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후예
태국 라후족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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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후족 역사

    라후(lahu)족은 태국에서 한 6만명즘되는 강하고 독립적이고 매우 다양성을 가진 소수민족이더래요. 라후족은 대부분 치앙마이와 치앙라이 지역에  살더래요.  기러나 탁 지방처럼 먼 곳에서도 상당한 수의 라후를 역시 발견할 수 있더래요.  라후 전통 생활방식을 고수하기위한 강한 결속력 따문에 라후족은 대개 길이나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정착해서 사더래요.
          라후족은 복합적이고 다양한 민족성을 가지고 있더래요.  타이에서 6개 정도 다른 라후 부족이 있고 몇몇 말은 서로 이해할 수 없더래요.  타이에 있는 라후족 대부분은 라후 니(붉은 라후)이고 메시아 지도자 토보(Dtobo)를 따르는 범신적인 정령숭배자들이래요.  상당한 수의 라후 나(검은 라후)와 라후 설레가 있고 이들 중에 많은 수가 거의 100면 전에 기독교인이 되었더래요.  라후 나는 동남아시아에 곳곳에 있고 표준 라후 방언으로 간주되래요.

          원래 농부들은 자급자족을 위해 쌀과 옥수수를 재배하면서 살았지만 라후는  사냥군이면서 전사의 후예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더래요. 강력한 선악의 원리를 따르는 완고하고 진지하고 사람들이고 마을의 모든 사람은 연장자의 공통 결정을 따른다.  다른 고산부족 공동체 보다 광 범위한 가족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라후족은 여태까지 강력하게 통일성으로 행하고 생존을 위해 함께 일한다.  라후족은 세상에서 가장 남녀 평등한 사회일 것이다.

라후 새해(Kin Wor)

        "코자오 식(Korjao)" 또는 킨워(Kinwor), 라후 새해 잔치는 추수 계절후에 행한다. 정확한 날은 정해져있지 않지만  라후 새해 잔치는 2월,3월 또는 4월에 열린다. 게다가 모든 라후마을이 같은 시기에 행사를 할 강제성은 가지지않는다. 요리후에 흑도야지를 죽여가지고 참깨를 썩은 인절미를 함께 신(우사 Uusa)께 제사를 지낸다. 이 거를 오푸(Orphu) 또는 카우푸(Kaopu)라고 일컫는다.

          카오자오 의식은 12일 동안 행해지는데 2시기으로 나누지고 각각 6일 식 행하는데 첫번째 주는 '코루앙(Kohluang)' 또는 큰 해이고 여자들이 잔치를 즐기고  그 다음 한 주는 '코노이(Kohnoi)' 또는 작은 해이고 남자들이 즐긴다.  첫째와 둘째 시기 사이에 1~2일 쉬는 시기이고 쉰후에 매일 밤 새벽까지 '카커 의식(Kaker)'으로 춤을 추고 낮에는 남자들은 팽이로 놀고 여자들은 사바(Saba)로 논다. 나무 씨앗과 벼겁찔로 만든 공을 사용한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따로 잔치를 행하는 이유는 예전에 라후 남자들은 자주 전쟁,무역,사냥을 위해 여러 날을 집을 떠나야 했고 카오자오 의식에 참여하기위해 집에 돌아올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코루앙과 코노이를 하지만 남자와 여자들은 함께 잔치를 할 수 있다.  새해잔치 기간동안 모든 마을 사람들의 평화와 부를 기도하기위해 초를 붙인다. 다른 마을이 같은 시기에 잔치를 행한다면 라후 사람들은  포크를 가지고 이웃마을을 방문해서 오푸(Orphu)를 행하고 마당에서 함께 춤을 추면서 잔치에 참여한다.  이 것을 오리드다 의식(Orreetheda)이라 일컫는다. 몇 일후에 방문을 받은 마을은 반대로 손님으로 방문할 것이다.

          잔치 끝에 라후 사람들은 대나무로 장식된 워(Wor)를 제작하고 우사께(Uusa) 건강과 번영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

축복의식으로 모래와 꽃

(새코 의식; Sae Kor ceremony)  


          라후 불교 전통인 모래상 전통 또는 '새코(Sae Kor)'는 타이 송크람 축제로 같은 시키인 4월14일이다. 새코는 죽은 동물에 대한 공덕을 기리는 전통의식이고 새코를 행한다면 자신의 죄를 속죄받을 수 있고 부와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로 믿는다.  새코를 행하기 위해 각 가정은 꽃이 장식된 대나무 투브,,쌀,벼,옥수수,생강,모래,초를 가져오야 한다. 모든 마을사람들은 새코를 행하기위해 마을 중앙에 모인다.

새코절차
ㄱ. 장식된 대나무를 세우기 위해 구멍을 만든다.
ㄴ. 새코를 행할 주변에 꽃으로 장식한다.
ㄷ. 중앙에 씨를 놓는다.                                                                 

ㄹ. 그리고 나서 초를 붙인다.

무당(샤먼)이나 노이이 죽은 동물에 공덕을 쌓고
용서를 빌기위해 축문을 읽는다.
게다가 모들 마을
사람을 위한 행복과 식물성장과 풍요를 기도한다.

호예(Hor Yae)

        라후 사람들은 조상,영,신 또는 우사를 숭배한다. 거의 모든 마을은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는 호예가 있다.  호예는 불교 절과 비슷하고 대게 종교 수장 토보(Dto Bo)'가 거주하는 가까운 고지에 있어서 호예를 보고싶다면 토보가 사는 곳에 가서 말을 하면되다.

