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드라마 '신사임당, 빛의 일기' 가 신사임당 주인공으로 이영애씨로 하여 방영되고 있더래요.  5만원 권 지폐에 신사임당이 들어가 있습니다.

 많이 들어봤는데 과연 신사임당에 대해 한번 자세히 살펴보더래요.

신사임당申師任堂 에서 사임당은 호인데 이름은 신인선(師任堂申仁善)이다.

사임당은 중국 은나라 걸왕을 폐하고 주나라를 건국한 문왕의 어머니 태임을 흠모하여 자신의 호로 삼인데 조선시대에는 자칫 역모로도 3족이 멸할 수 있십더.

사임당 가게도

 

 

아바이 신명화(申命和)는 장인 이사온(李思溫)과 기묘사화에 참여하였고 관직을 단념하고 강릉 향리에 은거하였다.  기묘사화는 살짝 알아보겠습니다.

 

http://blog.naver.com/apforhis  2006.10.12

기묘사화, 기묘명현 己卯名賢

 

기묘사화는 중종 때에 일어난 사화입니다.

연산군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중종은 새로운 정치를 구현하고자 조광조를 위시한 신진사람을 대거 등용합니다. 그래서 현량과를 실시하고 소격서를 폐지하는 등의 개혁정치를 시도합니다만 그들의 사상자체는 너무 급진적이었는지 기존의 훈구파 (중종등극의 공신들)들의 반감을 사게됩니다. 그러던 중 연산군의 폐위와 중종등극에 관한 공신록에서 훈구파 자신들의 공훈이 대거 삭제되자 반감이 극에 다다른 훈구대신 남곤, 심정 등에 의해 탁핸되어 조광조를 위시한 신진사림들은 우배 또는 사사되기에 이릅니다. 이것을 기묘사화라고 하는데 이때 기존의 훈구세력에게 희생된 신진사림들을 일컫어 바로 기묘명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사임당의 아버지였던 신명화도 이 신진 사림들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었으나 정국에 적극 참여하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한 이유로 원래는 기묘명현의 한 사람으로 처벌받았어야 했으나 정상참작이 되어 화를 면한 것입니다.

 

아바이 신명화(申命和)는 평산 신씨 시조 신숭겸의 19대손이다.

고조부 신개 세종대왕와 재위 시 위의정과 좌의정을 지냈다.

증조부 신자승 성균관 대사성은 태종의 딸 정선공주와 남이 장군사이에서 태어난 큰딸과 혼인했다. 조부 신숙권은 영월군수를 역임했다.

아버지 신명화는 41살에 소과에 응시하여 진사가 되었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임진왜란 충주 탄금대에서 전사한 신립은 그의 9촌 조카였고, 대한민국의 정치인 해공 신익희 14대 방손이 된다.

 

신사임당 신인선의 외가는 용인 이씨 집안이다.

세조 때의 원종공신(原從功臣) 이유약(李有若)의 손자인 이사온(李思溫)

이씨의 증조부 최치운은 세종대왕 재위시 이조참판을 지냈으며, 조부 최응현은 형조참판을 지냈다.   강릉 오죽헌을 지은 사람이 용인 이씨의 외조부 최치운이며, 최치운은 아들 최응현에게 최응현은 사위 (용인 이씨) 이사온에게, 이사온은 사위 신명화에게 주었다.

 

신사임당의 남편 이원수는 덕수 이씨로 사대부 집안이었다.

덕수 이씨 이기, 이행 형제의 조카인 이원수 당시 이원수는 이렇다 할 관직도 없었고,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두 당숙이 영의정좌의정 등을 역임한 고관이었지만 그의 집안은 가난했다. 이원수는 돈령부사 이명진의 4대손으로 할아버지 이의석최만리의 사위로 현감을 지냈고, 증조부 이추는 대제학 윤회의 사위로 군수를 역임한 바 있다.

 

신사임당의 자년 5남3년인데 그 중에  첫째 이선, 둘째 이번, 셋째 아들 대학자이자 정치인으로 이이, 넷째 문인 화가로  이우, 다섯째 이번, 문인화가 딸 이매창이 있다. 

