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의 초강법 비밀
날짜 : 2006-10-16

“이 검이한나라 철기군이 쓰는 검입니다. 이 검은 초강법(抄鋼法)이란 비법으로 만들어서 괴련철, 괴련강으로 만든 검과는 비교가 안되는 강도를 갖고 있습니다.”

“드디어 초강법의 비밀을 풀었습니다. 황토를 넣었더니 한(漢)나라의 검을 능가하는 강철 검이 탄생했습니다.”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역사드라마 ‘주몽’에서는 단단하고 부러지지 않는 칼을 만들려는 우리 민족의 노력이 눈물겹다. 과연 우리 선조의 철기기술은 어느 정도였을까. 그저 중국 기술을 전수받아야만 했을까.

철 소재는 철(Fe)을 위주로 하는 금속재료다. 하지만 철이 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널리 쓰이는 소재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는 탄소(C)의 역할이 지대했다. 철 소재는 탄소함량에 따라 연철(iron), 강철(steel), 주철(cast iron)의 세 종류로 구분한다. 거의 철원자로만 이뤄진 소재가 연철이며, 탄소함량이 중량비로 0.05~2.0%에 이르는 소재는 강철, 2.1~4.3%에 이르는 것은 주철이다.


철기기술의 핵심은 탄소함량 조절

철 소재에 탄소함량이 늘어나면 녹는 온도는 급격하게 낮아지며 강도는 높아진다. 연철은 철원자 사이의 빈 공간에 소량의 탄소원자가 제멋대로 들어간 상태다. 하지만 탄소함량이 어느 정도를 넘으면 철원자 셋에 탄소원자 하나가 기본(Fe3C)인 ‘시멘타이트’라는 강하지만 부서지기 쉬운 조직이 나타난다. 주철은 강철보다 탄소함량이 높아 시멘타이트가 차지하는 비율도 높다. 때문에 주철은 강도가 높지만 충격을 받으면 쉽게 깨진다.


반면 연철은 강도가 약해 잘 구부러진다. 드라마 ‘주몽’에 나오는 괴련철(塊鍊鐵)은 연철의 하나인 해면철(海綿鐵)이다. 드라마에서 괴련철로 만든 검은 강도가 약해 부러지기 십상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부러지지 않고 휘어지기 쉽다.

강철은 충분한 강도를 지니는 동시에 충격에 잘 견디며, 가공과정에서 두드림이나 각종 열처리를 거쳐 그 성질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 쓰임새가 가장 큰 철 소재다. 강철에 담금질 같은 열처리를 하면 단단해지는 이유는 ‘마르텐사이트’란 새로운 조직이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제강법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당대 철기산업의 기본골격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강 소재는 철광석을 녹여 직접 뽑아내기보다 이미 생산된 연철이나 주철의 탄소함량을 조절하는 제강공정에서 생산된다. 강을 만드는데 연철을 사용하면 탄소를 투입해야 하며 주철에는 탄소를 제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철기기술의 핵심이 곧 탄소함량을 조절하는데 있다는 뜻이다.

괴련강은 괴련철에 탄소를 침투시킨 강이라 할 수 있고 초강법이란 액체상태의 주철을 기본소재로 해 강을 만드는 방법을 말한다. 초강이란 개념은 1637년 ‘천공개물(天工開物)’이란 중국 문헌에 그림과 함께 소개돼 있지만, 이 기술이 한나라 시대에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드라마에서 초강법의 비밀이 황토라고 나온다. 초강법의 핵심은 액상의 주철에서 탄소를 제거하는 방식이다. 공기 중의 산소를 이용해 탄소를 태우거나(산화시키거나), 액체상태의 주철에 녹슨 철가루나 철광석 가루를 넣어 이들 내의 산소로 주철의 탄소를 태워낼 수 있다. 부여의 야철대장 모팔모가 넣은 황토에 이런 산화철성분이 있었다면 주철(생철)이 강철(숙철)로 바뀔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모팔모가 부러지지 않는 강철 검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피와 땀을 흘려야 했다.




고구려 연철기술, 유럽서 왔을까

철기기술은 어떤 경로를 거쳐 고구려에 성립됐을까. 철기시대는 오늘날의 터키나 중동지역에서 시작돼 유럽 전역으로 전파됐다. 최초의 철 제련은 녹는점보다 훨씬 낮은 1000℃ 부근에서 이뤄졌다. 산소는 상온에서와 달리 800℃ 이상의 온도에서는 철보다 탄소와 결합하려는 성질이 강해진다. 따라서 목탄과 철광석을 섞어 가열하면 철광석 중의 산소는 탄소와 결합해 탄산가스의 형태로 날아가고 철만 남는다. 이렇게 생산된 최초의 철은 대부분 탄소함량이 매우 낮은 연철이었다. 연철로 만든 철기는 이전의 청동기에 비해 무르며, 쉽게 부식될 뿐 아니라 모양도 나을 것이 없었다.

