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부리야트의 '뚠까( )'라는 지명도 주목할 만하다. 이곳은 몽골비사에 나오는 '뚠까이뜨( )'를 연상시키는 현대 뚜바의 성씨(姓氏)인 '돈각( )'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N.P. 샤스찌나는 '뚠까이뜨'의 어원은 'tongho', 즉 '숲'이라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B.I. 따따린쪠프는 뚠까이뜨와 돈각, 뚠까는 발음만이 비슷하게 들릴 뿐, 실제 뜻은 다르다고 주장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돈각은 뚜바어의 동사 '둔'이 중심어이며 이 말은 투르크어의 '똔'인데 이것은 '얼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따따린쪠프의 의견으로 뚠까의 어원을 살피기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이와 발음상 비슷한 단어들이 도처에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시베리아에 있는 한 민족인 '퉁구스( )', 강이름인 '퉁구스카', 이루쿠츠크에 있는 큰'퉁구스'강 그리고 '썅비'와 같이 흉노의 붕괴이후 등장했으며 러시아 학자들이 고몽골인들로 생각하는 중국의 민족지적 개념인 '둥후( )'와 뚜바의 돈각과의 관계는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른바 '썅비'는 몽골인들의 직접적인 조상들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주채혁 교수에 의하면 '썅비'는 고대 한국의 민족이자 정치체인 '조선'의 원류라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썅비'의 어원을 제공한 성스러운 산 '썅비샨( )'과 '달라이-노드( - )'호수는 흥미롭다. 신당서(新唐書)에 의하면 달라이-노르 호수는 당시 '쮸이룽( )'이라고 불렀고, 현대에는 '훌룽( )', '꿀룽( )', '훌룽-부이르( - )'라고 부른다. 주채혁 교수에 따르면 '다쌴비샨( )'은 이 호수에서 멀리 떨어져있지 않으며, 대흥안령 산맥 북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V.S. 따스낀은 호수는 아르군( )강과 연결되어있으며 현대 지도에는 표시되어있지 않지만 달라이-노르 호수를 끼고 흐른다고 한다.(따스낀, 363쪽, № 8)
시라또리를 위시하여 일련의 부리야트 학자들은 이 아르군 강을 전설적인 '에르구네-쿤( - )'으로 여긴다. 하지만 좀더 연구해본 결과 필자는 에르구네-쿤이 두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가 뚜바남쪽에 있는 웁스-후르 호수와 떼스-헴강이다. 두 번째 에르구네-쿤은 아르군 상류와 대흥안령산맥이다. 이 두 곳이 몽골인들과 동(東)우량하이인들의 역사적 고향인 것이다.
한국-투르크-몽골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민족 단어중 하나인 '함( )'은 학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이 말은 사얀-알타이 민족들에게 '샤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L.K. 헤르쩩은 '함'의 어원에 대해 두 가지의 흥미로운 설명을 하고 있다. '함'은 고아시아 사얀-알타이어에서 '강(江)'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 '헴( )'에서 온 말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어의 '강(江)'은 헴-함을 거쳐 강이라는 발음을 가졌을 것이다. 또 다른 그의 이설은 '함'은 '까간'처럼 '혈통'이란 뜻이 있다고 한다. 필자의 견해에 따르면 부르한과 텡그리라는 종교관을 가진 사얀-알타이 민족들의 샤머니즘의 요소들은 타이가지대 시베리아와 극동에 사는 유목민들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얀의 동쪽과 동북쪽에서 고대 투르크인들과 고대 몽골인들과 더불어 살던 퉁구스-만주 민족들과의 접촉과 상호관계는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동아시아에서 두드러진다. 그래서 성산(聖山)의 하나인 '우환( , 중국어로 '치산')에 살던 '둔후( )'족의 지역상황에 특별한 관심이 쏠린다. 따스낀에 따르면 우환산맥에서 '우환'족이 이름을 얻었을 것이라 하는데, 이 산맥은 중국인 판이에 따르면 랴오뚱에서 북서쪽으로 수천마일 떨어져 있다고 한다.(따스낀, 6-7쪽) 따스낀은 이 산맥이 아무르 상류 쪽일 것이라고 단정했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최근까지 에벤끼족이 살았던 부리야트 공화국의 끼진긴스끄 아이막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몽골어에서 '붉다'라는 뜻의 '울라간( , 또는 '울란( )', 중국어의 '치산'도 '붉은 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에서 어원을 찾으려는 시도는 무척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부리야트의 지명들은 투르크어나 에벤키어 또는 고아시아어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우환이라는 민족명칭에서 퉁구스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우환산에 대해 고대문헌에서는 '오관(ogwan)'이라고 표현을 했다. 이것은 아마도 트랜스바이칼지역에 살았을 퉁구스부족 '우왕( , 또는 '구이( )', 갸이( )')'와 명칭이 유사하다.(바인슈쩨인, 1972, 119쪽) 당서(唐書)에 보면 '우왕'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써있다. "...그들에게는 양과 말이 없다.
