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구스 민족과 조선민족의 설화에서의 사슴의 상징적의미

 김관웅 (연변대학교 교수)

1.  들어가는 말

2.  상징적의미 하나 – 우주의 동물로서의 사슴

3.  상징적의미 둘 – 인간의 어머니로서의 사슴

4.  상징적의미 셋 – 죽음과 재생

 

1. 들어가는 말

 

태고시절부터 만-퉁구스 제 민족의 조상들은 장백산과 흑룡강 사이의 드넓은 동북평원과 동몽골초원, 그리고 대흥안령, 소흥안령 같은 산속에서 살아왔다. 특히 대흥안령의 원시삼림속의 추운 고장에서 살아온 어원커, 어른춘, 시버, 허저족의 조상들은 사슴과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어른춘이라는 이 족명은 “순록을 부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바로이런 까닭에 중국의 고대 사서들에서는 흥안령 일대에 사는 이런 사람들을 “사록부(使鹿部)”, 즉 “사슴을 부리는 부락”이라고 기록했다. 바로 이런 까닭에 어원커족,어른춘족, 허저족, 시버족, 녀진족, 만족 등 만-퉁구스 제 민족의 설화들에는 사슴이 많이 등장하며 따라서 이런 사슴들을 신통력을 갖고 있는 신령한 동물로 등장한다.

 

이와 아주 류사하게 조선민족의 설화에도 사슴이 자주 등장하며 또한 이런 설화중의 사슴들은 대단한 신통력을 가진 동물로 되여 있다. 이 점은 비교설화학에서만 아니라 만-퉁구스 제 민족과 조선민족의 고대 문화의 저층을 알아내고 그 원류 및 량자의 련관성을 파악하는데도 상당히 유익한 계시를 준다.

 

이 글에서는 만-퉁구스 제 민족과 조선민족의 설화에서의 사슴의 형상이 갖고 있는 상징적의미만을 탐구해보려고 한다.

 

2. 상징적의미 하나 – 우주의 동물로서의 사슴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는 모두 가장 중요한 숭배대상을 하늘에 있다고 상정하고 있다. 기독교의 하느님도 이슬람교의 알라신도 불교에서의 석가모니불도 그리고 만주족의 조상을 낳았다는 천녀도, 조선민족의 조상을 낳았다는 천제(天帝) 환인의 아들 환웅도 모두 하늘에 내려온다.

 

 왜 인류는 이토록 하늘을 숭배하면서 자기들이 가장 숭배하는 대상이 하늘에 있다고 생각했을까?

 

고대 동양인들은 우주공간의 방위를 “륙합(六合)”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이른바 “륙합”이란 동(东), 서(西), 남(南), 북(北)과 상(上), 하(下) 이 여섯개 방위로 이루어진 공간, 즉 우주를 뜻하는 게념이였다. 그런데 동, 서, 남, 북은 사람들이 모두 갈수 있고 또그래서 알수 있는 공간이며, 또한 하(下) 역시 인간이 발을 딛고 있는 땅이니 매일마다 접촉하는 공간이다. 유독 상(上) , 즉 상천(上天)만은 날개가 없는 인간으로서는 바라볼는 있어도 닿을수 없는 공간이다. 바로 이런 까닭에 하늘은 가장 신비롭고 따라서 가장 상상력을 동원하여 거짓말을 꾸며낼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종교를 만들어냈고, 예호와요 알라요 환인이요 하는 등등의 수많은 각이한 천신(天神), 즉 하늘신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땅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런 각이한 하늘신들을 만들어 내여 숭앙하는 이상  또한 이런 하늘에서 산다는 하늘신들과 소통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날개도 없고 비행기도 없는 옛날에 사람들은 땅과 하늘사이를 련결해주고 소통시켜주는 그 어떤 대상을 상정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인간들에 의해 선택된 산, 나무, 동물 등 다양한 자연대상들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사슴이란 이 동물도 들어있었다. 특히 만-퉁구스 제 민족과 조선민족의 설화에서 시슴은 바로 땅에서 사는 인간과 하늘에 있다는 천신 사이를 련셜시켜주고 소통시켜주는 가장 중요한 매개자로 등장한다.

 

그 첫번째 사례를 어른춘족의 신화를 통해 보기로 한다.

 

신령스러운 사슴 한마리가 아아한 흥안령 산정우에 누워있는데 그 사슴의 머리에 돋은 뿔은 어찌가 굵고 긴지 구중천에까지 뻗어올라갔다. 그리하여 어른춘사람들은 그 사슴의 뿔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 하늘신 은두리(恩都力)를 배알하면서 자기들이 행복을 삶을 살수있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한다.

 

두번째 어원커족의 “하늘과 소통한 신령스러운 사슴(神鹿通天)”이라는신화를  보기로 한다.

