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金氏)의 조상, 소호금천(少昊金天)은 알타이어  Согоо(소고) '암사슴' 과 Алтан(알튼) '황금'에서 유래했다.

 

북방민족은 초원지대에 양유목을 하며 생활하였는데 양 유목 보다 순록 유목이 먼저 되었다.

현재까도 노르웨이 북부, 러시아 투바족 차탕족(Tsaatan) 그리고 에벤키족(Эвенки) 또는 중국어로 어원커족(鄂温克族)은 순록 유목을 하고 있다.

특히 순록은 북극 툰드라 산림지대에서 이끼를 주 먹이로 한다. 

순록은 고대에 잡아먹기도 했지만 신령한 동물로 여겨 숭배하기도 했다.

산타할배의 설매를 끄는 동물이 순록이다.

 

 

멸족위기의 차탕족과 그들의 순록

카테고리 : 몽골의 자연과 동물 | 작성자 : 파도

차탕족(Tsaatan)이라는 몽골내 소수민족이 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순록과 함께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인구수 200명 가량이라 겨우 명맥을 이어간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사는 곳은 몽골 북서부 홉스골이라고하는 큰 호수부근의 원시 타이가숲 지역이다. 그리고 그들이 키우는 사슴을 타이가순록이라고 부르는데 이 또한 숫자가 몇 백마리(200~700)밖에는 남아 있지 않다. 이들 순록은 유일하게 차탕족으로 부터 가축으로 길들여진 종이며 그들과 함께 살면서 사람소변으로 부터 소금을 섭취하고 늑대의 습격을 피한다. 차탕족은 순록에게서 젖과 고기를 얻고 이동수단으로 이용한다.

 

200명 밖에 안되는 극소수의 이 종족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몽골 샤머니즘의 성지라는 홉스골지역에 살면서 순록을 타고다니며 인디언 천막과 흡사한 곳에서 사는 모습의 오래된 영화를 TV를 통해 보면서 부터이다. 갸냘픈 듯한 순록을 타고다닌 것 부터 호기심이 발동하였었다. 그리고 이웃블로거 캉스독스님의 몽골사슴에 관한 질문과 요청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사진 : 타이가 순록)

 

몇년 전 홉스골 호수를 방문하였을 때 관광객을 상대로 수공예품을 파는 그들을 본적이 있다. 보통은 순록의 먹이 허부츠(이끼종류)를 따라 2주~10주단위로 거처를 옮기기 때문에 깊은 숲속이 그들의 터전이다. 아마도 여름철에는 순록의 먹이를 구하는데 어려움이 없기도 하고 사람이 많은 곳으로 내려와 쉽게 돈벌이를 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모기를 극히 싫어하며 추운곳에 사는 순록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바이러스질환에 감염되는등의 부작용으로 죽거나 도망하는 일도 일어난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이런 세속의 접촉을 거부하고 숲속 깊은 곳에서 고유의 생활방식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긴 하다.

 

당시 공예품을 파는 좌판을 펼쳐두고는 아이에게 글쓰기 책으로 열심히 공부시키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아마도 그 어머니는 아이를 자기처럼 숲속생활을 하도록 두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을 하였다. 도시화와 문명화는 이렇게 그들을 바꾸고 있었다. 지금의 차탕족 부모들이 자식들을 모두 도시로 보내고 그 자식들이 다른 종족과 결혼할 20~30년 후의 근미래에는 기록에서나 차탕족과 타이가순록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도 최근 외부세계와의 교류가 많아 지고 몽골정부의 지원정책에 힘입어 자식들이 하나 둘 울란바토르로 유학을 떠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사는 홉스골지역은 몽골에서 2번째로 큰 호수가 있는 지방이며 그 호수의 이름이기도 하다. 제주도 1.5배 크기로서 동서폭 약30km 남북길이 136km가량이고 바이칼호수와 직선거리 20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실지로 홉스골 물이 바이칼로 흘러가는 상류 수원지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물길은 1000km가량 떨어져 있다. 수면의 높이는 해발 1645m 최대 수심 262m이다. 한 여름에도 물의 수온이 얼음처럼 차가워 물고기가 거의 살지 못한다. 잡티하나 보이지 않는 호수의 물은 깊은 바닥으로 인해 어둡게 보이고 경사가 가팔라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고산 산악지대로서 한여름에도 밤이면 영하로 떨어지고 겨울철 영하 40도로 내려가는 극한의 툰트라기후이고 원시의 타이가 침엽수림이 빽빽히 들어찬 곳이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고 그중 최고봉은 3,492m 높이의 러시아 국경방향 뭉크사리닥이라는 산이다.