 

아버지 신명화(申命和)공의 집은 한성(漢城)이었고 어머니 이()씨의 친정은 강릉 북평촌이다. 어머니 이씨는 외조부 생원(生員) 이사온(李思溫)과 외조모 최()씨 사이에서 난 무남 독녀라 항상 친정 부모를 모시고 강릉에서 살았기 때문에 사임당(師任堂)도 어려서 늘 어머니의 친정인 북평촌에서 살며 외조부의 교훈과 어머니의 훈도 아래서 자랐다. 안견(安堅=세종 때 사람)의 화풍을 본받아 산수 포도 풀벌레 등 여러 가지 그림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동시대의 여성으로는 문정왕후, 정난정, 황진이 등 있다.

 

 

블로그 김현거사의 문학 서재  펌

무궁화에 대한 斷想,

김현거사 | 2012.08.13 17:18

  돌아온 옛집에 무궁화가 볼만하다. 아침마다 담 위에 여나믄개씩 보라빛 꽃송이를 피워 올려, 한여름 독야청청을 보여준다. 무궁화(無窮花)는 말 그대로 꽃이 무궁무진 핀다. 그야말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꽃이다. 7월 초순부터 찬바람 불어오는 10월까지 핀다. 이에 비하면 다른 꽃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이다.    

  나는 용인에서 폭과 높이가 4미터가 넘는 거대한 무궁화 나무를 본 적 있다. 동대문 앞에서 눈에 뻔쩍 뛸만치 멋진 두 그루 무궁화 나무를 본 적 있다. 옛날 소달구지 다니던 흥인지문의 옹성 앞에 서있는 그 무궁화 나무는 휘어진 가지 전체에, 화려하고 낭만적인 꽃을 가득 달고 있어 장관이었다. 유달영 교수가 1956년, 뉴욕 식물원 정원에서 보았다는 무궁화도 장관이었던 모양이다. 그 분이 우단을 깔아 놓은 듯 곱게 다듬은 푸른 잔디밭 위에 잘 가꾸어진 여러 그루의 무궁화가, 아침나절 밝은 햇볕에 푸른 숲을 배경으로 만발한 광경을, 평생 기억에서 지울 수 없다고 술회한 글을 보았다. 새벽마다 뜰의 무궁화꽃을 볼 때마다, 백번 공감간다. 그런데, 누가 무궁화 전시회 소식을 알려주었다. 바로 내 집 옆 코엑스에서 무궁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 얼른 카메라를 들고 무궁화를 찾아갔다. 

  

   나는 사진을 찍으면서 하와이 공항에 내렸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밤새 비행하고 아침 7시에 비행기서 내렸을 때다. 미소 띈 얼굴, 신비스런 눈으로 나를 주시하며, 피부가 가무잡잡한 부르넷 미인이 닥아와서, 내 목에 화환을 걸어주었다. 그 남국 미녀의 왼쪽 귓가에 붉은 한송이 꽃이 꽂혀있었다. 그 하이비스커스 꽃이, 나중에 알아보니, 무궁화 사촌이었다. 그리고 무궁화의 학명은 <Hibiscus syriacus> 였다. 이집트의 아름다운 신 히비스를 닮았다 하여 이리 붙인 모양이다. 시경(詩經)에 '안여순화(顔如舜華)'란 구절이 있다. 순화(舜華)란 무궁화를 말한다. 여인의 안색이 무궁화 같이 아름답더란 표현이다. 부용화도 무궁화의 사촌이다. 무궁화의 영어 이름은 "샤론의 장미"(The Rose of Sharon) 다.  "이스라엘의 샤론 평원에 핀 아름다운 꽃"이라고 그리 부른다고 한다.