대신 순록을 가축처럼 기른다. 이끼를 먹이고 수레를 끌게 한다."(비츄린, 1950, 1권, 350쪽) 여기서 수레란 순록이 끄는 썰매를 말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7세기에 쓰여진 이 기록의 신뢰성에 대해 바이슈쩨인은 순록업의 기원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만약 순록업을 주로하는 삶의 양태를 안다면, 순록이 끄는 썰매에 대해 의심할 바 없다."라고 하였다.(바인슈쩨인, 1972, 120쪽) 여기서 하나 덧붙인다면 우환과 둔후가 고대 몽골인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따스낀은 다른 문헌을 토대로 우환을 우왕으로 읽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따스낀, 7-9, 483쪽)
신빙성에 다소 문제는 있지만 좀 더 오래된 중국 문헌에는 북아시아의 동부지역에서 5세기말에도 순록업이 행해졌다는 기록이 나온다. 499년에 쓰여진 중국 문헌 '난시( )'에는 '푸산( )'에 있는 어떤 국가에서는 사람들이 순록에 썰매를 매서 다니며, 순록의 젖으로 꾸므이스를 만든다고 쓰여져 있다.(비츄린, 1950, 2권, 47쪽)
많은 사얀-알타이 민족들, 예를 들어 동뚜바의 또드진, 그들의 친척관계인 또팔라르 그리고 다르하뜨, 쏘이요트인들은 사모예드인들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순록 썰매를 끌고 다니며, 순록업을 퉁구스인들보다 먼저 했을 것이다. 또한 우랄-알타이계열 민족들뿐만 아니라 이란어를 사용하는 민족들을 만났을 것이다. 문헌을 보면 순록업은 사얀지방에서 먼지 시작되었고, 여기서부터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간 것을 볼 수 있다.(바인슈쩨인, 1991, 292쪽) 바인슈쩨인은 고고학자 B.A. 슈람꼬의 툰드라지대 민족에겨서 볼 수 있는 순록썰매에 쓰는 용구와 유사한 것이 스키타이에도 서기전 4세기에 존재했을 것이라는 의견(슈람꼬, 1988, 233-237쪽)에 반박하였다.
바인슈쩨인은 사얀지역에서 순록을 기르기 시작한 최초의 시기를 기원전 1000년경으로 보고 있다. 그는 이러한 순록업의 시작은 스텝지역에서 밀려들어온 목축업을 하는 민족들이 타이가 지역에서 사냥을 하던 사모예드계 부족들에게 영향을 주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바인슈쩨인, 1991, 291쪽) 다시 말해 사얀지역의 순록업은 목축업자, 정확히 말하면, 말을 기르던 민족의 영향을 받아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V.K. 다르쟈와 O.K. 슈의라빠를 위시한 뚜바 연구자들은 바인슈쩨인과 다른 의견을 낸다. 그들은 순록업과 목축업은 우랄-알타이와 사얀의 산악-타이가에서 거의 동시에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 순록업과 목축업은 숲과 숲-스텝의 사냥꾼들과 어부들의, 채취경제에서 농업단계로 넘어가 태평양 연안지역까지 진출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문화-경제생활의 총체에서 시작되었다고 여긴다. 동시에 그들은 기존의 목축업의 방법들을 잊어가면서 전문적이 순록업을 하게 되었고 그들의 활동범위는 숲 툰드라 지역과 유라시아 북부의 툰드라 평원까지 넓어졌다.
