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북부도시 치앙라이(Chiangrai) 시내에서 3시간정도 떨어진 산속에 거주하는 민족. 태국 북부와 중국 운남성,미얀마 등지에 넒게 퍼져 분포하고 있다. 예전에 태국 마약지대로 유명한 황금의 삼각지대(golded triangle area) 고산지역으로 마약왕 쿤사가 미얀마 정부대항으로 샨족 독립을 전개하다가 정부군에 소탕되고 2007년에 죽었다.
라후족의 태국식 명칭은 '무서 (또는 무수르)' 인데 이는 "사냥꾼"이라는 뜻의 미얀마어에서 따온 말이다. 하지만 모든 라후족은 무수르라는 명칭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라후(拉祜; Lahu)"라고 부르고 있다. 라후족에는 라후 니(붉은 라후), 라후 나(검은 라후) 라후 시(노란 라후) 라후 푸(흰 라후) 및 라후 셸레 등의 하위부족이 있다. 그런데 이들의 생김새뿐만 아니라 언어구조가 우리와 너무 흡사하다는 것이다.
이현복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명예교수의 말
라후족 언어 |
우리말 |
나 |
나 |
너 |
너 |
나흐(1인칭 복수,We) |
우리 |
너희(2인칭 복수,You) |
너희(당신들) |
2. 라후족의 한민족 생활과 유사점
절구통에 찐 찹쌀을 넣고 깨를 묻힌 덕방아를 넣고 찧는 것이 우리의 인절미 만들기과 똑같다.
1단에서 5단에 이르기까지 의 과정이 동일하다.
우선 손 바닥 뒤집기로 편을 정하고 가위, 바위, 보로 순서를 정한다. 편이 정해지면 손으로 정교하게 굴려서 맞추면
이기는 놀이로 우리의 비석치기(사방치기)와 동일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편평한 돌을 이용하여 놀이를
하는데 비하여 이들은 열대의 납작한 열매를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아이들은 우리의 전통 팽이치기와 같은
놀이를 하면서 논다.
넷째, 라후는 고생을 해서라도 부슬부슬한 안남미보다는 찰기가 있는 찹쌀로 지은 밥을 먹으려 든다.
때문에 라후족의 마을에서는 항상 찰기진 밥을 먹을 수 있기도 하다. 라후족에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된장이나 김치
등도 있다. (물론, 고춧가루가 없는 하얀 배추절임같은 것이다. 한국의 김치가 붉은 것은 고춧가루가 한국에
들어온 이후부터이다.)
[라후족 여자아이들의 비석치기 모습, 뒤에 새해 대나무 제단 ]
[ 대나부 제단의 음식들 :우리나라 고사 때에도 빠지지않는 돼지머리]
[라후 셀레 여인의 색동 옷; 시계를 차고 있는 것을 보니 라후이 족이 아닌 것 같음]
관련 동영상 연결
KBS1 한민족 리포터 [태국 치앙라이 사랑 김병호박사님]
KBS1 뉴스[태국 소수 민족 라후족의 설 맞이]
KBS1 뉴스 [태국의 고구려 후예 라후족]
다른 참고할 만한 글
- 마을 사람중에 한명이 병이 나면, 사람들은 그 주위에 모여 춤과 노래를 부르는 의식을 하여, 악귀를 쫓아 낸다. 마을의 부족장은 제사장의 역할을 함께 하여 결혼이나 장례를 주관하고, 길흉을 점치기도 한다. 부족장의 권한은 막강하여, 마을은 부족장의 이름을 따서 짓는다. 따라서 부족장이 죽거나 새로운 부족장이 들어서면, 마을의 이름도 바뀌게 된다.
★ 잊혀진 우리 핏줄 아카 라후 리수
- 소수 민족을 연구해온 학자들은 태국의 고산족이 고구려가 멸망한 후 당나라 군사에게 포로가 되어 잡혀가 오지에 버려졌던 고구려의 후손들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고구려 본기에 의하면 당나라 고종이 고구려인 3만 8천 3백호를 잡아가 중국 남쪽 광막한 땅에 옮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 학자들뿐 아니라 소수민족 출신의 호례극이라는 중국 학자도 같은 의견을 내놓는다. 이들 고산족들은 고구려 사람들이 그랬듯이 남자가 처가살이를 하고, 결혼 때 닭을 옆에 두고 식을 올린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은 것도 우연으로 돌릴 수만 없는 고구려 옛 풍습 그대로다. 아카족 같은 경우는 구슬을 머리에 달고 장식하기를 좋아하는데 이 또한 예사로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중국 후한서에 '동이족은 구슬 장식을 즐긴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 북한 사투리 '나 메홍손 가메'
학자들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한국 여행자들이라면 이들이 우리 핏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명절 때 색동옷을 입는 것이 그렇고 태국 사람들은 별로 좋아 하지 않는 끈기있는 찰벼를 산간에서 재배하는 것도 그렇다. 된장이나 김치를 담가먹는 것까지 우리를 닮았다. 무엇보다 신비한 것은 이들의 말이 중국이나 태국말처럼 주어 동사 목적어 순이 아니고 우리말처럼 주어 목적어 동사 순이라는 것이다. 라후족이이나 아카 리수족이 한결같이 나를 '나'라고 하고 너를 '너'라고 하는 것을 들으면 숨이 막힐 지경이 된다. 지구상에 한국인 말고 어느 민족이 "나"를 "나"라고 하고 "너"를 "너"라고 할 것인가 말이다."나 매홍손 가이메이" 라후족의 말로 "나 매홍손에 간다"는 뜻이다. 이 말을 어찌 들어보면 "나 매홍손 가메" 라는 이북 사투리만 같지 않은가? 어쨋든 이들을 만나면 우리와 같은 핏줄일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들을 우리 민족이 아니고는 세계의 어떤 민족과도 동일시할 수 없을 것이다.
