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tong.nate.com/hanger99

**  중국인들의 조선의 중국영토사실을 증명함.

  21.  장계석 총통이  (대한독립군)임시정부 의 이시영 전 부통령에게


   중국 전체가 당신들(조선인의) 역사무대(옛영토)인데 이런 역사도 모르고

   독립운동을 하고 있읍니까?




             한일합방이후 조선의 영토분할


. 대륙동쪽(남조선,또는 중국), 만주(만주국),한반도(조선총독부)는 일본이 분할지배,

  대륙남쪽은 서구열강(영국,프랑스,독일등)이 지배,

  대륙서쪽, 북쪽은 청이 각각 지배




  22.  장개석 총통이  백범 김구선생에게 한 만찬회장에서


     자기 고향이 옛 백제 땅(절강성)   이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 일제의 대륙침략에 따라 중칭(重慶)으로 후퇴한 장개석(蔣介石) 총통은 함께 피난 온 상해임시정부의 김구 주석 일행을 위로하기 위해 만찬에 초대했었다고 )


 23.  주은래수상은 (중국)동북 지역의 역사가 조선인에게 귀속된다


   (조선의 영토이자   그들의 역사이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24. 초대 문교부장관인 안호상(1902-1999)박사가  중국의  문학자이며 평론가인

     림어당(1895-1976) 선생에게

 

   "중국이 한자를 만들어  우리 나라까지 문제가 많다"

 

     고 하자 림어당 선생은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한자는 당신네들 東夷族 조상(고조선)

      이 만든 문자인데 그것도 모르고 있소?"라고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25,  "한글재단 이사장인 한갑수 박사가 미국 공군지휘참모대학에 입교

 

      했을 당시 같은 입학생인 중국 학자 서량지(徐亮之)가 한박사를 찾아와 말하기를

     "귀국 한민족은 우리 중국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위대한 민족인데

 

     우리 중국인이 한민족의 역사가 기록된 포박자(抱朴子)를 감추고 중국

     역사를 조작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읍니다.

 

       본인(서량지)이 학자적 양심으로 중국인으로서 사죄하는 의미로 절을 하겠으니

      받아달라며 큰 절을 올렸다."

  26.  1930년대 장려화와 그 문하생들의 노력으로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이 편찬되면

     중국에서의 우리 조선의 영토와 역사가 완전히 중국인의 의해 조작되었다.

27. 정명가도(명으로 가려면 조선을 건너야 한다)


   황하이북(명)을 치기 위해서는 조선(=중국대륙)을 건너지 않고 갈수없는 구조.

   즉  명이 중국대륙이라면 바다를 통해서 직접 침략이 가능하기 때문.

   중국대륙의 중부,동부, 남부인 조선과 몽골,하북성의 명,청으로 갈라진 형국을

   말하는 것


... 조선의 민요에 낙양성 십리하에라는 구절....


28. (성주풀이)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번가면   저기 저 모양 될 터이니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저 건너 잔솔밭에          설설기는 저 포수야
저 산비둘기 잡지마라   저 비둘기는 나와 같이
임을 잃고 밤새도록       임을 찾아 헤매노라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한 송정 솔을베어             조그많게 배를지어
술렁술렁 배뛰워놓고       술이나 안주 가득싣고
강릉 경포대 달구경 가세   두리둥실 달구경 가세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판소리 심청가)"

"황천길이 멀다더니 방문 밖이 황천이라


(만가)" 

"고관대작 다 버리고 북망산을 찾아갈 제


낙양의 고려의 수도(고려도경:서긍)이라 나오고 그 곳 북망산에는

 백제인 흑치상지(黑齒常之), 백제 의자왕의 아들 부여륭(夫餘隆),

고구려 연개소문의 둘째와 셋째 아들인 남생(南生)과 남산(南産),

남생의 둘째 아들 헌성(獻誠), 연개소문의 고손자 비(毖) 등이

묻힌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29.양사언의 태산가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은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양사언

시대 조선
생몰년 1517-1584(중종12-선조17)
본관 청주(淸州)
응빙(應聘)
봉래(蓬萊)/완구(完邱)/창해(滄海)/해객(海客)
활동분야 문인, 서예가



놀라운 사실!

 조선의 중국영토인 강원도(산동성)에 바로 태산이 있다. 결코 중국(지나인)의

영역이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태산의 우리나라 고유의 산이다.


티끌모아 태산.....
갈수록 태산이다
.또는 걱정이 태산이다.


조선인들은 태산이 흔하고 누구나 잘알고, 흔하게 올랐던 산이다.



흔하게 사용하는 태산이 왜 중국대륙에 있는지 의심해본적은

없읍니까? 

해방이후 두고 온 대한민국의 산하입니다.

중국공산당에게 빼앗긴 우리의 강토입니다.


 30  장안의 화제

 장안은  배달(아사달), 고조선(평양), 고구려(평양), 고려(서경),조선(한성), 대한제국(한성)

  의 수도였던  우리나라 9000년의 도시입니다.

바로 조선의 중국영토 섬서성 서안시입니다.




   조선이 중국대륙이기 때문에 우리민족이  

 

  낙양,태산, 장안을 흔하게 사용함.