 

 나라마다 나라꽃이 있다. 미국 같은 데는 주(州)마다 주의 꽃이 정해져 있다. 스코트랜드 사람들은 가시가 많은 엉컹퀴도 그 모습이 용맹한 사자의 발톱을 닮았다면서 나라 꽃으로 사랑한다. 영국은 장미, 프랑스는 백합, 일본은 벚꽃, 중국은 모란 이다. 영국인들은 장미의 모양에도 신경을 써서 가위질도 하고, 벌레도 잡고, 약도 뿌린다. 유독 꽃이 향기로운 나무는 진드기가 있는 법이거늘, 그걸 탓하면서, 꽃이 이뿌지 않다느니, 국화를 다른 꽃으로 바꾸면 좋겠다느니, 천부당 만부당한 타박을 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그래도 되는가.  

 

 

 

  무궁화에 대한 자료를 검색해보니, 원래 무궁화는 단군조선을 세우기 이전, 신이 통치하던 신시시대(神市時代) 환나라(桓國)의 나라꽃 이다. 그 시대는 단군을 포함한 선교의 주요 인물을 선인(仙人)이라고 불렀다. 고조선에는 하늘에 의식을 행하는 신단(神壇)이 있었다. 소도(蘇塗)다. 그곳을 주관하는 사람을 선인(仙人)이나 신선(神仙)이라고 불렀다. 이곳은 천군(天君)이라는 제사장이 살며, 죄인이 이곳에 도망을 해도 잡지 못하는 신성한 곳이다.  소도(蘇塗)에 ‘훈화(薰華)’, ‘천지화(天指花)’를 심고, 아직 결혼을 안한 자제들에게 독서와 활쏘기를 익히게 하였으니, 이를 국자랑(國子郞)이라 불렀다. 국자랑은 다닐 때에 머리에 천지화를 꽂았기 때문에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 불렀다. 이런 신선사상과 화랑의 전통이 신라로 이어졌으니, 화랑의 꽃은 바로 무궁화다.

 

 

 우리 민족은 하늘의 뜻을 따르고, 태양을 숭앙하던 태양족이다. 밝고 맑은 색, 흰빛을 사랑하기에 백의민족이라고도 일컬었다.   무궁화는 태양족이 사랑한 꽃이다.  무궁화의 또다른 이름이 천지화(天指花)인데, 지(指)는, ‘가리키다’, ‘뜻하다’, ‘아름답다’의 뜻을 가진 글자이다. 천지화란 곧 ‘하늘을 가리키는 꽃’, ‘하늘을 뜻하는 꽃’, ‘하늘의 아름다운 꽃’을 의미한다. 이 꽃을 신라 화랑들이 머리에 꽂고 다닌 것이다.

 

 

  <단기고사>에는 '환인(桓仁)을 임금으로 추대하는 단상(壇上) 주위에 온통 환화가 둘러싸여 있었다'는 기록과, '16년에 임금께서 고력산(古歷山)에 행차하여 제천단(祭天壇)을 쌓고 주변에 근수(槿樹)를 많이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단군세기>에는 '5대 단군 구을(丘Z)이 16년 정축(丁丑)에 친히 장당경(藏唐京)에 행차하여 삼신단(三神壇)을 쌓고 환화를 많이 심었다.'고 적혀있다. 15대(代) 단군은 ‘훈화’를 뜰 아래 심어 정자(亭子)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산해경>에는 '해동에 군자국이 있는데, 의관을 정제하고 칼을 차며, 양보하기를 좋아하고 다투지 않으며, 무궁화가 많은데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진다'고 하였다. <고금기>에는 '군자국은 지방이 천리인데, 무궁화 나무가 많다'고 하였다. 이런 사실들은 4천 년 전에 쓰여진 중국 고대 기록에 실려있는 것이다. 우리 문헌인 <조대기>, <단군세기>, <단기고사>, <규원사화> 등에도 실려있다.  

 

     무궁화는 수수한 베옷을 입고, 살부채를 들고, 초당을 거니는 은자에게 알맞은 꽃이다. 무궁화 중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흰색 무궁화다. 바탕에 붉은 화심(花心)을 가진 것은 백단심(白丹心)이다.