 

 (사진 : 홉스골Hovsgol 호수) 

 

차탕족은 당나라(A.D. 618-907) 문헌에 언급된 기록이 있고 두카족(Dukha) 으로도 불리며 투르크족의 직계후손으로 알려져있다. 그들은 오르츠라고 하는 삼각뿔 형태의 천막을 치고 생활하는데 인디언의 것과 매우 흡사하다.

 

이를 근거로 이들이 2만년전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인디언의 조상이라고 추측 하는 경우도 있다. 아메리칸 인디언의 유래에 관하여는 여러학설이 있고 원추형 천막을 사용하는 부족은 그 중 일부라서 관련을 단정할 만한 연구는 없다. 그냥 심증만 간다고 해야 하겠다.

 

참고로 한민족과도 관련이 있다는 투르크족은 기원전 3세기부터 남시베리아, 카자흐 및 바이칼일대에 살았던 유목민인데 흉노의 별종으로서 현재 터키, 카자흐스탄, 우즈벡, 위구르등 튀르크어파를 모어로 하는 여러 국가로 분리되어 있다. 이들 모두 투르크족 국가로 분류된다. 동양권에서는 돌궐족으로도 불렸는데 6세기말 동으로 고구려와 국경을 접하고 서쪽으로 흑해연안까지 아우르는 영토기준 역대 10위의 대제국을 이룬적도 있었을 정도로 세력이 광대하였다.

 

하여간 이 지역에서 오랜 새월동안 차탕족은 순록을 가축으로 기르며 숲속에서 수렵으로 생존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 인구와 순록의 숫자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현재 추정되는 부족수는 200여명 50여가구이며 그들과 생활을 같이하는 순록은 가구당 7~70마리 정도라고 하며 타이가숲을 통털어 200여마리(몽골전체 700여 마리) 밖에 안된다는 보고도 있었다.

 

이렇게 부족한 개체수는 근친교배로 이어지고 그 결과 결함이 있는 새끼의 출산이 많다. 이는 역시 적은숫자로 부족내 혼인만을 해온 차탕족에게도 해당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순록의 개체수가 감소하는 결정적 이유로 지목되는 것은 차탕족들이 가축인 순록을 식량으로 쓰기 위해 예전보다 더 많이 죽이기 때문이다. 이는 몽골전역의 광산개발로 인한 자연환경의 변화로 인해 수렵해 먹을 야생동물이 감소한 결과이다. 극한의 상황이 아니면 늙거나 병든 순록만을 잡아서 고기로 사용하였지만 지속적으로 악화된 상황으로 막다른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환경적 요인은 포식자인 주변의 늑대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기에 순록을 공격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고 한다. 순록으로서는 천적이 둘씩이나 생겨버린 꼴이다. 또 한가지 요인을 더 들자면 외부인과의 접촉이 늘면서 중국인들이 순록의 뿔, 꼬리 및 성기를 찾고있다. 뿔을 짜르게 되면 생식기능의 저하가 일어나 번식률이 떨어지는 것으로 의심하고있고 최근에는 그들도 녹용채취에는 조심을 한다고 한다.

