 들어가 상고시대에 물어보면 9가지 색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유치원생은 12색 크레용을 중고등학생은 24색내지 36색 물감을 사용한다. 

전부 무지개 색을 자른 것인데 사실 무한대로 자르기 가능하며 화가는 색을 만들어 새로운 색을 쓰기도 한다.

즉 무지개 색은 문화권 마다 다르게 인지하게 된다. 

무지개 색은 그리스시대 크세노폰은 3색, 아리스토텔레스는 4색, 세네카는 5색이, 뉴턴은 7색 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7색 무지개 보편화도기 시작한 것은 기독교문화의 영향으로 7색으로 고정되었고 뉴턴도 그 영향으로 7색 무기개라 대답한 것이다. 

성경에 7은 성스러운 숫자이기 때문인데 그 기원은 수메르가 원류이다. 


수메르 신화는 인류 최초의 기록으로 남아 있는데 우주에는 굉장히 많은 신이 존재한다는 표현을 60x60이라고 한다. 

많다는 것을 이렇게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 많은 신 중에서 운명을 결정하는 7신이 있는데 그들이 핵심적인 신이다.

저승사자도 7, 저승사자가 인도하는 지하로 통하는 대문도 7, 심판관도 7이고 하물며 영웅 길가메쉬 전쟁시 7개의 톱니바퀴로 이루어진 별모양의 도끼를 들고, 무게가 7탈란트이며 적을 무찌르러 가는 먼 길을 7개의 산을 건너서 7개의 물을 건너서 간다로 표현한다. 

태양신이 길가메쉬에게 동반시킨 사자도 7명이다.

대홍수도 7일 밤낮으로 왔고 기독교가 경전화 되면서 성경에 흡수되어 결국 Lucky 7등장한 것이고 따라서 무지개를 7색으로 인지 시작한 것이다. 


개항기 이전에는 동아시아에서는 한자문화권 음양오행의 사상에서는 5색으로 대답했을 것인데 오색찬란한 무지개라고 했을 것이다. 

전국시대 때 기원전 4세기정도에 음양오행사상 완비되어 체계화 된후 그때부터 개화기 이전 약 2500년이상을 5색으로 인지한 것은 음양오행의 사유체계의 산물이다. 

그 한참 이전의 몽고 만주 에벤키 야쿠트족의 전설민담에 풍부한 자료 존재하는데 이때는 9색 무지개였다. 


북방 유목민족에게 보편적으로 나오는 인식체계는 3수 분화의 세계이다. 

'3수 분화의 세계관" 즉 1-3-9-81로 숫자가 3배수로 나가는 것이다. 


훈민정음의 글자의 원리도 음양오행 삼재의 논리로 만든 것이다. 

기본 모음 3개 천지인이 기본으로 했다. 

음양오행과 전지인 삼재(三才)를 알아야 동양문화적 문법이 이해가 된다.



삼신할머니라고 하지만 원래는 삼일신이다.

우주도 하늘세계 중간세계 지하세계로 존재 3층의 세계를 잇는 신단수 혹은 생명수(樹나무)로 나누었다. 

뿌리가 9개이면 가지도 9개의 우주관이다. 


중국은 술을 먹어도 짝수, 축의금도 짝수, 요리도 짝수로 한다. 

중국은 3을 기피한다. 


3이 세번 반복되면 9가 된다.. 

9는 변화가 완성되는 완성의 수이다 

그래서 속담에 귀머거리 3년, 벙어리3년, 눈봉사3년 하면 혹독한 시집살이를 마치고 시어머니와 종속적인 관계에서 평등한 관계가 되어 곳간 열쇠를 맡긴다는 것이다. 

구미호는 3번을 재주를 넘어야 변한다. 왜 꼬리가 9일까...

구미호는 아홉이라는 상징수를 자기몸에 가지고 있다 외부의 도움없이 스스로 완성시킬 수 있다는 상징수이다. 

대신 변화를 할려면 재주를 세번 넘어야 한다. 