  

 문일평은 화하만필(花下漫筆)에서 <무궁화는 빛이 몇 가지가 있으나 분홍과 백색이 가장 고우니, 여름 아침 일찍이 동산에 나가면, 번무(緊茂)한 가지와 잎 사이로 여기저기 하얗게 핀 꽃은 이슬에 젖은 그 청아한 자태가, 청계수(淸溪水)에 새로 목욕한 선아(仙娥)의 풍격(風格), 그것을 어렴풋이 생각케 하는 바 있다.>고 하였다.

  

   최영전(崔永典)의 <백화보(百花譜)>에는 “무궁화는 어사화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옛날에는 문무과(文武科)에 급제하면, 임금께서 종이로 만든 무궁화를 하사하여, 복두에 꽂고 삼일 유가에 나서게 했다"는 구절이 있다. 조선은 왕조의 표상을 오얏꽃(李花)으로 삼았으나, 과거에 장원한 사람에게 임금이 내리는 어사화(御賜花)는 종이로 만든 무궁화였다. 궁중에서 임금을 모신 가운데 베풀어지는 연회에도 신하들이 사모에 꽂는 꽃은 무궁화였다. 이것을 진찬화(進饌花)라 부른다.

  

  김정상(金正詳)의 <무궁화보(無窮花譜)>에는 '우리 나라나 중국에서 무궁화는 거의 전부가 울타리로 이용되는데, 이에 대한 습속을 고찰해 보면, 무궁화는 음장(陰障)을 제거하는 효력이 있으므로 사람의 집울타리로 쓰면, 장기를 막는다는 옛 기록을 믿음에서 된 것이다. 또 물리적으로는 산울타리(生藩籬)로 세워두면, 울막기에 편리하고 꽃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잎은 나물로 쓰고, 소가 지칠 때에 죽 끓여 먹이면 쉽게 회복되므로, 우마의 먹이가 손쉽게 들어오고, 약으로도 필요하므로, 사람의 가장 가까운 울타리로 쓰게 되었고, 번식이 빠르고, 그 키가 작지도 크지도 아니하고 울타리에 적당한 까닭이다.'라는 설명이 보인다.

 

   무궁화는 약으로도 사용되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무궁화의 약성은 순하고 독이 없으며, 장풍(腸風)과 사혈(瀉血)을 멎게 하고, 설사한 후 갈증이 심할 때 달여 마시면 효과가 있다. 꽃은 약성이 냉하고 독이 없으며, 적이질·백이질을 고치는데, 장풍·사풍·사혈에는 볶아서 먹거나, 또는 차처럼 달여서 무시로 마시면 낫는다'고 되어 있다. <본초강목>에는 '여인들의 적대하증·백대하증 치료에, 종기의 통증을 멎게 하는 진통제로, 또 옴병 치료제로 사용되었다'고 쓰여있다. '달인 물로 눈을 씻으면 맑아진다. 무궁화의 껍질과 꽃은 다 부드럽기가 해바라기 꽃 같아서 혈액순환을 돕는다. 꽃은 볶아서 약에 넣어 쓰고, 달여서 차 대신으로 쓴다. 감기에 걸리면 담이 생기는데, 담을 삭히는 데도 무궁화차가 좋다'고 쓰여있다.

현대 과학으로 보면, 뿌리껍질(根皮)에는 탄닌산과 점액질이 들어 있고, 꽃에는 사포닌이, 종자에는 말발산, 세루쿨산, 디하이드로 스테로쿨산이 함유되어 있다. 줄기와 뿌리는 이질균과 티프스균에 대한 항균작용이 있다.

 

  중국 사람들도 무궁화를 사랑한 모양이다. 북경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로변 가로수는 우리를 어리둥절케 한다. 그 모두 키가 사람 세배나 되는 거대한 무궁화 나무다. 꽃 피면 얼마나 장관을 이루겠는가. 하필이면 우리나라만 공항에서 서울 들어오는 길에 다른 나무를 심었을가 하는 애석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간혹 고속도로를 달려보면, 무궁화가 여름꽃으로 최고란 생각이 든다. 흰구름과 푸른 들판과 무궁화가 그렇게 화려하게 잘 어울리는 모습에 감탄하게 된다. 언제 쯤 우리도 입국하는 관문에 무궁화를 심을가 싶다. 일본 왕인박사 묘소에도, 그 동네 곳곳에 무궁화가 심겨져 있는 것을 본 적 있다.

