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한의 소국가운데 목지국(目支國 ) 이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이 나라는 월지국(月支國) 혹은 월씨국(月氏國) 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옛 마한땅에서 나와 백제의 제후국으로 편입되었던 월지국은
현재 강단사학에서 충청남도 직산(稷山) 일대라고 비정하고 있습니다.
백제 또한 마한땅에서 나왔으며, 강단사학은 백제땅을 현 전라도와 충청도로
비정하고 있으므로 이것은 큰 오류는 없는듯 보입니다만
월지국이 충청남도 직산이 되어야 하는 어떠한 근거나 이유도
설명하여 주고 있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단지 지역을 비정함에 있어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라는 정도로 해석하고 있지요
월지국은 불교와 밀접한 관련을 많이 보여주고 있는데,
신라와 가야등의 나라를 포함하여 수많은 소국들에게 불교를 전파하고 있으며,
신라유물인 청동여래입상 (靑銅如來立像,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06호)이
월지국에서 전래되었으며, 원효가 극진히 모셨다는 관세음보살상 또한
월지국에서 표류하여 온 것으로 사서들은 기록하고 있는것으로 보아
월지국은 불교문화의 진수를 가진 국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교에 관한 기록중 천독(天毒) 또는 천축(天竺)이라 함은 수미세계(천국)을 의미하는데
산해경에서 조선을 천독이라 칭하면서,
인도를 남천축(南天竺)이라 하고, 월지국(月支國)을 북천축(北天竺)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신라의 시조 김수로왕은 인도여자인 허태후랑 결혼하였는데,
월지국에 갔다올 때, 인도에서만 나는 파사석을 싣고 오자 아무 사고없이
건너오게 되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원효대사가 이 돌을 가지고 석탑을 지었는데,
이것이 경상남도의 보리암전 삼층석탑이라고 강단사학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 은
신라와 가야에 불교를 전파하는데 종종 등장하는 이 월지국과 동명의 나라가
한반도 월지국과 같은 시기에 감숙성 쪽에 엄연히 존재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월지국 또한 한반도의 월지국과 마찬가지로 월지국 대월씨국 목지국 등으로
불리웠으며, 대륙에 대한 불교 전파에 막대한 영향을 하고 있음을
여러 사서들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월지국(月支國, 달지국:목지국)은 서역 말로 또는 월씨국(月氏國))이라고도 하며,
서역(西域, 마한)의 큰 왕국이다.
이 종족은 원래 중국의 감숙성 돈황과 기련(祁連) 사이에 살다가
BC 174년에 흉노에게 쫓겨 이리천(伊犁川)과 실타리야천(悉陀犁耶川)의 상류인
열하(熱河)의 남방으로 옮겼으나 BC 158년경에 다시 오손(烏孫)의 침략을 받아
지금의 사마르칸트 지방에 근거를 정하고 새종(塞種)을 정벌(征伐)하고 위수(위水) 연안의 대하국(大夏國)을 정복하여 대왕국을 건설하였다.
제3세 가니색가왕(迦 色迦王) 때에 세력이 크게 떨쳐 서쪽으로는 페르샤(이란)의 동부에서부터 중앙아세아 인도에 걸친 건타라(乾陀羅) 왕국이 되자 불교의 외호자(外護者) 가 되고 500명의 아라한(阿羅漢)을 모으고 대비파사(大毘婆沙)를 편찬함. 그 후 불교가 대성(大成)하여 지루가참(支婁迦懺)등 많은 스님들이 중국에 불경을 전하고 지양(支亮), 지겸(支謙), 법호(法護), 지법도(支法度), 지도근(支道根),지시륜(支施崙) 또는 지성(支姓)의 저자(著者) 모두 월지국(月支國) 사람들이다. 이 나라가 멸망한 것은 미상이나 5C경으로 보고 있다
- 불교사전
진시황이 죽고 항우와 유방이 패권을 다투고 있을 때, 지나대륙 북쪽 흉노에서는
월지국에 볼모로 잡혀있던 모돈이 탈출하여 아버지 두만선우를 죽이고 스스로
선우(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지나대륙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동호를 공략하고 월지국을 침략하여
흉노의 세력을 엄청나게 키웠으며, 진시황때 빼앗겼던 오르도스 지방(중주지방)
을 모두 되찾았습니다.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였을 때, 모돈선우는 군사를 일으켜 한나라를 치게 되고,
유방은 신하를 자청하면서 흉노의 준속국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흉노에게 엄청난 핍박과 차별을 받게 되지요.
이에 흉노에 대한 복수에 이를 갈고 있던 한나라는 한무제때 드디어
흉노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던 월지국과 동맹하여 흉노를 치게 되며,
여기서 곽거병과 위청은 한나라의 숙원이었던 흉노정벌이라는 유구한 공을 세우게 됩니다.
(여기서 포로로 잡힌 흉노 휴도왕의 아들이 김씨의 시조되시는 김일제입니다)
위 내용은 지나사서에 기록된 월지국에 대한 내용이며, 이 월지는 감숙성 지방에
존재하면서 한나라와 긴밀히 협력, 흉노를 공략함을 알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이야기해서 월지국은 충청도에 존재했던 소국이 아닙니다.
월지국은 위의 역사에서 나온바와 같이 감숙성과 서역(돈황)에 존재했던 국가이며,
불교가 전파되는 교역로의 역할을 한 국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충청도는 북축천이 될 수 없습니다.