사얀지역의 순록업은 산악 타이가 지역에서 순록업이 더 이상 팽창할 수 없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 안에 사얀에서 동쪽으로 사는 민족, 특히 트랜스 바이칼지역의 에벤키에게 순록업을 전달하였다. 이러한 결과로 비교적 최근까지 퉁구스인들을 '말(馬) 퉁구스인'과 '순록 퉁구스인'으로 나누어 불렀다.
필자의 견해로는 유라시아의 유목문명 현상은 목축업의 과정에서 형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타이가 사냥꾼들의 농업, 목축업, 순록업 등 생업문화의 총체적인 결과로 인해, 또는 숲과 스텝 부족들의 민족문화적 협동관계의 결과로 형성되었다. 자연적으로 옛날에 어느 정도 목축업과 말 사육을 번갈아 했던 민족들은 조금씩이나마 농업도 하면서 유라시아 대 평원 전지역에 급격히 퍼져나갔다. 더불어 순록업자들, 예를 들어 사얀인들은 스키타이, 흉노 등 스텝제국들이 형성되기 전에 일찌감치 동쪽과 남동쪽으로 이동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그들의 순록업과 이동이 일찍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유적지는 물론이거니와 정착민들(중국인들)의 문헌에서도 이들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기 힘들다.
바인슈쩨인에 따르면 퉁구스의 순록업은 서기 무렵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서기 일천년 중반 무렵 그들의 순록업에 대한 내용이 중국문헌에 등장한다.(바인슈쩨인, 1972, 120쪽) 그러나 이것을 믿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첫째로 중국문헌 자체의 신뢰성이다. 생활상의 묘사, 민족의 특징에 대한 묘사는 다른 스텝지역의 유목민에 더 가깝게 기술했고, 산악타이가지대에 대한 많은 부분이 빠져있다. 둘째로 순록에 얹는 안장은 나무와 가죽으로 만들어졌으며 그것은 고고학적 유물로 남기에는 오래 보존되지 않는다. 셋째 순록은 안장없이 탈 수 있다. 특히 키가 작은 퉁구스인과 청소년들은 안장을 사용하지 않았다. 뚜바-또드진인들은 겨울에 순록에게 썰매를 매어 짐을 옮기게는 하였지만, 사람들은 스키를 탔다. 스키가 순록보다 더 빠르기 때문이었다.
사얀-알타인들과 고대 한국인들과의 민족문화 관계에 대한 보충자료들은 흉노와의 부족구성의 문제와 그들의 종교-신화적 분석, 고대 한국인들과의 신화계보의 비교를 하게 한다. 많은 연구자들은 중국에서는 흉노의 왕족을 '후양( )'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주목한다. 하지만 문제는 '후양'으로 발음되고 씌여지게 된 납득할만한 근거를 중국문헌에서 찾을 수 없다. 흉노, 투르크, 몽골의 신화와 전설은 기본적인 세부사항은 서로 일치한다. 몽골의 왕족 칭기스칸 보르드쥐긴의 신화적 조상은 '끼얀( )'이며, 이 가문의 증조부는 '끼야트( )'인 것에서 앞의 '후양'의 어원에 대한 의문을 풀 수가 있다. 다른 한편 끼얀은 이란의 왕족 '케이아니드'와 관계가 있다. 또한 늑대의 자궁에서 또는 산의 동굴, 계곡(세 가지 다 신화적 사고에서는 같은 것이다.)에서 출생한 고대 위구르민족의 엘리트층과도 관계가 있다. 위구르의 '위( )'는 '산에 있는 동굴'을 뜻한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의 북부 지역에서 조상의 탄생신화의 장소는 동굴이나 산의 협곡과 관련이 있으며, 남부 지역은 궤짝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알려진 대로 동굴과 궤짝은 유라시아지역에서 세상을 태어나게 한 '우주의 알'을 뜻한다. 그러나 사얀-알타이와 중앙아시아에 사는 민족들처럼 한국인들에게도 우주알로부터의 세상의 창조라는 고대의 모티브는 인성을 가진 조상의 출현까지만 통용되었다. 주몽의 탄생설화를 보면, "알을 깨자 그가 거기서 나왔다. 갓 태어난 아이는 완성된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쟈르일가시노바, 1972, 86쪽) 한국신화에서 문화영웅 또는 조상들은 하늘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의 탄생은 거의 땅에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단군은 태백산에서, 김수로는 구지봉에서, 김알지는 금산주변의 처녀림에서 태어났다.