예쁜 처녀 둔갑 전설의 고향에 보면 꼭 마지막에 재주넘을 때 누군가 훔쳐 봐서 인간이 되는 소원을 이루지 못한다.



변화의 완성수 9에 자기 제곱을 하면 81이 되고 81은 우주적 완성수이다. 

몽골의 민담에 보면 예쁜 여인을 칭찬할때 "81가지 덕을 갖춘 여인"이라 표현하는데 이것이 3수 분화의 세계관을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이다. 

최고의 찬사인 것이 81은 우주적 완성수이기 때문이다. 


징기즈칸 특등공신에게 공훈에 대한 부상으로 잘못을 9회까지 해도 징지스칸이 벌을 내리지 않는 특권을 준다 


반면 중국에는 1회에 한정적이다. 


몽골은 벌이나 상을 줄때 9수가 항상 존재한다. 

선물도 9의 배수로 그걸 9x9 예법이라 한다. 

그래서 칸에게 81마리의 가축을 선물한다. 


이런 예는 고려사에도 기록돼있다. 

고민도 3일간 하는 것이 변화의 계기 수가 3이기 때문이다. 

몽골의 천막가옥 게르의 석가래에 해당하는 지지대인 우니의 숫자는 81개이고 규모가 작으면 72개 일때도 있지만 거의 거주집은 81개이다. 



하나이면서 셋이고 셋이면서 하나라는 삼일관에서 시작한다.

하나가 계속 셋으로 분화된다.

중요한 상징성을 가진 상징수다.


삼수분화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박제상 부도지(符都誌)』 는 파미르(Pamir) , 파미르 帕米爾, 파내류 波奈留 에서 마고(麻姑) 할매가 인류의 시작으로 나온다. 파미르 및 주변 (텐산, 곤륜산)이 포도, 사과, 복숭아 원산지라고 한다. 동박석, 손오공이 금기하는 복숭아를 먹고 장수하는 얘기가 있다. 신선 즉 도인이 사는 곳에 복숭아 나무가 이 열매를 먹고 불로장생하는 신화나 설화가 있다. 여기서 이상적인 무릉도원 武陵桃源 나왔는지도 모른다. 

복사나무는 신성시하여 귀신을 막는 부적인 도부(桃符)로 사용되기도 했다.

[퍼옴] 설날 세시풍속 도부(桃符, 복숭아나무 부적) 복원  

작성자 : 조용호 yongbang@daum.net , 작성일 : 2016-12-11

도부(桃符)란, 복숭아나무 판자에 사악한 잡귀를 퇴치하는 신장의 모습을 그려 섣달 그믐날 자정 무렵에 대문에 부착하여 새해를 맞이하는 풍속으로 집안에 사악한 잡귀의 출입을 방어하는 일종의 부적으로 혹은 도판(桃板) 혹은 도경(桃梗)이라고도 한다.

도부에 관해서는 우리나라의 『동국세시기』와『조선왕조실록』중국의 『형초세시기』를 비롯하여 『풍속통의(風俗通義)』 등에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도부의 기원은 이미 4,700여 년 전인 삼황오제 중의 황제 헌원 시대에 시작되어 동양에서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세시풍속이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말기에 이르기까지 성행하였던 풍속이다. 또한 도부의 주인공인 신도와 울루가 사는 곳은 삼족오(三足烏)와 같이 해 뜨는 구역인 동방이라고 하였으니 바로 우리나라에 해당한다.

문에 붙이는 첩자(帖子)에 ‘신도 울루(神荼鬱壘)’ 라고 네 글자를 쓴다. 옛 풍속에 설날에 도부(桃符)에 신도(神荼)와 울루(鬱壘) 두 신인(神人)의 형상을 그려 대문이나 출입문에 설치하여 흉악한 귀신을 막는다. 이 제도는 중국 황제(黃帝)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지금은 입춘의 첩자로 사용한다.
門帖 有神荼鬱壘四字 古俗 元日桃符 畵神荼鬱壘像 置之門戶 以禦凶鬼 其制自黃帝始 今用於春帖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입춘