호예에서 중요한 것

            가장 중요한 것은 제단 또는 '카파테(Kapatae)'인데 이 곳은 우사와 토보가 대화하는 곳이다. 나무새 쌍,남자,'나나부 준개(Nanabu Ju-ngae)'그리고 여자,'나시 준개(Nasi Ju-ngae)'가 물 웅덩이 또는 '리데(Lide)' 가까이에 놓있다.  라후 사람들은 이 2두새가 신의 소유물이고 이 새들이 죽은 사람의 영혼을 되돌려 올 수 있다고 믿는다. 15세기에 한 달에 두번 상현달 기간동안 토두는 '리데'를 채웠을 것이다. 요즘 라후 사람들은 종교적인 관습을 준수하고 행하는 것은 그만 두었다. 호예에서 공덕을 쌓고 종교 의식을 위해 몇 가지 준비한다. '포이(Poy)' 식 또는 '자쿠(Jaku)' 춤을 춘다. 사람들은 춤을 더 많이 출수록 더 많은 공덕을 쌓는 다고 믿는다.

종교 집례자

           종교 선생이자 신(Uusa)와 마을 사람들과의 의사전달 수단인 토보는 기도하고 축문을 읽는 사람이다. 토보는
친절하고 수용적이기 때문에 호예를 돌봐야하는 의무가 있고 토보가 되기 위해서 그는 신내림을 받아야 하고 신과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라후족은 다른 종족과 구별되는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는데 아지까지 조상들의 방식을 굳거니 지키고 이어오고 있다. 라후족은 그들의 문화와 삷의 상태가 가장 잘 보존되어있다고 우리는 말할 것이다.  라후인들은 종교적인 수장을 가장 존경하고 달이 차는 기간과 달이 지는 기간 15일 종교 의례를 위해 호예에 모이고 저녁에 속죄를 하고  신나게 밤에 춤을 춘다.

 

반잘래 고산부족 삶과 문화 센터(Ban Jalae Hilltribe Life and Culture Center)

       치앙라이 행정수도 치앙라이시로 부터 22km떨어진 반잘래(Ban Jalae)에 전통적인 라바 라후 마을이 있다. 반잘래는 후에이매사이(Huaymaesai) 폭포와 인접하고 아카,라후,미엔 부족 마을로 둘러쌓여 있다.  반잘래 마을 사람들은 여태까지 전통적인 신념을 고수하고 있고 정글 고산에서 수백년 이상 생존하면서 축천한 지혜의 근간이 되는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Similar to most tribal communities in Thailand, however, Ban Jalae is experiencing a rural exodus as restrictions on farming land force families to send their children and young adults to work in the city to make ends meet. Losing this generation to the city produces not onl y a strain on the social fabric of the village, but also an abrupt discontinuity in the Lahu culture and lifestyle that has been passed down for centuries. Most concerning, Lahu youth working in the city often simply reject all aspects of their culture as 'old fashioned'.
To address the dual problems of cultural erosion and lack of sustainable sources of income near the village, the Mirror Foundation and Ban Jalae chose to create the Ban Jalae Hilltribe Life and Culture Center. This multi-media center powered by solar energy combines displays about traditional Lahu culture, handicrafts and know-how with video presentations that show that the deep and intricate cultures of the tribal peoples in and around Ban Jalae are anything but 'old fashioned'.

          The Ban Jalae Hilltribe Life and Culture Center is very much a community endeavor. All artifacts in the Center come from Ban Jalae and surrounding Akha and Lahu communities, with each home in Ban Jalae donating at least one  item. The community also invested six months of labor to construct the four adobe buildings that comprise the Center. The villagers of Ban Jalae have made this investment so that they may not onl y share their culture with guests to the village, but in hopes that the Center will rekindle among hilltribe youth throughout Thailand an interest in tribal culture that has waned over the past generation.

매야요 소 행정기관,치앙라이 관광 당국과 하기 관대한 재정과 물품 지원에 감사합니다.
         록펠어 재단
         국제노동기구 (ILO/IPEC; 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
         싱가폴 국제기구 (SIF; Singapore International Foundation)
         고산부족 민속 박물관 @
www.hilltribe.org,  (록펠러재단 지원받는 미러재단프로젝트)
         워체스터 폴리테크닉 사(Worcester Polytechnic Institute)
         미러재단의 고산부족 친환경 관광 프로젝트 @
www.hilltribetour.com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힘과 비전을 위해 반잘래 마을을 알리고 싶습니다.

반잘래 고산부족 삶과 문화 센터는 전시실, 발표실,사진 및 예술 전시실 3개 홀이 있습니다.  전시홀에 과거에 현재가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주방시설,의복,다른 자료와 고산부족의 이주 지도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발표실에서 후에이 매사이(Huaymaesai) 마을에 있는 고산부족에 대한 삶의 방식,문화를 비디오를 상영합니다.
(민 또는 야호,아카 또는 에커, 라후 또는 무저)
         

사진과 예술 전시실. 고산부족 아이들의 사진 전시

[출처] 태국 高山지대의 라후族에게 한글을 보급하다   이현복 서울대 명예교수 2004

● 체질인류학적으로 한국인과 흡사
● 고구려 유민들의 후손으로 추정돼
● 한글과 유사한 언어 구조
● 글자가 없어 한글을 가르치는 작업 진행 중

李 炫 馥 서울大 명예교수
1936년 충남 보령 출생. 서울大 언어학과 졸업, 영국 런던大 박사. 現 대한음성학회 명예회장, 한국음성연구소 소장, 한국언어학회 회장, 서울大 언어학과 명예교수.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CBE 훈장 수훈, 제18회 세종문화상(학술부문) 受賞. 저서 「한국어의 표준발음」, 「한국어 표준발음사전」 등.