 

사슴은 원래 천상의 동물이였다. 사슴에게는 다리 여섯개가 달렸기에 하늘에서 날아다녔다. 후에 천신으로부터 노여움을 사서 지상에 쫓겨내려와 사람들과 같이 살게 되였으나 사슴은 원래 천상의 동물인지라 하늘에 날아오를수 있었다고 한다.

 

세번째 사례를 시버족의 “시리엄마의 전설(喜利妈妈的传说)”에서 보기로 한다.

 

사슴은 원래 천상계의 동물이였다. 후에 천신의 은덕으로 땅우에도 사슴이 살게 되였다. 어느해 왕가물이 들어 시리엄마가 수많은 잡귀신에게 빌어보았으나 모두 효험이 없자 태양을 쏴서 떨궈버리려고 하였다. 이때 커다란 말사슴을 탄 백발이 성성한 로인이 태양을 쏘지 못하게 말리면서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였다. 로인은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고는 그 말사슴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라가 버렸다. 후에 시리엄마는 백학과 까치의 도움을 받아 하늘에 올라가 하느님을 만난다. 그런데 알고보니 하느님의 가장 사랑하는 좌기(坐骑)는 바로  말사슴이였다. 하느님은 시리엄마의 정성에 감동되여 왕가물을 퇴치하는 방도를 알려주며 그녀는 지상에 내려와 하느님이  알려준 방도로 왕가물을 퇴치한다.

 

네번째 사례는 만족의 “매화록(梅花鹿)”을 통해 보기로 한다.

 

얼룩 반점이 박인 매화록은 천상계에서 땅에 내려온 동물이다. 만족이 녀진이라고 불렸을 때 아갑이라는 사냥군이 늑대의 주둥이에서 그 매화록을 구해주었다. 상처가 아물자 그 매화록은 아갑의 운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천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갑과 결혼하였다고 한다.

 

아래에서는 조선민족과 관련이 있는 고구려의 주몽전설을 통해 사슴이 하늘과 소통하는 신통력이 있는 동물이라고 생각했던 고구려인들의 관념을 보기로 한다.

 

주몽은 비류국을 정복하기 전에 흰 사슴 한 마리를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놓았다. 그 흰 사슴이 구슬프게 울어대는 소리가 하늘에 전해졌고, 또 그래서 하느님은 련속 보름이상이나 장마비를 퍼부어 비류국을 온통 물속에 잠기에 함으로써 고구려가 손쉽게 비류국을 멸망시키게 된다.

 

이를테면 한국 경북 고령에서 발굴된 고분에서 나온 사슴뿔은 당시에 록각숭배가 행하여 졌음을 시사해주며, 따라서 사슴의 뿔을 본 뜬 후세의 신라 황금 왕관을 통해서도 이러한 록각숭배의 전통이 맥맥이 이어져 내려왔음을 확인할수 있다.

 

고려시기의 리제현의 《력옹패설》의 기록에는 고려 때의 문신 서희(徐熙, 943년- ?)의 조부 서신일(徐申日)의 이야기가 수록되여 있다.

 

서신일은 일찍 사냥군에게 쫓기는 사슴 한 마리를 구해준 적이 있었다. 그날 밤 천상의 신이 그의 꿈에 나타나 “자네가 구해준 그 사슴은 나의 아들이네. 나는 당신의 자손들이 세세대대로 재상의 자리에 오르도록 도와주겠네.” 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그리하여 서신일의 아들을 이어서 손자인 서희가 재상이 되였고 서희의 아들들인 서눌(徐讷), 서유걸(徐惟杰) 역시 재상 자리에 올랐고 서눌의 딸은 현종의 비가 되여 외척가문의 하나로 떵떵거리면서 살았다. 이것이 다 천신의 아들이 사슴을 구해준 덕분이라는것이다.

 

함경북도 두만강 하류의 경원, 경흥 등 지방에서 전승되여 온 “전백록(全百禄)”역시 우의 서희 관련 전설과 비슷한 시슴의 보은담이다.

 

함경도 경원군에 채씨라는 녀인이 전씨가문에 시집을 갔다. 하루는 채씨가 집안에서 베틀에 앉자 베를 짜고 있는데, 흰 사슴 한마리가 마당안으로들어서고 멀리서 사냥군이 뒤쫓아오고 있었다. 채씨는 그 상처를 입은 사슴을 숨겨주고 상처에 약을 발라주어 목숨을 구해주었다. 이 일이 있은 후 하루는 그 흰 사슴이 꿈에 나타나서 “전번에 저의 목숨을 살려준 은혜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 하해같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저는 당신이 옥동자를 낳을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후에 채씨는 과연 태기가 있었고 달이 차서 정말로 금덩이 같은 옥동자를 낳았다. 부부는 이것이 모두 흰 사슴의 덕분이라고 여기고  아기의 이름을 전백록(全白鹿)이라고 지었으며 장성해서는 동음이어로 바꾸어 전백록(全百禄)이라고 고쳤다. 전백록은 후에 “리괄의 란”을 평정하는데 대공을 세웠고 무관으로 큰 벼슬을 지내게 되였다.[1] 