 


31. 대동여지도 서문(김정호)

   우리나라(조선)는 ... 길이가 두루 1만9백20리나 된다

    (조선이 만리지국으로 중국전체를 뜻하고 있다)


 蓋我東邦域 三面際海 一隅連陸 一萬九百二十里 凡三海沿一百二十八邑 總八千四十三里

[번역] 우리 동방 강역은 3면이 바다에 접하고 한 모퉁이가 육지에 이어져 있으며, 강토는 10,920리이며, 세 바다 연안은 도합 128읍에 총 8,043리이다





32. 신하멜표류기

    새롭게 고쳐쓴 신 하멜표류기(최두환 역주) 2003. 우석출판사


     남한산성의  높이가 2메일(3218m)였다고 한다.

     현재 한반도 남한산성은 400~500m의  산으로 맞지않음

     중국의 한성(서안)의 남쪽산들은 모두높이가 2000~3000m 이고 서남쪽은

     유명한 태백산(3767m,배달국의 시조산인), 남쪽엔 종남산(2604m, 목멱산,남산)

     이 있다.





                           조선 중국영토의 태백산


                 조선 중국영토의 종남산(남산,목멱산)

                        굉장히 험준하고 높은산임.


     (즉 병자호란때 청나라는 조선의 국경선인  황하  (압록강)을 건너 한성(서안)을

     치고 여세를 몰아 한성 남쪽의  남한산성을 공격한것이다. 중국의 남한산성이다)


33. 서거정(1420~1488)의 성삼문의 정원을 보고 지은 가산에서   

    정원을 보면서 (중국의 지명인) 형악,여산,태산,화산,동정호,팽려호를 보는

     듯 했다고 한다

     수려한 금수강산의 조선의 산야를 보고 비유한 것이다. 즉 중국이 조선의

    영토이었음에 가능 하다.


34. 김수온의 성현의 석가산에서

   숭산(중국 하남성 낙양시), 화산(섬서성)을 보는 듯하다고 했다. 조선의 영토에

   속하는 산들이다.


35. 예수회 선교사 알드신부(1735) 의 조선통사 4권중 조선편

   한성은 조선의 수도로 북위 36도에 있으며~

   즉 위도상 북위 36도와 경도상 북경보다 10도 동쪽이라 하여 한반도가 아닌

   중국영토의 섬서성에 있음이 드러났다.

   (지금도 섬서성과 산서성 인접지역에 한성이라 표기되어 있다)

 

 36. 새롭게 고쳐쓴 신 하멜표류기(최두환 역주) 2003. 우석출판사 (20번~25번 참고)

     11월 하순에 한강에 얼음이 두껍게 언다고 함. 이 한강은 황하 중류를 뜻하며,

   현중국에선  강의 기능을 살리기 위해 얼음을 일부러 폭파를 하여 없앤다 한다.

   한반도 한강은 11월에  거의 얼지 않는다.


37. 청나라는 산서성북쪽에 위치하였다.






38. 조선에는 야자나무와 파인애플이 즐비하였다.

    제주도는 1990년대부터 실내등지에서 특수재배로 파인애플을 키워왔으며,

   산과 들에 원래  없었다. 조선의 중국남부영토을 뜻하며,

   이곳은 야자나무등이 모두 자연산이다.


39. 조선의 인구(1500~1600년대)는 1200만에서 1300만이었다.

  이는 그당시 조선의 중국영토의 만리땅이었을때 가능하다. 한반도는 말도 안된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
    (사회경제생활 이야기)
    지은이 / 한국역사연구회
    펴낸이 / 정성현

조선시대의 호구통계에 기초하여 실제 인구를 추정한 연구에 의하면 조선시대의 인구는
1900년에는 1700만, 1910년대에 1750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연구에서 제시된
조선시대의 호구통계와 추정 인구 치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인구변동(호구자료통계와 인구 추정치)>
1393년(태조 2)에 호구자료 통계는 301,300명이고 이에 따른 인구 추정치는
5,572,000명이다.
1440년(세종 22)에 호구자료 통계는 692,475명이고 이에 따른 인구 추정치는
6,724,000명이다.
1551년(중종 6)에는 호구자료 통계가 없었고 인구 추정치는 10,010,000명이다.
1543년(중종 38)에 호구자료 통계는 4,162,021명이고 이에 따른 인구 추정치는
11,643,000명이다.
1642년(인조 20)에 호구자료 통계는 11,649,012명이고 이에 따른 인구 추정치는
10,764,000명이다.
1744년(영조 20)에 호구자료 통계는 7,209,213명이고 이에 따른 인구 추정치는
18,275,000명이다.
1843년(헌종 9)에 호구자료 통계는 6,703,684명이고 이에 따른 인구 추정치는
16,632,000명이다.
1910년(융희 4)에는 호구자료 통계가 없었고 인구 추정치는 17,427,000명이다.
  이것을 보면 조선초기-중종(1400-1590)까지의 인구증가율과 병자호란 이후
현종초(1639-1666)까지의 인구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인구가 1천만 명을 돌파한 시기는 대체로 1500년 전후의 시기, 즉 16세기 전후임도 알 수
있다.


40. 조선에는 악어가 많고 물소도 있었다.

    조선의 중국남부영토의 이야기다. 한반도는 절대 아니다.


41. 동국여지비고

    한성의 둘레는 18km,  한성 4대문밖에 창경궁성, 경희궁성이 있었다

    현 서울에는 창경궁,경희궁이 모두 4대문 안에 있다.

     (조선의 중국영토 섬서성의 한성을 뜻한다)


42. 조선의 영토(1800년대) 지도 : 러시아제작.  제목="  조선의 엄청난 지도!"

출처 : Tong - hanger99님의 기본통

    조선의 영토가 만주를 포함하여 한반도, 중국전체를 차지한 것을 알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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