지배자들의 이름은 흉노의 지배 부족과 사얀-알타이 부족들 간의 민족적 관계를 가리킨다. 고대 중국역사서에 따르면 흉노의 강력한 중앙정부체제는 서기전 209년 아버지 뚜만을 죽이고 권력을 찬탈한 모대(마오둥)와 관련이 있다. 모대의 군대는 서기전 201년까지 10년 가까이 중국문헌에 동쪽에 사는 오랑캐라는 뜻의 '동호'부족을 압박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모대란 이름은 뚜만( )이라는 이름처럼 고대 사얀-알타이의 부족인 '마아드이( )'부족과 관련이 있는 씨족명이다. 뚜만도 뚜마뜨( )부족과 관련이 있다. 뚜마뜨 족은 사얀-알타이 지역과 중앙아시아의 '뚜바스( )', '또바( )', '떼파( )', '찌파( )', '뚜판( )'족의 시족 공동체이다. 이 씨족명은 한국 북부에 있는 한자로는 '대지의 문'이란 뜻이 있는 '두만강'의 명칭과 관련이 있다.
한국과의 유사점은 더 제시할 수 있다. 뚜바의 뚜마뜨는 마찬가지로 '호르-뚜마뜨( - )'로도 불리었다. '호르'는 하나의 큰 민족집단을 이루는데, 이 '호르'를 어근으로 하여 고대 사얀-알타이(알타이, 뚜바, 하카시아)민족들을 '호오라이( )', '혼고라이( )', '우량하이( )'로 불렀다. 필자의 견해로는 고대한국의 '고려(고구려)'도 '호르'를 어근으로 하여 만들어진 말이라고 생각한다.
고구려의 전설에는 강물의 신의 딸로부터 태어난 주몽이 시조라고 한다. "아주 오랜 옛날 주몽왕이 나라를 세웠다. 그는 북부여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강물의 신의 딸이다."라고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자를가시노바, 1972, 86쪽) 주몽에 대한 신화 속에 서술된 고구려 사람들과 북쪽의 부여 사람들과의 관계는 그들의 문화와 삶에 대해 서술한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상고지'의 필자는 "동방의 오랑캐들의 전설에 따르면 그들(고구려인들)은 부여에 뿌리를 둔 한 분파이다. 그들의 언어는 서로 거의 같다."(끄류꼬프, 64쪽) 고구려 민족의 역사에 대해 연구를 한 R.SH. 자를가시노바는 이러한 상황은 북쪽의 퉁구스-만주족이 고구려 문화원류에 여러 요소를 가미하게 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주몽에 관한 신화는 고대 한국인들과 사얀-알타이 민족들과의 민족문화상의 유사성을 보여준다. 특히 헤로도투스에 의해 스키타이로 잘못 알려졌고, 흉노의 융기와 함께 동아시아에서 흑해연안까지 주름잡았던 '싹'족의 신화와 유사하다. 서기전 2000년말부터 1000년 초까지 치끼, 구르이, 뗄레족과 다른 이란어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부족들, 위그로-핀어를 사용하는 부족들, 고대 투르크 민족들은 서로 연합하여 강력한 부족 연합체를 형성하였다. 그들은 강력한 씨족 연합체를 형성했다. 이들은 끊이지 않는 이동과 전쟁 속에서 멀게는 중앙아시아의 동쪽과 남쪽까지 침투하였다. 중국문헌에 의하면 이들을 '치디( )'라고 불렀는데, '붉은 오랑캐'라는 뜻이다. 아마도 이들이 인종적으로 백인에 가깝다보니 더 붉게 보여서 그렇게 부른 것으로 여긴다. '붉다'라는데서 알수 있듯 붉은 색은 스키타이인들, 다시말해 귀족들인 전사집단의 특별한 상징이다.