태국 북부에서 듣는 강원도 민요

<필자로부터 한글 음성문자를 배우는 라후族 사람들.>
 김치를 먹고 색동옷을 입는 태국 북부 고산지대의 라후(Lahu)族. 한글과 라후語는 놀랄 만큼 닮았다. 그래선지 음성언어만 있고 문자언어가 없는 라후族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일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중국이나 러시아 등지에 사는 우리 동포들은 우리나라에서 이주해 간 이민의 역사가 분명하고 그들의 말도 비록 여러 가지로 특이한 면이 있긴 하나 그래도 우리말의 여러 방언적인 차이를 보일 뿐, 분명히 우리말을 쓰고 있다.
 
  그런데 기록된 역사가 없는 동남아의 어느 高山族(고산족)이 쓰는 말이 우리 국어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면 흥미롭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민족과 해외 동포 이외에도 우리와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이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태국 북부와 미얀마의 북동부, 그리고 라오스의 서북부 및 중국 운남성의 남부 지역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황금의 삼각지대" (Golden Triangle) 주변에 흩어져 사는 산족중에  "라후"(Lahu) 족이 있다. 이들의 언어 역시 "라후어"라고 한다. 이들은 화전으로 농사를 짓고 쌀을 주식으로 하나 항상 먹거리가 부족한 실정이다. 태국인들이 가늘고 긴 알랑미로 밥을 지어 먹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과거에는 양귀비 재배로 소득을 올리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양귀비 재배가 법으로 금지되어있다.   필자가 접촉한 태국 북부에 사는 라후족은 국적이 없고 여권도 가질 수가 없어 해외 여행이 불가능하며 태국 안에서의 여행도 자유롭지 못하다.  
   
 라후族은 언어, 풍속, 생활 양식 등에서 인근의 태국인이나 라오스인, 미얀마인, 중국인 등과는 전혀 다른 고유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라후族은 얼굴의 생김새나 식생활이 한국인에 가깝다. 퍼슬퍼슬한 안남米가 아닌 둥근 쌀로 지은 밥에 김치 같은 반찬을 먹을 뿐 아니라, 축제 때에는 우리와 유사한 색동옷을 입는다.
 
  특히 음력 설 무렵의 축제는 라후인들에게 가장 즐겁고 풍요로운 잔치이다. 한껏 차려입은 젊은 남녀들은 마을의 공터에서 둥그런 원을 그리며 앞장 선 남자의 호로생 악기 연주에 맞춰 16박의 리듬으로 힘차게 땅을 내디디며 몸을 트는 춤을 춘다. 이런 축제가 젊은 남녀에게는 서로 짝을 찾고 사랑을 나누며, 결혼으로 이어지는 뜻깊은 기회가 된다.
 
  가톨릭 대학의 한승호 교수는 현지 조사를 통하여 라후族의 머리 형태를 조사 분석한 결과, 라후인이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짧은 머리형」과 「높은 머리형」을 가지고 있음을 밝혔다. 머리 형태는 형태학적으로 체질인류학적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한다. 라후族의 남자는 한국인과 비슷한 위턱 앞니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가톨릭 대학의 미생물학 교실 팀은 라후族의 혈청에서 백혈구 抗原(항원)을 검사한 결과, 한국인 등 몇몇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HLA-B59가 발견됐다고 한다.
 
  라후族은 민속 음악에 있어서도 한국의 민요와 맥을 같이 한다고 중앙대학의 전인평 교수가 지적했다. 해당 구절을 소개한다.
    『라후 셀레의 민요를 듣는 순간, 온몸이 얼어 붙는 듯, 등골이 오싹해진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이게 웬일일까? 수만 리 떨어진 태국 북부의 산 속에서 흡사 강원도 아낙네가 푸념하듯 내뱉는 노래가 들려 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사만 바꾸면 그냥 강원도 민요다. 노래의 장단, 노래의 시작하고 끝나는 법, 특히 잔잔한 우수가 깃든 음악의 정서가 완전히 일치한다. … 이러한 상관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라후語 「너레」는 한국어 「너는」과 같다
 
  특히 라후語는 그 구조가 한국어에 아주 유사하다. 소설가이며 문화탐험가인 김병호 박사는 라후族을 고구려의 유민으로 보고 있다. 羅唐(나당) 연합군에 멸망한 고구려의 유민이 당나라에 포로로 끌려갔다는 三國史記와 수만 명의 고구려 유민이 唐軍(당군)에 쫓기다가 운남성 부근에서 사라졌다는 중국 史書의 기록을 근거로, 그들 중 역경을 딛고 南으로 南으로 내려온 고구려인의 후예가 바로 라후族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쓰는 말 역시 고구려 유민의 언어, 즉 우리말의 일종이라고 본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매티소프(Matisoff) 교수는 『라후말의 구절 구조는 일본어와 한국어에 대단히 유사하다』고 했다.
 
  그러면 라후語가 우리말과 어느 면에서 유사하며,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너레 까울리로 까이베요」는 「너는 한국으로 간다」라는 뜻이다. 우선 이 문장을 이루는 낱말의 배열 순서가 「주어+보어+술어」로 한국어와 일치한다. 그리고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술부의 동사가 문장의 끝에 온다. 영어라면 「You go to Korea」이니 술어가 바로 주어 다음에 오게 된다. 독일어나 중국어도 마찬가지이다.
 