 

조선민족의 유명한 민담 “나무꾼과 선녀”에 나오는 사슴 역시 천상계의 소식을 손금 보듯이 다 알고 있는 신통력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하늘에서 선녀들이 어디에, 어때에 내린다는것이라든가, 하늘에서 신선들이 물을 길어 느라고 지상의 내려보내는 두레박이 언제, 어디에 내려오는가 등등 하늘의 상황을 속속들이 꿰뚫어 보고 있다.

 

총적으로 사슴은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단수(神檀树) 같은 우주의 나무나 아사달 같은 산처럼 하늘로 오르는 사닥다리 같은 기능을 갖고있으며 하늘의 소식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바 만-퉁구스 제 민족과 조선민족의 관념속에서 사슴은 우주의 동물이였다.

 

3.상징적의미 둘 – 인간의 어머니로서의 사슴

 

사슴은 만-퉁구스 제 민족이 숭배했던 토템중의 하나였다. 그것은 사슴은 그들이 수렵생활에서 가장 많이 포획하고 길들이고 또한 식용, 약용으로 삼는 동물이였고 따라서 사슴은 마치도 마를줄 모르는 어머니의 젖줄기마냥 이런 수렵족들을 루루 수천년 먹이고 키워왔기 때문이라고 사료된다.

 

첫번째 사례를 만족의 “흰 사슴 엄마(白鹿额娘)”를 통해 보기로 한다.

 

한 사냥군이 늘그막에 아들을 얻었지만 마누라가 급병으로 죽자 아기는 젖을 먹을수 없었다. 그 사냥군은 백발이 성성한 한 로파의 말대로 산에 가서 늑대에게 물려 각일각 죽게 된 흰 사슴을 구해가지고 집으로 안고 온다. 이때로부터 그 흰 사슴은 자기의 젖으로 아기를 키웠을 뿐만 아니라 그 애가 어른이 되자 창업을 하고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게 도와준다. 그런데 며느리로 들어온 새 색시는 흰 사슴 엄마를 박대하기 시작한다. 이에 분개한 젊은 사냥군은 흰 사슴 엄마와 함께 산속에 들어가 흰 사슴 엄마가 늙어 죽을 때까지 효성을 다하여 봉양한다. 옛날 녀진족과 만족은 사슴이 자기네 족속을 먹어살린다고 생각하면서 특히 흰 사슴을 “엄마(额娘)”라고 불렀다.

 

둘째 사례는 고구려의 “록족부인(鹿足夫人)”을 통해 보기로 한다.

 

산속에 은거해 사는 한 선비의 집에 사냥군에게 쫓긴 암사슴이 들어왔는데, 이 암사슴은 그 선비의 오줌을 핥아먹고 태기가 있더니 딸을 낳는다. 그 딸은 천하 미인으로 자라났으며 후에는 왕비가 되였다. 발자국마다 꽃을 피워 1000송이의 련꽃을 만들었다. 이것을 모든 짐승의 간(肝)과 함께 상자에 넣어 물에 띄웠고 그 상자는 물길을 따라 중국에 닿았다. 중국인들이 두껑을 여니 간과 련꽃은 1000명의 아이들로 화해 있었다. 이들이 장성하여 군사가 되여 고구려를 침입했다. 그러자 그들의 어머니 격인 사슴의 딸 록족부인이 동쪽의 500명 군사에게 동쪽의 젖을 먹이고 서쪽의 500명 군사에게는 서쪽의 젖을 먹여 모자(母子)임을 확인시켰다. 그래서 500명은 중국으로 되돌아 가고 500명은 고구려에 남으니 형제 국가로서 싸움이 없었다.

 

이 이야기는 사슴을 자기의 어머니로 생각했던 고구려인들의 토템관념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 평안도 지역에는 전설 “열두삼천리벌”이 오래동안 널리 전승되여 왔다.