★ 우리와의 유사점
- 외모도 태국보다는 우리네와 더 비슷했다.
- 집안의 아궁이를 쓰는 것도 우리네와 닮았다.
- 명절 때 색동옷을 입는 것
- 태국 사람들은 별로 좋아 하지 않는 끈기있는 찰벼를 산간에서 재배하는 것.
- 된장이나 김치를 담가먹는 것까지 우리를 닮았다.
- 이들의 말이 중국이나 태국말처럼 주어 동사 목적어 순이 아니고 우리말처럼 주어 목적어 동사 순이라는 것이다.
- 고구려 사람들이 그랬듯이 남자가 처가살이를 하고, 결혼 때 닭을 옆에 두고 식을 올린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은 것도 우연으로 돌릴 수만 없는 고구려 옛 풍습 그대로다. (형사취수제)
- 라후족·아카족 등이 개고기를 먹는다.
- 라후족도 아기를 낳으면 문밖에 인줄을 쳐 일정기간 외부 사람들이 집안으로 못 들어오게 한다고 했다.라후족의 인줄은 지푸라기를 사용해 왼새끼를 꼰 후 새끼줄 사이사이에 창호지·숯·빨간고추(사내아이의 경우)·푸성귀를 꽂아 놓는다.그런데 탐사팀을 놀라게 한 것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인줄에 푸성귀를 꽂았다고 하는데 라후족은 지금도 푸성귀를 꽂는다는 사실이었다
- 라후족의 명절이나 제사에서 찾을수 있는 유사성
라후족의 설은 우리나라 처럼 1년중 가장 큰 명절로 떨어져있던 가족과 만나고 이웃 부락과의 교류를 통해 한해동안의 풍년과 평온을 기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특정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농사에 적절한 시점에 따라 부락마다 해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명절을 보내는 일반적인 모습에는 많은 유사성이 보인다.
'까끄뵈'라는 라후족의 새해 첫날 아침에는 세심하게 만든 색동옷을 입으며, 마을한가운데 제사음식을 올려두고 발을 엇갈리면서 주변을 도는 것은 땅을 밟아 땅의 신을 자극하여 한해의 평온과 풍년을 기원하는 단체 의식을 치르는 데 이것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전하는 고대 마한의 제천의식을 연상시키는 지신밟기와 비슷하다.
분명히 우리와 많이 닮았다. 또다른 우리와 닮은 사실. 그들이 마련한 고사상을 보면 알 수가 있는데, 고사 음식으로 찹쌀과 깨를 섞어서 만든 인절미와 웃는 돼지머리를 사용한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고사상에 돼지 머리가 놓이면 마을의 최고령 노인이 축복의 메시지를 전한다.그러면 마을사람들이 모두 어울려 춤과 노래로 즐겁게 마무리를 한다.
라후족 |
우리말 |
나래 너 서울로 까이요? |
나와 너 서울로 갈래? |
나래너 타 도죠베요 |
나는 너 좋아해 |
나터 너터 |
나도 너도 |
서울에 방콕까가 까이요 |
서울에서 방콕까지 가요 |
나래 서울로 까이요 |
나는 서울로 가요 |
까이라 라베라 |
가려나 오려나 |
오빠 |
아빠 |
나흐 어이언니 |
우리 언니 |
나게 라오 |
나에게 와요 |
그들이 우리민족의 일부인지는 생물학적, 유전학적연구와 사료에 대한 검증이 있어야 하겠지만. 이들이 우리말을 지니며 살아 왔던 것은 이들이 오지에 고립되어 살다보니 기존의 언어와의 충돌이 상대적으로 적어 고유의 언어를 간직하며 살아 왔을 것이다. 또한, 고구려의 유민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역사스페셜에서 방송된 바와 같이 백제의 유민이 아니었을까?
이스라엘은 얼마전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유태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이스라엘로 이주시키는 작업을 하였다. 그들이 이전에 성서에 기록된 바를 토대로 추적하여 고대에 이주한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근거를 바탕으로 말이다. 물론, 여기에는 정치적인 면도 고려하여야 하고 등등 반드시 우리가 따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상기시켜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간단하게 잊어 버리고 있다. 위의 사실을 모두 단지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이후에 연구가 이루워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데 대해서 연구하지도, 한 바도 없다. 오히려 다른 나라 사람이 우리에게 그러한 사실을 거꾸로 제공하는데도 우리의 관심에는 변화조차 없다. 물론, 연구를 강요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계승자인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고구려 유민의 후손’설이 제기되고 있는 태국 라후족의 노래가 강원도 민요와 유사하다는 분석도 눈길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