 

 

   <규원사화>를 보면, '단군이 제후를 봉하여 다스리니 세상은 더욱 밝아지고 고요했다. 그러다가 십년 만에 갑비고차(甲比古次)에서 남이(南夷)의 난이 있었다.  임금은 부여(夫餘)에게 군사를 주어 평정하게 했고, 후에 부소(夫蘇)와 부우(夫虞)도 보내어 갑바고차에 성을 쌓게 하여 남쪽을 지키게 했다.'는 글이 있다. 이곳이 지금 강화도의 삼랑성(三郞城)이다. 마리산(摩利山) 참성단(塹城壇)은 단군 시대부 단을 설치하고 하늘에 제사지내던 머리산(頭嶽) 이다. 이 신단(神壇)에 무슨 나무를 심어야 하겠는가. 태릉 화랑대도 마찬가지다. 육사 생도들을 화랑의 후손이라 부른다. 이곳에 무슨 나무를 심어야겠는가. 

 

 

 

  아나톨 프랑스는 지나친 향기를 기피하여 목서(木犀)까지 뜰에서 추방하였다고 한다. 무궁화는 은근과 끈기의 나무다. 무궁화의 색은 은근하고, 끊임없이 꽃봉오리를 피워올리는 그 성격은 끈기이다. 

 

    이로써 보면, 무궁화는 9천여년 동안 배달겨레가 애끼던 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말이 근역(槿域)이다. 최치원은 당나라에 보낸 국서(國書)에 신라를 근화향(槿花鄕=무궁화 나라)이라고 표현했다. 환화(桓花)는, ‘환인’을 상징하는 꽃이다. 신(神)을 상징하던 ‘신의 꽃’ 이다. 이런 9천년 전통의 신성한 꽃을, 어찌 지금 와서 스스로 외면하겠는가.

쿠르드는 고대시대 미타니(Mitani) 왕국이라 불렀다. 프리기아인이 마케도냐에 이웃으로 있을 때 브리지(Brige)라 불렸고 아나톨리아(Anatolia) 소아시아로 이주해서 프리기아로 불려졌다. Brige 는 Breg 단어와 관련있고 언덕이라는 의미이고 유사 단어로는 Gora 가 있다. 헤르도투스가 언급하길 '아르메니아는 프리기아로 부터 온 정착자' 라고 한다. 킴메르가 침입해서 수도 고르디온(Gordion) 이 696 BC 에 함락되었다. Xenophon 은 Gordyne (Corduence) 언급했고 오느날 Gordyne 이라는 지명이 있고 쿠르드인이 살고 있다.

<화정> 이성민, 가슴 먹먹하도록 아름다운 ‘대쪽 충신’의 최후!

불의에 맞서 정의로운 죽음을 택한 이성민의 아름다운 최후가 가슴 찡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 같은 감동은 뜨거운 반응으로 이어지며 <화정>을 동시간 시청률 1위에 등극시켰다. 시청률 조사회사 TNmS에 따르면 <화정>의 수도권 시청률은 10.9%를 기록하며 동시간 1위를 기록했다. 그야말로<화정>의 뜨거운 반격이 시작된 것. 내공 높은 <화정>의 시청률 1위 탈환과 함께 앞으로 2막을 시작한 '화정'의 파워질주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난 4일 방송된 MBC 창사 54주년 특별기획 <화정>(극본 김이영/ 연출 김상호, 최정규/ 제작 ㈜김종학 프로덕션) 7회에서는 광해(차승원 분)가 아버지 선조(박영규 분)가 자신의 수하인 이이첨(정웅인 분)과 김개시(김여진 분)에게 독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이 박진감 넘치게 그려졌다. 이 과정에서 광해가 선조 독살의 진실을 알고 있는 이덕형을 회유하려다 실패하자 결국 그를 죽이고, 진정한 ‘냉혹 군주’로 다시 태어나며 흥미진진한 전개를 기대하게 했다.