 

고구려 시대의 한 왕비의 두 발은 사슴의 발족을 닮았기에 다들 그 왕비를 록족부인(鹿足夫人)이라고 불렀다. 어느 해 이 왕비는 사슴발족 같은 두 발을 가진 사내애를 12명이나 낳았다. 록족부인은 자기의 젖으로 이 열두명의 아들들을 키웠다. 그런데 이 열두명의 아들들은 소시적에 엄마의 말을 귀전으로 흘리고는 신발을 벗고 다녔다. 록족부인은 부득이 이 열두명의 아들들을 돌로 만든 함에 넣어 강물에 뛰워 보냈다. 중국에 닿은 이들은 장성하여 저마다 3천명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고구려 안주를 침공하여 왔다. 이들과 대치하고 있던 12명의 아들들을 보고 록족부인은 “너희들의 발은 필시 사슴의 발족을 닮았을것이다”라고 소리쳤다. 12명의 아들들이 아닌 척 하자 록족부인은 자기의 젖통을 꾹 눌렀다. 젖꼭지에서는 열두 젖줄기가 분수처럼 솟아오르더니 면바로 열두 아들들의 입안으로 날아들어갔다. 이리하여 록족부인은 열두 장군과 모자관계를 확정지었다. 그때로부터 록족부인의 아들들인 열두 장군들이 진을 치고 있었던 고장을 “열두 삼천리 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와 류사한 이야기들은 허저족, 어원커족의 설화들에서도 자주 볼수 있다.

 

총적으로 만-퉁구스  제민족과 조선민족의 설화들에서 암사슴은 흔히 인간의 어머니로 등장한다. 이는 이들이 원시시대에 사슴을 토템으로 하였음을 시사해 준다.

 

4.상징적의미 셋 – 죽음과 재생

 

고대 만 – 퉁구스 제 민족과 조선민족의 조상들 속에서는 록각(鹿角)숭배가 행해졌다.

 

록각숭배는 곧 사슴숭배로 이어져 내려왔다. 죽은 이의 부장품으로서의 사슴뿔은 수사슴이 누리는 남권의 상징이자 가부장 및 공동체 우두머리의 상징이기도 했다. 만-퉁구스 제민족의 신라 샤만들이 머리우에 사슴뿔 모자를 쓰고, 신라 초기의 황금 왕관이 사슴뿔을 본뜬것은 바로 이런 록각숭배의 반영이라고 볼수 있다.

 

죽은 이의 부장품이라는것을 감안하면 사슴뿔과 사슴은 또한 영생 또는 재생을 상징한다고도 볼수 있다. 사슴이 후세에 와서 십장생의 하나로 된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해 시사하는바가 크다. 그리고 만 – 퉁구스 제 민족과 조선민족이 사슴뿔인 록용을 인삼과 함께 명약재중의 명약재로 귀중하게 여겨온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시사하는바가 역시 크다. 물론 록용은 확실히 약효가 있지만 록용에 대한 미신이 그처럼 대단했던것은 만 – 퉁구스 제 민족과 조선민족의 뿌리 깊은 류감사유(类感思维)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런데 옛날에 만 – 퉁구스 제 민족과 조선민족이 사슴을 영생이나 재생의 상징으로 간주한 원인은 대관절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사슴을 대지의 동물로, 우주의 동물로 믿었기 때문이다. 사슴뿔은 나무가지 모양을 하고 있고, 봄철에 돋아나 자라면서 딱딱한 각질로 되였가 그 이듬해 초봄이 되면 떨어진다. 그리고 다시 뿔이 돋는다. 이러한 순환기능과 나무를 머리에 돋게 하여 키울수 있는 능력을 지닌 동물은 사슴뿐이다. 따라서  사슴은 대지의 동물, 우주의 동물로 여겨졌다고 할수있다.

 

춘하추동 계절의 순화과 궤를 같이하여 해마다 떨어짐(죽음)과 거듭남(재생)을 되풀이하는 이 사슴뿔은 만 – 퉁구스 제 민족과 조선민족에게 있어서 영생력, 즉 죽음에 의해 중단되면서도 거듭 재생을 누리는 영생력 자체로 간주될수 있었던것이다.

 

이런 면에서 사슴은 겨울에 죽은듯이 동면했다가 봄이면 다시 살아나는 곰과 더불어 가장 전형적인“죽음과 재생(death and rebirth)”의 신화적원형으로 되였던이다.

 

신라의 왕관이 사슴의 뿔을 본뜬것은 바로

 

                            2008년 4월 25일 연길에서

선비(鮮卑) 유래는 허리띠 바클에서 왔네

초기철기시대부터 삼국시대 초기에 걸쳐서

널리 사용된 가죽이나 천 소재의 된 띠를 매기 위해 양끝에서 서로 끼워 맞추는 고리.

‘대구(帶鉤)’라고도 한다. 허리띠 부속용구이다. 본래 중국에는 대(帶)라는 허리띠가 있었으나 전국시대에 북방민족과의 교섭이 심화됨에 따라 호복(胡服)과 함께 중국에 전래되었다.분포는 오르도스(Ordos)지방의 청동기시대 문화에 많이 나타나고, 시베리아·동러시아·남러시아에까지 확대되어 있다.

 띠고리에 동물 의장(意匠)이 빈번하게 사용된 점은 북방 유목민족이 즐겨 사용하던 동기와 연결된다. 원래는 교구(鉸具)와 함께 마구(馬具)의 일종이었다.