  「너레」의 「너」는 우리말의 「너」라는 대명사와 형태가 아주 유사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주격조사 「레」이다. 이는 북한(과거 고구려) 사투리에서 「내레, 너레」 할 때의 주격 조사와 연관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작의 방향을 나타내는 「로」는 현대 국어에서도 「서울-로」, 「김포-로」에서와 같이 일상 쓰이는 조사로서 형태와 기능이 일치한다.
 
  「간다」는 뜻의 라후말 「까이」도 한국어의 「가다」와 비슷하다. 「까울리」는 中國이나 태국 등에서 「고구려」나 「고려」를 뜻하는 말로서 바로 우리나라를 말한다.
 
  이렇게 볼 때, 라후말로 문장을 구성할 때는 우리말 순서대로 라후말 단어를 대입만 하면 되며, 단어 중에는 형태마저 같은 것이 있으니 더욱 친근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어휘에 있어서는 한국어와 유사한 말이 그리 많지 않다.
 
  상대를 부를 때 쓰는 호격도 우리말과 유사하다. 가령 한국어에서 인순이를 부를 때 「인순아!」 하듯이 라후 사람들도 「나시」라는 이름을 부를 때 「나시아!」라고 한다. 부르는 상대의 이름 다음에 「아」라는 어미를 더하는 것은 틀림없는 한국식이다.
 
  명사에 붙는 라후語의 소유격 「베」 역시 한국어의 「의」처럼 쓰인다. 「너베 예」는 「너의 집」이다. 분류사를 쓰는 방법도 같다. 우리말의 「소 두 마리」에서 「마리」를 분류사로 볼 수 있는데, 라후語에서는 「마리」에 해당하는 분류사 「케」가 「둘」을 뜻하는 수사 「니」 다음에 연결되어 「누 니 케」로 대응된다. 라후말 「누 니 케」와 우리말 「소 두 마리」는 그 구성이 똑같다.
 
 
  음성체계, 형태·통사론적 특성도 유사
 
  라후語는 음성체계도 한국어와 유사한 면이 많다. 음성체계가 유사하다는 것은 발음이 비슷하다는 뜻이다. 우선 자음에서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三重대립을 나타낸다. 가령, ㅂ/ㅍ/ㅃ 같은 파열음이 三重으로 대립하여 한국어에서 비/피/삐 같은 낱말을 이루어 내듯이, 라후말도 이같은 三重대립을 보인다.
 
  영어 등의 서양 언어가 b/p 의 두 가지밖에 구별을 안 해 bay/pay 같은 二重대립밖에 없는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실제로 라후語는 우리말에 없는 소리가 네댓 개 더 있다. 가령, 목젖으로 나는 소리는 한글로 표기할 수 없다.
 
  라후語의 모음 역시 한국어와 유사하다. 우리와 같이 이/에/애/아/오/우/어/으 같은 모음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소리 값 역시 아주 유사하다. 특히 다른 외국어에서 찾아보기 힘든 「으」나 「어」를 한국어와 라후語가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런데 라후語에는 제주도 말에 지금도 남아 있다고 추정되는 15세기 국어의 「아래 아」 모음이 하나 더 존재한다. 이 소리는 표준말의 「오」보다 입을 더 벌리고 혀를 내려서 내는 열린 모음이다.
 
  이렇게 볼 때 라후語는 한국어보다도 자음과 모음의 수가 더 많다. 그러나 라후語는 聲調(성조·목소리의 높낮이)가 7개나 있어서 우리말에 비해 복잡한 면도 있다.
 
  음성과 음운의 체계가 유사할 뿐 아니라, 형태론 및 통사론적 특성에 있어서도 라후語는 우리말과 유사한 면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언어학적으로 라후語는 「사이노-티베트(Sino-Tibetan)」라는 거대한 語族에 속한다. 더 자세히 말하면 이 語族의 한 분파인 「티베트-버마계」로 이어지며 그 하위 분파인 「롤로-버마계」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되고 있다.
 
  한국어는 알타이 語族에 속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그렇다면 語族的으로 전혀 계통을 달리하는 라후語가 어찌하여 한국어와 유사성을 지니는지 큰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라후語는 과연 한국어와 계통이 같은 언어인가? 아니면 단지 유형적으로 유사성을 지니는 것인가? 아니면 역사적으로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우리말과 유사한 면을 지니게 된 것인가? 이러한 의문을 풀려면 먼저 라후語 자체에 관한 언어학적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어서 라후語에 대한 정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어와 구조적 특성을 비교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라후族과 한국인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서도 앞으로 계속 연구 검토해야 할 문제이다.
 
  라후族은 고유의 언어인 라후語를 쓰고 있으나 이를 표기할 글자가 없는 無文字 고산족이다. 일부 기독교로 개종한 라후의 젊은이들은 선교사들이 만든 로마자 표기를 이용해 라후말을 적기도 한다. 그러나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기독교의 영향을 받지 못한 대다수의 라후인들은 아직도 글자를 모르고 음성언어에만 의존하고 산다.
 
  이같이 문자가 없고 기록이 없으니 이들은 자신들의 뿌리와 역사에 대한 기억도 겨우 口傳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라후族은 자신의 조상들이 아주 먼 옛날 흰 눈이 내리는 추운 곳에서 왔다는 정도로 내력을 알고 있을 뿐이다.
   
