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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점령3

1894년 갑오왜란 일본 조선정벌2 혼성 9여단장 오오시마는 오오토리 공사와 협의하여 내정개혁에 대한 답변의 시한을 정하고 구체적인 경복궁 점령작전을 계획했습니다. 경복궁 점령작전은 조선의 수도 서울에서 조선의 국왕을 포로로 삼아 조선군의 무장해제를 도모하고, 새로운 친일정권을 수립하여 조선정부가 일본에 조선주재 청군의 축출을 의뢰하도록 강요하기 위한 군사작전이었습니다. 7월 22일, 밤 10시경에 일본공사관에서 오오토리 공사와 오시마여단장을 비롯한 일본군부와 외교라인이 모여 23일 새벽부터 진행되는 경복궁 점령작전을 지휘했습니다. 작전은 제11연대가 동대문, 광희문, 동북문 등을 점령하고 순찰 및 서울시내 경계를 담당하면, 제21연대가 실질적으로 경복궁으로 난입하여 고종의 신변을 확보하고 조선군을 제압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7월 23일,.. 2018. 5. 26.
1894년 갑오왜란 일본 조선 정벌1 1894년 갑오년은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난 10년이 되는 해로 일본은 정한론(征韓論 ; 에도 막부 말기 1855년 에서 메이지 초기에 일본에서 등장한 조선 침략론) 에 따라 드디어 실행은 옮깁니다. 갑오년 일본의 조선 정벌은 개혁으로, 청일전쟁으로 갑오왜란, 조선 정벌, 경복궁 점령은 가려져 있고 이때부터 조선은 일본에 병탄, 합방, 보호국, 식민지가 된 것입니다. 일본은 조선정복을 위해 일본군의 준비과정, 출병, 경복궁 강제점령 등은 매우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일본군은 사전준비를 철저히 하여 동학농민군의 진압이 아닌 내정개혁요구, 한성(경성, 서울) 진입과 경복궁 점령을 통해 조선정부를 제압하고 친일정권을 수립함으로써 청일전쟁을 안정적으로 개시했습니다. 일본은 한성 진입, 경복궁 점.. 2018. 5. 26.
일본 조선 경복궁 점령 조선 후기 관리들의 수탈과 픽밥으로 1차 동학농민혁명이 1894년 4월 발생하여서 5월 31이 전주성이 함락하였습니다. 고종, 민영준은 중국 청나라에 대해 지원할 병력 요청을 주장하였고 김병시는 텐진조약 ' 조선에 출병시 상대 나라에 대해 통보한다.' 는 항에 때라 일본 군대가 출동할 것을 우려하여 반대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고종과 명성황후는 6월 4일 중국 청나라에 군대 병력을 요청합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죠.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 [* 구식 군대가 월급으로 받은 쌀에 모래가 썩여있는 것에 대해 시작되어 권력에서 물러난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을 추대한 난임. ] 때에도 조선 자체 군대 병력으로 난을 다스리지 못 하여 청나라 군대를 요청하여 임금의 아버지가 중국 북경으로 포로로 끌려가고 일.. 2018. 5. 20.