 전국시대에 산시(山西)·허베이(河北)의 북경(北境)지역에 자리잡고 있었던 조(趙)의 무령왕(武靈王)이 호복을 장려한 기사가 ≪사기 史記≫ 권43 조세가(趙世家)에 보인다. 이와 관련된 기사로 ≪전국책 戰國策≫ 조책무령왕조(趙策武靈王條)에 “주소(周紹)라는 신하에게 호복·

의관·구대(具帶)와 함께 황금사비(黃金師比)를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사비(師比)’라는 말은 ≪사기≫ 흉노전(匈奴傳)의 서비(胥紕), ≪전한서 前漢書≫ 흉노전의 서비(犀毗)·선비(鮮卑)와 같은 뜻으로서 북방호족의 띠고리를 가리키는 말이며, 위의 기록으로 보아 호복과 같이 착용된 혁대금구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띠고리의 구조는 모두 같아 한 쪽 뒷면에 큰 단추모양의 돌기(突起)된 부분이 있어 혁대의 한 끝에 끼워 고정하고, 다른 한 끝을 휘게 만들어 혁대의 구멍에 걸도록 되어 있다.

착용방법은 허난(河南) 진춘(金村)에서 출토된 청동제 인물상(人物像)에서 볼 수 있다. 제작재료는 동제품이 가장 많고 철제가 그 다음이며, 드물게 금 또는 은제품도 있다. 금속제품 이외에 옥제(玉製)·패제(貝製)·파리제(玻璃製)도 있다. 표면장식을 금·은·옥·청석(靑石) 등으로 상감(象嵌)한 것이 있고 금으로 도금한 것도 보이는데, 실용품 이상의 호화스러운 유물도 있다.

 크기는 다양해 크게는 30㎝에서 작게는 2, 3㎝에 이르는 것도 있다. 형태도 거문고형[琴形]·막대형[棒形]·용트림형[絡龍形]·수저형[匙形]·새형[鳥形]·비파형(琵琶形)·호랑이형[虎形]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중국 초기의 띠고리 유물로는 춘추시대의 중기∼말기로 추정되는 뤄양(洛陽) 중저우로(中州路)의 동주(東周)묘 출토품이 있다. 간단한 돌출무늬가 있다. 그 후 띠고리는 전국시대의 중기∼후기에 크게 성행해 형태나 크기가 다양해지고 한대(漢代)에도 계속 사용되었으나 화려한 것이 줄어들었다. 후한(後漢) 이후로 내려오면서 제작이 그치고 대신 교구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대량으로 발견된 곳은 허난성(河南省) 정저우(鄭州) 얼리강(二里岡)의 전국묘지 212호로, 여기에서는 62개의 청동제와 52개의 철제 띠고리가 발견되었다.

 한반도에서 출토되는 띠고리는 한나라에서 수입된 순수한 중국식과 한반도에서 번안, 한국화한 한국식 띠고리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중국식은 평양 왕광묘(王光墓 : 정백리 127호), 채협총(彩篋塚 : 남정리 16호), 석암리(石巖里) 194호분, 대동강면 제9호분, 전(傳)대동강변 출토품 등 낙랑 유적에서 주로 발견되고 있다.

 평안남도 대동군 용악면 상리(上里)의 널무덤[土壙墓], 평안북도 위원군 숭정면 용연동 등 한반도의 초기철기시대 유적에서도 나온다.  

분포는 평양을 중심으로 평안북도·평안남도에 집중되어 있다. 형식은 동물의장이 보이는 용연동 출토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거문고형이거나 막대형이다. 재료로는 낙랑 채협총 출토품 1점이 은제품인 것 외에는 모두 동제품이다. 크기는 12.2∼17.9㎝ 정도의 크기이다.  

한반도에서 중국식 띠고리가 발견되는 유적의 연대는 위원 용연동 유적을 상한(上限)으로 잡을 수 있다. 출토유물로 보아 요령성(遼寧省) 무순(撫順)의 연화보(蓮花堡) 유적과 성격이 같다.

용연동 유적의 연대는 연화보 유적의 연대를 고려해 서한(西漢)초인 서기전 2세기로 비정할 수 있다. 하한은 낙랑유적이나 태성리유적을 근거로 하여 서기전후까지 내려올 수 있다.

한국식 띠고리는 영천 어은동 출토의 호형·마형을 비롯해 구미의 초기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마형도 있다. 그 밖에 출토지를 알 수 없는 호형·마형들이 많이 있다.