  국제한글음성문자」로 해결
 
  필자는 1994년 태국 북부 치앙마이市 인근의 산중에서 라후, 아카, 리수 등의 山族 마을에 처음 들어가 보고 놀라움과 함께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난 40여 년 동안 필자는 영국을 비롯한 서구 여러 국가와 일본 등 문명사회의 언어와 문화에 관심을 가져왔다. 문명을 등지고 사는 오지의 사람들과는 만나본 적이 없었는데, 가난하지만 순박하고 여유롭게 사는 그들의 모습에서 연민과 함께 일종의 동경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필자는 특히 고구려의 후예일지도 모른다는 라후族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라후語를 조사·연구하며 우리말과 관련성을 비교 검토하는 데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필자는 그 과정에서 고유의 글자가 없는 라후族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어 그들이 자유롭게 글자생활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라후語의 음성체계를 볼 때 라후語를 표기하는 데 한글 이상으로 적합한 글자가 없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두 언어의 음성체계가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라후語에는 우리말과 일치하는 모음이 8개나 되고, 자음에서는 18개가 대응되니 몇 개만 더 보완하면 해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라후語가 한국어보다 모음과 자음의 수가 많은 것이 문제이다. 우리말은 모음 8개, 자음 19개를 적을 수 있으면 되나 라후語는 모음이 9개, 자음이 23개는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현행 한글 자모만으로는 라후語를 완벽하게 적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오래 전에 필자가 고안해 발표한 「국제한글음성문자」 중에서 라후語에 필요한 기호를 택해 추가하는 방법으로 라후語의 한글 표기 체계를 완성하였다. 국제한글음성문자는 한글을 바탕으로 개발한 발음기호로 이를 이용하면 세계 모든 언어의 발음을 정확하게 적을 수 있다. 가령, 현행 한글 자모로는 서양어의 f, v, th, sh 같은 소리를 적을 수 없으나 국제한글음성문자로는 이런 소리를 모두 적어 낼 수 있다. 라후語에는 목젖 소리나 우리말의 「오」보다 입을 더 열고 내는 모음이 있는데, 이들을 현행 한글로는 적을 수 없으니 이에 해당하는 한글 음성기호를 골라 활용하게 된다.
 
 
  라후인들의 한글 습득은 성공적
 
  라후語에 맞는 한글 표기체계를 마련하는 것과 이를 라후인에게 가르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우리나라에 훌륭한 한글이 있었어도 실제로 이를 배우지 못한 눈 뜬 장님이 많았던 것처럼, 라후말을 적을 수 있는 한글 음성문자 체계를 만들어 내도 이를 실제로 가르치고 학습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는 일이다.
 
  라후의 어른들은 아편이나 피우며 無爲徒食(무위도식)하는 하는 이들이 많고 여자들은 집안일, 밭일 등으로 시간적인 여유가 없으니 억지로 불러 앉힐 수도 없는 일이다. 결국 무리 없이 가르치기 좋은 층은 어린이들이며 여기에 일부 청년들과 여인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라후인의 한글 습득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진도가 빠른 사람들은 며칠간의 학습으로 자신과 가족의 이름이며 마을 명칭 등을 한글로 쓸 수 있고 일상의 간단한 표현을 적어 낼 수 있게 되었다. 15세기에 우리 고유의 문자가 없이 어려운 漢字에 고통을 겪던 우리 민족을 위하여 창제한 훈민정음이 21세기에 이르러 동남아의 오지에 사는 高山族의 손으로 쓰이고 있다니, 그것도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적는 데 쓰이게 된 것이다. 이것은 바로 한글의 국제화이며 동시에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펼치는 길이기도 하다.
 
  라후인들이 한글을 쉽게 익힐 수 있는 데는 두 가지 큰 이유가 있다.
 
  첫째는 한글이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ㄱ」을 배우면 「ㅋ」과 「ㄲ」을 쉽게 배우듯 한 글자를 배우면 이와 글자 모양이 유사한 글자를 쉽게 배우고 기억할 수 있게 한다. 만약에 로마자로 한다면 「g」와 「k」라는 전혀 다른 두 개의 기호를 익혀야 하는 부담이 있다.
 
  둘째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라후語가 한국어와 같이 三重대립을 보이므로 한글로 대응시켜 적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합리적이다. 로마자 「g」와 「k」만 가지고는 라후語의 세 가지 소리 「ㄱ」, 「ㅋ」, 「ㄲ」을 간편하게 적어 낼 수가 없는 것이다.
 
  라후族을 대상으로 한 한글보급운동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깊은 산 속 이곳저곳에 마을을 이루고 사는 수만 명의 라후族을 대상으로 한글 교육을 하려면 많은 교사와 긴 세월의 노력이 필요하다.
 
  라후族이 진정 고구려의 유민이라면 우리는 1300년의 긴 단절 끝에 우리의 동포를 다시 만난 셈이다. 글자를 모르는 이들은 한글을 학습할 권리가 있고, 우리는 그들에게 자랑스러운 한글을 전수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한글은 그들의 글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라후族은 태국 북부와 미얀마의 북동부, 그리고 라오스의 서북부 및 중국 운남성의 남부 지역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황금의 삼각지대(Golden Triangle)」 주변에 흩어져 산다. 이들은 화전(火田)으로 농사를 짓고 쌀을 주식(主食)으로 하나 항상 먹을거리가 부족한 실정이다. 과거에는 양귀비 재배로 소득을 올리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양귀비 재배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필자가 접촉한 태국 북부에 사는 라후族은 국적이 없고 여권도 가질 수 없어 해외여행이 불가능하며 태국 안에서의 여행도 자유롭지 못하다.
 