 

(사진 : 무스moose를 사냥하는 차탕족 / 출처 : 내셔널지오그래픽 http://news.nationalgeographic.com/news/2004/11/photogalleries/reindeer_people/photo5.html)

 

위 사진은 무스(moose, 말코손바닥사슴)또는 엘크라고도 불리우는 현존하는 최대의 사슴으로써 몸집이 황소만 하다. 몸길이 2.5~3m, 어깨높이 1.4~1.9m, 몸무게 360~640kg 가량이다. 사진의 무스는 이보다 훨씬 더 큰놈이다. 정확한 이름을 갖지못하고 무스나 엘크로 혼용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몽골사람들의 소문으로는 코끼리 보다 큰 놈도 있다는데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이런 희귀 종류는 차탕족의 순록과 마찬가지로 개체수가 백이 안될 정도로 극히 적다. 사슴은 통상 큰뿔과 맛있는 고기로 인해 사냥의 대상이 되었고 또한 포식자 늑대의 먹잇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차탕족과 순록에 대한 전문 사진을 찍어온 사람이 있어서 그의 사진을 좀 퍼왔다.

* 사진출처 : http://www.hamidsardar.com/portfolios/dark-heavens/platinums/ , Hamir Sardar作

 

맨 끝의 사진은 차탕족 무당이 굿하는 모습이다. 이 무당은 순록을 70마리 가지고 있으니 부자인 듯 한데, 최근 사냥거리가 별로 없어서 할 수 없이 순록을 도축하고 있다고 한다.

 

부연해서 설명할 것이 한가지 더 있는데 홉스골지역은 몽골샤머니즘의 성지이다. 필자가 아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날 신내림을 받으러 홉스골에 한달간 휴가를 내고 갔다온적이 있었고 곧바로 직장을 그만두고 무당이 되었다. 우리나라 무당과 시스템(?)이 매우 흡사하였다. 몽골은 전세계 샤머니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기록상으로만 따지면 원조라 하겠으나 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세계 도처의 샤머니즘 흔적이 있으니  증명할 수는 없겠다.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차탕족과 타이가순록이 앞으로도 계속 생존하였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고 우리가 그 생활을 강요할 수는 없으니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만 볼 수 밖에는 없을 것 같다. 몽골정부나 세계자연보호단체 같은 곳에서 인류자연유산을 보호하는 개념에서 그들이 굳이 도시로 나가지 않아도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 좋겠다. 

참 하나 빼먹은 것이 있어서 다시 왔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무스(말코손바닥사슴)를 유럽 일부국가에서는 엘크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북아메리카와 우리나라에서는 이 사슴을 엘크로 부르지 않고 와피티 사슴을 엘크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양록 농장에서 사슴 뿔(녹용)을 얻기 위해 키우는 엘크들은 무스가 아니라 북미나 러시아에서 가지고 온 와피티들입니다.즉 유럽(스칸디나비아 국가)과 미국에서 엘크라고 부르는 사슴은 전혀 별개의 종입니다. 참고로 무스는 최대 800kg까지 자라며, 와피티(한국인들이 말하는 엘크)는 500kg까지 자랍니다. 한우가 보통 500kg이 되면 도축하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크기의 사슴들입니다. 거듭 파도님의 깊은 마음과 헌신적인 블로그 운영에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파도님 화이팅!!!

채희석 판스퍼미아 연구원장

스키타이의 상징은 사슴뿔

실제로 몽골의 알타이 산맥 주위에는 수많은 바위들에 사슴문양들이 새겨져있으며 몽골박물관을 가면 입구부터 사슴뿔 장식 등 사슴문양을 빼고는 알타이에 대한 설명을 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 몽골과 반구대등의 암각화 연구자인 김호석 박사와 함께 예서원 최삼주 실장이 알타이지방에서 찍은 암각화. 알타이지방에는 이러한 사슴 그림이 수 없이 많다.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또한 사슴을 좋아한다. 그들은 사슴사냥을 우주사냥으로 보는 신화를 가지고 있다. 옛날에 우주사슴(Cosmic Elk)이 천상의 숲에서 나와 뿔로 태양을 찌른 뒤 천상의 숲으로 가지고 갔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어둠이 시작되었다. 그 때 한 영웅이 날개 달린 스키를 타고 천상계로 들어가 활로 우주 사슴을 죽이고 태양을 되찾아와 이 세상을 밝게 하였다. 하지만 우주사슴은 이내 되살아나 저녁 무렵이면 태양을 숲으로 가져갔고 이세상은 다시 어두워졌다. 그러면 영웅이 다시 태양을 찾아왔고, 이런 일의 반복으로 이 세상에는 밤과 낮이 교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슴뿔은 대지의 초목들처럼 돋아나서 자라고, 빠진 뒤에는 다시 돋아나서 자라는 소멸과 재생을 반복한다. 이는 생명의 순환이나 우주의 순환을 상징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지하계에서 천상계로, 천상계의 생명나무에 영혼을 지키는 어머니, 사슴이

이 다시 지상계의 어머니 자궁으로 들어온다.