월지가 감숙성 돈황, 즉 현재의 위구르 지방에 존재하여야만
인도가 남천축 월지가 북천축이 될 수 있으며,
불교가 전파되는 교역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불교는 전한(前漢) 애제(哀帝) 원수(元壽) 원년에 월지국을 통하여
지나에 전파되었다고 역사서는 설명하고 있으며,
한무제 때 월지국으로간 장건 또한 지나의 불교전파에 영향을 크게 주었다고
주류사학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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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은 토하르 왕국의 음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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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이태수 조회수 : 267 08.06.10 04:05 http://cafe.daum.net/chosunsa/1Wte/14
돈황은 토하르 왕국의 음차 Dunhong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It has been suggested that this article or section be merged with Yuezhi#Origins. (Discuss) ------------------------------------------------------- The Dunhong (Chinese: 敦薨; pinyin: Dūnhōng) mountain according to the Shanhaijing is a mountain of the Tian Shan range. Lin Meicun identifies it with the Dunhuang (Chinese: 燉煌; pinyin: Dùnhuán) of the Shiji by Sima Qian which states that: "The Yuezhi originally lived in the area between the Qilian Shan or Tian Shan and Dunhuang, but after they were defeated by the Xiongnu they moved far away to the west, beyond Dayuan, where they attacked and conquered the people of Daxia",[1] The present Dunhuang (Chinese: 敦煌, 燉煌; pinyin: Dūnhuán, Dùnhuán), a Gansu oasis town, was founded around 111 BC, that is, later than the report of Zhang Qian on the Yuezhi (126 BC), which Lin Meicun takes to prove that the Dunhuan of the Shiji cannot refer to city currently bearing that name, but rather to an oasis near Turfan. He further argues that Dunhuan is the Chinese spelling of Tuharan (Tocharian), and also constructs a Tocharian etymology for Qilian, which according to a Tang Dynasty commentator of the Shiji is a Xiongnu word for "sky". 돈황: 돈훙(敦薨)산은 산해경에 의하면 천산의 지맥(支脈)이다. 린메이춘은 돈훙과 사마천의 사기에서 말하는 돈황(燉煌)은 같다고 여긴다. 사기 왈: “월지족은 원래 기련산 또는 천산과 돈황사이의 지역에 살았으나, 흉노에게 패배한 후에 서쪽으로 대완(大宛)을 넘어 멀리 이주하였으며, 그곳에서 대하(大夏)를 공격하여 정복했다.” 현재의 돈황(敦煌, 燉煌)은 감숙성 오아시스 도시로 기원전 111년경에 설치되었으며, 즉 기원전126년의 월지족에 대한 장건의 보고서보다 더 늦은 것이며, 린메이춘은 증명하기를 사기의 돈황은 현재 그 이름을 갖는 도시를 가리킬 수 없으며, 오히려 투르판 근처의 오아시스를 가리킨다. 그는 더 나아가 주장하기를 돈황은 투하란(투하라 왕국/토하르족 언어)을 음차한 것이고, 또한 돈황은 기련(산)에 대한 토하르족 어원을 구성하는데, 기련은 사기(史記)의 당나라 주해에 따르면 흉노 언어로 ‘하늘’을 뜻한다. -------------------------------------------------- 위 문장을 분석해보면 천산이 기련산입니다. 기련은 흉노어로 ‘하늘’을 뜻하므로 천산(天山)이 됩니다. 돈황은 토하라 왕국을 음차한 것입니다. 토하라 왕국은 영문 위키에서 천산서북쪽에 있었던 왕국으로 월지족입니다. 위 문장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돈황은 기원전111년경에 설치되었고, 장건의 서역 탐사는 기원전 126년이라 했습니다. 장건의 서역 탐사는 보통 알려진 내용으로 서역은 파미르와 천산 서쪽입니다. 그렇다면 돈황은 월지족이 사는 곳에 있으므로 돈황의 위치는 천산 서북쪽이 되는 것입니다. 린메이춘은 과감한 주장하기가 머쩍어서 돈황을 잠시 투루판으로 비정하고 있으나, 내용을 살펴보면, 은근히 천산서북쪽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돈황은 토하라 왕국의 음차이므로 돈황은 명백히 토하라 왕국을 가리키는 것이며, 현재의 돈황이 될 수 없습니다. 영문위키에 근거하여도 페르가나 계곡 서쪽입니다. 천축국의 의미도 천산주변의 월지족 국가를 뜻합니다. 토하라 왕국을 살펴보면 힌두신화와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위치로는 천축국은 서역에 있으므로 카스피해 부근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천산 역시 카스피해 부근이 되는 것입니다. 현재의 천산 지명은 고의로 날조한 지명은 아니고 민족의 이동에 따라 붙여진 자연스런 지명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상고시대의 천산의 위치는 어느 시점에서는 카스피해 부근이 되는 것입니다. 토하르족의 정착지로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 터어키 등입니다. 돈황은 토하르 왕국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돈황의 위치는 이란 터어키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현장은 도화라(覩貨羅)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Kurukshetra War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는데, 고대 거록 전쟁은 힌두신화의 Kurukshetra평원의 전쟁과 닮았습니다. 검토해보시기 바람니다. 시간이 있으며 이 내용을 올려보겠습니다. 쿠룩쉐트라 평원이라고 하는데, 줄여서 쿠루 평원의 전투라고 합니다. 마하바라타에 나오는 고대 전쟁으로 엄청난 큰 대전(大戰)입니다. 거록과 탁록은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거록 전쟁 관련 글을 올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