  라후族은 「검은 라후(Lahu Na)」, 「노란 라후(Lahu Shi)」, 「붉은 라후(Lahu Ni)」와 「라후 셀레」로 나뉘어 방언적인 차이를 보이는데, 이 중에서 「검은 라후」의 말이 대표적인 표준말로 널리 통용된다. 전체 인구는 60여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 중에서 중국에 36만 명, 미얀마에 20만 명, 태국에 6만 명, 라오스에 2000명 정도가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양신을 믿고 호랑이를 숭배
 
  해발 1200m 이상의 높은 산 속에 사는 라후族은 대나무를 엮어 만든 단순한 집에서 산다. 한쪽 면을 산비탈에 맞대고 마룻바닥을 땅에서 들어 올려 높다랗게 지은 대나무집 아래와 주변 마당에는 닭, 개, 돼지 등의 가축이 사람과 어울려서 사는 모습이 정겹기까지 하며 옛날 우리나라 산골 농촌의 풍경과 그리 다르지 않다. 단순하고 작은 집이긴 하나 집집마다 방안에는 취사를 위한 부엌 세간이 있고 한 쪽 위에는 간소한 神壇(신단)이 마련되어 있어서 그들의 토속 신앙을 엿볼 수 있다.
 
  라후族은 태양신을 믿고 호랑이를 숭배하는 부족이다. 태국인들은 라후族을 「뭇수르(mussur)」라고도 하는데, 이는 예로부터 활을 잘 쏘고 사냥을 잘하는 데서 붙여진 「사냥꾼」이라는 뜻이다.
 
  길게 연결한 대나무 대롱에 산골짜기의 물줄기를 실어 집 마당까지 끌어 들여 식수로 쓸 뿐 아니라, 세면과 목욕에까지 이용하는 생활의 지혜에 절로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태국인들은 높은 산 속에서 가난하게 사는 라후인들을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으며 깔보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배운 것 없이 산 속에서 곤궁하게 사는 山族들이니 그렇게 대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라후族이라고 제대로 된 농토를 원하지 않겠는가! 넓고 편편한 땅을 개간하여 농사를 짓고 싶지만 심산유곡에서는 어려운 일이고, 산을 내려와 평지에 접근하면 태국인과 마찰을 빚고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으니 이 역시 불가능한 일이다. 라후인이 산 아래 쪽으로 내려와 버려진 땅을 밭으로 개간해 놓으면 이를 빼앗으려는 태국인과 마찰을 일으키게 마련이고 때로는 살인사건이 빚어지기도 한다.
 
  라후族은 이렇게 험난한 생활을 꾸려 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린 딸을 싼 값에 팔아 넘기는 부모가 적지 않다. 겨우 14~15세가 될까 말까 한 나이가 되면 가난에 찌든 부모, 특히 아편에 중독된 아버지는 돈 몇 푼에 쉽게 딸을 팔아 넘기곤 한다. 태국인, 중국인 등 외국인에 팔려 가는 경우가 많으며, 근래에는 방콕 등 대도시의 유흥가로 흘러 들어가는 일이 적지 않다.
.소개
태국 북부도시 치앙라이(Chiangrai) 시내에서 3시간정도 떨어진 산속에 거주하는 민족. 태국 북부와 중국 운남성,미얀마 등지에 넒게 퍼져 분포하고 있다. 예전에 태국 마약지대로 유명한 황금의 삼각지대(golded triangle area) 고산지역으로 마약왕 쿤사가 미얀마 정부대항으로 샨족 독립을 전개하다가 정부군에 소탕되고 2007년에 죽었다.
 
라후족은 원래 티벳과 가까운 중국의 운남성일대에서 살았다. 후에 중국 정부당국과의 분쟁에 휘말리게 되어 남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한족의 압제에 견디다 못한 대부분의 라후족은 미얀마로 넘어갔고, 그 일부는 태국과 라오스로 넘어와 정착하게 되었다. 라후족은 19세기에 들어와서야 태국으로 넘어왔다. 오늘 날 대부분의 라후족은 북부지방인 치앙라이, 치앙마이, 매홍손 등지에 살고 있다.
 

라후족의 태국식 명칭은 '무서 (또는 무수르)' 인데 이는 "사냥꾼"이라는 뜻의 미얀마어에서 따온 말이다. 하지만 모든 라후족은 무수르라는 명칭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라후(拉祜; Lahu)"라고 부르고 있다. 라후족에는 라후 니(붉은 라후), 라후 나(검은 라후) 라후 시(노란 라후) 라후 푸(흰 라후) 및 라후 셸레 등의 하위부족이 있다. 그런데 이들의 생김새뿐만 아니라 언어구조가 우리와 너무 흡사하다는 것이다.


 [라후족 거주 지역: 주황색 경계선으로 마약으로 유명한 황금의 삼각지대]

이현복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명예교수의 말
"라후족의 언어는 우리의 언어구조와 매우 비슷하다. 미국의 마티소프교수가 라후족의 말의 문장구조가 한국이나 일본의 문장구조와 아주 유사하다고 이미 밝힌 적이 있다. "

라후족 언어

우리말

나흐(1인칭 복수,We)

우리

너희(2인칭 복수,You)

너희(당신들)


2. 라후족의 한민족 생활과 유사점
첫째, 인절미 만들기
        절구통에 찐 찹쌀을 넣고 깨를 묻힌 덕방아를 넣고 찧는 것이 우리의 인절미 만들기과 똑같다.
둘째, 어린이의 놀이(공기놀이)
       공기놀이라는 것을 하는데, 작은돌들을 던지며 노는 것이 우리의 공기놀이와 아주 똑같으며,
       1단에서 5단에 이르기까지  의 과정이 동일하다.
셋째, 비석치기(사방치기)
      우선 손 바닥 뒤집기로 편을 정하고 가위, 바위, 보로 순서를 정한다. 편이 정해지면 손으로 정교하게 굴려서 맞추면
      이기는 놀이로 우리의 비석치기(사방치기)와 동일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편평한 돌을 이용하여 놀이를
      하는데   비하여 이들은 열대의 납작한 열매를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아이들은 우리의 전통 팽이치기와 같은
       놀이를 하면서 논다.