그러나 연철로 제작된 철기에 탄소원자를 침투시켜 강 소재로 변화시키는 기술이 개발된 뒤부터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연철에 탄소를 침투시켜 강도를 보강하는 기술은 가장 오래된 철기기술이자 14세기에 이르기까지 2500여년 동안 유럽을 풍미한 핵심기술이었다. 비록 후대이기는 하나 바로 이 기술이 고구려의 아차산 화살촉에서 확인된다는 점은 그 전파경로를 상상할 때 흥미롭기 짝이 없다. 연철을 기반으로 하는 제강기술은 대량생산에 적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생산방식이 비효율적이라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있다.

오늘날의 한국과 중국을 포함하는 동아시아의 철기시대는 유럽에 비해 시작이 다소 늦었으나 기술체계 면에서 유럽과 전혀 달랐다. 2500여년 전 철기시대가 열리는 처음부터 녹이는 제련공정을 통해 주철소재를 생산했다. 탄소함량이 높아지면 원래 1538℃인 철의 녹는점이 급격히 낮아진다. 4.3%의 탄소를 포함하는 주철의 녹는점은 1150℃ 부근으로 구리의 녹는점 1084℃보다 그리 높지 않다. 구리를 녹일 수 있으면 주철도 녹일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주철이 충격에 매우 약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지역에 주철을 바탕으로 하는 기술체계가 확고하게 성립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철에서 탄소를 제거해 강 소재를 생산하는 다양한 제강기술이 일찍부터 개발됐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무순 화살촉과 아차산 철 덩이는 주철을 대상으로 개발된 제강법 중 가장 대표적인 두 예를 보여준다. 특히 아차산 철 덩이 유물은 관련 제강기술이 최초로 개발되는 시점에 제작된 것이다. 고구려의 철기기술이 첨단에 있었다는 의미다.

유럽에서는 15세기경 주철을 산업용으로 생산하기 시작한 뒤 주철을 바탕으로 하는 새 제강법을 개발하는데 열을 올렸다. 유럽인들은 동아시아에서 이미 1000년 이상 쓰고 있던 기술을 빌려와 실용화하고 특허를 출원하며 생산설비를 개량함으로써 산업혁명의 기틀을 마련했다.

하지만 당시의 기술자들은 제강공정에 드는 막대한 연료 때문에 대량생산의 문턱에서 고전하고 있었다. 돌파구는 우연한 상황에서 열렸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헨리 베세머는 공기 중에 노출된 주철제품이 그리 높지 않은 온도에서 연철로 변화되는 과정을 우연히 목격했다. 여기서 영감을 얻은 베세머는 액체 주철에 공기를 불어넣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공기 중의 산소로 녹은 주철 내의 탄소를 태우며 강을 생산하는 베세머법을 개발했다. 특히 주철의 탄소가 탈 때 발생하는 열이 그대로 공정에 쓰여 종전과는 달리 별도의 연료가 필요하지 않았다.


고구려시대 철기기술

주몽이건국한 고구려의 철기기술은 어느 정도 수준이었을까. 역사책에 별다른 기록이 없기 때문에 철기유물을 직접 분석해 당대의 기술을 파악해야 한다. 2001년 필자는 서울 아차산에 있던 옛 고구려군의 초소에서 발견한 화살촉과 용도가 분명치 않은 철 덩이, 그리고 만주 무순의 옛 고구려성에서 출토된 화살촉을 분석했다. 3점의 유물은 5세기나 6세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철기유물에서 얻은 작은 조각을 광학현미경으로 확대 촬영한 사진을 보면 부위별로 명암과 모양에서 서로 다른 무늬가 나타난다. 이는 부위별로 탄소함량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아차산 화살촉 조각은 분석 결과 중심부의 연철 주변을 탄소함량 0.5~0.6%의 강 소재가 에워싸고 있음이 밝혀졌다. 처음 화살촉의 소재는 연철이었다는 뜻이다. 강도가 낮은 연철을 두드려 화살촉으로 제작한 뒤 탄소원자를 화살촉에 침투시켜 표면 근처의 탄소함량을 높였을 것이다. 높은 온도로 달아오른 목탄 속에 화살촉을 장시간 묻어두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에서 연철이 생산됐으며 연철에 대한 제강법이 개발됐음을 의미한다.