원주민들의 지도자가 특히 사슴사냥을 즐긴 이유는 바로 자기가 우주사슴을 쫒는 영웅이 되어 태양을 찾아오는 존재, 즉 새날을 밝히고 만물의 부활을 이루어 주는 위대한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한 것이 아닐까?

또 원주민들은 털이 흰 사슴, 즉 백록을 특히 신성시 한다. 사람이 올라타는 것은 물론 허용되지 않고, 오로지 부적과 같이 신성한 물건을 운반할 때만 사용 된다. 또 올가미에 걸려 잡히더라도 놓아주고, 부상하였으면 자연사 할 때까지 절대로 죽이지 않고, 죽더라도 고기를 먹지 않으며, 가죽은 가옥 위에 걸쳐 놓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슴은 신성한 동물이다.
부여라는 나라 이름도 퉁구스어에서 사슴을 뜻하는「부유」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사슴, 고라니와 연관된 룬문자---세계수의 운반자
* 사슴사냥---도망하는 힘을 사로잡고자 하는 사냥---이 사냥은 존재 내부에서 벌어진다

채희석 판스퍼미아 연구원장

BC 1만1000년 경 사자좌 시기가 되면서 지구의 빙하기가 끝나고 날씨가 따뜻해지자 샤카(스키타이)족의 주식이던 순록이 자꾸만 북쪽으로 이동했다. 대초원이었던 피레네산맥 주변이 모두 거대한 숲으로 바뀌면서 동굴 시대가 막을 내린다.

소나 말은 샤카족의 주식이 아니었다. 그들은 순록을 쫓아서 북쪽으로 이동했다.? 순록은 결국 바이칼 호수에 도착하게 된다. 순록을 쫓아 이동하던 샤카족 중 일부는 순록을 쫓아서 알래스카를 지나서 당시에는 육지로 연결됐던 베링해협을 지나 캐나다의 북부와 아메리카까지 이동하게 된다. 그중 대부분은 바이칼호수 주변에 정착하게 된다.

▲ 쇼베동굴벽화-강을 건너는 사슴

수사슴은 켈트족과 게르만족의 조상(사슴의 뿔은 정기적으로 재생되어 창조와 갱신을 나타낸다)으로 다산을 상징했고 장례식의 동물이며 죽은 이의 안내자였다. 사슴은 왕이나 영웅들의 사냥감이었고 치우/아르테미스의 상징물이었다.

그리스인들이 ‘스키타이’라고 부른 민족을 페르시아인들은 ‘사카’라고 불렀는데, 넓은 의미로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활동하던 백인종 유목민족(페르시아계 유목인과 같은 의미) 전체를 통칭하며, 좁은 의미로는 페르시아 다리우스왕이 그리스와 전쟁을 벌였던 스키타이 국가를 말하는데, 대개 스키타이 위치는 크림반도를 포함한 흑해 북부 초원지대이며, 넓게는 동경 30도 선상의 우크라이나 북부의 중심에 있는 키예프(Kiev)에서부터 동경 60도 선상의 우즈베케스탄 서북부의 끝에 있는 아랄(Aral)해[咸海]까지에 걸쳐 활동했다. 그러나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되므로 스키타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이전에도 존재했었다.

스키타이란 말의 어원은 ‘사슴’이다. 나중에 ‘사슴’에 대한 설명은 자세히 하기로 하고 낙빈기의 금문에서 자신의 문장을 ‘사슴’으로 그린 자가 누구인지를 찾아봤다. 소호금천씨(함)의 딸 문文과 전욱고양씨 사이에서 태어난 자가 중여곤(곤곤)인데 그의 문장기호가 바로 사슴이다.