넷째, 라후는 고생을 해서라도 부슬부슬한 안남미보다는 찰기가 있는 찹쌀로 지은 밥을 먹으려 든다. 
        때문에 라후족의 마을에서는 항상 찰기진 밥을 먹을 수 있기도 하다. 라후족에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된장이나 김치 
        등도 있다. (물론, 고춧가루가 없는 하얀 배추절임같은 것이다. 한국의 김치가 붉은 것은 고춧가루가 한국에
        들어온 이후부터이다.)

  [라후족 여자아이들의 비석치기 모습, 뒤에 새해 대나무 제단 ]

  [ 대나부 제단의 음식들 :우리나라 고사 때에도 빠지지않는 돼지머리]

 
[라후 셀레 여인의 색동 옷; 시계를 차고 있는 것을 보니 라후이 족이 아닌 것 같음]

관련 동영상 연결
KBS1 한민족 리포터 [태국 치앙라이 사랑 김병호박사님]
KBS1 뉴스[태국 소수 민족 라후족의 설 맞이]
KBS1 뉴스 [태국의 고구려 후예 라후족]


다른 참고할 만한 글
라후의 여인네들 역시 어릴때부터 자수를 비롯한 뜨개질을 배운다. 처녀들은 부지런하여, 자신이 입을 옷 이외에 미래의 신랑이 될 사람의 옷까지도 미리 만들어 두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남자들 역시 부지런하여 이른 아침부터 밭에 나가 일을 시작한다.
- 라후족에게 있어 음악과 춤은 생활속에 배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항상 즐거운 노래소리가 울려퍼지는 마을에는 축제도 자주 벌어진다. 축제날이 되면, 여자들은 그동안 준비해 두었던 예쁜 옷을 입고나와 춤을 추고, 남자들은 풀잎으로 피리를 만들어 음악을 연주한다. 대나무를 이용해 '여러개의 관이 달린 스코틀랜드식의 피리'와 비슷한 것을 만들어 불기도 한다.

- 마을 사람중에 한명이 병이 나면, 사람들은 그 주위에 모여 춤과 노래를 부르는 의식을 하여, 악귀를 쫓아 낸다. 마을의 부족장은 제사장의 역할을 함께 하여 결혼이나 장례를 주관하고, 길흉을 점치기도 한다. 부족장의 권한은 막강하여, 마을은 부족장의 이름을 따서 짓는다. 따라서 부족장이 죽거나 새로운 부족장이 들어서면, 마을의 이름도 바뀌게 된다.
- 라후족은 콩을 쑤어서 만든 된장을 먹는다. 우리나라의 된장과 거의 흡사한 것이며, 야채를 소금에 절인 '와찌' 라는 것도 먹는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김치와 비슷한 것이다. 명절이 되면, 찹쌀을 대나무통에 넣고, 숯불속에 넣어 밥을 쪄 먹는다.
- 라후족의 음식은 김치·된장 등 우리 음식과 비슷한 것이 많아 잘만 찾아 먹으면 식사때 고민스럽지 않다.불편한 점은 무엇보다 고도가 높아 도착해 며칠동안은 고산병 증세가 나타난다는 것이다.머리가 띵하고 무기력해진다.

★ 잊혀진 우리 핏줄 아카 라후 리수
- 소수 민족을 연구해온 학자들은 태국의 고산족이 고구려가 멸망한 후 당나라 군사에게 포로가 되어 잡혀가 오지에 버려졌던 고구려의 후손들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고구려 본기에 의하면 당나라 고종이 고구려인 3만 8천 3백호를 잡아가 중국 남쪽 광막한 땅에 옮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 학자들뿐 아니라 소수민족 출신의 호례극이라는 중국 학자도 같은 의견을 내놓는다. 이들 고산족들은 고구려 사람들이 그랬듯이 남자가 처가살이를 하고, 결혼 때 닭을 옆에 두고 식을 올린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은 것도 우연으로 돌릴 수만 없는 고구려 옛 풍습 그대로다. 아카족 같은 경우는 구슬을 머리에 달고 장식하기를 좋아하는데 이 또한 예사로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중국 후한서에 '동이족은 구슬 장식을 즐긴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 북한 사투리 '나 메홍손 가메'
학자들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한국 여행자들이라면 이들이 우리 핏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명절 때 색동옷을 입는 것이 그렇고 태국 사람들은 별로 좋아 하지 않는 끈기있는 찰벼를 산간에서 재배하는 것도 그렇다. 된장이나 김치를 담가먹는 것까지 우리를 닮았다. 무엇보다 신비한 것은 이들의 말이 중국이나 태국말처럼 주어 동사 목적어 순이 아니고 우리말처럼 주어 목적어 동사 순이라는 것이다. 라후족이이나 아카 리수족이 한결같이 나를 '나'라고 하고 너를 '너'라고 하는 것을 들으면 숨이 막힐 지경이 된다. 지구상에 한국인 말고 어느 민족이 "나"를 "나"라고 하고 "너"를 "너"라고 할 것인가 말이다."나 매홍손 가이메이" 라후족의 말로 "나 매홍손에 간다"는 뜻이다. 이 말을 어찌 들어보면 "나 매홍손 가메" 라는 이북 사투리만 같지 않은가? 어쨋든 이들을 만나면 우리와 같은 핏줄일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들을 우리 민족이 아니고는 세계의 어떤 민족과도 동일시할 수 없을 것이다.