<화정> 이성민, 가슴 먹먹하도록 아름다운 ‘대쪽 충신’의 최후! 이미지-1

이 가운데 이덕형은 목숨과 신념을 맞바꾸는 대쪽 같은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시청자들을 감동케 했다. 이덕형은 “그 일(선조 독살)을 덮고 내 곁에 설 수 없냐”고 회유하는 광해를 향해 “권력을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하는 것은 비겁한 변명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권력이 아닌 야만이고 폭압”이라고 직언했다. 이어 그는 자신이 광해의 손에 죽게 될 것을 알면서도 “소신은 전하의 편에서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없을 것 같다”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덕형은 광해에게 큰절을 올리고는 “전하의 큰 뜻만큼은 놓치지 마셔야 한다”고 조언하며 마지막까지 임금을 향한 충심을 잃지 않은 채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저릿하게 했다.

신념과 목숨을 맞바꾼 이덕형의 아름다운 죽음은 시청자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다. 더욱이 한음 이덕형을 연기한 이성민은 묵직하고도 폭발적인 연기력으로 감동을 배가시켰다. 이성민의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눈빛과 확신에 찬 단단한 음성은 시청자들의 가슴에 ‘정의’라는 두 글자를 아로새기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한편 지난 7회 말미에는 성인이 된 정명(이연희 분)과 주원(서강준 분)이 등장하며, 본격적인 제 2막의 시작을 알렸다. 이에 1막의 묵직함과는 또 다른 재미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제 2막에 기대감이 증폭된다.

<화정>은 혼돈의 조선시대, 정치판의 여러 군상들을 통해 인간이 가진 권력에 대한 욕망과 질투를 그린 50부작의 대하사극으로 오늘(5일) 밤 10시 MBC를 통해 8회가 방송된다.

멸족위기의 차탕족과 그들의 순록

카테고리 : 몽골의 자연과 동물 | 작성자 : 파도

차탕족(Tsaatan)이라는 몽골내 소수민족이 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순록과 함께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인구수 200명 가량이라 겨우 명맥을 이어간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사는 곳은 몽골 북서부 홉스골이라고하는 큰 호수부근의 원시 타이가숲 지역이다. 그리고 그들이 키우는 사슴을 타이가순록이라고 부르는데 이 또한 숫자가 몇 백마리(200~700)밖에는 남아 있지 않다. 이들 순록은 유일하게 차탕족으로 부터 가축으로 길들여진 종이며 그들과 함께 살면서 사람소변으로 부터 소금을 섭취하고 늑대의 습격을 피한다. 차탕족은 순록에게서 젖과 고기를 얻고 이동수단으로 이용한다.

 

200명 밖에 안되는 극소수의 이 종족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몽골 샤머니즘의 성지라는 홉스골지역에 살면서 순록을 타고다니며 인디언 천막과 흡사한 곳에서 사는 모습의 오래된 영화를 TV를 통해 보면서 부터이다. 갸냘픈 듯한 순록을 타고다닌 것 부터 호기심이 발동하였었다. 그리고 이웃블로거 캉스독스님의 몽골사슴에 관한 질문과 요청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사진 : 타이가 순록)

 

몇년 전 홉스골 호수를 방문하였을 때 관광객을 상대로 수공예품을 파는 그들을 본적이 있다. 보통은 순록의 먹이 허부츠(이끼종류)를 따라 2주~10주단위로 거처를 옮기기 때문에 깊은 숲속이 그들의 터전이다. 아마도 여름철에는 순록의 먹이를 구하는데 어려움이 없기도 하고 사람이 많은 곳으로 내려와 쉽게 돈벌이를 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모기를 극히 싫어하며 추운곳에 사는 순록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바이러스질환에 감염되는등의 부작용으로 죽거나 도망하는 일도 일어난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이런 세속의 접촉을 거부하고 숲속 깊은 곳에서 고유의 생활방식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긴 하다.