'사슴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기는 부족도 많다. 몽골은 자신의 조상을 푸른늑대와 흰사슴으로 보고있다. 투르크인 돌궐족 역시 그들 조상을 늑대와 흰사슴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곤명위에 대리에는 흰색을 숭배하는 백족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의 조상은 흰사슴이라고한다. 선비족 또한 그들의 조상을 흰사슴이라고하며 우리나라의 한라산에는 흰사슴 연못인 백록담이 있다.

오랜 옛날 이 호수는 매년 복(伏)날이 되면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하던 곳이었다. 한라산 산신령을 이것을 알고 복날이면 북쪽 방선문(訪仙門)으로 내려가 선녀들이 목욕을 마치고 하늘로 올라가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복날은 개의 날이며 이는 시리우스별의 날이라는 뜻이다.) 그러던 어느 복날 미쳐 내려가지 못한 산신령은 선녀의 옷 벗는 모습을 보고 그만 황홀경에 빠져 정신을 잃은 채 서 있었다. 산신령을 발견한 선녀들이 기겁을 하고 하늘에 올라가 이 사실을 옥황상제에게 일러바치자 노한 옥황상제는 산신령을 흰사슴으로 변하게 했다. 그 후 매년 복날이면 흰 사슴 한 마리가 이 못에 나타나 슬피 울었으므로 이 못을 '흰사슴 못' 즉 백록담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이야기로는 옛날에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한라산에서 사는 효자 사냥꾼이 있었다.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흰사슴 고기가 필요하다는 소문을 들은 사냥꾼은 어느 날 흰 사슴을 잡으려고 안개가 짙게 낀 한라산을 헤매고 있었다. 그때 사냥꾼의 눈에 흰사슴 한 마리가 들어왔고, 사냥꾼은 즉시 활을 쏘려고 했다. 그러나 한라산 산신령이 갑자기 나타나 흰 사슴을 가로막자 사냥꾼은 활을 쏠 수 없었고, 잠깐 사이에 산신령과 흰 사슴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흰 사슴이 사라진 곳으로 뒤 쫒아가자 어느새 안개가 걷히면서 큰 연못이 나타났으나 산신령과 흰사슴은 온데간데 없었다. 산신령과 흰사슴이 자신을 이 호수로 이끌어 준 것으로 생각한 사냥꾼은 호수의 물을 떠가지고 와서 어머니에게 드렸고, 그물을 마신 어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완쾌 되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 연못을 흰사슴이 알려준 것이라고 하여 백록담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렇다면 ‘코리’란 과연 무엇인가? 동몽골에서는 고올리(Gooli) 라고 하고 한문으로는 음역 고리(槁離),구려(句驪),곽락(郭洛<guo luo: 현대 중국어 발음>)과 고려(高麗)라고도 적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코리는 ‘순록’이다.

투바대학교의 엔.베.아바예프교수는 『몽골비사』9절의 거러거(göre'etei)를 이미 순록으로 보고 있었고 

오치르 관장은 만주지역의 원주민 오룬춘의 오룬이 옛 문헌에는 코룬(Xorun)으로 되어있다며 코리를 치는 순록유목민이 오룬춘이라는 족명의 본뜻이라 했다.

내몽골의 육사현(陸思賢)교수는 ‘선비곽락대’ 연구 논문에서 ‘곽락’이란 선비족 무덤 출토유물인 허리띠 버클, 곧 대식(帶飾, 대구 帶鉤, 사비 師比 Sabi )의 분석을 근거로 볼 때 순록이라고 결론지었으며,

그들은 오랜 세월 한결같이 순록유목을 주된 생업으로 해오고 있다고 했다.순록은 만주 퉁구스족의 어웡커말로 ‘오롱(Orun)’이며 오룬춘말로 ‘올렌’이고 다구르말로는 ‘오른 복(Orun Bog) ’이다.

러시아어로는 이를 따라 ‘셰베르늬(북방의) 알롄’이라 한다.

이는 ‘오로오’라는 ‘길들지 않은’이란 뜻의 낱말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순록(馴鹿)은 원주민들에게는 한문 이름자와는 정반대로 ‘길들지 않은 ’사슴(不馴鹿)이 되는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