★ 우리와의 유사점
- 외모도 태국보다는 우리네와 더 비슷했다.
- 집안의 아궁이를 쓰는 것도 우리네와 닮았다.
- 명절 때 색동옷을 입는 것
- 태국 사람들은 별로 좋아 하지 않는 끈기있는 찰벼를 산간에서 재배하는 것.
- 된장이나 김치를 담가먹는 것까지 우리를 닮았다.
- 이들의 말이 중국이나 태국말처럼 주어 동사 목적어 순이 아니고 우리말처럼 주어 목적어 동사 순이라는 것이다.
- 고구려 사람들이 그랬듯이 남자가 처가살이를 하고, 결혼 때 닭을 옆에 두고 식을 올린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은 것도 우연으로 돌릴 수만 없는 고구려 옛 풍습 그대로다. (형사취수제)
- 라후족·아카족 등이 개고기를 먹는다.
- 라후족도 아기를 낳으면 문밖에 인줄을 쳐 일정기간 외부 사람들이 집안으로 못 들어오게 한다고 했다.라후족의 인줄은 지푸라기를 사용해 왼새끼를 꼰 후 새끼줄 사이사이에 창호지·숯·빨간고추(사내아이의 경우)·푸성귀를 꽂아 놓는다.그런데 탐사팀을 놀라게 한 것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인줄에 푸성귀를 꽂았다고 하는데 라후족은 지금도 푸성귀를 꽂는다는 사실이었다
- 라후족의 명절이나 제사에서 찾을수 있는 유사성
라후족의 설은 우리나라 처럼 1년중 가장 큰 명절로 떨어져있던 가족과 만나고 이웃 부락과의 교류를 통해 한해동안의 풍년과 평온을 기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특정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농사에 적절한 시점에 따라 부락마다 해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명절을 보내는 일반적인 모습에는 많은 유사성이 보인다.
'까끄뵈'라는 라후족의 새해 첫날 아침에는 세심하게 만든 색동옷을 입으며, 마을한가운데 제사음식을 올려두고 발을 엇갈리면서 주변을 도는 것은 땅을 밟아 땅의 신을 자극하여 한해의 평온과 풍년을 기원하는 단체 의식을 치르는 데 이것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전하는 고대 마한의 제천의식을 연상시키는 지신밟기와 비슷하다.

분명히 우리와 많이 닮았다. 또다른 우리와 닮은 사실. 그들이 마련한 고사상을 보면 알 수가 있는데, 고사 음식으로 찹쌀과 깨를 섞어서 만든 인절미와 웃는 돼지머리를 사용한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고사상에 돼지 머리가 놓이면 마을의 최고령 노인이 축복의 메시지를 전한다.그러면 마을사람들이 모두 어울려 춤과 노래로 즐겁게 마무리를 한다.
 
라후족
우리말
나래 너 서울로 까이요?
나와 너 서울로 갈래?
나래너 타 도죠베요
나는 너 좋아해
나터 너터
나도 너도
서울에 방콕까가 까이요
서울에서 방콕까지 가요
나래 서울로 까이요
나는 서울로 가요
까이라 라베라
가려나 오려나
오빠
아빠
나흐 어이언니
우리 언니
나게 라오
나에게 와요
 
서울대 이현복 교수의 말
"일설에는 고구려가 망할 때, 당나라에서 고구려 유민 10만명을 포로로 끌고 갔는데 이들이 중국을 거쳐서 태국까지 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으나, 자세한 것은 연구가 이루워져야 한다. "
라후족이 우리말과 유사한 문장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우리모두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지금은 태국말과 라후족언어를 모두 사용하고 있다. 서울대 이현복교수가 이들의 우리민족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과 동일한 생각이나, 그들의 기원에는 다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우리민족의 일부인지는 생물학적, 유전학적연구와 사료에 대한 검증이 있어야 하겠지만.
이들이 우리말을 지니며 살아 왔던 것은 이들이 오지에 고립되어 살다보니 기존의 언어와의 충돌이 상대적으로 적어 고유의 언어를 간직하며 살아 왔을 것이다. 또한, 고구려의 유민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역사스페셜에서 방송된 바와 같이 백제의 유민이 아니었을까?
백제 22담로의 비밀에서 방송한 바와 같이 백제는 동남아지방에 많은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또한, 중국 남부에는 아직도, 백제마을, 백제현등의 이름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연구의 대상이라고 본다. 백제가 동남아등지에 건설했다는 담로등에 거주하던 모두 백제인이 하루아침에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원주민에 동화되어 더 이상 순수성은 찾아보기 어렵겠지만, 라후족과 같이 오지에 고립되어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의 문화와 언어를 일부 남아 간직하고 있지 않은 것인지 진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스라엘은 얼마전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유태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이스라엘로 이주시키는 작업을 하였다. 그들이 이전에 성서에 기록된 바를 토대로 추적하여 고대에 이주한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근거를 바탕으로 말이다. 물론, 여기에는 정치적인 면도 고려하여야 하고 등등 반드시 우리가 따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상기시켜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간단하게 잊어 버리고 있다. 위의 사실을 모두 단지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이후에 연구가 이루워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데 대해서 연구하지도, 한 바도 없다. 오히려 다른 나라 사람이 우리에게 그러한 사실을 거꾸로 제공하는데도 우리의 관심에는 변화조차 없다. 물론, 연구를 강요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계승자인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 관련글과 말
- 실크로드, 길 위의 노래/전인평 지음/398쪽 소나무
   "‘고구려 유민의 후손’설이 제기되고 있는 태국 라후족의 노래가 강원도 민요와 유사하다는 분석도 눈길을 끈다."
- 소설 치망마이 / 김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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