흑해 연안의 스키타이인들의 종교에 대해 헤로도투스는 그들이 강물의 신을 숭배하고 제물을 바친다고 하였다. 뚜바어로 '아릭-부가( - )', '깊은 곳의 지배자'란 이름을 가진 전설적인 왕 '아르폭싸이( )'는 싸코-스키타이의 한 씨족장으로 여겨지는 것은 이 제의의 의미를 나타낸다. 이와 동시에 물에 대한 제의는 대지의 여신이며, 가정의 화로를 지켜주면, 산의 주인이자, 산의 동굴에서 왕권에 대한 상징물을 씨족장들에게 선사하는 '따비띠( )'에게 바치는 제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산에 있는 동굴은 강과 마찬가지로 신성한 '대지의 문'의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지의 문'인 두만강은 이러한 종교-신화적인 관념들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념은 부족명칭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헴-칙( - )'은 '강에 사는 치키인들', '또바( )'는 '땅의 주인', '또곤( )'은 '대지'란 뜻이 있따. 아마도 뚜바나 티벳이란 명칭도 위와 같은 명칭들이 확대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여하간 주몽이라는 이름도 이러한 음운학적 토대에서 만들어진 이름일 것이다.
요점을 정리해보면 뚜바의 사키-치키들은 케렉수르문화와 황금뿔을 가진 성스러운 순록이 그려져 있는 '순록돌(사슴돌)'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화의 확대는 직접적으로 한반도에 미치지는 않았다. 그래서 가정해 보건데, 첫째, 이 문화의 영향은 간접적으로 사얀-알타이 사얀-알타이 부족들, 즉 처음에는 사키-치키인들을 통해, 그 다음에는 흉노제국에 의해 실행되었을 것이다. 둘째, 흉노가 원몽골인들과의 협력관계의 과정에서 둔후를 정복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한국의 신화는 사얀-알타이 민족들과 직접적인 관계에 대한 몇 가지 관념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것이 단군신화이다. 신화 속에서 곰은 고대 한국인들의 국가인 조선의 시조로써 여겨진다. 곰에 대한 신성함은 사얀-알타이민족들에게의 성산(聖山)제의와 볼 수 있다. 사얀-알타이와 중앙아시에서는 신성한 산을 '하의라칸( )'이라고 부른다. 이는 '곰산'이란 뜻이다.
구조와 내용에서 단군 신화는 고대 한국인들과 사얀-알타이 민족간의 밀접한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특히 그것은 최고 권력과 또한 거기에 걸맞는 상징이 천상의 최고신으로부터 집권부족의 대표자에게 직접 전달되는 정치문화의 계승과 관련된 전통에서 주로 볼 수 있다. '뗀리 굿( )' - '하늘의 신',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 말은 흉노의 지배자에 대한 형용구와 직함이다. 흉노라는 명칭에도 고대 위구르어로 '하늘의 태양'이라는 뜻의 '꾼 뗀리(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단군'이란 이름도 단순한 이름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추측하기에는 '하늘의 신-태양'이라고 여겨진다.