[신라 풍속에] 설날을 중히 여겨서 서로 경축하고 잔치를 베풀며 차례를 지내는데, 해마다 이 날에는 일월신(日月神)께 예배한다.
重元日, 相慶賀燕饗 每以其日拜日月神
『구당서(舊唐書)』 동이전 신라 풍속

~ 자세한 내용은 첨부 파일 참조  

도부(桃符).hwp


[퍼옴] 다음 백과사전 복사나무

다른 표기 언어 Peach , , モモ桃

분류 : 장미과, 학명 :  Prunus persica

복사나무는 중국 서북부의 황하 상류 고산지대가 원산지로 아주 옛날부터 중국 사람들이 재배한 과일나무로 자리를 잡았다. 복숭아라는 맛있는 과일은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뿐만 아니라 차츰 신선이 먹는 선과(仙果)로 품격이 올라갔다. 복사나무에 대한 수많은 전설이 만들어지고 민속이 얽혀 들었으며, 병마를 쫓아내는 선약(仙藥)의 나무가 되기도 했다.

고대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서왕모(西王母)는 곤륜산에 사는 신선인데, 어느 날 한무제를 만나게 된다. 서왕모는 3천 년에 한 번씩 열리는 천도복숭아 일곱 개를 선물로 가져가 서로 나누어 먹는다. 복숭아를 신선이 먹는 불로장생의 과일로 받아들이게 된 시발점이다.

이런 복사나무와 여기에 얽힌 설화가 중국에서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삼국사기》에 벌써 그 기록이 나온다. 거의 2천 년 전인 백제 온조왕 3년(15)에 “겨울이 가까워 오는 10월에 벼락이 치고 복사나무와 자두나무 꽃이 피었다”라는 내용이다. 이렇게 이상 기후의 상징으로 예를 들 정도이니, 이미 이보다 훨씬 전에 들어와 당시에는 널리 퍼져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삼국시대와 고려 및 조선왕조를 거치는 동안 복사나무는 우리의 재래 과일나무로 갈수록 더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더 맛있고 굵은 품종을 골라 키우는 안목도 있었을 터이나 기록으로는 반도(蟠桃), 홍도(紅桃), 벽도(碧桃) 등의 이름만 찾을 수 있을 뿐이다. 1910년경 경기도에서 조사한 자료에는 10종의 품종 이름이 나온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먹는 개량 복숭아는 1906년 뚝섬에 원예시험장이 설치되면서 미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 새 품종을 들여온 것들이다.

복사나무는 복숭아라는 과일을 생산할 뿐만 아니라, 봄날을 화사하고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복사꽃을 선사한다. 연분홍의 아름다운 꽃이 핀 복사 밭은 도연명이 지은 《도화원기(桃花源記)》각주1) 에서도 그렸듯이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향을 대신했다.

복사나무가 갖는 또 다른 상징성은 못된 귀신을 쫓아내고 요사스러운 기운을 없애주는 주술적인 징표이다. 옛날 중국에는 동해 가운데 도삭산이 있고, 거기에 큰 복사나무가 3천 리에 걸쳐 뻗쳐 있었다고 한다. 가지가 뻗은 동북쪽의 작은 귀문(鬼門)을 통해 모든 귀신들이 출입했다. 문지기 귀신인 울루(鬱壘)와 신다(神茶)는 악독한 귀신이 들어오면 꽁꽁 묶어서 호랑이에게 바로 넘겨주었다. 이후 중국에서는 설날 아침, 마귀를 쫓기 위하여 문짝에 복사나무로 만든 도부(桃符), 혹은 도판(桃板)이라는 작은 나뭇조각에 울루와 신다의 이름을 적어서 걸어두기 시작했다. 이 풍속은 우리나라에 전해져 설날, 입춘, 단오에 도부를 걸거나 복사나무 그림을 그려 붙였다.각주2) 도삭산의 복사나무처럼 아무 귀신이나 출입할 수 있으므로 울루와 신다가 지키지 않는 복사나무는 자칫 못된 귀신의 소굴이 된다. 그래서 옛 풍습으로 집 안에는 복사나무를 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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