어은동 출토의 띠고리는 이제까지 중국식에서 보이지 않던 고리[鐶]가 완전하게 남아 있어 그 착장방법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중국식에 원래부터 이런 고리가 없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은동 출토품 중에는 순수한 한나라식 유물과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한대의 본뜬거울[倣製鏡], 북방유목민족의 영향으로 보이는 동물의장과 장식품 등이 풍부하게 발견되었다. 어은동의 띠고리는 형태나 무늬 수법으로 보아 한반도에서 보이는 다른 호형·마형 띠고리의 조형(祖形)으로 볼 수 있을 만큼 우수한 조각품이다. 기하학적인 무늬나 동물의장은 스키타이 청동기문화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일찍부터 한반도에 들어왔던 중국식 띠고리의 형식에 스키타이 양식의 동물의장을 응용해 새로운 형식의 한국식 띠고리가 완성되었고, 그 양식이 시대가 내려오는 초기 삼국시대 고분에까지 계속되어 나타나는 것 같다.

 따라서 한국식 띠고리는 어은동 유적의 연대인 서기전후경에 시작되어 초기삼국시대 고분에까지 사용된 듯하다. 일본의 경우는 고분시대의 고분에서 마형띠고리가 나온 예가 있다. 

시라토리 쿠라키치(白鳥庫吉) 교수는 사비(Sabi)라는 만주어가 "상서(祥瑞)롭다"는 의미이므로 기린과 같은 성스러운 동물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만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 교수는『유라시아 고대북방문화』에서 가죽 허리띠에 붙어있는 동물모양의 버클의 음역에 불과하다고 고증하였습니다. 

중국 인터넷에서 선비족에 대한 내용입니다.

鮮卑作為一個部落集團的名稱,約始見於東漢。

선비는 일개 부락집단의 명칭이고 동한으로 시작했다고 본다.

       鮮卑一名,有學者認為鮮卑即犀毗,亦稱師比,指胡人的帶鉤而言。선비 이름이 사비에서 유래되었다고 인식하는 학자가 있는데 사비는 오랑캐의 허리띠 고리를 말한다.   此帶鉤初出自東胡,戰國時傳入趙國等。허리띠 고리는 처음에 동호 자체적으로 시작되었다.《史記·匈奴傳·索隱》引張晏言指出:鮮卑郭落帶,瑞獸名也,東胡好服之。선비 가죽 허리띠는 상서러운 짐승 이름이다. ”“郭落為獸之義,鮮卑意為瑞祥或神,合之為瑞獸或神獸。곽락은 짐승이란 이고 선비는 상서러운 신이란 뜻하고 조합하면 상서러운 신 짐승이다.  東胡人以鹿等瑞獸狀鑄鏤帶鉤上,即所謂鮮卑郭落帶,譯言瑞獸帶或神獸帶。동호인은 사슴을 상서러운 짐승으로 청동에 새긴 허리띠 고리를 사용한다. 즉 선비 곽락대이다. 다시 말하면 상서러운 짐승 띠고리는 신수 띠고리이다. 知春秋戰國時,東胡已有鮮卑之名,東漢以前復以鮮卑名山或名族。춘추전국시대에 동호는 이미 선비라는 이름이 있었다. 另有學者認為此帶鉤名與作為民族實體的鮮卑不能混為一談。허리 띠 고리 이름과 민족실제인 선비와 혼용될 수 없다는 학자들이 있다. 
 另外,有的學者還認為鮮卑族稱係由其部落酋長之名轉化而來。鮮卑為滿語Sabi(意即吉祥)的譯音,原為此部落酋長,後以其名為族稱。선비는 만주어 Sabi 의 역음이다. 
 關於鮮卑的起源目前尚無一致看法。東漢人應奉上桓帝書云:秦築長城,徒役之士亡出塞外,依鮮卑山,因以為號。東漢服虔則雲:東胡,烏桓之先,後為鮮卑。又雲:山戎,蓋今鮮卑。胡廣亦云:鮮卑,東胡別種。선비는 동호의 별종이다. 晉代王沈《魏書》、司馬彪《續漢書》等均說明,鮮卑與東胡有密切的淵源關係。東胡部落聯盟(或民族)被匈奴擊破後,鮮卑從中分離出來。那末,鮮卑在加入東胡部落聯盟前,又從何族發展來的呢?

 중앙아시아 북방 유목민족(사카, 알타이, 신라) 의 꼬깔모자 형태 문화 유사성

 

 

스키타이 민족과 한민족의 관계(펌)

그리스인들이 스키타이 페르시아인들은 사카라고 불렀는데, 넓은 의미로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활동하던 백인종 유목민족(페르시아계 유목인과 같은 의미) 전체를 통칭하며, 좁은 의미로는 페르시아 다리우스왕이 그리이스와 전쟁을 벌였던 스키타이 국가를 말하는데, 대개 스키타이 위치는 크림반도를 포함한 흑해 북부 초원지대이며, 넓게는 동경 30도 선상의 우크라이나 북부의 중심에 있는 키예프(Kiev)에서부터 동경 60도 선상의 우즈베케스탄 서북부의 끝에 있는 아랄(Aral)해[咸海]까지에 걸쳐 활동하였다.