 

당시 공예품을 파는 좌판을 펼쳐두고는 아이에게 글쓰기 책으로 열심히 공부시키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아마도 그 어머니는 아이를 자기처럼 숲속생활을 하도록 두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을 하였다. 도시화와 문명화는 이렇게 그들을 바꾸고 있었다. 지금의 차탕족 부모들이 자식들을 모두 도시로 보내고 그 자식들이 다른 종족과 결혼할 20~30년 후의 근미래에는 기록에서나 차탕족과 타이가순록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도 최근 외부세계와의 교류가 많아 지고 몽골정부의 지원정책에 힘입어 자식들이 하나 둘 울란바토르로 유학을 떠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사는 홉스골지역은 몽골에서 2번째로 큰 호수가 있는 지방이며 그 호수의 이름이기도 하다. 제주도 1.5배 크기로서 동서폭 약30km 남북길이 136km가량이고 바이칼호수와 직선거리 20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실지로 홉스골 물이 바이칼로 흘러가는 상류 수원지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물길은 1000km가량 떨어져 있다. 수면의 높이는 해발 1645m 최대 수심 262m이다. 한 여름에도 물의 수온이 얼음처럼 차가워 물고기가 거의 살지 못한다. 잡티하나 보이지 않는 호수의 물은 깊은 바닥으로 인해 어둡게 보이고 경사가 가팔라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고산 산악지대로서 한여름에도 밤이면 영하로 떨어지고 겨울철 영하 40도로 내려가는 극한의 툰트라기후이고 원시의 타이가 침엽수림이 빽빽히 들어찬 곳이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고 그중 최고봉은 3,492m 높이의 러시아 국경방향 뭉크사리닥이라는 산이다.

 

 (사진 : 홉스골Hovsgol 호수) 

 

차탕족은 당나라(A.D. 618-907) 문헌에 언급된 기록이 있고 두카족(Dukha) 으로도 불리며 투르크족의 직계후손으로 알려져있다. 그들은 오르츠라고 하는 삼각뿔 형태의 천막을 치고 생활하는데 인디언의 것과 매우 흡사하다.

 

이를 근거로 이들이 2만년전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인디언의 조상이라고 추측 하는 경우도 있다. 아메리칸 인디언의 유래에 관하여는 여러학설이 있고 원추형 천막을 사용하는 부족은 그 중 일부라서 관련을 단정할 만한 연구는 없다. 그냥 심증만 간다고 해야 하겠다.

 

참고로 한민족과도 관련이 있다는 투르크족은 기원전 3세기부터 남시베리아, 카자흐 및 바이칼일대에 살았던 유목민인데 흉노의 별종으로서 현재 터키, 카자흐스탄, 우즈벡, 위구르등 튀르크어파를 모어로 하는 여러 국가로 분리되어 있다. 이들 모두 투르크족 국가로 분류된다. 동양권에서는 돌궐족으로도 불렸는데 6세기말 동으로 고구려와 국경을 접하고 서쪽으로 흑해연안까지 아우르는 영토기준 역대 10위의 대제국을 이룬적도 있었을 정도로 세력이 광대하였다.

 

하여간 이 지역에서 오랜 새월동안 차탕족은 순록을 가축으로 기르며 숲속에서 수렵으로 생존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 인구와 순록의 숫자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현재 추정되는 부족수는 200여명 50여가구이며 그들과 생활을 같이하는 순록은 가구당 7~70마리 정도라고 하며 타이가숲을 통털어 200여마리(몽골전체 700여 마리) 밖에 안된다는 보고도 있었다.