무순 화살촉에는 중심부에 연철이 아니라 약 4.3%의 탄소를 포함하는 백주철이 자리하고 있었다. 백주철은 고대의 주철제품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된다. 주철로 제품을 만들자면 주철의 녹는점이 낮다는 점을 활용해 녹여 붓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런데 화살촉의 주철 주변은 탄소함량 0.7~0.8%의 강철로 둘러싸여 있다. 표면에서 탄소원자가 제거된 것이다. 주철을 녹여 미리 준비한 틀에 부어 화살촉을 제작한 뒤 이 화살촉을 녹지 않을 정도의 높은 온도에서 장기간 가열하면 표면에서 탄소원자가 나와 표면에 강철 층이 만들어진다. 고구려에서 주철소재가 생산됐으며 탄소함량을 낮춰 강을 생산하는 제강법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아차산 철 덩이는 왼쪽의 강철 부위가 오른쪽의 백주철에 에워싸여 있다. 이 형상은 연철이나 주철을 개별적으로 사용해서는 얻을 수 없다. 주철과 연철 조각을 한데 묶어 주철의 녹는점 이상으로 가열하면 주철이 녹으면서 고체인 연철을 에워싸게 된다. 탄소원자는 농도가 높은 액체 주철에서 농도가 낮은 연철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주철 부위는 탄소를 잃고 연철 부위는 탄소를 얻어서 동시에 강 소재로 변한다. 아차산 철 덩이는 연철과 주철을 함께 사용해 강철 소재를 만들던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같은 제강법이 고구려에 있었다는 귀중한 물적 증거다. 특히 이 기술은 동일한 기술이 중국 문헌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최초의 시기와 별 차이가 없어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철기유물 3점을 분석한 결과 고구려의 철기기술체계는 놀랍다. 고구려 장인들은 연철과 주철을 함께 생산했고 이들 기본소재를 이용해 다양한 제강법을 개발했다. 철기기술의 핵심은 탄소함량을 조절하는데 있다. 화학조성에 대한 인식이 현대와 같지는 않았을지라도 탄소함량 조절에 관한 한 고구려인의 인식은 현대와 비교해도 손색없다.


시대 앞선 동아시아 주철기술

베세머법은 주철에서 강 소재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주철제련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식 철기산업의 기초를 마련했다. 강철이 대량생산된 덕분에 육지와 해상의 운송수단이 대형화됨은 물론 대륙을 횡단하는 철로가 신설되기 시작했다. 이는 유럽에서 주철을 생산하기 시작한지 500년이 채 안 되는 시기에 이뤄진 업적이다. 적어도 1000년 이상을 앞서 베세머법에 관련된 원리의 대부분을 인식하고 있었던 동아시아로서는 안타까운 대목이다. 베세머법은 오늘날 세계 모든 제철소에서 사용하는 제강법의 바탕이다.

그럼에도 유럽에서 개발된 베세머법의 어머니 기술은 고대 동아시아에 있던 초강법이다. 동아시아에 성립돼 있던 과거의 찬란한 철기기술이 서양학자들에 의해 밝혀지기 시작했는데, 그 연구대상은 주로 중국과 일본이었다. 하지만 최근 신라의 황남대총이나 김해 대성동 소재 가야의 고분군, 그리고 천안 용원리의 백제 고분군과 서울의 아차산과 구의동 소재 고구려 유적지에서 출토된 철기유물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에는 실로 다양한 철기기술이 있었으며 지역마다 특색 있는 기술체계가 성립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아차산과 무순의 철기유물 분석 결과를 보면 고구려만 해도 이미 5, 6세기에 철기기술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연철을 기반으로 한 유럽식 제강법과 주철을 바탕으로 한 동아시아식 제강법을 모두 구사했으며 이런 기술은 여러 발전 단계를 거친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에서 확인되는 기술수준으로 보아 고구려에서 초강법이 실행됐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드라마의 대소왕자처럼 우리 기술이 모두 중국에서 비롯됐다는 걸 당연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고구려 건국시기처럼 고대에 나온 철기유물을 직접 분석해 옛날 우리 기술을 체계적으로 밝혀야 한다. 그러면 철기기술의 성립과정에서 우리 민족의 역할이 중대했다는 사실을 세계의 학자들에게 알릴 수 있지 않을까

[출처 LG사이언스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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