스키 타이란 말의 어원은 ‘사슴’이다. 나중에 ‘사슴’에 대한 설명은 자세히 하기로 하고 낙빈기의 금문에서 자신의 문장을 ‘사슴’으로 그린 자가 누구인지를 찾아보았다.

소호금천씨(함)의 딸 문文과 전욱고양씨 사이에서 태어난 자가 중여곤(곤곤)인데 그의 문장기호가 바로 사슴이다. 전욱고양씨의 아버지가 ‘창의’인데 이 역시 천자가 되지 못한 사람이다.

다시 ‘스키타이’의 어원에 대하여 알아보자. 스키타이의 한국어는 ‘색 탁’이다. ‘색, 탁은 고 와 동일한 뜻으로 성城이라는뜻이었다. 즉 스키타이는 동일한 뜻을 두 번 겹쳐서 부르는 이름이다. ‘색’은 북방에서 ‘새끼’라는 뜻으로 ‘스키’ ‘사키’등으로 되었다.

즉 고구려가 세워질 당시 고구려는 먼저 있던 나라인 ‘고구리’ ‘색구리’ ‘탁구리’ 또는 ‘색리국’ ‘탁리국’ ‘고리국’을 이어 받았다고 하는데 이는 세 나라가 아니라 같은 나라를 부르는 이름이다. 즉 색, 탁, 고는 같은 뜻이다. 고등의 손자가 색부루 단군이다. 색부루 단군의 후손들은 모두 고씨를 성씨로 썼다. 그러므로 고, 색, 탁은 같은 성씨이다.

스키타이의 상징은 사슴뿔이라고 이미 말씀드렸다. 신라의 금관은 바로 사슴뿔의 형상이며 금관을 만든 민족은 오직 삼국과 아프가니스탄 밖에는 없다. 즉 페르시아 위 쪽에 있던 민족이 한반도로 이주해온 것이다. 백제의 칠지도도 역시 사슴뿔의 형상이다. 그러면 사슴의 그림이 엄청많이 등장하여야만 할 것 아닌가? 몽골의 알타이 지방에 가 보면 온통 천지가 사슴그림이다. 알타이라는 말 자체가 황금인데, ‘알타이’ 역시 ‘스키타이’와 같은 뜻이다. 즉 ‘아리+타이’로 구성된 단어이다.

알타이 지방 순록 암각화

색의 페르시아나 인도식발음이 ‘샤카’이다. 즉 ‘석가모니’에서 ‘석가’는 ‘샤카’를 한문식으로다시 옮겨 쓴 것이다. 그러므로 샤카족은 모두 고구려의 ‘고’씨를 부르는 말이다. 이 고씨들을 ‘마馬’라고도 부른 것이다. 그래서 고구려는 5개의 씨족으로 구성되었는데 가장 으뜸인 종족이 마가이다. 즉 마가馬加가 바로 고씨인 것이다. ‘마가’가 변하여 ‘마기’가 되었고 그것을 스페인어로는 ‘마고’라고 한다. ‘마기’는 페르시아에서 배화교의 승려를 부르는 말이다.

좌우간 스키타이 족은 말을 타고 활을 쏘는 부족이며 최초에 철기를 다루던 부족이다. 세계사에서는 힛타이트족이 최초로 철기를 발명한 부족이라고 하는데 사실 힛타이트 족은 스키타이족으로부터 갈려져나간 부족이다.

스키타이족의 다른 이름이 ‘샤카’족 인데 일본어로 ‘시카’는 ‘사슴’을 뜻한다. BC 2000년경에 ‘아’가 ‘이’로 바뀌는 음운현상이 있었다. 이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바로 ‘샤카’가 ‘시카’로 바뀐 것이다.

치우는 여신으로 이집트의 ‘이시스’이며 이가 곧 ‘아르테미스’이며 또는 ‘페르세포네’ 로마에서는 ‘코레’라는 여신이라고 이미 말씀드렸다. 페르세포네의 상징동물은 맷돼지이며, 가끔은 곰으로도 나타난다. 그런데 아르테미스 여신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 바로 ‘사슴’이며 그녀는 ‘사슴’의 보호자를 자처하고 나선다. 몽골 암각화 전문연구가인 김호석박사와 예서원의 최삼주 실장이 알타이지방에 가서 실제로 찍은 사진들이다. 아래 호랑이처럼 보이는 동물은사실 맷돼지이다. 맷돼지는 치우의 상징이므로 사슴 그림을 끄릴때면 항상 같이 등장하는 것이다.

칭기즈칸, 발해공주를사랑했다? - 서울신문(2010.10.13)

조회 수 7785 추천 수 0 2011.01.20 18:11:10

칭기즈칸, 발해공주를사랑했다?

서울신문 | 입력 2010.10.13 02:26 | 누가 봤을까?

  [서울신문]칭기즈칸발해 공주와 사랑에 빠졌다?