이런식으로 흉노가 고대 한국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을 증명되었다. 또한 반대로 고대 한국에서 흉노로의 영향은 이른바 '호르'라 불리는 사얀-알타이민족의 하위 민족에 의해 이루어졌다. '호르'란 말은 고대 고려(고구려)라는 말로 변해갔다. '호르'의 다른 명칭인 '훈고라이( )'는 '훈가르( , 헝가리)' 등이 되었다.
흉노는 십중팔구 스텝과 숲-스텝을 휘젖고 다녔을 것이다. 흉노의 구성원에는 우랄-알타이계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둔후족(썅비족)은 주채혁교수의 의견대로 이끼의 길을 따라 산악-타이가지대를 타고 동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퉁구스-만주인들에 동화해가면서 흉노보다 먼저 아무르강 연안지역, 소흥안령산맥, 대흥안령산맥, 만주, 한반도에 도달했다.
주채혁교수의 사얀-알타이인들과 고대 한국인들간의 혈통적 연관성에 대한 결론은 러시아의 유전학자 자하로프와 뚜바 국립대 도르쥬교수가 한국인과 뚜바의 소얀, 끄르그이스 성씨 사람들의 머리털 100개를 가지고 실험을 해서 입증하고자 하였다. 자하로프 박사는 이러한 미토콘드리아 DNA검사는 그 DNA자체가 모계라인을 따라 전달되기 때문에 아직 결론을 내리기에는 이르다고 하였다. 아직까지 분자검사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확실한 결과를 위한 남성의 유전자라 할 수 있는 Y-염색체 검사도 불가피하다. 지금까지의 결과로는 자하로프 교수의 말에 의하면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북부 중국인과 비슷하다고 한다. 하지만 북부 중국인들은 흉노, 투르크, 고 몽골인 등이 서로 동화되어 만들어진 민족이다.
아직까지 DNA의 핵타입에 대해서 컴퓨터를 이용한 분석이 완료되지는 않았지만 사얀-알타이에서 남자들이 이주해왔다는 설도 입증될 것으로 보인다. 뚜바 신문 '에피르( )'에 이것과 관련해서 논문을 투고하면서 따찌아나 우이눅-오올이 독일에서 한 실험에 대해서도 서술을 하였다. 이것은 야쿠트인들의 유전자를 조사한 내용인데, 야쿠트인, 부리야트인, 몽골인과 일본인의 유전자가 비슷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내용은 필자가 주장하는 바와도 일치한다. 먼저 야쿠트인과 부리야트인들은 사얀-알타이지역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알타이인, 뚜바인, 하카시아인들은 일본인들의 조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인들의 조상은 한반도를 통해 일본 열도에 들어갔다고 본다.
한편 뚜바인들의 유전자를 조사해보면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조상도 사얀-알타이에서 기원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그들은 고아시아 민족들이 순록업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주채혁교수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말을 키우는데 능했을 뿐만 아니라 순록업도 잘 행했다고 한다. 필자는 이 이론에 동의하면서 덧붙인다면, 사얀-알타이에 살던 사모예드인과 위구르-핀 민족들은 순록업을 먼저 고대 투르크인들에게 전했을 것이며, 그 다음에는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사는 퉁구스-만주인들과 원몽골인들에게 전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다시 한번 강조할 것은 민족과 국가를 형성하는 씨족의 그룹은 유라시아의 다른 민족들처럼 목축을 하는 전사, 전사귀족, 사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이 민족형성그룹들은 고대 중국, 특히 '중원(中原)'에 사는 사람들과는 아무 직접적인 관계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정치권력은 비록 후대에 들어 중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궁극적으로 중국인들의 이주에 의해 형성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한국 고대 문화형성에 있어서 중국 본토에서 도망 온 기자( )같은 사람들은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국측 사료에서도 이들은 그저 '오랑캐국'의 '오랑캐'들 틈에서 잠시 쉴 곳이 필요했을 뿐이다. 되레 반대로 남만주지역에 거주했던 한국인들이 흉노에 의해 중국 본토로 들어가 흉노, 썅비, 고대 투르크, 고대 몽골인들처럼 중국인들의 인종적, 민족적 원류를 갖추는데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