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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지7

경문왕과 미다스왕,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 (2/2) 경문왕과 미다스왕,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 (2/2) 퍼옴 "지평선의순례자 | 2008.05.19 02:09 " 댓글쓰기 고대 근동 이야기 경문왕과 미다스왕,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 (2/2) 2007/05/27 오 전 12:29 | 고대 근동 이야기 미다스(Midas) 왕(王)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미다스 왕은 어떤 왕이며 프리기아(Phrygia) 는 어떤 나라인지 이야기하는 것이 더 재미있을 것 같으므로 그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다. 1. 히타이트(Hittite) 제국(帝國)의 멸망(滅亡) (약 1200 BC) 1200 BC 년 경에 일어난 고대사(古代史) 최대(最大)의 수수께끼 중 하나인 고대국가 (古代國家)들의 갑작스런 몰락(沒落)에서부터 이야기를 .. 2016. 5. 9.
쿠르드(Kurd) 와 프리기아(Phrygia) 쿠르드는 고대시대 미타니(Mitani) 왕국이라 불렀다. 프리기아인이 마케도냐에 이웃으로 있을 때 브리지(Brige)라 불렸고 아나톨리아(Anatolia) 소아시아로 이주해서 프리기아로 불려졌다. Brige 는 Breg 단어와 관련있고 언덕이라는 의미이고 유사 단어로는 Gora 가 있다. 헤르도투스가 언급하길 '아르메니아는 프리기아로 부터 온 정착자' 라고 한다. 킴메르가 침입해서 수도 고르디온(Gordion) 이 696 BC 에 함락되었다. Xenophon 은 Gordyne (Corduence) 언급했고 오느날 Gordyne 이라는 지명이 있고 쿠르드인이 살고 있다. 2016. 5. 3.
발조선(發朝鮮)은 하나의 나라이다. 하나의 나라인 發朝鮮을 發, 朝鮮으로 보는 것은 지나인들이 찍어 놓은 방점에만 의지하여 사서를 해석하려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이렇게 두개의 나라로 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나인들이 근대에 만들어 놓은 사서의 표점교본에서 發朝鮮을 發, 朝鮮으로 나누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발조선이 나온 사서의 기록을 하나씩 봅시다. 1. 관자 권 23 - 發朝鮮之文皮一筴也 (발조선의 문피도 그중에 하나 낀다. 즉 발조선의 문피도 좋다라는 말입니다) - 八千里之發朝鮮 (발조선까지 8백리) - 發朝鮮不朝 (발조선이 조공하지 않다) 관자에서 발조선을 발과 조선의 문피다라고 해석하면 아주 우습습니다. 안그렇습니까? 저렇게 동시에 조공도 안構?8백리로 위치도 같고 문피도 똑같이 나는 곳이 두 나라다라는 것은 똥인지.. 2016. 1. 31.
프리기아(Phrygia) 아톨리아(Anatolia) 탈출 프리기아인의 소아시아 탈출. 1).기온의 하강으로 遊牧民의 전투적 騎馬民族化.(동아시아 동일) 2).스키타이(Scythia)일부가 B.C 8c경 카스피해에서흑해 北岸으로 이동. 3).킴메르(Cimmer)의 카프카즈(남러시아) 지역을 공격하자 쫒겨남. 4).킴메르의 이동은 소아시아 지역(현 터키 중서부)에서 히타이트의 공백을 메우고 번영하던 프리기아(Phrygia)를 공격. 5).프리기아인(Phrygian)의 일부가 B.C690년 전화(戰禍)를 피해 수도 고르디온(Gordion)을 버리고 카자크스탄 방면으로 탈출 추정. 6).스키타이는 이후 앗시리아를 몰아내고 BC6c 이집트를위협.- 고대문명교류사,정수일,2002. 외 . 르네크루세, 유라시아 유목제국사,김호동 역,1999. 2.동진한 프리기아인은 누구인.. 2016. 1. 23.
흉노 (Hun), 프리노이 (Phrynoi) 출처 : 잃어버린 역사, 보이는 흔적 | 글쓴이 : 心濟 심제 이진우 박사 그리스 지리학자 스트라본의 11에 기원전 그리스, 박트리아 왕들의 세력 반대편에 Phrynoi(흉노)와Seres (비단민족)이 있다고 했다. – 아시아문화사연구,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山川出版社,1987. 운영자가 이미 밝힌바 있듯이 기원전 12세기경에 존재하였던 프리기아(Phrygia)의 미다스왕이 흉노의 모태라고 추정하여 주장한바가 있는데 미다스왕의 설화와 신라 48대 경문왕의 설화가 같다고 하였다. 적석목곽분 내에서 발굴된 프리기아(현 터키) 미다스왕의 청동 솥. 기원전15세기경 전지구적으로 기후 변화가 일어나서 소아시아에도 급격한 한발이 찾아와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의 수원이 줄어들고 그 주변에 농경과 목축을 하던 민족들이.. 2016. 1. 23.
부여 부례가야 아나톨리아 이동 경로 ①: 프리기아(B.C. 12세기 - B.C. 7세기 초) ②: 고창국 서북 동굴(6장 6절 돌궐 지조) ③: 감숙성 흑산 암각화(춘추에서 서한 초기) ④: 난하(灤河) 하류의 리지(離枝), 영지(令支) (齊 桓公: B.C. 685 - B.C. 643) ⑤: 요동(난하 지역으로 들어온 초기에 이동한 것으로 추정) ⑥: 난하에서 제 환공의 공격을 받아 시라므렌 강 유역으로 이동 ⑤→⑦: 난하에서 요동으로 들어 왔던 사람들이 북으로 이동 ⑥-1 →⑦: ⑥의 후예로 믿어지는 고리국(高離國)에서 남하하여 부여를 세움 ⑧: 고구려, ⑨: 백제, ⑩: 가야, ⑪: 신라 (a): 돌궐 원주지 국회세미나 발표(2005.9.9) 최근 중국의 역사관련 국가 공정들과 한국의 과제 우실하 ( 한국항공대학교 조교수) (홈페이지:.. 2016. 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