 

이렇게 부족한 개체수는 근친교배로 이어지고 그 결과 결함이 있는 새끼의 출산이 많다. 이는 역시 적은숫자로 부족내 혼인만을 해온 차탕족에게도 해당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순록의 개체수가 감소하는 결정적 이유로 지목되는 것은 차탕족들이 가축인 순록을 식량으로 쓰기 위해 예전보다 더 많이 죽이기 때문이다. 이는 몽골전역의 광산개발로 인한 자연환경의 변화로 인해 수렵해 먹을 야생동물이 감소한 결과이다. 극한의 상황이 아니면 늙거나 병든 순록만을 잡아서 고기로 사용하였지만 지속적으로 악화된 상황으로 막다른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환경적 요인은 포식자인 주변의 늑대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기에 순록을 공격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고 한다. 순록으로서는 천적이 둘씩이나 생겨버린 꼴이다. 또 한가지 요인을 더 들자면 외부인과의 접촉이 늘면서 중국인들이 순록의 뿔, 꼬리 및 성기를 찾고있다. 뿔을 짜르게 되면 생식기능의 저하가 일어나 번식률이 떨어지는 것으로 의심하고있고 최근에는 그들도 녹용채취에는 조심을 한다고 한다.

 

(사진 : 무스moose를 사냥하는 차탕족 / 출처 : 내셔널지오그래픽 http://news.nationalgeographic.com/news/2004/11/photogalleries/reindeer_people/photo5.html)

 

위 사진은 무스(moose, 말코손바닥사슴)또는 엘크라고도 불리우는 현존하는 최대의 사슴으로써 몸집이 황소만 하다. 몸길이 2.5~3m, 어깨높이 1.4~1.9m, 몸무게 360~640kg 가량이다. 사진의 무스는 이보다 훨씬 더 큰놈이다. 정확한 이름을 갖지못하고 무스나 엘크로 혼용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몽골사람들의 소문으로는 코끼리 보다 큰 놈도 있다는데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이런 희귀 종류는 차탕족의 순록과 마찬가지로 개체수가 백이 안될 정도로 극히 적다. 사슴은 통상 큰뿔과 맛있는 고기로 인해 사냥의 대상이 되었고 또한 포식자 늑대의 먹잇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차탕족과 순록에 대한 전문 사진을 찍어온 사람이 있어서 그의 사진을 좀 퍼왔다.

* 사진출처 : http://www.hamidsardar.com/portfolios/dark-heavens/platinums/ , Hamir Sardar作

 

맨 끝의 사진은 차탕족 무당이 굿하는 모습이다. 이 무당은 순록을 70마리 가지고 있으니 부자인 듯 한데, 최근 사냥거리가 별로 없어서 할 수 없이 순록을 도축하고 있다고 한다.

 

부연해서 설명할 것이 한가지 더 있는데 홉스골지역은 몽골샤머니즘의 성지이다. 필자가 아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날 신내림을 받으러 홉스골에 한달간 휴가를 내고 갔다온적이 있었고 곧바로 직장을 그만두고 무당이 되었다. 우리나라 무당과 시스템(?)이 매우 흡사하였다. 몽골은 전세계 샤머니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기록상으로만 따지면 원조라 하겠으나 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세계 도처의 샤머니즘 흔적이 있으니  증명할 수는 없겠다.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차탕족과 타이가순록이 앞으로도 계속 생존하였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고 우리가 그 생활을 강요할 수는 없으니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만 볼 수 밖에는 없을 것 같다. 몽골정부나 세계자연보호단체 같은 곳에서 인류자연유산을 보호하는 개념에서 그들이 굳이 도시로 나가지 않아도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 좋겠다. 

참 하나 빼먹은 것이 있어서 다시 왔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무스(말코손바닥사슴)를 유럽 일부국가에서는 엘크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북아메리카와 우리나라에서는 이 사슴을 엘크로 부르지 않고 와피티 사슴을 엘크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양록 농장에서 사슴 뿔(녹용)을 얻기 위해 키우는 엘크들은 무스가 아니라 북미나 러시아에서 가지고 온 와피티들입니다.즉 유럽(스칸디나비아 국가)과 미국에서 엘크라고 부르는 사슴은 전혀 별개의 종입니다. 참고로 무스는 최대 800kg까지 자라며, 와피티(한국인들이 말하는 엘크)는 500kg까지 자랍니다. 한우가 보통 500kg이 되면 도축하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크기의 사슴들입니다. 거듭 파도님의 깊은 마음과 헌신적인 블로그 운영에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파도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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