오는 25일부터 타이완 타이베이에서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김정배)이 주최하는 '제5회 세계한국학대회'에서 몽골학자가 발표할 논문의 주제다.

자미얀 바투르 몽골 국립대 교수는 16~17세기에 기록된 몽골 문헌 '백사'(白史·White His tory), '황금사략'(黃史略·Precious Sum mary) 등에서 한국을 언급한 것을 따로 떼내 정리한 논문을 발표한다. 13세기 때의 일이 16~17세기에야 기록된 것은 그나마 중심을 잡아주던 쿠빌라이칸(훗날 원나라 시조가 되는 칭기즈칸의 손자)이 죽은 뒤 한동안 몽골제국이 큰 혼란에 빠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들 기록은 몽골 제국을 구성하는 5가지 색깔을 언급하면서 한국을 흰색으로 규정한다. '백의 민족'을 떠올리면 된다. 몽골은 푸른색, 중국은 붉은색, 티베트는 검은색, 투르크는 노란색을 배정받았다. '한국의 코끼리 산'에 대한 언급도 있다. 몽골인 입장에서 코끼리 등짝처럼 높고 옆으로 길게 퍼진 하얀 산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두말할 것 없이 '백두'(白頭)산을 뜻한다.

기록에 따르면 칭기즈칸은 태양이 떠오르는 곳으로 진격해 '솔롱고스 메르키드족'을 위협, 여러 노획물을 손에 넣는다. 노획물 중에는 메르키드족의 왕인 다이르 우순 칸의 딸 쿨란도 포함돼 있었다. 칭기즈칸은 완승을 거뒀음에도 3년이 지나도록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쿨란이 너무 어여쁜 새 부인이어서다. 그러나 칭기즈칸의 부인 부르테 역시 통이 컸다. 질투나 시기보다는 류트(기타처럼 생긴 유목민의 현악기) 연주에 능한 신하를 보내 칭기즈칸을 점잖게 타일렀고, 부끄러움을 느낀 칭기즈칸은 스스로 되돌아 온다.

칭기즈칸의 초기 행적은 대체적으로 몽골족 내부의 주도권 잡기 싸움으로 이해된다. 이에 근거해 대부분의 중국 학자들은 다이르 우순 칸과 쿨란 공주를 다구르족, 그러니까 몽골족의 다른 갈래 정도로 파악한다. 그러나 몽골 학자인 바투르 교수는 이런 관점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다이르 우순 칸과 쿨란 공주는 명백히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다.

바투르 교수가 그 근거로 제시하는 이유는 이렇다. "13세기 이래 솔롱고스(Solongos), 혹은 솔랑가(Solanga)는 몽골에서 한국을 가리키는 단어로 고정됐다. 이는 몽골이 다이르 우순 칸과 쿨란 공주를 바로 한국의 왕이자 한국의 공주로 이해했다는 방증이다. 따라서 이 왕과 공주를 다구르족으로 파악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번역(misinterpretation)이거나 조작(falsification)된 것이다."

다른 몽골 문헌에서는 이 시기 역사를 기록하면서 솔롱고스 메르키드족의 왕 이름을 '부크 차간 칸'이라 적었다. 바투르 교수는 "부크 혹은 부카이는 몽골 말로 늑대를 높여 이르는 것으로 몽골이 흔히 옛 발해 지역에 살던 유목민을 부를 때 쓰던 말"이라면서 "따라서 쿨란 공주의 아버지, 즉 다이르 우순 칸과 (문헌에 기록된) 부크 차간 칸은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발해가 나라 자체는 926년에 망했어도 그 후손들은 계속 남아 명맥을 이었다는 게 바투르 교수의 설명이다.

한족이 통상 다른 민족을 낮춰 부르기 위해 동물 이름을 넣었다면, 몽골족은 유목민답게 그 지역을 상징하는 동물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메르키드(Merkid)가 몽골의 메르겐(Mergen), 신라의 마립간(麻立干)과 동일 계통의 단어로 활을 잘 다루는 종족을 뜻한다는 해석이 존재하는 점을 감안하면 바투르 교수의 주장에 설득력이 실린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내 언어학자들 사이에서 '솔롱고스'가 '무지개가 뜨는 나라'가 아니라는 해석이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몽골어 계통에서 '솔로고'(sologo)는 삵이나 담비 같은 짐승을 뜻한다. 만주어 솔로히(solohi)는 족제비를 뜻한다. 발해가 늑대로 상징됐다면, 비슷한 원리로 '솔롱고스 메르키드'란 '삵이나 담비처럼 날래고 활 잘 쏘는 종족'을 부른 명칭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보면 결국 쿨란 공주는 우리나라 발해말갈의 후손인 셈이다.

학술대회에는 이 논문을 포함, 25개국 180여편의 논문이 발표될 예정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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